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에 틀 씌우는 건 고문”

40년 쓴 노래 가사로 책 펴낸 영국 싱어 송라이터 존 라이든, 펑크 록과 포스트 펑크 이끈 음악 철학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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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싱어 송라이터 존 라이든(61)은 언제나 그 시대의 문제에 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 왔다. 그가 이끌던 밴드 섹스 피스톨즈가 ‘펑크의 왕’으로 군림하던 1970년대에 라이든(당시 예명 조니 로튼)은 ‘God Save the Queen’이라는 곡에서 ‘파시스트 정권’에 관해 노래했다. BBC 라디오는 이 곡에 방송 금지 처분을 내렸다.

섹스 피스톨즈가 2년 반 만에 해체된 후 라이든은 포스트 펑크 밴드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PiL)’를 결성해 체제에 대한 비난을 계속했다. PiL은 ‘Metal Box’ ‘Second Edition’ 등 수많은 앨범을 내면서 진화해 왔다. 또 드럼의 마왕으로 불리는 진저 베이커를 포함해 많은 유명 뮤지션이 이 밴드를 거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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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파라디소에서 공연하는 섹스 피스톨즈.

라이든은 최근 자신이 지난 40년 동안 쓴 노래 가사를 모은 책 ‘미스터 로튼의 송북(Mr. Rotten’s Songbook)’(이하 송북)을 펴냈다. 사전 주문 한정판으로 출판된 이 책에는 라이든이 손글씨로 쓴 가사와 직접 그린 삽화가 실렸다. 라이든은 ‘송북’ 이전에도 2권의 책[‘Rotten: No Irish, No Blacks, No Dogs’(1993)와 ‘Anger Is an Energy’(2015)]을 냈다.

라이든이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초기의 펑크 음악 시절과 PiL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그린 데이(미국의 3인조 록 밴드)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다.

‘송북’은 허무주의 펑크부터 PiL 활동까지 당신의 음악적 진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더 나은 쪽으로의 발전이었다면 좋겠다. 난 더 많이 배울수록 더 나아진다. 그러려면 오래 살아야 한다.

PiL과 함께 음악적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은 계속해서 같은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난 그런 판에 박힌 틀을 거부한다. 사람들은 내게 어떤 틀을 씌우려 한다. 하지만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사람에게 그것은 고문이나 다름없다.

PiL의 최신 앨범 ‘What the World Needs Now…’ (2015)를 평가한다면?

현재 우리 밴드의 상태는 최상이다. 각자의 기술적인 능력보다 서로의 친밀감을 더 중시한다. 우리 멤버들은 진정한 친구다. 난 음악 분야에서 일하려면 동료들과도 대립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나온 PiL의 두 앨범은 그런 생각을 깨준 놀라운 경험이었다.

섹스 피스톨즈의 음악성이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사람들은 우리가 재능이 없다고 경멸했다. 멤버들의 성격이 제각각이라 의견이 분분했지만 사실 그런 복잡한 관계는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였다. 당시 매니저 맬컴 맥라렌은 이런 대결 구도를 한층 더 부추겼다. 난 기본적으로 음악에서 욕심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에게 공평한 몫이 돌아간다면 어느 한 사람이 리더 역할을 한다 해도 문제될 게 없다.

맥라렌이 어떤 식으로 방해를 했나?

팀을 분열시켰다. 좌파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적절치 않은 순간에 적절치 않은 말을 했다. 그리고 당시 우리는 매우 젊었었다. 맥라렌은 매우 뛰어난 측면도 있었지만 형편없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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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라이든은 1970년대에 섹스 피스톨즈를 이끌었고 그 후 PiL을 결성해 체제에 대한 비난을 계속했다.

PiL은 멤버가 자주 바뀌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솔직히 말하면 자금이 부족해서다. 그래서 멤버들이 오래 버티지 못했다. 월급을 보장해주지 못하니까 떠나갔다. 그중 어느 누구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런 현상이 펑크록에 미친 영향은?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그린데이가 징 박힌 가죽 재킷을 입고 나대지 않았나? 그린데이 멤버들에게 개인적인 반감이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단지 그들의 음악은 펑크가 아니기 때문에 펑크 밴드로 자처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 그들의 음악은 가라오케다.

섹스 피스톨즈가 활동을 시작할 무렵 펑크 밴드들은 대형 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여는 레드 제플린이나 핑크 플로이드, 퀸 같은 록 그룹들을 비난했다. 하지만 결국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지 않았나?

그들은 내게 늘 감동을 줬다. 그들이 한 일이 당대에는 매우 도전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레드 제플린은 블루스를 퇴보시키고 뒤집어엎었다. 드러머 존 본햄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마치 다른 시대에서 온 사람들 같았다. 난 미국 흑인을 흉내 내는 록 밴드들에 화가 났다. 그것은 마치 흑인 음악에 백인의 얼굴을 씌운 것 같았다. 흑인이 견뎌야 했던 끔찍한 상황에 대한 공감이 없는 연주는 형편없었다.

섹스 피스톨즈가 활동을 시작할 무렵 인기였던 프로그록에 대한 생각은?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음악 아니었나?

헤비메탈은 어떤가?

섹스 피스톨즈 초창기에 많은 헤비메탈 그룹이 우리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지만 AC/DC 같은 밴드들은 우리 음악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들은 우리 콘서트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모터헤드의 레미 킬미스터 등은 우리를 이해했다.

어째서 그런가?

우리는 같은 목적을 위해 싸웠다.

다른 장르 뮤지션들과의 동지애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나와 친구들은 음악으로 깊이 연결됐다는 점을 꼭 말하고 싶다. 언론에서는 우리가 서로를 적대시한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우리는 서로의 직업의식을 사랑한다. 그것을 이해한다는 게 매우 중요하다.

