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사기꾼 로버트 드 니로

미국의 금융사기꾼 버니 메이도프의 이야기 다룬 HBO의 TV 영화 ‘더 위자드 오브 라이즈’, 주인공의 내면 파헤치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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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위자드 오브 라이즈’에서 희대의 사기꾼 버니 메이도프 역을 맡은 로버트 드 니로. / 사진 : HBO

미국 HBO 방송의 TV 영화 ‘더 위자드 오브 라이즈(The Wizard of Lies)’(미국에서는 지난 5월 20일 방영됐다)에서 버니 메이도프 역을 맡은 로버트 드 니로는 작품의 중심축이다. 그가 맡은 캐릭터 메이도프가 가족 안에서 그런 것처럼 말이다. 드 니로가 연기하는 메이도프는 험상궂은 인상에 침울한 성격이다. 거만하고 위압적인 데다 밝은 빛과 기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다. 그를 마주하는 사람은 어떤 즐거움도 기대하지 않는다.

드 니로의 연기가 나쁘진 않다. 하지만 그에게선 미국에서 가장 경멸 받는 범죄자 중 한 명인 파렴치한 사기꾼 메이도프를 연기하는 데서 오는 설렘이나 즐거움 같은 걸 찾아볼 수 없다. 드 니로의 잘못만은 아니다. 저널리스트 다이애나 헨리크가 쓴 동명의 책을 바탕으로 한 대본이나 배리 레빈슨의 연출 역시 메이도프의 내면 깊숙이 파고들지 못한다. 어쩌면 애초에 깊이 파고들 만한 게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메이도프의 사기극(미국 역사상 최대의 금융사기로 꼽히는 수십억 달러의 다단계 금융 사기)이 폭로되는 대목에서 시작한다. 그런 다음 과거와 현재를 오락가락하면서 이 사건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또 메이도프가 체포되고 나서 그의 세계가 어떻게 허물어졌는지를 보여준다. 레빈슨의 이전 영화들에 활기를 불어넣었던 유대인 특유의 유머 감각은 찾아볼 수 없다. 졸작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무미건조하다.

마지막에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메이도프는 다른 신문에서 자신을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에 비유했다면서 누구를 소시오패스로 아느냐고 불만을 표한다. 하지만 이전 2시간 15분 동안 관객은 줄곧 그의 소시오패스 같은 행동을 지켜봤다. 그는 고객을 자신의 피라미드 사기 조직에 더 깊숙이 끌어들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제수(동생 피터의 부인)가 평생 저축한 돈을 투자하겠다고 했을 때도 아무 거리낌 없이 그 돈을 받는다. 악당이 인간적 깊이를 지니란 법은 없지만 이 영화에서 메이도프는 깊이 없는 인간으로 묘사된다. 대본이나 드 니로의 연기에서 수많은 사람의 삶을 망쳐놓은 그 남자의 내면을 파고들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주인공 악당에 대해 깊이 파고들지 않을 바에야 그가 인생을 망쳐놓은 세 사람에 좀 더 초점을 맞췄더라면 영화에 훨씬 더 힘이 실렸을지 모른다. 메이도프의 헌신적인 부인 루스(미셸 파이퍼)와 그가 체포된 지 2년 후인 2010년 자살한 큰 아들 마크(알레산드로 니볼라), 2014년 암으로 사망한 작은 아들 앤드류(네이선 대로)가 그들이다.

메이도프의 가족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로 눈길을 끈다. 마크 역할을 맡은 니볼라의 연기는 특히 좋았다. 그는 식구들이 아버지의 사기극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는 말을 믿으려 들지 않는 언론의 태도에 상처 받은 마크의 심경을 잘 포착했다. 다른 배우가 이 역을 맡았더라면 극적으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 줬을 수 있다. 하지만 니볼라는 마크의 자기파괴를 고요한 내파로 묘사했다. 루스 역을 맡아 뉴욕에 사는 유대인 여성의 억양과 분위기를 한껏 살린 파이퍼는 안 그래도 날씬한 몸매에서 체중을 몇 ㎏ 더 뺐다. 영화에서 루스의 비중은 크지 않지만 파이퍼는 빈약한 이 역할에 어느 정도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들 조연 배우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더 위자드 오브 라이즈’는 메이도프의 가족을 가장 상처 받은 피해자로 묘사하는 데 조심스럽다. 앤드류가 메이도프 때문에 재산을 잃은 사람들에 비하면 자기 가족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장면이 그런 예다. 영화는 메이도프의 가족이 지금까지 누려온 풍족한 생활이 다른 사람들의 끔찍한 희생을 대가로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대목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

이 영화는 허구가 가미됐지만 어쨌든 메이도프의 가족은 그의 사기극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는 입장을 취한다(메이도프를 고발한 장본인이 그의 아들들이었다는 사실이 이런 시각을 뒷받침한다). 당시 메이도프의 두 아들이 사건에 개입했을 거라고 확신했던 연방수사관들이나 대다수 사람들의 견해에 배치된다. 드 니로는 메이도프를 주변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과대망상증 환자로 묘사한다. 그의 가족이 그의 기분을 거스를 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를 알 만하다. ‘더 위자드 오브 라이즈’는 주제 자체가 마음을 무겁게 하는 영화지만 관객을 다른 쪽으로 자극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

– 찰스 테일러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