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르 벗는 이란

제재 해제로 시민들의 기대 만발하지만 보수파와 개혁파 간의 투쟁 종식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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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테헤란 현대미술관 지하 깊숙한 곳, 은행 금고처럼 스포크 휠(운전대 모양)을 돌려 여는 문 뒤에 프랜시스 베이컨, 르네 마그리트, 클로드 모네, 폴 고갱 같은 미술가들의 그림 약 2000점이 보관돼 있다. 이란 큐레이터들에 따르면 이 컬렉션의 가치는 50억 달러로 추산된다. 하지만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그것을 본 사람은 혜택 받은 극소수 그룹에 불과하다. 지난 2월 테헤란에 도착한지 며칠 뒤 중동 최대 규모 중 하나인 옛 팔레비 국왕 미술 소장품 컬렉션을 개인적으로 돌아볼 드문 기회가 내게 찾아왔다. 소장품은 1970년대 팔레비 전 국왕의 부인인 파라 팔레비가 1970년대 세운 건물 지하에 보관돼 있었다. 가끔씩 제한적으로 전시회가 열렸지만 대다수 미술품이 수십 년 동안 금고 안에 잠자고 있었다. 지금은 운 좋은 소수 방문객에게만 관람이 허용되며 올해 안에 최소 일부를 독일과 미국으로 보내 전시회를 갖기 위한 협상이 진행 중이다.

“무엇을 먼저 보고 싶으세요?” 대형 캔버스가 하나하나씩 실려 나오는 동안 큐레이터가 질문을 던졌다. 앤디 워홀이 그린 마오쩌둥 주석 초상화, 파블로 피카소의 거대한 그림이 있었다(이곳의 컬렉션에는 피카소와 에드바르트 뭉크의 그림들을 포함해 야한 작품도 일부 있다고 알려졌지만 그것까지 보여주지는 않았다). 나는 동굴같이 휑뎅그렁한, 약간 먼지 덮인 방에 서서 경외의 눈으로 그림들을 살펴봤다. 위층에선 테헤란의 악명 높은 스모그를 막으려고 방진 마스크를 착용한 중국인 관광객들이 정원을 어슬렁거리며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작품들, 2013년 세상을 뜬 이란 미술가 파리데 라샤이의 그림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미국의 뉴욕 현대미술관이나 영국 런던의 테이트 미술관에 있다 해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었다. 미술관의 햇살 비치는 카페에 비다 자임과 마주 앉았다. 그녀는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 동료 레일라 바라스테와 협력해 미술을 통해 서방과 이란 간의 간극을 좁히는 작업을 한다. 우리는 이탈리안 커피를 마시며 이란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많은 서방 미술관이 이 미공개 컬렉션 중 일부를 외부 세계에 보여주는 문제를 논의한다는 사실에 이란 국민으로서 대단히 긍지를 느낀다”고 그녀는 말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20개국에서 취재했지만 이란행 비자를 받기까지 15년 가까이 걸렸다. 나는 이란이 핵프로그램 포기에 합의하는 대가로 국제적인 제재가 해제된 몇 주 뒤 이곳에 도착했다. 테헤란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 아트 컬렉션은 내게 이란이 껍질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상징하는 듯했다.

도시를 관통하는 길고 구불구불한 발리 아스르 거리에 위치한 호텔은 유럽에서 찾아온 기업 관계자들과 EU 관료들로 붐볐다. 커피숍 여기저기에서 비공식 미팅을 통해 활발하게 협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터키를 경유하는 항공편을 이용해야 했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어질 듯하다. 에어 프랑스는 올봄 파리와 테헤란을 잇는 직항편을 개설할 예정이다. 이란 항공도 경쟁력을 키우려 노력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지난 1월 프랑스의 항공기 제조업체 에어버스로부터 250억 달러 규모의 비행기를 구입하기로 합의했다. 이란 항공은 혁명 이후 많은 이란인이 이민 가서 살고 있는 미국행 항공편 재개통을 검토 중이다. 한 파티에서 북헤테란에 거주하는 치과의사를 만났는데 그는 “우리 모두 외국에 미국계 친척과 가족이 있어서 훨씬 더 쉽게 해외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내가 만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이름을 밝히기를 꺼렸다. 이란에선 자의적인 연행이 흔해 불필요하게 당국의 시선을 끌고 싶지 않은 듯했다).

