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하고 혁명적인 도망자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영화 ‘네루다’…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요소가 감동 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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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펠루초뉴 형사 역을 맡은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눈을 가늘게 뜨고 턱을 쑥 내민 채 코믹한 연기를 보여준다. / 사진 : YOUTUBE.COM

칠레 감독 파블로 라라인은 지난해 최초의 영어 영화 ‘재키’로 극찬을 받으면서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라라인 감독의 새 전기 영화 ‘네루다’(국내 개봉 5월 25일)는 그보다 더 훌륭하다. ‘네루다’도 ‘재키’처럼 정치적 유명인사의 생애에 초점을 맞춘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고 1973년 세상을 떠난 칠레의 시인 겸 정치인 파블로 네루다에 관한 이야기다.

‘네루다’도 ‘재키’처럼 주인공이 어떻게 세계적인 아이콘이 됐는지를 조명한다. 하지만 ‘네루다’가 더 다채롭고 신기하며 실험적이다. 웃음을 주는 요소도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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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는 칠레의 시인 겸 정치인 파블로 네루다에 관한 이야기다. / 사진 : WIPIPEDIA.ORG

영화는 시인의 가난했던 유년기와 외교관 시절은 건너뛰고 1948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시작한다. 중년의 네루다(루이스 그네코)가 공산당 상원의원 겸 칠레의 가장 유명한 작가로서의 지위를 만끽하던 시기다. 의회에서는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동료 의원들과 논쟁이 벌어지면 지는 법이 없고 집에서는 흥청망청 술 파티를 연다. 비록 살찐 몸매에 두 턱에다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빗어 넘겼지만 아라비아의 로렌스처럼 멋지게 옷을 입는다.

하지만 네루다의 ‘샴페인 사회주의’(우아하게 샴페인 잔을 기울이면서 진보적 가치를 논하는 유한계층의 사회주의를 말한다)는 곧 거품이 꺼지면서 김이 빠진다. 가브리엘 곤잘레스 비델라(알프레도 카스트로) 칠레 대통령이 공산당을 불법화하자 네루다는 부인 델리아(메르세데스 모란)와 함께 은둔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네루다는 이 상황에 그다지 당황하지 않는다. 그는 “이제부터 치열한 숨바꼭질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당국의 눈을 피해 숨어 지내면서 ‘용감하고 혁명적인 도망자’로 추앙받을 앞날을 내다보기라도 한 걸까? 네루다의 이런 명성이 그가 옹호하려던 억압 받는 칠레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별개 문제다.

기예르모 칼데론이 각본을 쓴 이 작품에서 자만심에 찬 네루다는 당국의 추격이 자신을 만족시킬 만큼 치열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는 경찰 300명이 자신을 뒤쫓는다는 소식에 우쭐한다. 특히 자신을 ‘반역자’로 묘사한 포스터를 아주 자랑스럽게 여긴다. 네루다는 “나중에 역사적 가치가 있을지 모르니 이 포스터들을 보관해 두자”고 동료에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계속 도피처를 옮겨 다니면서(그 와중에 매음굴과 레스토랑도 자주 들락거린다) 번번이 자신을 놓치는 무능한 경찰에 점점 더 짜증을 낸다.

그 무능함의 중심에 오스카 펠루초뉴(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형사가 있다. 칼데론이 만들어낸 네루다의 적수다. 펠루초뉴는 영화 ‘핑크 팬더’ 시리즈에서 피터 셀러스가 연기한 클루조처럼 콧수염에 중절모를 쓴 실수투성이 형사다. 그는 마치 형사 차림을 한 소년 같다. 체격이 왜소한 베르날은 눈을 가늘게 뜨고 턱을 쑥 내민 채 코믹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가 연기하는 펠루초뉴는 형사로서 최소한의 위엄이라도 지키려 애쓰지만 늘 우스꽝스럽다. 내레이션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을 ‘전문적인 경찰관’ ‘핸섬함 펠루초뉴 형사’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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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그네코가 연기하는 네루다는 자만심 강한 인물로 자신을 ‘반역자’로 묘사한 포스터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 사진 : YOUTUBE.COM

이 대목에서 영화는 약간 교묘한 느낌을 주기 시작한다. 펠루초뉴의 내레이션은 그가 등장하는 장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네루다가 동지들과 은밀한 대화를 나눌 때도 어디선가 펠루초뉴의 목소리가 들린다. 마치 그가 영화의 모든 장면을 지켜보면서 해설하는 듯한 느낌이다. 대체 어찌된 일일까? 네루다가 겪는 이 모든 일이 단지 펠루초뉴의 상상 속에서 일어난 걸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펠루초뉴가 마침내 네루다의 부인을 체포했을 때 그녀는 그가 진짜 사람이 아니라 네루다가 오래 전에 쓴 소설의 조연 캐릭터일 뿐이라고 말한다.

한편 세르지오 암스트롱의 카메라는 살금살금 돌아다니는 유령처럼 등장인물들 주변을 맴돌고 페데리코 주시드의 음악은 희미해져 가는 소중한 기억을 아쉬워하는 듯 울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화를 보다 보면 네루다가 칠레를 탈출한 사실이 신화로 변질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일부 관객은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요소들이 신경에 거슬릴지 모른다. 그러나 ‘네루다’는 낙담했지만 포기를 모르는 중심 인물들을 흥미로우면서도 감동적으로 묘사한다. 라라인 감독은 때때로 의도적으로 배면영사(back projection) 기법과 드라마틱한 오케스트라 음악을 사용해 네루다와 펠루초뉴를 1940년대 추격 스릴러 영화의 주인공처럼 보이게 만든다.

두 사람은 실존주의적 코미디의 틀 안에 갇힌 듯 보일 때가 많다. 펠루초뉴가 네루다를 잡기 위해 눈 쌓인 산속까지 쫓아가는 장면은 마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의 코미디 버전을 보는 듯하다. 가슴 아프면서도 이상하고 재미있으면서도 독특하다.

– 니콜라스 바버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