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을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여배우 셀마 헤이엑, NYT 기고문에서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행 고발
헤이엑(왼쪽 사진)은 웨인스타인(오른쪽 사진)의 성관계 요구를 거절한 뒤 그가 자신에게 상의를 벗은 채 섹스 신을 촬영하도록 강요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평가하길 좋아한다. ‘당신은 아름답다’ ‘당신은 못생겼다’ ‘당신은 남다르다’ ‘당신은 특별할 게 하나도 없다’ 등등. 그들은 당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표시로 섬세한 손길로 어루만지기도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들을 조롱하거나 부정하거나 거부하면 무가치하고 형편없는 존재로 취급하기 십상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남자다. 보통 특권층이거나 권력을 가졌거나 아니면 권력층으로부터 미래가 촉망되는 총아로 인정받는 젊은이다. 반면 ‘당신’이 가리키는 지시대상은 그들과는 사뭇 다른 존재다. ‘당신’은 소녀나 여인, 혹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성정체성을 지닌 사람, 소년 또는 힘 없는 남자다. 하지만 여기서는 소녀와 여인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하비 웨인스타인과 케빈 스페이시, R. 켈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 막강한 힘을 가진 많은 남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성추행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비결이 뭘까?

그들은 피해자를 위협해 공포심을 일으킨다. 그리고 대중은 피해자의 증언을 별로 믿지 않는다. 그들은 당신이 그들의 호의에 의존하도록 만든다. 그들의 위협은 실제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그들의 뜻을 거스르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면 그들은 복수할 확률이 높다. 게다가 그들은 당신에게 창피를 줄 힘이 있다. 그 수치심에 대한 공포가 당신을 침묵하게 만든다.

셀마 헤이엑이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 쓴 내용이 바로 이런 것이다. 그녀는 감동적인 이 기고문에서 웨인스타인의 성추행에 관한 오랜 침묵을 깼다. 웨인스타인은 할리우드에서 헤이엑의 꿈이 실현 가능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는 헤이엑이 언젠가는 대단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암시로 그녀를 구슬리다가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자 잔인하게 비난을 퍼부으며 복수했다.

헤이엑이 웨인스타인과의 섹스를 거절하자 그는 그녀를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배우나 예술가 혹은 사람이 아닌 그냥 하나의 몸뚱이로 보이게 만들었다. 웨인스타인은 그녀를 죽이겠다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그녀에게 섹스를 강요했다가 거절당한 것이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

난 헤이엑의 초기 영화 ‘사랑은 다 괜찮아’(1997)의 한 장면을 아직도 기억한다. 헤이엑이 맡은 캐릭터 이사벨이 오븐을 청소하고 있는데 갓 결혼한 남편 알렉스(매튜 페리)의 부모가 찾아온다. 시아버지는 멕시코 사람인 이사벨을 가정부로 착각하고 그녀를 음흉하게 바라보며 아들에게 “참 근사한 가정부로구나!”하며 감탄한다. 시어머니도 이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긴다. 인종차별과 여성의 성적 대상화, 거기에 여성혐오증에서 비롯된 부당한 비교까지 겹친 묘사다. 알렉스의 친구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그는 놀랍다는 듯이 “너 저 여자와 결혼했어? 몸매가 기막힌데”라고 말한다. 헤이엑은 인종차별주의자 백인의 시각에서 보면 단 한 가지 측면(섹스)에서만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헤이엑에 따르면 그녀가 영화 ‘프리다’(2002)에서 프리다 칼로 역을 웨인스타인이 만족할 만큼 섹시하게 연기하지 못하자 그는 불같이 화를 냈다(웨인스타인은 이를 부인했다). 그는 헤이엑에게 창피를 준 뒤 그녀에게 상의를 벗고 섹스 신을 찍도록 강요했다. 이 대목에서 그녀의 몸 전체가 거부반응을 보였다.

헤이엑은 그의 눈이 자신의 벗은 몸을 바라본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해 눈물을 흘리고 먹은 것을 토했다고 썼다. 수치심으로 인한 이 같은 생리적 거부반응은 이런류의 남자들이 여자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되며 그들의 명성을 지켜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2006년 흑인 여성 사회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시작한 ‘#미투’ 운동은 2017년 10월 할리우드 여배우 앨리사 밀라노의 트윗을 통해 백인 진보 주류 사회에까지 도달했다. 이 운동의 힘은 이 수치심을 극복하는 데서 나온다. 버크가 내세우는 이 운동의 근거가 바로 이 수치심을 피해자로부터 가해자로 옮기는 것이다.

버크의 말대로 이 운동의 취지는 나쁜 사람 몇몇을 가려내 뿌리를 뽑자는 게 아니라 그들을 양성하고 감춰주는 사회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다. 커스틴 질리브랜드 미국 상원의원(민주·뉴욕)은 2017년 12월 여성에 대한 모욕(질리브랜드가 가장 최근의 피해자다)과 성추행 전력으로 유명한 트럼프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했다. 1년 전만 해도 이런 요구는 터무니없이 들렸겠지만 ‘#미투’ 시대엔 희망을 가져볼 만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버크가 말했듯이 ‘#미투’ 운동은 가장 취약하고 소외된 피해자들(버크가 초점을 맞춘 흑인과 갈색 인종의 여성 포함)이 침묵을 깨고 따돌림에 저항할 힘을 준다는 사실이다.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갖가지 형태로 억압받는 여성에게 이 운동은 단지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케이트 맨

※ [필자는 미국 코넬대학의 심리학 조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