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영화도 놀란 감독이 만들면 놀랍다

신작 ‘덩케르크’, 실감 나는 장면 연출했지만 연합군에만 초점 맞춰 사실성 떨어진다는 지적도
‘덩케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해안에서 독일군에게 포위된 연합군 수십만 명의 탈출 과정을 그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애초에 평범한 전쟁영화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영화 ‘덩케르크’는 그를 21세기 영화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 대열에 올려놓은 예술가적 기교를 다시 확인시켜줬다. 이 영화는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3부작과 ‘인셉션’의 능숙한 연출력을 상기시킨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는 수퍼히어로 장르에 불쾌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실주의를 도입한 영화로 평가 받았다. 또 ‘인셉션’은 SF 장르에 대혁신을 일으킨 작품이다.

놀란 감독이 직접 대본을 쓴 ‘덩케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프랑스 북부 해안에서 독일군에 포위당한 영국군과 그들을 탈출시키려는 작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 관점(육지와 바다, 공중)에서 전개되는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독일군의 폭격에서 살아남아 영국으로 돌아가려고 혼신의 힘을 다한다. 선박을 소유한 민간인들의 도움으로 30만여 명의 군인은 무사히 구출된다. 사실 덩케르크는 프랑스 해안 마을 이름이며 이 철수 작전의 정식 명칭은 ‘다이나모 작전(Operation Dynamo)’이었다.

‘덩케르크’에서는 놀란 감독이 기용한 젊은 신인 배우들이 특히 빛났다. (왼쪽부터) 해리 스타일스, 아뉴린 바나드, 핀 화이트헤드.

영화 평가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97%로 호평 받은 이 영화는 관객에게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교훈을 준다. 놀란 감독은 “이 탈출 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영화 잡지 ‘프리미어’에 말했다. “만약 이 작전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영국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덩케르크’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가공이지만 놀란 감독이 당시 상황을 충분히 조사한 끝에 창조한 인물들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놀란 감독과 조슈아 레빈(역사학자로 대본 작업을 도왔다)은 영화 촬영 전 참전용사들에게 자문했다. 덩케르크 전투에 참전했던 군인 몇몇은 시사회에 참석해 해리 영국 왕자를 만나기도 했다.

베테랑 배우 마크 라일런스와 케네스 브래너, 그리고 놀란 감독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톰 하디(영국 공군 조종사 패리어 역)와 킬리언 머피가 탄탄한 연기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가장 빛을 발하는 쪽은 놀란 감독이 기용한 젊은 배우들이다. 영국 육군 일병 토미 역의 핀 화이트헤드에게서 느껴지는 순수함이 전쟁의 참상을 실감 나게 한다. 당시 많은 병사들이 어쩌다 전장에 불려 나와 인생이 바뀌어버린 소년들이었다.

최근 BBC 방송의 드라마 ‘전쟁과 평화’에 출연했던 잭 로든(영국 공군 조종사 콜린스 역)은 짧은 등장 시간에도 깊은 인상을 남겨 앞으로 큰 역할 따낼 듯하다. 보이 밴드 ‘원 디렉션’의 멤버였던 해리 스타일스의 경우 놀란 감독은 그가 그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인 줄 모르고 캐스팅했다는 후문이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어쨌든 스타일스는 자기중심적인 알렉스 역을 매우 훌륭하게 소화했다.

‘덩케르크’에서 놀란 감독은 시·청각적으로 매우 실감나는 전장의 경험을 선사하는 강렬한 전쟁 서사 영화의 비전을 성취했다. 그는 대사를 줄이는 대신 귀청을 때리는 폭발음과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 등을 부자연스럽게 혼합해 관객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자리에서 안절부절 못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팝콘을 쩝쩝거리며 즐기는 여름 영화가 아니라 가상현실 체험에 가깝다.

놀란 감독은 최대한 실감나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해변 장면은 날씨 조건을 실제 작전 당시와 유사하게 만들려고 여름철에 촬영했다. 또한 컴퓨터 생성 이미지(CGI)는 가능한 한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놀란 감독은 영국 신문 텔리그래프에 기고한 글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관객을 그 해변으로 데려갈 것이다. 사방에 모래가 버석거리고 눈앞에 거대한 파도가 넘실거린다. 바다 위에서는 병사들을 태운 민간인 선박들이 파도에 일렁이며 교전 지역을 향해 나아간다.’

독일군의 폭격에서 살아남아 30만여 명의 연합군은 선박을 소유한 민간인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구출된다.

소품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영국 신문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이 영화에는 9개국에서 가져온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선박들이 등장한다. 152m 길이의 프랑스 구축함은 촬영 현장까지 예인해 왔다. 제작팀은 또 당시에 쓰이던 비행기 모형을 한 대 제작했다.

‘덩케르크’의 플롯은 꽤 단순하다. 속도감 있는 액션에서 스릴이 느껴진다. 멋지게 촬영된 놀란 감독의 액션 장면과 환청을 일으킬 듯한 한스 짐머의 음악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짐머는 놀란 감독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작곡가로 ‘다크 나이트’와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의 음악을 작곡했다). 영화 막바지에 가서야 의자 팔걸이를 꽉 쥐고 있던 손의 힘을 풀고 한숨 돌릴 만한 순간이 온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실성이 떨어지는 측면도 있다. 예를 들면 전적으로 연합군에만 초점을 맞춰 독일군의 관점은 없다. 또 놀란 감독은 유혈충돌 장면을 가능한 한 배제했지만 실제로는 많았다. 탈출 작전이 끝나갈 무렵엔 영국군 1만3000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영화에는 대사도 별로 없는데 목격자들은 군인들이 해변에서 소리쳤다고 증언했다.

어쨌든 놀란 감독은 어느 정도는 역사적 정확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주관적인 스토리텔링과 좀 더 큰 그림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어떤 영화에서나 어려운 과제다. 역사적 사실을 말할 때는 특히 그렇다. 그래서 난 그 해변에서 그 군인들과 함께 있다는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관객도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또한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인지를 그들이 이해하기를 바랐다.”

‘덩케르크’가 걸작인지 아니면 신경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방법을 보여주는 고통스러운 훈련에 불과한지는 결론 내리기 어렵다. 이 작품은 실험적인 영화이기 때문에 관객의 호불호가 즉각적으로 갈린다. ‘덩케르크’의 진정한 영화적 가치를 판단하려면 앞으로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온몸의 근육이 긴장했고 마음을 가라앉히려면 신경안정제가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한 체험이었다는 점이다.

– 줄리아 글럼, 투파옐 아메드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