중국도 이란과 교역을 확대한다. 거리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테헤란의 현대적인 지하철 시스템을 건설한 중국은 프랑스의 TGV를 본뜬 고속철 건설 자금을 융통해 주기로 했다. 중국은 또한 이란산 석유 수입에 의존한다. 지난 1월에는 시진핑 국가 주석이 테헤란을 방문해 향후 10년 사이 양국간 교역규모를 6000억 달러로 확대하는 계약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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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1일 이슬람 혁명 37주년을 맞아 테헤란 시민이 자유 기념비 아래 모여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

내가 사는 파리에선 많은 친구들이 비즈니스 또는 관광 목적으로 이란을 방문하고 싶어 한다. 이란의 문화·역사적 보물이 관광으로 ‘결딴 나기’ 전에 감상하려 열을 올린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아랍계 프랑스인 실비 프랑케는 작가·출판인·학자 그룹을 이끌고 3주 일정으로 이란 투어를 진행했다. 그는 “역사, 친절한 사람들, 아름다운 풍경 등 즐길 거리가 아주 많다”며 “온갖 브랜드가 진출해 다른 나라들과 비슷해지기 전에 찾아 갸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더 빠르게 변할 것이다.”

두 개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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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는 역사, 친절한 사람들, 아름다운 풍경 등 즐길 거리가 아주 많다. 온갖 브랜드가 진출해 다른 나라들과 비슷해지기 전에 찾아 가야 한다.”

서방 사람이 이란의 이슬람 공화국을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리는 보수적인 테헤란, 그리고 알보르즈 산맥을 배경으로 하는 북헤테란 교외지구 부촌 간의 상반된 모습은 이란 방문 중 내가 목격한 최대의 분열상이었을 성싶다. 과거 울창한 개인 정원들이 자리 잡고 있던 엘라히에(천국) 지구에 들어선 고급 대리석 아파트들은 갈수록 매입하기가 힘들어진다고 한다. 이곳에 차도르(이슬람 여성의 전통 망토)는 없다. 상점에선 우아한 고급 의류를 판매하고, 여성들은 샤넬과 발렌시아가 백을 들고, 랑방 패션 차림으로 호화 주택에서 화려한 파티를 연다. 파티에선 웨이터들이 맛있는 페르시안 별미를 담은 은쟁반을 들고 손님들 사이를 돌아다닌다. 이런 이란인들은 미국 타도를 외치지 않는다. 그들은 몇 개 국어를 구사하고, 다수가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으며, 자녀를 지역의 프랑스인·영국인·독일인 학교에 보낸다. 하루 저녁 사이에 내 모교 터프츠대학(미국 매사추세츠주) 동문을 여럿 만났다.

이곳에선 목요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주말에는 별장에서 지내며 인근 토찰 산에서 스키를 타거나 순종 페르시아 말을 타고 승마를 즐긴다. “그러나 대다수 이란인은 이런 삶을 누리지 못한다”고 테헤란·런던·보스턴을 왕래하는 한 은행가는 말했다. “우리는 이란인이지만 이런 삶을 누리는 사람들은 사실상 이 나라의 관광객이다.”

북테헤란의 상류층은 제재조치가 해제된 뒤의 변화를 즐긴다. 돈이 이란으로 돌아오고 있다. 엘라히에에서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카샨에 있는 카자르와 팔레비 왕조 시대의 옛 저택을 사들여 복원하는 사람이 많다. 휴가용 별장으로 쓰려는 목적이다. 카샨은 테헤란과 이스파한의 중간쯤에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다. 벨기에의 저명한 신개념 미술작가 빔 델보예는 카샨에서 주택을 여러 채 구입했으며 현지에 고급호텔과 미술관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델보예는 큐레이터인 자임, 바라스테와 협력해 지난 3월 7일 테헤란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다. 2008년 파리에 있는 자신의 화랑에서 이란 미술가 레자 데락샤니의 전시회를 주최했던 니키 다이애나 마카트는 “테헤란이 런던·파리·두바이처럼 번창하고 있다”며 “뜨는 중이 아니라 이미 떴다”고 말했다.