특히 누구와 그런 동지의식을 느끼나?

핑크 플로이드다. 팬들이 대결 구도를 만드는 것이지 실제로 그런 건 없다. 로저 워터스의 부인은 내 남동생 마틴의 미술 선생님이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서로 연결돼 있다. 쓸데없이 적을 만들 필요는 없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사운드가 마음에 안 들 수는 있어도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일을 하는 건 분명하다. 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핑크 플로이드가 합동 공연을 요청했을 때 어떻게 대응했나?

그들은 미국 LA에서 공연 중이었는데 ‘The Dark Side of the Moon’ 앨범에 수록된 곡 중 하나를 같이 부르자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주 멋진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스럽다. 내 스케줄을 취소하고라도 그 요청을 받아들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앨범이기 때문이다.

또 언젠가 앨리스 쿠퍼가 영국 런던의 해머스미스 오데온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 그 공연장은 우리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가 내게 ‘I’m Eighteen’을 함께 부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당시 난 ‘This is PiL’ 앨범 녹음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에 응하지 못했다. 정말 유감이다. 한편으론 내가 그의 공연을 망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의 콘서트에 나가 주인공보다 더 주목 받게 될까 봐 거절한 건 아닌가?

아니다. 그저 그의 콘서트를 망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난 평생 쿠퍼를 좋아했다. 그의 특이한 재능에 조니 로튼이라는 뮤지션이 끼어드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내가 좋아하는 쿠퍼가 아니기 때문이다. 쿠퍼는 나의 영웅 중 한 명이다. 그는 10대 청소년의 불안과 연극적인 요소를 혼합한 작품과 공연에 미쳐 있었다.

공포스런 분위기도 빼놓을 수 없잖은가?

그렇다. 하지만 그의 노래들은 기본적으로 ‘어떻게 하면 여자친구를 사귈까?’ 같은 10대의 관심사를 다뤘다. 난 지금도 그런 문제로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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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라이든의 ‘미스터 로튼의 송북’에는 그가 섹스 피스톨즈와 PiL에서 활동할 때 만든 노래들의 가사가 수록됐다.

1976년 섹스 피스톨즈가 몇몇 밴드와 함께 유명한 ‘Anarchy Tour’를 시작했는데.

그렇다. 클래쉬와 댐드, 하트브레이커스가 함께 순회공연을 했다. 우린 어딜 가도 환영 받지 못했지만 나머지 밴드들은 그렇지 않았다. 펑크는 수많은 문을 열어젖힌 반면 펑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러 방면에서 문을 닫아버렸다. 그렇게 해서 ‘우리와 그들’이라는 대결 구도가 생겼다. 정말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옳고 그들은 틀리다’는 식의 판단이 이뤄진다. 그런 판단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애드버츠, 슬리츠, 엑스레이 스펙스, 그리고 섹스 피스톨즈. 이런 다양성이 얼마나 좋은가?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난 그룹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다. 내겐 늘 그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아이디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내 인생의 요점이다.

요즘은 어떤 음악을 듣나?

장르와 뮤지션을 구분하지 않고 듣는다. 모든 뮤지션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노래를 만들고 리허설과 녹음을 하고 부정적인 평가를 기다리는(웃음) 힘든 과정을 거치는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정말 힘든 일이다. 현대 대중음악계는 사이먼 코웰 식의 상업적 접근이 지배하는 세계다.

섹스 피스톨즈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여성 뮤지션들의 활약도 눈길을 끄는데.

펑크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여성 뮤지션들이 남성과 동등한 위치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그것이 세상을 바꿨다. 여성 밴드들이 무대에서 남자들과 다름없는 공연을 펼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슬리츠, 엑스레이 스펙스, 레인코츠 등 여성이나 남녀혼성 밴드들은 환상적인 무대를 펼쳤다. 당시 사회에서 그런 경향이 얼마나 개방적이고 창조적이며 도전적인 것이었는지 요즘 젊은이들이 깨달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 호의적인 발언을 했는데.

트럼프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아웃사이더가 됐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그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말도 하지만 행동은 매우 어설프다.

버락 오마마 전 미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하나?

훌륭한 사람이다. 난 한 인간으로서 그를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이제 모든 게 우리에게 달렸다. 다시 시작할 때다. 제2의 펑크 시대가 열렸다.

독일 같은 유럽 국가들의 이민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나?

지난해 PiL 유럽 순회공연 때 메르켈 총리가 허용한 대규모 이민이 초래한 문제를 목격했다. 그건 형편없는 시나리오다. 메르켈은 누구든 환영하지만 그녀는 그 이민자들이 독일로 들어가려면 수많은 다른 나라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적절한 심사 제도가 없다는 게 문제다.

당신의 사회정치적 견해는 극좌와 극우를 포함해 모든 성향의 언론에 보도됐는데.

영국에 극우 성향의 스피어헤드라는 잡지가 있었다. 그 잡지에서 내 인터뷰를 실은 적이 있는데 고릴라 몸통에 내 얼굴 사진을 합성한 표지 이미지를 사용했다. 제목은 ‘이 남자는 알비노 니거인가(Is This Man an Albino Nigger)?’였다. (알비노 니거는 ‘색소결핍증에 걸린 깜둥이’라는 뜻으로 겉만 백인이지 속은 흑인이라는 의미다.)

그런 보도가 당신의 인생에 미친 영향은?

난 인종 구분이 없는 세상을 지지한다. 모든 사람은 인간성으로 구분될 뿐 다른 어떤 기준도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 제프 펄라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