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로 증명한 ‘국경 없는 예술’

조지 밸런신의 장편 발레 ‘주얼’ 초연 50주년…미국과 프랑스, 러시아 무용단이 합동 기념 공연 펼쳐
올여름 링컨센터 페스티벌은 ‘주얼’ 50주년을 기념해 1967년 4월 13일 초연됐던 극장에서 이 역사적인 작품을 공연한다.

20세기 최고의 발레 안무가 조지 밸런신(1904~1983)은 뉴욕 링컨센터 맞은 편 엠파이어 호텔의 커피숍을 좋아했다. 러시아 이민자 출신으로 ‘미스터 B’로도 불렸던 그는 그곳에서 커피나 벡스 맥주를 시켜 마시곤 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그가 자신이 이끄는 뉴욕 시티 발레단(NYCB)의 수석 무용수였던 자크 당부아즈에게 ‘에메랄드(Emeralds)’라는 작품에 관해 처음 말한 곳도 그 커피숍이었다. ‘에메랄드’는 밸런신이 보석상 ‘반 클리프 & 아펠’을 방문했을 때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으로 장편 발레 ‘주얼(Jewels)’을 구성하는 3개의 단편 중 하나다. 그는 당부아즈에게 이 작품의 배경은 “프랑스 시골의 풍경을 상상하면 된다”고 말했다. “마치 인상파 화가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따뜻하며 부드럽고 고요한 분위기다.”

이제 82세가 된 당부아즈가 50년 전 그 일을 밸런신의 러시아 억양까지 흉내 내며 내게 이야기했다. 뉴욕 할렘의 미국 무용연구소(1976년 당부아즈가 설립했다)에서 만난 백발의 그는 에너지가 넘쳤다. “‘주얼’의 2부 ‘루비(Rubies)’는 뉴욕 42번가를 배경으로 한다”고 그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재즈가 흐르고 불빛이 휘황찬란한 자정의 그 거리를 상상해 보라.”

‘루비’의 음악은 밸런신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이민자 출신인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맡았다(‘에메랄드’의 음악은 가브리엘 포레가 작곡했다). 한편 표트르 차이코프스키가 음악을 맡은 ‘주얼’의 3부 ‘다이아몬드(Diamonds)’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러시아 황제의 궁중을 배경으로 한다”고 당부아즈는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밸런신이 무용과 음악을 공부하고 무용가로 활동을 시작한 “매우 우아하고 멋진 곳”이다.

올여름 링컨센터 페스티벌은 ‘주얼’ 50주년을 기념해 1967년 4월 13일 초연됐던 극장에서 이 역사적인 작품을 공연한다. NYCB와 파리 오페라 발레단, 모스크바 볼쇼이 발레단의 협업으로 오는 7월 20일부터 23일까지 5차례 무대에 올려진다. 개막 당일에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이 ‘에메랄드’를, NYCB가 ‘루비’를, 볼쇼이 발레단이 ‘다이아몬드’를 공연한다.

당부아즈는 밸런신의 뮤즈였던 수전 패럴과 함께 ‘다이아몬드’를 공연한 첫 번째 무용수였다. 당부아즈는 의자에서 일어나 책꽂이 앞을 오가다 무릎을 꿇고 앉아 ‘1967년’이라고 표시된 일기장을 꺼냈다. 낡은 흰색 운동화를 신고 걷는 그의 모습이 발레 동작을 연상시켰다.

‘주얼’을 구성하는 3개 단편 중 하나인 ‘다이아몬드’ 공연 모습

그는 일기장을 뒤적이다가 4월 12일과 13일에 적어놓은 메모를 펼쳤다. 자신의 글씨인데도 알아보기 어려운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읽어 내려갔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들어간 대목은 기가 막혔다. 나머지도 좋았다. 드레스 리허설이 정말 멋졌다.”

‘주얼’의 초연 무대는 이례적으로 목요일 밤에 막이 올랐다. 밸런신이 발레의 제목을 미처 결정하지 못해 프로그램에 제목도 안 나와 있었다. 하지만 공연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무용 평론가 클라이브 반스는 다음날 뉴욕타임스에 “밸런신의 창작품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썼다. “이 이름 없는 발레에는 줄거리도 없다. 사상 최초로 플롯이 없는 장편 발레가 탄생했다.”

밸런신은 발레에 혁명을 일으켰다. ‘주얼’은 장편 발레 역사상 최초로 무용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작품이었다. “지금은 발레에서 무용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당시엔 그것이 새로운 개념이었다는 걸 상상하기 어렵다”고 링컨센터 페스티벌의 나이젤 레든 감독이 말했다.

현재 NYCB의 예술감독인 피터 마틴스는 당부아즈로부터 ‘다이아몬드’의 주인공 역을 배워 1968년 1월 처음 공연했다. 덴마크 출신인 마틴스는 ‘주얼’이 초연된 지 몇 달 뒤 객원 무용수로 NYCB에 합류해 정식 단원이 됐으며 1970년에는 수석 무용수가 됐다. 마틴스도 엠파이어 호텔 커피숍에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그는 ‘다이아몬드’ 리허설에 참석해야 할 시간에 이 커피숍에서 참치 샌드위치를 안주 삼아 아콰비트(증류주의 일종)를 마시고 있었다. 밸런신은 그에게 “이제 여기서 더 볼 일이 없다”면서 “리허설도 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1965년 뉴욕 시티 발레단의 무용수들을 지도하는 조지 밸런신.

1983년 밸런신이 사망한 뒤부터 NYCB를 이끌어온 마틴스는 “‘주얼’은 고전 발레에 대한 미스터 B의 선언”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19세기 낭만주의(‘에메랄드’)와 마리우스 페티파의 고전주의(‘다이아몬드’), 신고전주의(‘루비’)를 아우른다. 밸런신은 신고전주의의 선구자이지만 이 3가지 스타일을 모두 섭렵한 대가였다.

‘주얼’의 안무는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가 매우 불안했던 냉전 시대에 구상됐다.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발레는 문화 외교의 중요한 수단이 됐다. 볼쇼이 발레단은 1959년 미국에서 처음 공연해 큰 갈채를 받았고 NYCB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에 미 국무부의 후원을 받아 처음 소련을 방문했다. 밸런신은 러시아와 미국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발레를 창작하고 싶었다. “그는 ‘주얼’로 예술엔 국경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오렐리 뒤퐁 감독은 말했다.

‘주얼’ 초연 50주년을 맞은 지금 세계는 새로운 긴장에 직면해 있다. “(발레를 통한) 교류가 매우 중요하다”고 레든 감독은 말했다. 그는 러시아와 미국, 프랑스의 무용수들이 발레와 밸런신, 그리고 무대에 대한 열정을 나눌 때 얻을 수 있는 혜택은 무궁무진하다고 본다.

NYCB의 수석 무용수 메건 페어차일드는 오는 7월 20일 개막 무대에서 ‘루비’의 주인공 역을 맡았다. 그녀는 국제적 협업으로 이뤄지는 이번 공연은 “최고의 이상적인 캐스팅’을 자랑한다고 말했다.

– 스태브 지브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