물론 지난 30년 동안의 보수적인 테헤란도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 2월 11일 테헤란의 청명한 겨울 아침, 나는 혼잡한 군중 속을 지나 이란인 수십만 명이 종교 지도자들의 사진이 실린 플래카드와 피켓, 그리고 녹-백-적색 국기를 휘두르는 기념 행사에 합류했다. 그들은 아자디(자유) 광장에 모여 팔레비 왕조의 몰락 37주년을 축하했다. 1979년 이날,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14년에 걸친 이라크와 프랑스에서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 귀국하면서 이란인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미니스커트와 샴페인이 사라지고 독재자 팔레비 국왕의 후원자로 비난 받는 미국과의 오랜 휴대관계가 단칼에 끊어졌다. 물라(종교 지도자)의 시대가 시작됐다. 아자디 광장에 모인 군중 가운데는 차드로 차림의 여성들, 얼굴에 이란 국기 색깔을 칠한 소년들, 단지 적색·백색·녹색 모자 차림으로 대오를 맞춰 행군하는 젊은 군인들과 퍼레이드에 함께 공개되는 무기들을 보러 나온 가족들도 있었다.

일부는 수년간 이란을 지배해온 성직자들의 골수 지지자들이었다. 그리고 ‘미국 타도’ ‘이스라엘 격파’를 외치는 구호와 피켓이 사방에서 들려오고 눈에 띄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친절했다. 십대 소녀들뿐 아니라 성직자들도 나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발걸음을 멈췄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물라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그 배경을 설명하려 노력하는 사람도 있었다. 워싱턴 DC의 조지타운대학에서 수학한 한 공학도는 “‘미국 타도’가 미국인을 죽이라는 뜻이 아니다”며 “미국 정부의 이란 통제 종식, 우리의 독립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어느 날 오후, 정부에서 내게 소개해준 안내자 겸 통역사 알리 케자니는 팔레비 국왕 시절 길거리에서 축구를 하며 자랐던 테헤란의 바하르 시라즈 동네로 나를 데려갔다. 그는 78세의 파티마 압바시 할머니를 만나게 해줬다. 그녀는 100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 1988년 막을 내린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네 아들을 잃었다. 우리는 그녀의 작은 아파트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아들들을 잃은 데 대해 정부를 전혀 원망하지 않는 듯했다. 아들들은 이란의 순교자였다고 자랑스러워 하며 자신의 불행을 미국 탓으로 돌렸다.

“나는 지금도 미국의 적”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핵협상을 원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응했다. 그들은 여러 해 동안 우리에게 제재를 가했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먹는 건 적었지만 그들로부터 자유로웠다.”

‘브레이킹 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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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를 마시고 아이폰을 사용하는 신세대도 미국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반미로 돌아설 수 있다.”

내가 만난 이란인들은 지난해 7월 이란과 세계 주요 6개국 간에 체결된 핵협정 이후 미국 정부의 의도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지 우려했다. 미국 내 상당수, 특히 공화당원들도 이란에 대해 같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같은 입장을 보이는 이스라엘은 핵협정 반대 로비를 맹렬히 전개했으며 이란 지도자들이 줄기차게 외쳐온 반 이스라엘 발언에 우려를 나타낸다. 이란 핵협정이 지속성을 갖느냐에 따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외교정책의 성패뿐 아니라 이란 측의 배후 추진 동력이었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앞날도 판가름날 것이다.

그동안 동결됐던 이란의 수백억 달러 해외자산이 마침내 풀렸고 석유 수출도 재개됐다. 비잔 남다르 장가네 석유장관은 제재 해제에 따라 “이란이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확대”할 수 있게 됐다고 이란 TV에 말했다. 지난 2월 26일 총선에서 개혁파 후보들이 강세를 보인 것은 이란 국민 과반수가 그 협정을 지지한다는 표시지만 이란이 필요 이상으로 양보하지 않았느냐는 의구심도 널리 퍼져 있다.

