하버드 MBA들이 미국 경제 망쳤다

수익성에 도움 안 되는 책임과 윤리 추구는 비도덕적이라고 가르쳐… 2008년 금융위기와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의 원인 제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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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수렁에 빠뜨린 월스트리트 거물이 1명도 기소되지 않은 데 많은 미국인이 격분했다. 포토라인에 세울 만한 금융가는 많지만 애당초 시장 발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었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그런 맥락에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에서 오래 재직한 종신직 교수 마이클 젠슨(금융학) 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그가 모든 사람에게 설파했던 메시지를 믿는 사람은 HBS에서조차 거의 없다. 그러나 피해는 발생했고 그는 추한 유산을 남겼다. 그런데 왜 아직도 멀쩡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무엇보다 그가 종신직 교수이기 때문이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든다는 HBS의 말은 입에 발린 소리일 뿐 그들이 추구하는 진짜 이상은 이익실현이다. 1980년대 젠슨 교수는 HBS에 (몇 년 간) 많은 돈과 학문적 신뢰를 안겨줬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스토리가 있다.

1970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익증대(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라는 에세이를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실었다. 20세기 중반에는 개화된 사회적 양심을 가진 CEO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HBS의 가장 영향력 있는 교수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프리드먼은 그런 견해를 묵살하고 양심적인 경영자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아주 위태롭게 만드는 반동적 요소”라고 주장했다. 그의 어조는 악의적이었다. “(기업가들은) 기업이 ‘단순히’ 이익뿐 아니라 바람직한 ‘사회적’ 목적도 추구한다고 강변한다. 기업에 ‘사회적 양심’이 있으며 고용 제공, 차별 철폐, 오염 방지, 그리고 동시대 개혁파 진영의 슬로건이 될 만한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열변을 토한다. 그래야 자유기업 체제를 옹호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들이나 다른 누구든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사실상 순수하고 완전한 사회주의를 설파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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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탐욕스런 관행에 관한 대중의 분노로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이 일어났지만 달라진 건 거의 없었다.

프리드먼은 이어 경영자의 개념을 회사 주주들의 ‘대리인(agent)’으로 묘사했다. “자유기업, 사유재산 시스템에서 기업 경영자는 기업 소유주들의 피고용자다. 경영자에게는 자신의 고용주들에 직접적인 책임이 따른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회사를 운영할 책임이다. 고용주들의 바람은 대체로 사회의 기본 규칙에 부응하는 한편 가능한 한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대담하게 경종을 울리는 태도를 취했다. 경제학계에서 주목 받으려면 그런 방법이 잘 먹혀든다. 그는 “사회적 책임에 관한 기업가들의 발언은 단기적으로는 박수 받을지 모르지만 이익추구는 사악하고 비도덕적이기 때문에 외력으로 억제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견해에 힘을 실어준다”고 강조했다. “이런 견해가 일단 받아들여지면 시장을 억제하는 외적 요인이 원래의 기대와 달라진다. 고상한 척하는 경영자들의 사회적 양심 대신 정부 관료들의 강압적 조치가 그런 역할을 맡게 된다.”

프리드먼의 어조는 히스테리컬할 뿐 아니라 과장됐다(이익 추구가 ‘사악하다’는 사고가 미국에 ‘만연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런 문제를 접어두면 그가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주주)뿐 아니라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경영자 계급에 크게 어필하는 주장이었다. 한편으로는 품질 좋고 값싼 일본산 제품에 밀리고 또 다른 편에선 근로자·환경보호운동가·여론에 치이며 사면초가에 몰린 1970년대 미국 대기업 CEO를 상상해 보라.

기업 사냥꾼의 불경스런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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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 프리드먼(왼쪽)은 채산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도덕윤리는 비도덕적이라고 간주했다.

