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푸시킨을 부활시킨 남자

스위스의 프랑수아 주노, 시 1400구절을 쓸 수 있는 사람처럼 생긴 자동인형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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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산악지방에 있는 주노의 아틀리에에는 각종 연장과 인형의 각 부분, 다양한 시대의 기계류가 가득하다.

숲으로 둘러싸인 바위들이 멀어져 가면서 주라 산맥이 시작된다. 프랑스와 스위스를 가르는 산맥이다. 낭만주의 시대 미술가와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풍경이 펼쳐진다. 한 방랑자가 이 험준한 봉우리들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그린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독일 낭만주의 화가)의 그림 앞에 서면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주라 산맥은 험준할 뿐 아니라 날씨가 춥다. 자동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비탈을 오르다 보면 커브를 돌 때마다 더 추워지는 걸 느낀다. 빗방울이 굵은 눈송이로 바뀐다. 해발 800m가 넘는 지점에서 한 마을로 접어든다. 빨간색 타일을 얹은 가파른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거리는 텅 비었다. 추운 날씨에 눈까지 펑펑 내리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내가 스위스 산속의 오지 마을 상트크루아까지 찾아간 이유는 19세기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에게 새생명을 불어넣은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런 임무를 위해서는 눈 덮인 풍경이 제격인 듯하다. 푸시킨은 1837년 1월 27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의 눈밭에서 자신의 아내를 유혹하려 했던 남자와 결투를 벌였다. 그리고 이틀 후 결투에서 입은 상처가 악화돼 3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러시아 제국 전체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푸시킨을 부활시킨 천재는 자동인형(automata) 제작가 프랑수아 주노다. 착한 눈매를 가진 50대 중반의 이 남자는 턱수염을 길렀고 숱 많은 은발에 같은 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그의 아틀리에는 실험실과 기계 상점, 시계 장인의 공방, 연금술사의 작업실, 해부학 강의실을 합쳐 놓은 듯한 분위기다. 깃털 모자를 쓴 인간의 해골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 다음엔 살아 있는 듯한 사람의 팔다리, 초승달, 동물의 머리 형상들이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게 눈길을 끈다. 한쪽 벽 선반에는 사람의 머리처럼 보이는 것들이 수십 개 얹혀 있다. 인형처럼 보이는 것부터 가발이나 모자를 쓴 것까지 각양각색이다. 전등 갓처럼 생긴 걸 뒤집어쓴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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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노(오른쪽)가 자동인형을 만드는 데는 시계공과 엔지니어의 기술, 그리고 예술가의 안목이 필요하다.

주노가 만드는 자동인형은 사람처럼 생기고 움직이는 기계 장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온갖 종류의 기계에 매료됐다. 그런 매혹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아주 정교한 자동인형을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그 인형들이 하는 일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동인형은 ‘아라비안나이트’에 등장하는 캐릭터 같은 옷차림을 하고 요술 양탄자에 앉아 커피를 따라 마시는 인형이다. 이 인형은 커피를 마시고 나면 또 한 잔을 따라 마신다.

주노의 작업실이 있는 커다란 집에는 각종 연장과 인형의 부품뿐 아니라 여러 시대의 기계류가 가득하다. 기계의 용도와 기능도 다양하다. 주노는 노래하는 새를 만들기 위해 개발된 19세기의 기계장치를 순식간에 찾아내고, 다락 한쪽에 있는 거대한 17세기 탑 시계의 움직임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설명하고, 20세기 중반의 재봉틀처럼 변변찮은 기계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기계에서 영감을 받는 주노의 마음은 수세기를 가로지르며 묘안을 찾아낸다. 핀볼(당구와 비슷한 게임) 기계든 벨 에포크 당시 파리 사창가를 장식했던 거울 달린 기계식 피아노든 어디서라도 아이디어를 얻는다.

주노가 하는 일은 다양한 능력을 요구한다. 시계공과 엔지니어의 기술, 그리고 예술가의 안목이다. 그는 연접봉과 기어 장치, 톱니바퀴, 비대칭 캠(바퀴의 회전운동을 왕복운동으로 바꾸는 장치) 등의 기능뿐 아니라 예술적 효과에도 몰두한다. 주노는 스위스 로잔에 있는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에서 조각을 배웠다. 그가 기계적 생명을 부여하는 인형을 더 실감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주노의 마음은 18세기와 19세기에 많이 머무른다. 인간이나 동물의 행동을 흉내 내는 자동인형이 경이로운 물건으로 감탄을 자아내던 시대다. 자동인형의 황금시대에 가장 위대한 제작자 중 한 명 역시 스위스 사람인 피에르 자크-드로즈였다. 그의 이름은 오늘날도 시계 회사의 이름으로 여전히 살아 있다.
드로즈는 인형처럼 생긴 기계장치로 명성을 얻었다. 가장 복잡한 것은 책상에 앉은 한 아이가 수십 개의 글자로 이뤄진 문장을 쓸 수 있도록 만든 장치였다. 아이가 들고 있는 펜으로 종이 위에 글씨를 쓰게 만드는 기술이 상당히 복잡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매우 경이로운 작업으로 여겨졌다. 이 인형은 펜에 잉크를 채우는 등 다른 다양한 행동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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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노가 만든 푸시킨 자동인형은 3548개의 부품으로 이뤄졌다.

오늘날 우리는 그 정도 기술에 눈도 깜짝 안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2003년 주노는 글씨 쓰는 아이가 아니라 글 쓰는 시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2010년 그는 3548개의 부품으로 이뤄진 푸시킨 자동 인형을 완성했다(주노는 푸시킨을 숭배하는 한 러시아인 고객의 영향을 받아 이 주제를 선택했다). 이 인형은 푸시킨의 시 1400구절을 쓸 수 있다. 대단한 성과다. 푸시킨 인형의 척추는 단어를 조합할 때 상호작용하는 각기 다른 캠 88개가 들어 있다. 이 인형에 관해 주노는 “박물관에 전시돼야 할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 말이 옳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팔로알토의 개인 수집가가 소장하고 있다.

주노는 개인이든 회사든 고객의 사생활을 존중한다(때때로 시계 회사들이 복잡한 기계장치 프로젝트를 들고와 그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래서 그는 다음 작업에 대한 말을 아낀다. 하지만 현재 제작 중인 자동인형의 특징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긴 백발에 턱수염이 있고 새의 부리처럼 생긴 코, 누가 봐도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시와 씨름하던 주노가 이제 르네상스 최고 지성인의 본질을 바퀴와 용수철, 레버, 축, 캠으로 포착하려고 마음먹은 듯하다.

– 니컬러스 포크스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