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행성을 지켜라”

뤽 베송 감독의 영화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 시공 넘나들며 외계인과 킬러 로봇에 맞서 싸우는 에이전트들의 이야기
‘발레리안’의 주인공 데인 드한(왼쪽)과 카라 델레바인.

지금은 SF 영화의 고전으로 인정받는 뤽 베송(57) 감독의 ‘제5원소’가 1997년 개봉됐을 때 미국 관객은 어리둥절했다. 브루스 윌리스가 의도치 않게 세상을 구하는 택시 기사로 나오는 이 과장되고 우스꽝스런 SF 액션 영화를 두고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가장 바보 같은 영화 중 하나”라고 혹평했다. 게다가 이 영화는 흥행성적에서도 그해 여름에 나온 영화 중 꼴찌였다.

“우리는 애리조나 주에서 특별 시사회를 열었는데 결과는 참혹했다”고 베송 감독은 돌이켰다. “외계인 오페라 가수(인바 뮬라)가 등장하자 내 옆에 앉았던 남자가 자신의 두 자녀에게 ‘그만 나가자’며 자리를 떴다. 미국인에게 그 영화는 너무 유럽적이고 낯설었다.”

베송 감독은 신작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이하 ‘발레리안’)(국내 개봉 8월 30일)의 개봉을 앞두고 미국 관객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키려고 그런 말을 한 듯하다. 1억8000만 달러의 예산이 들어간 이 작품은 ‘뮐’이라는 행성에서 온 팔다리가 길고 피부가 은색인 펄족(the Pearls)에 관한 이야기다. 환경친화적인 이들의 삶이 우주 침략자들의 침입으로 파괴된다.

펄족이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2009년 블록버스터 ‘아바타’에 나오는 나비족을 연상시킨다는 말에 베송 감독은 펄쩍 뛰었다. “난 ‘아바타’가 나오기 전 이 영화의 대본을 완성해 놨었다. 하지만 ‘아바타’를 보고 나서 그 대본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캐머런 감독의 진보된 기술과 고도의 예술적 기교가 베송 감독을 더욱 분발하게 만들었다. 프랑스의 장편만화 ‘발레리안과 로렐린’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3D 영화 ‘발레리안’은 유럽 영화와 독립 영화 사상 가장 예산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란 점을 생각할 때 잘된 일이다. 베송 감독은 그 만화를 보면서 자라났으며 언젠가 영화로 만드는 게 꿈이었다. “이 영화에 내 모든 에너지와 사랑을 쏟아부었다”고 그는 말했다.

‘발레리안’ 촬영장에서 주연 배우 데인 드한과 함께한 뤽 베송(왼쪽) 감독.

미국에서 그 야망을 펼치는 건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요즘 할리우드는 위험을 감수하려 들지 않는다. 올여름에는 ‘에이리언: 커버넌트’ ‘카3: 새로운 도전’ ‘원더 우먼’ 등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인 속편과 스핀오프, 리메이크 작품이 넘쳐난다. 관객도 모험을 싫어하긴 마찬가지다. ‘발레리안’은 미국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주제로 했을 뿐 아니라 유명 배우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1997년 ‘제5원소’를 찍을 때 윌리스는 ‘다이 하드’로 이름을 알린 터였다. 하지만 ‘발레리안’의 주인공인 데인드한(‘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과 슈퍼모델 출신의 카라 델레바인(‘제5원소’의 밀라 요보비치도 슈퍼모델 출신이었다)은 비교적 신인이다. 이들의 임무는 우주정거장 을 위험에 빠뜨리는 미지의 세력을 몰아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시공을 넘나들며 기이한 외계인과 킬러 로봇에 맞서 싸운다.

이 영화는 비주얼이 아주 멋지다. 스키틀(색색의 젤리)처럼 다채로운 색상을 자랑하는 이 작품은 제작에 총 7년이 걸렸고 스토리보드 드로잉이 6000개나 쓰였다. 또 특수효과 기술자가 950명 동원됐고 컴퓨터 생성 이미지 2734샷이 이용됐다. 이 영화는 유로파코프(2000년 베송 감독이 공동 설립한 파리의 영화사)에 큰 부담을 안겨줬다. ‘발레리안’으로 수익을 올리려면 최소 4억 달러는 벌어들여야 한다. 사실 이 회사는 1년 수입을 한 프로젝트에 쏟아붓는다. 위험부담이 매우 큰 일이다.

‘발레리안’이 흥행에 성공할 경우 속편이 제작될 확률이 높다. 베송 감독은 유로파코프에서 이미 2개의 블록버스터 시리즈를 쓰거나 감독했다. ‘테이큰’ 3부작과 ‘트랜스포터’ 시리즈는 총 12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리고 현재 속편을 제작 중인 ‘루시’가 그 뒤를 이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다른 감독들이 만든 유로파코프의 작품은 그렇게 성공하지 못했다. ‘더 서클’(톰 행크스와 엠마 왓슨 주연)과 ‘셧 인’(나오미 와츠가 주연한 심리 스릴러), ‘미스터 캣’(배리 소넨펠드 감독의 고양이를 주제로 한 코미디) 등은 상업적으로나 평단의 평가 면에서 모두 실패했다(그래도 지난해 시상식 시즌에 기대를 모았던 ‘미스 슬로운’은 골든 글로브 상 후보로 지명되는 성과를 올렸다). 따라서 ‘발레리안’이 흥행에 참패할 경우 유로파코프는 경매에 부쳐질 수도 있다.

유로파코프의 대주주인 베송 감독은 회사가 매각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영화가 실패한다면 슬픈 일이지만 어쨌든 회사는 살아남을 것이다. 돈보다는 명예를 잃게 된다는 말이다. 난 영화가 개봉되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내게 중요한 건 숫자 아니라 그 영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베송 감독은 ‘발레리안’이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와 같은 뜻밖의 성공을 거두기를 희망한다. 개봉 전 별로 기대를 모으지 못했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7억7300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려 할리우드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영화는 엉뚱한 유머와 과장된 캐릭터 등 ‘제5원소’와 닮은 구석이 많았다. 하지만 베송 감독은 이번엔 좀 더 안전을 기했다. “‘발레리안’은 너무 과한 영화는 아니다”고 그는 말했다. “다만 약간 기이할 뿐이다.”

– 크리스 리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