프리드먼은 주주 외에는 어떤 책임(계약이든 아니든)도 경영자들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선의는 업무실적에 방해가 될 뿐이며 그런 순진한 사고는 나라, 아니 자본주의를 위해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현란한 이론적 사술(詐術)이었다. 환경보호나 기타 사회적 목표를 고려해 대다수가 도덕적으로 여기는 행동을 하는 경영자를 가리켜 프리드먼은 비도덕적이라고 불렀다. 조엘 바칸이 자신의 2005년 저서 ‘기업의 경제학, 세상을 지배하는 절대권력의 진실(The Corporation: The Pathological Pursuit of Profit and Power)’에서 프리드먼을 인터뷰했다. 그때도 그는 약 40년 전의 주장을 표현만 달리해 되풀이했다. 프리드먼의 관점에선 “위선이라도 수익성에 보탬이 되면 도덕적이며 도덕 윤리라도 수익에 도움이 안 되면 비도덕적”이라고 바칸은 풀이했다.

바칸은 2005년에도 “구시대적이고 악의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프리드먼 브랜드의 냉소주의”를 흉내 내려는 교수를 HBS에서 만날 수 있었다. 데보라 스파 당시 HBS 교수는 기업을 가리켜 “도덕적 개체로 설립된 기관이 아니다”고 말했다. “기업에는 사실상 단 한 가지 목표가 있는데 그것은 주주가치 제고다.”

실제로 기업을 ‘설립’한 사람들 중에서 그런 포괄적인 발언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할 사람은 극소수일 듯하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이본 쉬나드 CEO는 분명 더 큰 목표를 갖고 있었다. 홀푸즈의 공동창업자 존 매케이도 그런 전제에 동의하지 않을 듯하다. 역시 교육기업인 하버드대학 창업자들도 마찬가지 생각이었을 수 있다.

20세기 중반 HBS 학자들의 연구를 감안할 때 경영에서 인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 건 거의 HBS 교수진뿐이었다. 정말 안타깝게도 경영자에겐 인격이 없다는 사고의 소유자를 채용하기로 하면서 HBS의 모든 게 달라졌다.

HBS는 설립 후 75년 가까이 지난 1970년대 후반 경영계에서 근사한 틈새 시장을 차지했다. 사전 검증되고 대단히 의욕적인 인재들을 대기업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능력을 입증했다. 1980년대에도 의욕 충만한 졸업생들을 안정적으로 공급했지만 그들이 향하는 곳은 더는 대기업이 아니었다. 그들은 월스트리트와 컨설팅 업계로 방향을 틀었다.

HBS는 또한 당대의 경영학 신화를 계속 반짝반짝 갈고 닦았다. 하지만 그런 신화는 갈수록 금융, 특히 주주 자본주의의 이점과 관련성이 깊어졌다. 그리고 경영 실무자들이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할 수 있는 사이비 이론적 자본을 계속 제공했다. 1980년대 HBS는 개화된 경영자 계급을 교육하려는 사명을 포기했다. 대신 자신들이 건설에 일익을 담당했던 미국 산업구조를 와해시키면서 월스트리트와 운명을 같이했다. HBS는 전문 경영자를 아기 때부터 잘 키워서는 그를 죽이는 데도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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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브러더스는 2008년 금융위기 때 파산한 극소수 부실기업 중 하나였다. 다른 대형 금융업체들은 일종의 구제금융이나 시혜를 받았다.

프리드먼이 대중화한, 무해한 듯한 이름의 ‘주인-대리인 이론(principal-agent theory)’을 지지한 게 대표적이었다. 1980년대 들어 HBS 교수진은 대부분 미국 경영진의 평판과 경제력을 어떻게 부활시킬지를 고민했다. 반면 젠슨 교수는 경영자들의 명성이 부각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뉴욕 주 로체스터대학 비즈니스 스쿨 교수였던 그는 시카고대학의 자유시장 전통에 빠져 있었다. 젠슨 교수가 로체스터 비즈니스 스쿨 학장 윌리엄 메클링(프리드먼의 대학원 제자)과 함께 작성한 1976년의 논문은 세상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기업 이론, 경영 행동, 대리인 비용, 그리고 소유구조(Theory of the Firm: Managerial Behavior, Agency Costs and Ownership Structure)’에서 그는 악덕자본가(robber barons)가 전문 경영자에게 밀려난 이후 미국 기업계의 세력 계층구조에서 가장 혁신적인 변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젠슨 교수와 메클링 학장은 경영자가 너무 경직되고 규율과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주장하면서 미국 기업의 관리인으로서 투자자가 경영자보다 더 신뢰도가 높다고 가정했다. 경영자들이 자발적으로 개혁하지는 않을 테니 시스템을 조정해 개혁을 강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자들이 더는 스스로를 심판하거나 자신들이 뽑은 배심원 즉 이사회의 심판을 받지 않게 된다. 앞으로는 시장이 재판관·배심원·처형집행자가 된다는 논리였다.

