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보다 진보주의

미국 대기업 광고에 사회운동 관련 메시지 담는 사례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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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펩시가 인터넷에 올린 광고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같은 사회운동을 가볍게 다뤘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최근 펩시가 인터넷에 올린 광고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같은 사회운동을 가볍게 다뤘다는 비난에 휩싸여 24시간도 안 돼 내려졌다. 하지만 이 광고는 TV 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 등장하고 다양한 밈의 소재가 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펩시가 진보주의에 편승한 광고로 수익을 노린 최초의 기업은 아니다. 세계 곳곳의 광고회사와 마케팅 에이전시들이 이 시류에 동참한다. 그리고 마침내 섹스를 내세우기보다 반문화를 홍보하는 것이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지난해 슈퍼볼 광고만 봐도 알 수 있다. 시청자들은 레이디 가가의 하프타임 쇼를 기다리면서 그녀가 공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수적인 주장을 어떻게 공격할지 기대에 차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저항’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84 럼버’ 같은 회사들의 광고였다.

건축자재 회사인 84 럼버는 미국과 멕시코 접경의 사막 지대에서 작업하는 인부들과 멕시코 여성이 딸을 데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힘겹게 국경을 넘는 모습을 담은 90초짜리 광고를 내보냈다(84 럼버는 이 광고 제작에 거의 1400만 달러를 들였다고 알려졌다). 그 인부들은 국경에 ‘거대하고 근사한 장벽’을 세우는 대신 미국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위한 통로를 건설하는 중이다. 물론 84 럼버에서 생산한 자재와 장비를 이용해서 말이다.

“슈퍼볼 광고의 의도는 84 럼버가 기회의 회사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84 럼버의 CEO 매기 하디 매저코가 당시 성명을 통해 밝혔다. “모녀의 힘든 여정은 투지, 결단력, 근면 등 인간 정신을 보여준다. 이는 84 럼버와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힘이다.”

슈퍼볼 방송에서 90초짜리 광고가 나간 지 몇 분도 안 돼 84 럼버의 사이트에 접속자가 몰려 다운됐다. 몇 시간 후 이 광고의 6분짜리 풀 버전은 소셜미디어에서 1100만 뷰를 기록했다.

요즘은 펩시 외에도 진보주의에 편승해 수익을 올리려는 회사가 많다. 스타벅스는 최소 1만 명의 난민을 고용하겠다고 약속했으며 하워드 슐츠 CEO는 이런 내용의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또 최근 저급한 기업문화와 고위관리들의 성희롱 문제로 비난 받은 우버는 몇몇 이슬람 국가 국민의 미국 입국을 한시적으로 제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비난하면서 그 명령으로 피해를 보는 직원들을 위해 300만 달러의 펀드를 조성했다.

펩시의 경쟁사인 코카콜라도 사회운동과 진보주의를 광고 주제로 채택했다. 코카콜라는 다양성을 내세워 다중언어로 제작한 슈퍼볼 광고에 트럼프 대통령이 부르짖는 메시지를 빗대 #AmericaIsBeautiful이라는 해시태그를 붙였다.

펩시는 지난 4월 5일 인터넷에서 광고를 내린 뒤 성명을 통해 “우리는 통합과 평화, 이해를 추구하는 세계적 메시지를 전하려 했지만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어떤 면에서 펩시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점이나 진보주의를 이용해 수익을 올리려 했던 점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 회사는 오랫동안 진보주의 운동에 자금을 지원해 왔다. 일례로 2010년에는 지역사회 프로젝트와 대중운동 지원을 위해 2000만 달러의 ‘펩시 리프레시 이니셔티브’ 기금을 조성했다.

하지만 펩시가 경찰의 잔인성에 희생된 수많은 사람의 고통과 이슬람 공포증, 증오범죄의 범람과 외국인 혐오증을 가볍게 묘사한 데 대해서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앞으로 이 회사가 현대 민권운동 역사의 상징적인 순간을 묘사하는 광고를 또다시 제작한다면 백인 리얼리티 TV 스타(펩시는 문제가 된 광고에 킴 카다시안의 동생 켄달 제너를 등장시켰다)를 캐스팅하기 전에 심사숙고하게 되지 않을까?

대기업들은 사회와 문화를 지지하면서도 돈 벌 방법을 적극 찾아야 한다. 미국 곳곳에서 각종 시위와 운동에 참여하는 수백만 명의 시민은 대기업의 그런 모습을 진정으로 기대한다.

– 크리스 리오타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