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의 변신은 무죄?

1979년 복음주의 신자로 거듭난 그에게 팬들은 실망했지만 새로 나온 가스펠 앨범이 그들의 마음 되돌릴 수도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은 회의론자로서 끝없이 탐색하고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아티스트로 명성을 얻었다. / 사진:NEWSIS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던가? 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배신했다고 생각하면 그 실망감은 아주 깊고 오래 간다. 미국 포크 음악의 대부이자 음유시인으로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딜런은 1979년 ‘Slow Train Coming’이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복음주의 기독교인으로 거듭난 자신의 개종을 간증한 음반이었다. 그 앨범을 접한 팬들은 딜런에게 속았다고 생각하고 환멸을 느꼈다. 그전까지 철저한 회의론자로서 끝없이 탐색하고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아티스트라고 믿었던 딜런이 어떻게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평소 복잡하고도 미묘한 견해를 표명했던 그가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가 따라야 하는 엄격한 각본을 어떻게 따를 수 있을까? 하지만 ‘Slow Train Coming’에서 딜런은 회의론자와 불가지론자를 거들먹거리며 비판 받아 마땅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치부하는 식으로 성서를 해석했다.

딜런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변신으로 팬들에게 충격을 던진 건 그게 처음이 아니었다. 1965년 뉴 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그는 느닷없이 전기 기타를 들고나와 공연했다. 포크란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한 포크 음악팬들은 분노하며 야유를 퍼부었다. 그러나 야유는 곧 사라졌다. 결국 이 공연은 포크와 록의 결합을 알린 계기로 평가받았다. 그로부터 5년 뒤에도 창의성의 상징이던 딜런이 열의 없이 다른 가수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앨범 ‘Self-Portrait’을 발표해 다시 한번 팬들을 실망시켰다. 음악잡지 롤링스톤의 이 앨범 비평은 ‘이 빌어먹을 쓰레기가 뭔가?’라며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러나 불과 6개월 뒤 딜런은 자기성찰적인 아름다운 앨범 ‘New Morning’으로 잃었던 명성을 되찾았다. 이 음반은 끝이 보이지 않는 베트남전에 무기력해진 나머지 공동체를 떠나 개인으로 돌아간, 당시 미국 사회의 어떤 풍경을 반영하는 듯했다.

그러나 1979~1981년 발표된 그의 종교적인 앨범 3부작(‘Slow Train Coming’ ‘Saved’ ‘Shot of Love’)은 오랫동안 많은 팬을 실망시켰다. 당시 나는 십대였다. 나도 딜런의 그런 음악을 멀리했다. 그러다가 1989년 ‘Oh Mercy’가 나오면서 나는 다시 그의 음악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 앨범과 그 뒤로 최고조에 이른 그의 음악과 공연이 이어지면서 많은 사람이 ‘딜런의 잃어버린 시기’라고 부르는 시절을 다시 돌아볼 이유가 없는 듯했다.

최근 시판된 딜런의 박스 세트 ‘Trouble No More’는 그런 생각을 바꾸기에 충분한 듯하다. CD 8장과 DVD 1장으로 구성됐으며 그의 음반사 컬럼비아가 딜런의 ‘복음주의 시기’라고 부르는 시절의 노래가 담겼다. 지금 그 음악을 듣자 이제껏 딜런의 그 시절 노래를 경멸해온 것이 후회스럽게 느껴졌다. 아, 그렇다. 난 믿음이 없는 자였다! 그의 음악은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줬다.


최근 시판된 밥 딜런의 박스 세트 ‘Trouble No More’에는 ‘복음주의 시기’의 노래가 담겼다. / 사진:BOBDYLAN.COM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이 박스 세트에 담긴 트랙은 오리지널 스튜디오 녹음이 아니다. 그 녹음은 지금 들어도 거북하고 자의식적이며 다분히 설교적이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박스 세트는 1979~1981년 활기찼던 그의 공연 실황을 담은 앨범들이다. 스튜디오 녹음과 실제 콘서트가 그토록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듯하다.

당시 딜런은 실시간으로 관객에게 직접 자신의 메시지를 전했다. 딜런이 그 경험으로 얼마나 신났는지 눈에 선할 정도다. 그의 노래가 그보다 더 실감난 적은 없다. 또 그의 밴드가 그처럼 그의 노래를 잘 떠받친 적도 없다.

그의 공연엔 여러 뮤지션이 등장한다. 해먼드 오르간의 반주로 노래하는 스푸너 올드험, 비트 강한 베이스 기타를 치는 팀 드러먼드, 드럼을 신나게 두드리는 짐 켈트너 등. 최대 5명에 이르는 그의 백업 가수들은 합창단의 역할을 멋지게 소화하면서 딜런의 노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열정 가득한 공연으로 복음주의 음악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럼에도 일부 팬은 공연장을 박차고 나갔다. 대부분은 딜런이 옛 노래와 히트곡을 부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딜런은 1980년 말 공연에서 팬들의 뜻을 반영해 ‘Girl From the North Country’ ‘Forever Young’ 등 일부 클래식 곡들을 포함시켰다.

딜런은 이런 공연에서 모든 노래를 변형시켜 불렀다. 가사를 추가하거나 편곡을 다시 하거나 새로운 리듬을 적용했다. ‘Slow Train’의 경우 6가지 버전이 등장한다. 갈수록 더욱 창의적이다.

그의 신앙 간증이 밀도 높은 창의성의 분발을 촉진시킨 듯하다. 박스 세트에 포함된 곡 중 14곡은 이전에 한 번도 발표된 적이 없다. ‘Ain’t No Man Righteous, No Not One’ 같은 곡을 그가 그냥 잊혀지게 뒀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다. 1979년 레지나 매크레리와 함께 부른 그 곡은 스튜디오에서 재현하기 힘들 정도로 깊이가 있다. 완전히 다른 두 버전으로 부른 ‘Ain’t Going to Hell for Anybody’가 한 번도 녹음된 적이 없다는 사실은 더욱 믿기 어렵다.

이번에 출시된 박스 세트엔 순회공연 라디오 광고가 포함됐는데 거기엔 딜런의 변신을 혐오하며 비난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지금 들으면 재미있는 정도다. 사실 그가 기이한 모습으로 달라졌다는 사실을 우리가 받아들였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지금까지 늘 변신을 거듭하지 않았는가? 또 그 이전에도 종교적인 이미지가 들어간 그의 음악이 적지 않았다. 앨범 ‘Highway 61 Revisited’부터 싱글곡 ‘Knockin’ on Heaven’s Door’까지 그의 손에 꼽히는 음악이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띤다. 만약 어떤 아티스트가 사랑의 노래를 만들었다면 우리는 그 사랑의 대상을 두고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그 대상과 사랑을 공유할 생각도 우리가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팬들은 왜 유독 그 시절 딜런의 확고한 종교적 열정을 문제 삼고 거부했을까?

그의 복음주의 음악에 나타난 신앙은 1978년 말 자신이 받았다고 주장한 종교적 계시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수년 뒤 그때와 마찬가지로 불가사의하게 그는 다시 옛날의 불가지론자 딜런으로 돌아갔다. 1997년 그는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나에겐 음악이 종교다. 다른 곳에선 종교성을 찾지 않는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노래를 믿는다.” 이번에 나온 박스 세트 ‘Trouble No More’에 담긴 딜런의 노래는 우리도 충분히 믿을 만하다.

– 짐 파버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