젠슨 교수가 등장할 때까지 경영자 급여는 대체로 기업 규모와 연계됐었다. 대기업일수록 CEO 연봉이 높았다. 그러나 복합기업 시대의 비효율적인 다각화는 과잉설비, 이익 정체 또는 감소, 주가 침체를 초래했다. 결과적으로 다우존스공업평균지수는 1960년대 중반~1980년대 초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런 과잉설비는 젠슨 교수가 말하는 이른바 ‘1980년대 자본시장 구조조정 혁명’에 큰 역할을 했다. 큰돈을 쌓아둔 기업들이 갑자기 적대적 인수의 표적이 됐다. 당시에는 경영자들이 주주에게 이익을 돌려주려 하지 않아 현금 많은 기업이 널려 있었다. 투자자 자본주의 시대가 열렸으며 그 주인공은 CEO가 아니라 칼 아이칸과 T. 분 피킨스 같은 기업 사냥꾼들이었다.

그 뒤 규제완화 물결이 일면서 기업 인수합병 시장이 활성화됐다. 주주 제일주의가 부상하면서 주주를 제외한 어떤 ‘이해관계자(종업원·지역공동체·사회)’에 대해서도 경영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게 됐다. 중요한 건 오로지 수익성뿐이었다.

존 맥아더 당시 HBS 학장은 젠슨 교수의 메시지에 공감해 1984년 그를 HBS에 객원교수로 초빙했다. 맥아더 학장의 공적을 찬양하는 1999년 발간도서 ‘지적 벤처자본가(Intellectual Venture Capitalist)’에서 HBS는 젠슨 교수 채용의 논리를 늘어놓았다. “젠슨 교수는 경영 실무자들의 경험에 반하는 비정통적인 이론의 시험에 관심이 있었으며 기업계의 고위직 의사결정자들을 더 많이 만나보기 위해 한시적으로 HBS에서 일하기로 했다.” 턱도 없는 소리다. ‘기업 이론, 경영 행동, 대리인 비용, 그리고 소유구조’의 시험은 케인즈 경제학 또는 알기 쉽게 허리케인으로 해변 주택이 바다로 휩쓸려 들어갈지 모른다는 이론의 시험만큼이나 비현실적이었다. 그 문제를 두고 입에서 쓴 내가 날 때까지 논쟁을 벌일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어떻게 되는지 직접 지켜봐야 한다.

젠슨 교수가 HBS에서 개발한 대리인 이론에 기초해 ‘시장과 조직의 조정과 통제(The Coordination and Control of Markets and Organizations)’라는 과정이 개설됐다. 학생들이 더 ‘현실적 사고’를 갖고 조직 사명의 ‘이해관계자 모델(stakeholder model)’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취지다. HBS에서 최고 인기 선택과정 중 하나가 됐다. 대리인 이론이 새롭지는 않았지만 젠슨 교수의 리메이크 버전은 기업 인수 활동의 학문적 정당성을 제공했으며 HBS가 그 혁명군 전사들을 공급했다.

