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모 하나 바꿨을 뿐인데…”

다른 재료 똑같아도 야생 효모가 확연히 다른 맛을 내는 덕분에 관련 연구도 활발히 진행돼


지난 3월에 촬영된 이 사진은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지역의 나뭇가지에 서식하는 야생 효모 곰팡이를 보여준다. / 사진:NEWSWEEK

옛날 유럽인들이 배로 미 대륙을 오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이야기다. 야생 효모(wild yeast)라고도 알려진 작은 곰팡이류가 독일 바이에른 지방 수도원의 지하 맥주 양조장까지 흘러 들어갔다.

이것이 원래 양조장에서 쓰이던 맥주 효모와 슬며시 뒤섞여 수세기 동안 유럽 대륙 각지에서 생산되는 맥주의 맛에 특징을 부여해 왔다. 이 야생 효모는 또 세계인들에게 가볍고 부드러운 라거 맥주를 선사했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라거 효모(사카로미세스 파스토리아누스)가 서로 다른 효모 2종 간의 잡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2가지 효모의 정체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1980년대에 그중 하나가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에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라거 효모 DNA의 절반은 어디서 오는지 궁금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2011년 디에고 립킨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의 연구팀이 마침내 그 미스터리를 풀었다. 효모 연구를 위해 파타고니아의 숲으로 들어간 립킨드 일행은 우연히 알코올 향이 강하게 풍기는 지역을 지나게 됐다.

연구팀은 거기서 발견한 야생 효모에 사카로미세스 유바야누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연구 논문과 회의를 통해 이 획기적인 발견을 과학계에 알렸다. 그리고 이 야생 효모의 균주를 네덜란드의 ‘베스터데크 곰팡이 생물 다양성 연구소’로 보내 품종의 보존을 의뢰했다.

현존하는 사상균류와 효모, 박테리아의 미생물 자원 센터로 자처하는 이 연구소는 세계 최대 규모의 효모 균주를 소장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또 세계 2위 맥주 회사인 하이네켄 본사에서 자동차로 몇 시간 거리에 있다.

하이네켄의 글로벌 브루마스터 빌렘 반 바에스베르게는 “립킨드의 연구가 발표됐을 때 마침 하이네켄은 다양한 효모의 실험을 고려하던 터라 베스터데크 연구소에 보내진 효모로 양조 실험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맥주 업계는 호프와 몰트, 보리에 관심을 집중한 반면 효모는 오랫동안 간과해 왔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운이 좋았다”고 반 바에스베르게는 말했다. 효모에는 수백 종류가 있는데 모두가 맥주 양조에 적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효모로 즉시 맥주 발효에 성공했다.”

다른 맥주 회사들은 자사의 대표적 상품을 다양하게 변형시킨 버전을 실험했지만 반 바에스베르게는 하이네켄 라거 고유의 맛을 지키고 싶었다. “내 생각엔 원래 그대로가 완벽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야생 효모가 발견되기 이전 하이네켄 라거의 유일한 대안 상품은 무알콜 버전뿐이었다.

하지만 사카로미세스 유바야누스로 발효시킨 맥주를 맛 본 뒤 반 바에스베르게는 이제 다른 종류의 하이네켄을 사랑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이 하이네켄 최초의 와일드 라거 H41이다.


하이네켄은 파타고니아에서 발견된 야생 효모로 발효시킨 라거 H41을 출시했다. / 사진:NEWSWEEK

하이네켄이 이 맥주의 대규모 주조 공정을 완성하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현재 미국과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의 일부 지역에서만 판매되는 H41은 야생 효모를 제외하곤 들어가는 재료가 하이네켄 라거와 똑같지만 맛은 확연히 다르다.

하이네켄 H41은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는 맥주업계의 야생 효모 실험 트렌드를 보여주는 한 예에 불과하다. 구글 검색창에 ‘와일드 비어(wild beer)’라고 치니 맨 위에 뜨는 결과가 영국 맥주업체 ‘와일드 비어스 Co.’였다. 이 회사는 지난 2012년 다양한 효모를 실험한다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공동창업주 앤드류 쿠퍼는 “파타고니아에서 발견된 효모는 아직 사용하지 않았다”면서 “야생 효모라고 꼭 멀리서 가져올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주변에서 효모를 수확한다. 주로 과일 껍질에서 채취한다.”

야생 효모를 이용해 맥주를 만들어보고 싶은 업체는 전문 실험실에서 균주를 얻을 수도 있다. “효모를 자연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얻었다고 해서 야생이 아니라고 여길 이유는 없다”고 쿠퍼는 말했다. “야생 효모의 발효 과정은 전통적인 맥주 효모와 사뭇 달라서 그것이 내는 맛도 판이하다.”

하이네켄 H41은 립킨드 연구팀이 그 야생 효모를 상업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하이네켄 외에도 그 효모를 맥주 양조에 이용하길 원하는 업체는 많았다. 립킨드는 그들 중 하이네켄이 야생 효모의 특별한 이야기에 가장 관심을 나타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다루려는 의지가 분명해 보였다고 말했다. H41이라는 이름은 이 효모의 발견을 기리는 의미에서 발견된 지역의 위도를 집어넣어 만들었다.

하이네켄은 립킨드와 손잡고 맥주 양조 분야로 연구를 확장시키고 아르헨티나의 맥주업체들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회사는 또 미국의 블루 산맥과 히말라야 산맥에서 ‘와일드 라거’ 시리즈의 다음 제품에 필요한 야생 효모를 구할 계획이다.

립킨드는 2019년 중반 파타고니아의 바릴로체에 문을 여는 효모와 맥주 테크놀로지 연구소의 건설을 감독한다. 바릴로체는 깨끗한 물과 호프 덕분에 맥주 생산의 요지로 알려졌다. “이 호프로 큰 그림이 완성된다”고 립킨드는 뉴스위크에 말했다. “우리는 맥주업체들과 함께 100% 아르헨티나 맥주 생산을 목표로 작업 중이다. 미래엔 100% 파타고니아 맥주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와인으로 잘 알려진 아르헨티나에서 최근 맥주 생산의 열풍이 분다. “대형 맥주 회사와 수제 맥주 업체들이 다양한 스타일과 품종의 맥주로 혁신을 꾀한다”고 아르헨티나 맥주조합의 이사 알레한드로 베를링게리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베를링게리에 따르면 지역 맥주업자들은 지속적인 혁신과 천연재료의 사용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이려고 노력 중이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자신들이 생산하는 맥주가 (적당한 음주로) 건강한 라이프스타일과 식사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베를링게리는 바릴로체의 새 연구소가 지역 맥주업자들에게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아르헨티나 맥주와 그 명성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수제 맥주가 성장하려면 과학적 생산의 측면에서 협조해줄 기관이 필요하다.” 먼 옛날 지하 양조장에 숨어 있던 야생 효모가 마침내 빛을 보고 세상의 관심과 과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 소피아 로토 퍼시오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