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주화 거부했던 예술가

시인 겸 뮤지션 레너드 코언의 1주기 맞아 고향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전시회 열려 … 10개국의 예술가 40명이 그의 작품 재창조해


레너드 코언은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30대가 돼서야 음악의 길로 들어섰다. / 사진:COURTESY OF THE NATIONAL FILM BOARD

캐나다 출신 싱어송라이터 레너드 코언의 묘는 몬트리올 마운트 로열 공원 꼭대기에 있는 샤르 해쇼마임 묘지의 가족 묘역에 자리 잡았다. 그의 묘비는 꽃과 팬아트(팬들이 그린 그림), 유대교식 애도의 양초로 둘러싸여 마치 작은 사원처럼 보인다(그 근처에 1세기 전에 세상을 떠난 그의 증조부가 묻혀 있다).

하지만 이런 광경이 아니더라도 이곳이 코언의 묘라는 걸 알 수 있는 표지가 또 있다. 바로 묘비에 새겨진 코언의 ‘통합된 심장(Unified Hearts)’이다. 하트 모양 2개를 겹쳐(하나는 위쪽이 아래로 가게) 만든 이 기호는 그가 1984년 펴낸 시집의 표지를 위해 디자인한 것으로 다윗의 별(정삼각형 2개를 겹쳐서 별 모양으로 만든 유대인의 상징)을 연상시킨다.

지난 11월 첫째 주에는 몬트리올 시 어디를 가나 이 기호가 눈에 띄었다. 지난해 마지막 앨범 ‘You Want It Darker’를 발표한 지 몇 주일 만에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코언의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해서다.

그의 아들 애덤이 르-플라토-몽-루아얄 구역의 발리에르 거리에 있는 가족 소유의 집으로 돌아와 추모 행사 준비를 도왔다(지난 11월 6일 몬트리올 벨 센터에서 열린 헌정 콘서트도 그 행사의 일환이었다). 뮤지션인 애덤은 코언의 마지막 순회공연 때 ‘웹 시스터즈’와 함께 반주와 화음을 맡았다. “이 집에 오면 할아버지의 초록색 벨벳 의자 위에 놓인 아버지의 기타를 볼 수 있다”고 애덤은 말했다. “그리고 난 할머니의 카펫이 깔린 아버지의 방에서 잠을 잔다. 가보와 가족의 사연이 담긴 물건들이 가득한 이 집은 아주 친숙하고 낭만적이며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느낌을 준다.”애덤은 몬트리올의 ‘마술’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우리 가족은 모두 이 도시에서 태어났지만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진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외국에 사는 유대인이 으레 그렇듯이 우리는 고향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전통적인 가치를 좋게 생각하고 철저하게 지켰다.”

흔히 그렇듯이 고향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은 나이가 들면서 수그러든다. 코언은 2006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몬트리올에 오면 다른 어떤 곳에 있을 때보다 마음이 편하다. 그게 정확히 뭔진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런 감정이 더 강해진다.” 코언은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30대가 돼서야 음악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최고(The Best)’라는 제목의 시에 이렇게 썼다.

난 몬트리올을 떠날 때 이미 죽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들을 만났고
낯선 음식에 관심 있는 척했다
하지만 그건 모두 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모든 게 하느님의 뜻이었다
심장이 몸의 다른 기관들을
모조리 삼켜버렸다


MAC 전시회에 전시된 작품들. 코언의 작업 과정 과정을 몽타주 형식으로 표현한 카라 블레이크의 ‘디 오퍼링스’ / 사진:COURTESY OF SBASTIEN ROY

재닛 카디프와 조지 부어스 밀러의 ‘포이트리 머신(The Poetry Machine)’이라는 작품에서 이 시를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코언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몬트리올 현대미술관(MAC)에서 열리는 ‘레너드 코언: 모든 것의 틈(Leonard Cohen: A Crack in Everything) 전’ (내년 4월 19일까지)에 전시된 작품 20점 중 하나다. MAC의 전시실 6곳에서 펼쳐지는 이 전시회는 10개국의 예술가 40명이 참여해 코언의 작품을 재창조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음악·비디오·저술·가상현실·공연이 어우러진 이 프로젝트는 코언이 세상을 떠나기 훨씬 전인 3년 전부터 계획됐다.

코언의 해외 생활은 산체스 브라더스의 ‘나도 곧 당신을 따라갈 거요(I Think I Will Follow You Very Soon)’라는 작품에 묘사됐다. 그가 말년을 보낸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의 방을 재현해 놓았다. 마이클 래코위츠의 ‘사랑도 증오도 선수인 나는 그 중간에서 오도가도 못한다(I’m Good at Love, I’m Good at Hate, It’s in Between I Freeze)’는 1970년대 욤 키푸르 전쟁 당시 코언의 이스라엘 체류를 묘사한 영화다. 그가 유대인으로서 느끼는 강한 정체성과 평화주의를 신봉하는 마음이 갈등을 일으킨 내적 위기의 시기였다.


카디프와 밀러의 ‘포이트리 머신’ / 사진:COURTESY OF GOOD MAN GALLERY

18명의 뮤지션이 ‘Hey, That’s No Way to Say Goodbye’ 같은 코언의 명곡을 리메이크한 작품도 있다. 행위예술가 클라라 퍼리는 코언의 시 ‘웬 이븐 더(When Even The)’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선보인다[퍼리는 몬트리올의 유명한 작곡가 겸 영화감독 루이스 퍼리의 딸로 1985년 영화 ‘나이트 매직(Night Magic)’에서 코언과 각본 작업을 함께했다]. 진바지만 입은 그녀는 몸을 천천히 움직이면서 코언 작품의 두 축을 이루는 주제, 관능과 죽음에 관한 명상을 표현한다.

전시회의 다양한 표현수단과 분위기가 단순화된 정의를 초월하는 코언의 다원예술적 스타일을 설명해준다. “이 전시회에 코언을 미화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존 제페텔리 MAC 관장이 말했다. “우리는 그를 멋진 정장 차림의 근사한 신사로 묘사할 생각이 없었다.”


캔디스 브레이츠의 ‘아임 유어 맨’ (이 작품에는 나이 든 코언의 팬들이 그의 앨범에 실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담겼다). / 사진:KAUFMANN REPETTO + KOW

이 전시회에 관여한 애덤은 이 프로젝트가 평생 비정통성을 추구한 아버지의 인생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저술이나 음악을 범주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떤 측면에서든 장르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애덤은 말했다.

이 말은 코언이 왜 요즘 시대에 잘 어울리고 선견지명이 있는 인물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그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전 날인 11월 7일 사망했다. “아버지는 모든 걸 예견했다”고 애덤은 말했다. “1970년대부터 사회 질서의 붕괴를 내다봤다.”

– 저스틴 조프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