MBA에 윤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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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교수의 논문과 가르침으로 인해 CEO, 기관투자자, 월스트리트 종사자들은 자신들의 편협한 욕구와 필요 이외의 것들을 고려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메클링 학장과 공동 저술한 1994년 논문 ‘사람의 성격(The Nature of Man)’에서 젠슨 교수는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한 여배우에게 100만 달러를 줄 테니 자신과 자겠느냐고 물은 이야기를 인용했다. 그녀가 동의하자 그는 금액을 다시 10달러로 바꿨다. 여배우는 자신을 뭘로 보느냐며 펄펄 뛰었다. 그는 “뭘로 보는지는 이미 입증된 문제”라며 “지금은 가격을 흥정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논문 작성자들은 우리 모두를 매춘부라고 결론지었다. “좋든 싫든 개인들은 원하는 물건을 충분히 얻기 위해 우리가 거론하려는 거의 무엇이든 심지어 평판이나 도덕성까지 어느 정도 기꺼이 희생하려 한다.”

그들이 제공한 해법은 사람에 대한 이 같은 냉소적인 관점을 전제로 했으며 우리 모두 매춘부라는 가정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자연히 우리를 모범적인 매춘부로 만드는 처방으로 끝을 맺었다. 런던정경대학의 수만트라 고샬 교수는 2005년 논문 ‘나쁜 경영이론이 좋은 경영 관행을 파괴한다’에서 “물리학 이론과 달리 사회과학 이론은 결과가 가설을 따르는(self-fulfilling)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수십 년 간 바로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경영자에 관한 우리의 집단 비관론이 경영 행태의 병리현상으로 구현됐다.”

다시 말해 모두가 당신을 매춘부라고 가정할 경우 수요가 있는 동안 가능한 한 많은 돈을 쓸어 담는 편이 낫다. 고샬 교수는 “비즈니스 스쿨들은 이념에 근거한 비도덕적 이론을 설파하면서 학생들이 도덕적 책임감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데 앞장섰다”고 결론지었다. 그에 따르면 경영자들은 신뢰해선 안 되고 주주들은 신뢰할 수 있었다. 교육 역사상 가장 극적인 반전 중 하나였다. HBS는 젠슨 교수의 채용으로 그런 냉소주의자들과 운명을 같이했다.

HBS 졸업생들은 원래부터 금융으로 쏠렸지만 1980년대부터 월스트리트와 사모기업으로 떼 지어 몰려들었다. 1965년 컨설팅이나 투자금융 분야에 진출한 HBS MBA가 11%에 그친 반면 1985년에는 그 비율이 41%로 뛰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HBS 선배 졸업자들이 구축했던 전통적인 제조업과 상품 생산업체의 다운사이징(다시 말해 거덜내기)에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 변화는 권력을 감지하는 MBA의 예리한 후각을 상징한다. 1970년대 이전에는 기업들의 보유자금이 쌓이면서 은행 의존도가 낮아졌다. 그러나 보유현금이 줄어들자 추가 다시 금융 쪽으로 이동했다. 자본주의 경제에선 돈이 곧 권력이다. 그리고 1983~1992년 미국의 가계자산 보유 상위 1% 중 전문 경영자의 비율은 현저히 감소한 반면 금융 업종 종사자 비율은 급증했다. MBA들도 그쪽으로 몰려들었다. 미시건대학 경영학과 제럴드 데이비스 교수는 ‘21세기 기업의 힘(Corporate Power in the 21st Century)’에서 “20세기 대부분 미국의 사회조직은 행성에 딸린 위성들처럼 대기업 주위의 궤도를 돌았다”고 썼다. 그러나 젠슨 교수의 등장 이후 “기업의 목표, 또는 이해관계자들에의 책임에 대한 의구심은 모두 해소된 상태였다. 기업은 주주가치 창출을 위해 존재했고 다른 노력은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다.”

경영학 사가 J. C. 스펜더는 지난해 비즈에드 잡지에서 ‘경영 교육자들은 회사 해산을 통한 주주수익 개선이 좋은 경영이라는 이론을 합리화했다’고 썼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 또는 기업을 잃은 지역공동체에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은 고려하지 않았다.’

