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실 와인은 내가 가져간다

와인 수입세가 없고 BYO 문화가 정착한 홍콩, 세계 최고급 와인 소비지로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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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는 레스토랑에 갈 때 자신이 마실 와인을 가져가는 사람이 늘면서 고급 와인의 소비가 급증한다.

와인 애호가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게 한 가지 있다. 최고급 와인이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곳은 어디일까? 영국 런던에 있는 남성 사교 클럽일까, 프랑스 파리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일까? 아니면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큰 도박판일까? 모두 최고급 와인이 많이 소비될 만한 곳이지만 홍콩과는 비교가 안 된다.

일례로 한때 홍콩의 홍등가였던 곳에 있는 수수한 프랑스 레스토랑 ‘아뮈즈 부슈’의 와인 리스트는 초호화판이다. 이곳에서는 최고급 와인이 세계 어떤 식당보다 더 많이 소비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님이 마시는 와인이 아뮈즈 부슈에서 구매한 것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손님 각자가 가져온 것일 확률이 훨씬 더 높다.

홍콩은 BYO(bring your own, 파티나 음식점에 갈 때 자신이 마실 음료나 술을 가져가는 방식) 문화의 수도다. BYO 운동은 1960년대 호주 멜버른 뒷골목에서 시작됐다. 주류판매 허가가 없는 레스토랑들이 손님에게 각자 마실 와인을 가져올 수 있도록 허용한 데서 유래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홍콩에서는 BYO 문화 또한 고급화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홍콩에서 와인을 파는 레스토랑이 거의 없어 BYO 문화가 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레스토랑은 고급 와인을 구비하는 데 많은 비용을 들이기보다는 손님이 직접 가져와 마시도록 하고 코키지(corkage, 레스토랑·호텔에서 손님이 가져온 와인을 마실 때 술잔 등을 제공하는 대가로 받는 돈)를 물리는 편이 훨씬 더 쉬웠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하자 레스토랑 소유주들은 그 흐름을 바꾸기가 어려웠다. 경쟁이 치열한 홍콩 레스토랑 업계에서 어떤 업체가 BYO를 허용하지 않을 경우 손님이 발길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홍콩 자치정부가 와인 수입에 대한 모든 세금을 철폐하고 규정을 완화하면서 와인 시장이 급성장했다. 이 정책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홍콩은 고급 와인 판매 시장의 3대 중심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와인 수입이 4배로 늘어 연간 10억 달러 규모를 넘어섰으며 그중 대다수가 프랑스의 유명 포도원에서 들여온 것이다. 2010년 홍콩은 미국 뉴욕을 제치고 고급 와인 경매에서 1순위로 떠올랐다.

그 결과 홍콩에서는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뿐 아니라 개인 수집가들의 소장 목록에도 내로라하는 상품들이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2001년 알타야 와인스를 설립한 홍콩의 대표적인 고급 와인상 파울로 퐁(그는 레스토랑도 12개 소유하고 있다)은 “홍콩 최고의 레스토랑들도 (와인 소장 목록에서) 일부 큰손 수집가의 깊이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홍콩 자치정부는 2008년 와인 수입에 대한 면세 결정으로 수입세 수입이 줄었지만 경매 수입과 레스토랑 매출 증가로 그 감소분을 보충하고도 남았다. 홍콩 유수 호텔의 소믈리에로 일하던 켄트 웡은 2009년 한 고층건물의 22층에 레스토랑 아뮈즈 부슈를 열고 와인 셀러에 자신이 소장하던 1100종의 와인을 채웠지만 BYO 문화는 받아들였다. 웡은 때때로 손님이 가져온 와인에 더 잘 어울리도록 메뉴를 수정하기도 한다.

대다수 레스토랑은 BYO 허용에 따른 매출 감소를 보충하기 위해 와인 1병당 40달러의 코키지를 받는다. 일부 레스토랑은 손님이 가져온 와인과 비슷한 가격대의 와인을 레스토랑에서 구매할 경우 코키지를 받지 않는다. 아뮈즈 부슈의 경우는 좀 다르다. “우리는 병당이 아니라 손님 수대로 코키지를 받는다”고 웡은 말했다. “만약 손님이 고가의 와인을 가져오고 싶어 할 경우 우리는 저녁 식사를 제공하고 손님 1명당 (저녁 식사비와 코키지로) 170달러를 받는다.”

요즘 홍콩에는 BYO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 BYO 방식을 거부하는 레스토랑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고급 쇼핑센터 랜드마크에 있는 ‘라틀리에 드 조엘 로뷔숑’이 그중 하나다. 호화 와인 리스트를 구비해 놓고 손님이 원하는 최고급 와인은 어떤 종류라도 찾아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또 다른 유명 레스토랑 ‘앰버’(랜드마크 만다린 오리엔털 호텔 안에 있다)는 BYO 방식을 허용한다.

앰버는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에서 비슷한 가격의 와인을 구매할 경우 손님이 가져온 와인에 코키지를 물리지 않는다. 하지만 한 테이블당 가져올 수 있는 와인을 4병으로 제한한다. 주방장 리처드 에케부스는 “과거엔 와인을 20병씩 들고 오는 손님 때문에 와인 잔이 모자라 다른 손님들이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알타야 와인스의 퐁을 비롯한 홍콩의 와인상들은 세계에서 고급 와인 소비가 가장 많은 곳이 홍콩이라고 생각한다. 홍콩의 레스토랑 중에는 최고급 와인의 소비를 기리는 기념물로 벽을 장식한 곳이 많다. 도맨 드 라 로마네-콩티, 앙리 자이에, 크리스티앙 무익스 같은 전설적인 와인업체에서 생산된 와인의 빈병들이다. 그런 기념품들은 레스토랑 손님에게 홍콩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와인을 지구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 브루스 팰링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