어느 눈 내리는 오후, 북테헤란의 부촌에서 벗어난 지역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이란 보수파 의원 출신인 라파트 바야트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의사결정자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바야트 전 의원이 도착하기 전에 대학생인 그녀의 아들을 만났다. 바야트 전 의원은 차도르를 착용했지만 아들은 커피와 과일을 내오고 ‘브레이킹 배드’와 ‘하우스 오브 카드’ 등 자신이 좋아하는 미국 TV 드라마에 관해 이야기했다.

바야트 전 의원은 텍사스대학에서 유학했지만 아들보다 더 보수적인 듯하다. 그녀는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핵 프로그램을 재개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우리 과학자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적어도 이란의 보통사람 입장에서는 환경이 금방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제재 해제 후에도 사실상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돈이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에게 물건을 파는 유럽인만 혜택을 봤다. 비행기를 팔지 자동차를 팔지 외국인이 결정한다. 우리 돈을 어떻게 쓸지 우리 스스로 결정할 때 진정으로 제재가 풀렸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파키스탄·이스라엘, 심지어 미국 등 다른 나라들에는 핵 개발을 계속하도록 허용하면서 이란에게만 핵 프로그램에 대한 엄격한 제한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고 불만을 갖는 이란인이 많다. 바로 이 같은 문제에 진정한 위험성이 도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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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6일 총선에서 개혁파 후보들이 강세를 보인 것은 이란 국민 과반수가 제재 해제를 지지한다는 표시지만 이란이 필요 이상으로 양보하지 않았느냐는 의구심도 있다.

이란 원자력에너지기구의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는 “서방은 현재 사람들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고 이란혁명 기념식 날 이란 영어방송 프레스 TV에 말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이란은 결코 순종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나라를 시험하려 들지 않기를 바란다.”

바로 그런 반항심, 그리고 서방에 기 죽은 듯 보이지 않겠다는 근성에서 지난해 말 탄도 미사일 실험을 단행했는지도 모른다. 실험 이후 이란을 믿지 않았던 미국 회의론자들의 아우성과 이스라엘로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비난의 소리가 분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월 중순 핵 관련 제재 해제를 준비하면서도 이에 맞서 새로운 대 이란 제재 리스트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공화당원들은 제재가 너무 약하다며 강경 대응을 요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의 테러 지원과 미사일 실험과 관련된 제재는 핵협정과는 별개 문제라고 주장해왔지만 이란인은 모든 제재의 해제를 원한다.

함께 차를 마신 테헤란대학 미국학과의 파드 이자디 교수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며 “코카콜라를 마시고 아이폰을 사용하는 신세대도 미국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반미로 돌아설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선거(지난 2월 이란 총선과 오는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선)가 이란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란 정부 자문을 지낸 사이드 라일라즈는 “도널드 트럼트와 다른 보수파가 대통령이 되면 이란에는 재앙이 될 것”이라며 “그들은 이미 핵협정을 파기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고 말했다.

핵협정에 관한 의구심은 로하니 대통령을 어려운 입장으로 몰아넣는다. 그는 수년간 서방과 손잡으려 애써 왔지만 그의 권한에는 한계가 있다.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니이가 핵정책에 관한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으며, 이란의 대외정책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는 막강한 혁명수비대를 지휘한다.

의회와 차기 최고지도자를 임명하는 88인 국가지도자운영회의(Assembly of Experts) 의원을 뽑는 지난 2월의 총선은 로하니 대통령에 대한 신임투표인 듯했다. 테헤란에선 개혁파가 우세했다. 의회 의석 30석 전체와 국가지도자운영회의 16석 중 15석을 차지했다. 전국적으론 엇갈린 결과를 보였지만 개혁파들이 상당한 의석을 확보했다. 로하니 대통령이 더 많은 개혁을 추진할 동력을 확보했다.