물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온갖 프로그램들은 알고 보니 모두 쇼에 불과했다. 미국 애스펀 연구소의 최근 조사에선 학생들이 비즈니스 스쿨에 들어갈 때는 기업의 목적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해 사회에 혜택을 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졸업할 때는 주주가치 극대화로 믿음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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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맥도널드는 자신의 저서에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이 월스트리트의 돈을 더 많이 끌어들이려고 75년 동안 지켜왔던 철학을 외면했다고 주장한다.

젠슨 교수는 1980년대 2건의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 기고문을 통해 LBO(기업의 차입매수) 붐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기업인수의 표적이 돼 해고될지 모른다는 위협으로 사실상 기업 인수합병 시장이 형성되면서 경영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LBO로 부채가 크게 늘면서 경영자들이 회사 경영에 훨씬 더 집중하게 됐다고도 주장했다. 끝으로 경영자들이 자신의 소유지분을 늘려 LBO에 참여하면 그들의 인센티브가 회사 주가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젠슨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기업인수와 LBO로 미국의 경제 문제가 치유된다.

1980년 당시 미국의 150대 상장기업 중 22%가 1988년까지 합병 또는 인수됐으며 그 밖에 5%가 비공개기업으로 전환됐다.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담배 제조업체 RJR 나비스코의 인수 거래는 평소 사주경계를 게을리하던 모든 CEO들에게 확실한 교훈이었다. 다운사이징이 경영자 ‘교회’의 찬송가가 됐다. 상당부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감세와 적자 재정지출 덕분에 미국 경제는 1982년 이후 다시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월터 키첼이 2012년 HBR 기고문에서 지적했듯이 1950년대와는 달리 “경기호전의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대외 경쟁력 강화, 기업인수 완수(또는 방어), 주주이익 극대화 명목 아래 새로운 기업전략에 들어맞지 않는 사업체를 매각하고 근로자를 대량 해고하는 방식이 허용됐다.”

그 무렵 젠슨 교수는 잘 나가고 있었다. “기업인수는 자원을 낭비하고 않고 자산을 생산적으로 활용한다” “인수대상 기업의 경영자에게 고액의 퇴직수당(golden parachutes)을 줘도 주주에게는 이익이다” 같은 주장을 전방위로 쏟아냈다. 그의 주장에는 HBS의 확실한 인증 도장이 찍혀 있었다.

1989년 HBS의 풀타임 교수가 된 젠슨은 1990년 HBR 기고문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대했다. 케빈 머피와 공동 작성한 ‘CEO 인센티브는 금액보다 방식이 중요하다’는 글에서 경영자 보수의 역사상 가장 터무니없다 할 만한 발언으로 서두를 열었다. ‘CEO 보수 문제가 심각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과도한’ 급여가 아니다. CEO가 받는 수당에만 계속 초점이 맞춰져 정작 큰 문제인 CEO 보수체계는 주목 받지 못한다.’

3년 뒤 경영자 보수 규제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빌 클린턴 대통령은 성과급이 아닌 한 경영자 보수 중 100만 달러 초과분에 대한 세금공제를 폐지했다. 하지만 이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 그 법의 발효 이후 많은 경영자의 급여 패키지가 증가했다(연봉이 100만 달러 선으로 집중됐다). 그뿐 아니라 연봉체계에서 스톡옵션으로 전환하면서 경영자 보수가 사상 최대 규모로 폭증했다.

1992년 포춘 500대 기업 CEO의 평균 소득은 270만 달러였던 반면 2000년에는 1400만 달러에 달했다. 보수 대비 스톡옵션 비율은 1980년대 19%에서 2000년 50% 선에 육박했다. 그와 함께 단기성과주의와 경영자들의 경영실적 ‘관리’ 경향도 두드러졌다. 공격적인 회계기법을 활용해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이 전망의 근거로 삼는 실적 궤도를 ‘매끄럽게’ 손질했다.

실적이 기대 이상일 경우 CEO 보수가 늘어난다는 젠슨 교수의 말은 맞았지만 기대 이하일 때 CEO가 갑자기 해고될 수 있다는 예측은 틀렸다. 1990년대 미국 기업 경영자들의 보수는 실적과 상관없이(때로는 저조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급증했다.

