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의 이상주의를 엿보다

‘서머 오브 러브’ 운동 당시 혁명을 요구하며 샌프란시스코에 모여들었던 다양한 인간상 조명하는 전시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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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서머 오브 러브’의 중심지였던 샌프란시스코 헤이트 거리에서 포즈를 취한 그레이트풀 데드.

미국인의 정신에서 가장 큰 모순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향수는 받아들이면서 역사는 피한다는 것이다. 1960년대는 그런 모순의 가장 완벽한 예다. 미국인은 배리 골드워터(베트남전에서 핵무기 사용을 주장한 강경 보수주의자)부터 제리 가르시아(록 밴드 그레이트풀 데드에서 활동하며 히피 세대를 이끈 뮤지션)까지 그 시대의 받아들이기 쉬운 교훈은 뭐든 가슴에 새겼다. 하지만 보수파 운동권과 소수민족, 교외에 사는 여성, 불안한 젊은이 등 사회 각계각층이 혁명을 요구하고 나섰던 그 시대에 대한 진지하고 자기 비판적인 평가는 대체로 무시했다.

그들의 요구사항 대다수는 관철되지 않았고 사실상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그들이 마신 음료에 술을 타서일까? 그들이 술에서 깨어났을 때 조지아 주 땅콩 농부 출신의 지미 카터 대통령은 미국이 ‘병’에 걸렸다고 개탄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드 영 박물관에서 열리는 ‘서머 오브 러브 익스피어리언스: 미술, 패션, 그리고 로큰롤 전(The Summer of Love Experience: Art, Fashion, and Rock & Roll)’은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미국인의 삶을 정의하는 1960년대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전시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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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쯤 제작된 의료복. 자수와 술 장식이 1960년대에 유행하던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를 반영한다.

보수파 칼럼니스트 존 포도레츠는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리턴의 대통령 선거가 ‘1960년대를 연상시킨다’고 평했다. 드 영 박물관의 전시회도 마찬가지지만 지난 선거보다는 훨씬 더 기분 좋고 재미있다. ‘서머 오브 러브 익스피어리언스’는 미술보다는 인류학 전시회에 가깝다. 1960년대 말 ‘서머 오브 러브’ 운동 당시 샌프란시스코에 모여들었던 다양한 인간상에 지금도 대단한 관심이 쏠린다는 증거다.

서머 오브 러브는 우드스톡(1969년 뉴욕 시 교외 우드스톡에서 열린 록 페스티벌)처럼 조직적인 행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1967년 1월 골든 게이트 파크(드 영 박물관에서 그리 멀지 않다)에서 열린 ‘휴먼 비-인(Human Be-In)’ 행사는 이 신기하고도 매혹적인 계절의 시발점이 됐다. 이 행사에서는 그레이트풀 데드가 공연했고 시인 앨런 긴스버그가 난잡한 춤을 췄으며 하버드대학 심리학교수 티머시 리어리가 ‘턴온, 튠인, 드롭아웃(Turn on, Tune In, Drop Out)’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Turn On’은 케케묵은 윤리와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Tune In’은 우주와 자신을 조율해서 맞춘다는 뜻이다. ‘Drop Out’은 기성세대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세계 건설에 동참하는 것을 말한다.

서머 오브 러브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그 중심지는 확실했다. 1967년 여름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 거리와 애시베리 거리가 만나는 곳에 약 10만 명의 젊은이가 모여들었다. 그들은 자본주의 타도를 위해 혹은 그저 섹스를 즐기려고 그곳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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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일레인 메이스가 찍은 사진 ‘샌프란시스코 골든 게이트 파크의 아이와 함께 있는 커플’.