그와 같은 성과는 일부 개혁파의 출마 저지 노력 속에서 이뤄진 것이다. 하메네이를 지지하는 감시기구인 막강한 헌법수호위원회는 후보를 심사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의원 후보로 나선 1만2000명 중 약 60%의 자격을 박탈했다. 탈락자 중에는 서방과의 관계 개선, 자유시장 경제 개혁, 작은 정부를 추구한 후보가 많았다. 헌법수호위원회의 솎아내기 작업은 이란 일부 지역에선 개혁파 후보가 출마하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미래를 위한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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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제재 해제 후 이미 석유 수출을 늘렸으며 올해 수출량을 하루 200만 배럴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란 서남부 도시 아바단의 정유공장.

이란에는 개혁을 원하는 사람만큼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도 많다. 반대파로 간주되는 사람들에 대한 탄압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미국은 지난 1월 죄수 교환 협상을 통해 미국인 여러 명을 풀려나게 했지만 이란의 가족을 방문했다가 지난해 10월 혁명수비대에 잡혀간 또 다른 미국-이란 이중 국적자 시아마크 나마지는 아직도 철창 안에 갇혀 있다. 그의 노부도 지난 2월 체포됐다.

“이란이 문호를 개방함에 따란 파스다란(혁명수비대)의 권력도 장기적으로는 약화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취지의 협정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많은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터프츠대학 플레처 스쿨(국제법·외교학 전문대학원) 페어스 센터의 나딤 셰하디 소장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역할을 가리켜 말했다.

제재 해제와 그에 따른 석유 수출 재개는 이란의 해외 동맹국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기회를 준다.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 그 유대 국가를 파멸시키려는 단체들에 이란이 계속 무기를 공급한다고 불평한다. 이란은 러시아와 함께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정권을 후원해 왔다.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그리고 미국과 사우디의 후원을 받는 반군과 싸우는 데 필요한 무기·병력·노하우를 보냈다. 이란인은 이라크에서도 이라크군 편에 서서 IS와 싸운다. 그리고 2014년 6월 이라크 북동부 모술이 함락된 후 바그다드에서 IS를 격퇴하는 데 혁명수비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8~2003년 시리아 주재 이란 대사 출신으로 이란 정부의 국제 문제 보좌관인 후세인 셰이콜레슬람은 이란의 개입은 순전히 IS와의 전투가 목적이지 중동에서 시아파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처음부터 우리는 시리아 국민이 스스로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해 왔고 그렇게 믿는다”고 그는 말했다.

예멘에선 사우디가 후원하는 수니파 정부와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단체 후티 반군들이 싸움을 벌인다. 이란과 사우디 간의 또 다른 대리 전쟁이다. 시아파-수니파 간의 노골적인 지역 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이란과 사우디 간의 반목은 뿌리 깊다. 가끔씩 저항하는 자국의 시아파 인구에 특히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사우디는 이란 핵협정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표시했다. 사우디에선 중동 지역 최대의 안보 위협은 IS가 아니라 떠오르는 이슬람 이란 공화국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샤디 하미드는 “이란 핵협정의 다른 측면들을 어떻게 보든 이란 정권에는 탁월한 결과였다”며 “자금유입과 권력의 정통성 강화로 입지가 탄탄해진 이란은 중동 지역에서 목소리가 더 커지고 십중팔구 안정을 해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단순히 이란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란의 앙숙인 사우디도 무력을 더 과시하는 (그리고 궁극적으로 안정을 해치는) 역할을 맡으려는 의지를 보인다. 이는 일정 부분 미국의 중동지역 이탈에 대한 패닉에서 비롯된다. 이란도 그들대로 미국의 이탈을 감지하고 보면서 더 적극적으로 나서 그로 인한 세력공백의 최소한 일부라도 메우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바람직한 조합이 아니다.”

미국의 정책이 열쇠를 쥐고 있다고 그는 내다본다. “미국의 중동지역 개입 결과가 역사적으로 좋지 않았지만 우리가 목격해온 바와 같이 그마저 없으면 지역 상황이 더 악화된다.”

이란 정부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을지 모르지만 개혁파와 보수파 간의 투쟁 종식 전망은 오리무중이다. 라일라즈 전 고문은 “이란에는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두 개의 목소리가 공존한다”며 “그들은 같이 살 수 없으며 한쪽이 상대방을 파멸시키려 작정했다”고 말한다.

– 재닌 디 조바니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