젠슨 교수의 금융 기반 기업 이론은 2007~2010년 금융위기 이후 신뢰를 크게 잃었다. 특히 금융시장은 ‘정보 효율적(informationally efficient)’이며 ‘기업 지배구조 메커니즘이 기업 주가를 좌우한다’는 이론은 알고 보니 턱없이 빗나간 것으로 드러났다고 제럴드 데이비스 교수는 평했다. “이 같은 견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경영자·투자자·정책입안자에게 널리 받아들여질 때 경제에 위험을 미치는 건 확실하다. 실제로 기업에 관한 그런 금융 기반 관점이 현재와 같은 위기를 초래했다는 주장까지 가능하다. 상장기업의 경영에 금융과 금융시장이 중추적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소유자 사회(ownership society, 선량한 시민의 부동산과 주식 보유)가 번영과 안정을 위한 실용적인 모델인지는 확실치 않다.”

전형적인 악덕 자본가 존 D. 록펠러가 창업한 뉴저지주 소재 스탠더드 오일의 회장은 1951년 “관리자의 역할은 주주·근로자·고객 그리고 일반 대중 간에 공평하고 실용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젠슨 시대에는 그것을 망각한 사람이 많았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그것을 어느 정도는 다시 기억해 냈다. 주주친화적인 제너럴 일렉트릭의 장수 CEO 잭 웰치도 결국에는 전향했다. 2009년 3월 그는 영국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에 이렇게 밝혔다. “외견상 주주가치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아이디어다. 주주가치는 결과이지 전략이 아니다. 회사의 주요 기반은 직원·고객·제품이다. 경영자와 투자자는 주가상승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단기이익을 회사의 장기적인 가치 향상에 연결시켜야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매춘부는 아닐지 모른다.

주주 자본주의가 미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사람들이 약간 불안해 하기 시작했을 때도 젠슨 교수는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반대로 HBS의 동료 교수들이 자신의 이론에서 벗어나면 맹렬히 공격했다. 윌리엄 라조닉은 1984년 알프레드 챈들러 교수의 초청으로 HBS 교수 자리를 얻은 뒤 학교의 경영사학회(BHC) 의장을 맡았다. 그는 1992년 금융의 새로운 제왕에 도전하는 실수를 범했다. 젠슨 교수의 연구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기업 인수합병 시장의 통제(Controlling the Market for Corporate Control: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Managerial Capitalism)’라는 논문을 발표했을 때였다.

경영사를 현실과 무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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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S가 신봉한 주주가치 제일주의와 CEO 무제한 보수의 두 가지 이론으로 시장이 광기로 치달으며 2008년 세계경제를 파탄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라조닉 교수는 젠슨 교수의 주주가치 이론을 비판하는 쪽이었지만 학문적 측면에서 비판자였다. 세미나 중 연단에서 반대 진영에 앉거나 학술지의 신사적인 논단에서 가시 돋친 설전을 벌이는 식이었다. 이번엔 달랐다. 라조닉 교수는 이렇게 돌이켰다. “젠슨 교수는 이 분야의 왕이었다. 감히 자신에게 반론을 제기한다고 나를 공격했다. 모든 동료들 앞에서 아웃사이더에게 비판 받은 상황에 놓인 데 격분했다. 그는 HBS의 토마스 매크로 교수에게 다시는 나를 초청하지 말라고 했고 나는 그 뒤 17년 동안 초대받지 못했다. 나는 바로 전해까지 BHC의 의장이었다. 의심할 바 없이 1990년대 초 HBS 최고 실력자는 마이클 젠슨이었다. 그는 학생들과 훨씬 더 교류가 많았고 그 학생들을 모두 월스트리트로 보냈고 월스트리트 기업들은 모두 HBS로 돈을 보냈다. 그 영향으로 대리인 이론이 득세하면서 경영사는 현실과 무관해졌다.”