서머 오브 러브의 핵심은 음악이었다. 헤이트 거리에 모여든 반기업적 혁명가들은 가장 기업적인 관행인 광고를 예술 형태로 탈바꿈시켰다. 재니스 조플린이나 그레이트풀 데드의 공연 홍보에 초현실주의부터 아르누보까지 다양한 미술 양식을 차용한 포스터가 이용됐다. 그중 뛰어난 작품들은 독창적인 미학을 완성했다. 스탠리 마우스와 웨스 윌슨이 필모어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그레이트풀 데드의 공연 홍보용으로 만든 포스터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모아 붙인 콜라주 작품들을 비롯한 대다수 포스터는 이 전시회장을 마치 커다란 마약 용품 상점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의복은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에 모여든 젊은이들에게 중요한 요소였다. 그 후 히피 패션은 홀치기 염색 원단으로 만든 헐렁한 옷과 마약이나 술에 취한 듯 단정치 못한 스타일로 발전했다. 이 전시회는 헤이트·애시베리 거리의 패션이 오늘날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했음을 보여준다. 디자이너들은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에서 모티프를 따와 가죽 원단과 술 장식을 이용했다. 항구 도시인 샌프란시스코는 아시아와 중남미 문화에도 접근하기가 쉬웠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그들의 화려하고 곡선적인 디자인을 차용했다. 골드러시 때 미국인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끈 미국 브랜드 리바이스는 서머 오브 러브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데님을 공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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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9월 그레이트풀 데드와 옥스포드 서클의 공연 홍보용 포스터 (스탠리 마우스와 앨튼 켈리 제작).

전시회의 몽환적인 색채는 소셜미디어의 인기 공유 대상으로 떠오를 만큼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이 전시회는 이상하게도 1960년대 당시 히피의 이상주의와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주인으로 자처하는 테크놀로지 전문가들의 이상주의 사이의 연관성에 주목하지 않았다. 서머 오브 러브를 어느 시대에나 의미 있는 현상으로 조명하려는 전시회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처사다.

전시회의 예술적 정점은 일레인 메이스와 루스-매리언 바루크의 흑백 사진 컬렉션이다. 이 두 사진가는 서머 오브 러브를 신화화하려는 어떤 의도도 없이 순수하게 그 복잡성을 포착했다. 특히 메이스는 헤이트 거리에 모여들었던 젊은이들의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전달하려 했던 듯하다. 그들은 샌프란시스코 역시 자신이 도망쳐온 도시만큼이나 잔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루크의 사진은 당시 오클랜드 만 주변에서 형성 중이던 ‘블랙 팬서’(Black Panthers, 극좌익 흑인 과격 단체)에 관한 중요한 자료다.

내가 전시회에 갔던 목요일 오후에는 관람객이 많았다. 부유해 보이는 일부 나이 든 관람객들은 자신이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듯이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전시회를 둘러봤다. 나머지 관람객은 테크놀로지 붐이 일기 전의 샌프란시스코를 기억하기엔 너무 나이가 어려 보이는 젊은이들이었다. 사방에서 스페인어와 독일어, 힌두어 등 외국어가 들리는 걸 보니 1960년대에 매력을 느끼는 건 세계적인 현상인 듯했다.

박물관 바깥쪽의 가로등은 가짜 거리 표지판으로 장식돼 있었다. 과거의 여러 운동과 집단들이 현재의 그것들과 교차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히피와 힙스터(hipster, 첨단 유행을 따르는 부류)가 만나고, 과거의 민권운동과 오늘날의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만난다. 이 표지판들은 다른 어떤 전시물보다 더 큰 가르침을 주는 듯하다. 밀레니엄 세대가 헤이트-애시베리 거리의 히피들로부터 많은 것을 빌려왔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우려를 자아내는 측면도 있다. 드 영 박물관으로 가는 벽돌 보도 위에는 1960년대에 유행하던 배지들을 재현한 원형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그중 하나에는 ‘평등권(Equal Rights)’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지속적이고 집단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옆에서는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하라!(If it feels good do it)’는 사뭇 다른 내용의 문구가 쓰인 배지가 눈에 띄었다.

1960년대의 사회운동은 지도자들이 도덕적 진지함을 포기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래서 그 다음 10년 동안은 쾌락주의가 팽배했다. 무드 링(착용자의 기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반지), 디스코, 코카콜라, 재즈 체조 등이 유행했다. 사랑의 여름(서머 오브 러브) 뒤에는 춥고 습한 가을이 이어졌다.

– 알렉산더 나자리안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