라조닉 교수는 자신의 경험이 지식인의 비겁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젠슨을 채용하자마자 거의 곧바로 주주가치 이론이 HBS의 지배적인 입장이 됐다. 교수진 대다수가 직접적인 체험에 근거해 그것을 믿지 않았지만 비판은 전혀 없었다. 분명 더 잘 알 만한 사람들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다.”

라조닉 교수는 “데렉 복 하버드대학 총장과 존 맥아더 HBS 학장은 분명 더 잘 알 만한 사람들이었는데도 관례를 깨고 젠슨을 채용했다”고 말했다. “현직 교수에게 그 문제를 물었더니 맥아더 학장은 젠슨을 채용하면 월스트리트에서 기부금이 들어오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라조닉 교수는 그보다는 젠슨의 부상을 막지 못한 HBS 교수진을 더 비난했다. “HBS의 전통에 따라 이런 식으로 기업을 경영해선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었다. 대신 그들은 그냥 대세를 따라 젠슨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2004년 젠슨 교수는 이번에도 케빈 머피와 함께 ‘우리가 어디 있었고, 어떻게 여기에 왔고, 문제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고치나’를 썼다. 자신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달라고 누가 그에게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그의 딜레마를 상상해 보라.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모르는 게 없는 만능 해결사였다.

하지만 2004년에는 그에게 질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의 이론은 파산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200년에 걸친 경제·금융 연구는 외부효과(externalities)와 독점이 없는 상황에선 기업들이 총 시장가치를 극대화할 때 사회복지가 극대화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큰소리쳤다. 그의 말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그 ‘외부효과’에는 가령 기업들이 결국 책임을 회피하는 오염, 또는 CEO가 오로지 주가를 끌어올리려 공장 문을 닫을 때 지역사회의 붕괴 등이 포함된다. 그런 허점들을 무시하더라도 그 사회복지의 확대는 ‘시사된’ 이론에 불과했다.

젠슨 교수의 논문은 고샬 교수가 대리인 이론을 포괄적으로 반박하는 주장을 펼치면서 최후의 결정타를 맞았다. 그는 주주가 한 기업의 ‘소유주’라는 프리드먼(나아가 젠슨)의 주장을 조목조목 파헤치는 데서 출발했다. 최소한 ‘소유’가 자동차나 스마트폰을 갖는 것과 같은 의미라면 주주는 ‘소유주’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고샬 교수는 “기업이 창출하는 가치는 다른 구성원들이 기여하는 자원의 결합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라며 “근로자와 주주 모두의 자원을 결합해 가치가 창출된다면 왜 주주에게만 유리하게 가치가 배분돼야 하는가?”라고 썼다.

모델을 수정하면 간단하지 않겠는가? 대단히 복잡한 인간의 조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건 경제학자들의 능력 밖의 문제일지 모른다. “그런 이론은 예리하고 시험할 수 있는 명제를 쉽게 도출하지도, 간단한 환원주의적 처방을 제공하지도 않는다”고 고샬 교수는 평했다. “그런 전제 아래선 아는 척은 통하지 않는다. 경영은 과학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우리는 일반상식에 의존해야 한다.”

근년 들어 젠슨 교수는 자신의 유산을 수정하려는 부질없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2011년 ‘금융에 무결성을 접목한다(Putting Integrity Into Finance)’는 논문으로 더 친절하고 상냥한 측면을 보여줬다. 공저자 워너 에어하드(에어하드 세미나 트레이닝 운동의 창시자)와 함께 젠슨 교수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생산의 결정적인 요인’을 밝혀냈다고 주장했다. 그 요인이 바로 무결성(도덕적 규범의 완벽한 준수)이다. 젠슨 교수는 “무결성을 높이는 실행 가능한 경로”를 제시한다고 주장하며 “무결성은 가치 극대화와 멋진 삶을 위한 필요(하지만 충분은 아님) 조건이 된다”고 결론지었다. 이보다 교수 종신직의 문제점을 더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는 없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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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HBS의 최고 실력자는 마이클 젠슨이었다. 그에게서 배운 학생들을 모두 월스트트로 보냈으며 월스트리트 기업들은 모두 HBS로 돈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젠슨 교수는 무엇을 성취했을까? 한 세대의 기업가들에게 스스로를 비하하고 더 천박한 동기를 추종하도록 했다. 그는 온갖 경제 방정식을 수립하고 자기 이론의 논리를 시험하고 반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그리고 그것은 이론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CEO·기관투자자, 월스트리트 종사자들이 자신의 편협한 욕구와 필요 이외의 문제들을 고려할 책임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경영자들은 대리인 이론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취하고 나머지는 무시했다. 미국 경영자들은 그의 이론에 따라 회사를 빚더미 위에 올려놓고, 그의 이론에 따라 주식과 옵션을 챙기기 시작했고, 그 주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장기적인 가치를 희생시켜 단기 실적을 올렸다. 그 실현을 위해 명백한 사기를 저지르는 일도 적지 않았다.

젠슨 교수가 적대적 인수의 경이적인 세계를 논할 때 언급하지 않은 문제가 한 가지 있다. 거기서 파생되는 내부자 거래다. 그런 범죄는 1986년 투자은행 드렉셀 번햄 램버트의 데니스 리바인이 체포되면서 처음 드러났다. 그는 내부자거래를 통한 1260만 달러 사취, 그리고 사법방해와 기록파기 미수로 기소됐다. 리바인은 차익거래자 이반 보에스키를 끌어들였고, 보에스키는 마틴 시겔(HBS 1971년 졸업)을 끌어들였다. 시겔은 투자은행 키더 피바디 출신으로 당시 드렉셀 번햄 램버트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화젯거리가 한 가지 있다. 수사당국은 엔론 주식의 내부자 거래 수사에서 리바인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다. 후속 수사에서 시겔, 폴 빌제리안(1977년 졸), 아이러 소콜로(1981년 졸) 등 HBS 졸업자가 다수 걸려들었다.

스캔들 당시 드렉셀 번햄 램버트의 CEO는 프레드 조셉(1963년 졸)이었다. 그는 자신은 내부자 거래와 무관하며 그런 사실을 몰랐던 죄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수사당국은 그 말을 믿었으며 증권거래위원회는 스타 직원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잘못만 문책하는 선으로 끝냈다.

젠슨 교수는 2005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높은 주가를 떠받치는 전망에 관해 경영자들이 지나치게 낙관하는 성향에 관해 논했다. “경영자들이 지나치게 낙관적이지 않고 현실적인 수치를 시장에 제시한다면 주가는 현실적인 수준에 머문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 학자들도 어떻게 그렇게 만들지는 아직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게 바로 윤리다. 그리고 그의 말이 옳다. HBS는 금융공학은 잘 가르치면서 윤리를 어떻게 가르칠지는 잘 모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003년 HBS가 추가한 ‘리더십과 기업책임’ 과정은 젠슨 교수의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듯하다. 내부자거래 규칙, 엔론의 몰락, 인간의 특성, 종업원 책임, 노동법, 기업시민, 사회책임 투자, 공익활동에 관한 토론과 함께 ‘투자자·고객·종업원·납품업자·대중 등 회사의 핵심 기반 각자에 대한 책임을 수반하는 결정’을 가르친다. 하지만 그만한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젠슨 교수가 어떻게 죽여야 할지 아무도 모르는 프랑켄슈타인 괴물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 더프 맥도널드

[박스기사] 취재 후기

이 기사의 원전인 ‘골든 패스포트(The Golden Passport)’ 취재를 시작할 때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의 행정가와 교수들을 인터뷰하고, 학교의 광범위한 역사기록을 활용할 수 있는지 학교 당국에 물었다. 놀랍게도 HBS는 내 취재에 조금도 관심이 없으며 학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단 한 사람의 학교 관계자도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HBS는 사안 별로 역사기록을 제공했지만 지난 50년 동안의 자료 열람은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 덕분에 직접 구할 수 있었다. 그 뒤 3년여에 걸쳐 수차례 생각이 바뀌지 않았는지 묻고 마지막으로 찾아갔을 때도 그들은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