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궁전’을 들여다보다

매튜 미엘 감독의 새 다큐멘터리에서 뉴욕 카알라일 호텔의 역사와 유명인사 고객들에 얽힌 이야기 펼쳐놔


카알라일 호텔의 유명인사 단골 손님들. (왼쪽 맨위부터 시곗바늘 방향으로) 토미 리 존스,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빈, 데이비드 보위, 존 F. 케네디 전 미 대통령,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콘돌리자 라이스, 소피아 코폴라, 조지와 아말 크루니, 믹 재거. / 사진:WIKIPEDIA.ORG, PINTEREST.COM, PINTEREST.COM, WIKIPEDIA.ORG, WIKIPEDIA.ORG, WIKIPEDIA.ORG , TWITTER.COM, WIKIPEDIA.ORG , YOUTUBE.COM, WIKIPEDIA.ORG

다이애나 전 영국 왕세자빈과 마이클 잭슨, 스티브 잡스가 한 술집으로 걸어 들어간다. 사실 그곳은 술집이 아니라 호텔 엘리베이터였다. 그리고 이건 실제상황이었다. 엘리베이터 승무원이 문을 닫고 나자 네 사람은 앞만 바라보며 몇 층을 올라가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다이애나가 ‘Beat It’(‘나가!’라는 뜻으로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제목이기도 하다)이라는 재치 있는 말로 긴장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비밀의 궁전’으로 불리는 뉴욕 카알라일 호텔에서 오래 전 일어난 일이다. 영향력으로 따지면 이 세 사람을 제치기는 어렵겠지만 이 호텔에서는 이렇게 뜻밖에 마주친 유명인사들의 숨겨진 일화가 많을 듯하다(‘비밀의 궁전’이라는 말은 뉴욕타임스가 제일 먼저 사용한 후 이 호텔의 별명이 됐다). 카알라일 호텔의 단골 손님 중엔 미국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거물급 유명인사가 많다. 믹 재거와 데이비드 보위, 콘돌리자 라이스, 잭 니콜슨과 안젤리카 허스턴, 우디 앨런(앨런은 요즘도 월요일마다 카페 카알라일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한다), 레니 크래비츠, 소피아 코폴라, 로저 페더러, 조지와 아말 클루니, 토미 리 존스 등등이다. 영국 왕실 인사들도 이 호텔을 사랑한다. 2014년엔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왕세손빈이 다녀갔다.

카알라일 호텔은 또 메트 갈라(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의상연구소에서 기획하는 모금 파티)의 비공식적인 패션쇼 무대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오미 캠벨은 2016년 스텔라 매카트니, 리한나, 카라 델레바인 등과 함께 이 호텔의 같은 층에서 머무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이 호텔에서는 또 이런 뜻밖의 일화도 있었다. 제2차 걸프전쟁 당시 유엔 이라크 대표단이 이곳에 머물렀을 때 미 연방수사국(FBI)은 비밀요원을 룸서비스 직원으로 투입하고 전화를 도청하고자 호텔 측에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 호텔의 소유주 피터 샤프는 “절대로 안 된다”고 거절했다. “누군가 워런 비티한테 그런 일을 하려고 한다면 내가 허용하겠는가? 상대가 이라크 대표단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카페 카알라일은 1952년 영화 ‘물랑루즈’의 세트를 디자인해 아카데미 미술상을 받은 마르셀 베르테스가 그린 멋진 벽화로 유명하다. / 사진:THE BROTHERS’ BLOG – GRAND LUXURY HOTELS

이 모든 이야기가 매튜 미엘 감독의 새 다큐멘터리 ‘올 웨이즈 앳 더 카알라일(Always at the Carlyle)’에서 펼쳐진다. 유명인사들의 인터뷰 장면으로 가득한 이 다큐멘터리는 카알라일 호텔의 우아한 품격을 잘 포착했다. 과거의 호화로움을 찬양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연상시킨다. 앤더슨 감독은 카알라일 호텔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카알라일 호텔의 또 다른 팬인 스타 셰프 앤서니 보데인은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듯이 이 호텔을 사랑하게 된다. 이곳은 좀 별나다. 아주 근사하면서도 기이한 측면이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를 인용한 인물 중 여럿이 이 호텔은 뉴욕의 상징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카알라일 호텔의 불이 꺼지면 뉴욕이 빛을 잃을 것’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뉴욕 시민 중 다수가 그렇게 느낄 듯하다. 이 호텔의 존재감은 엄청난 숙박료에서도 드러난다. 일례로 센트럴파크를 굽어보는 전망이 기막힌 2층짜리 객실 ‘엠파이어 스위트’의 하룻밤 숙박료는 무려 2만 달러(약 2200만원)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묵는 객실의 하룻밤 숙박료가 4000달러라는 이야기를 듣고 얼굴에 미소를 띄며 “1만 달러가 아닌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 호텔의 숙박객 모두는 자신의 이름 첫 글자가 들어간 모노그램 자수 베갯잇을 사용한다. 지하실의 한 여직원이 베갯잇에 모노그램 자수 놓는 일을 전담한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 듯 보이지만 쉽게 감동 받는 스타일은 아니다. 영국 윌리엄 왕세손 부부의 방문을 앞두고도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이 온다는 소식에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 베갯잇은 그 손님이 다시 방문할 경우에 대비해 따로 보관된다. 이 호텔엔 단골 손님이 많으니 그럴 만도 하다. 1970년대부터이 호텔의 단골인 잭 니콜슨은 이곳에 다녀간 후엔 매번 수석 전화교환원에게 난초 꽃을 보낸다. 니콜슨은 직원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조지 클루니 만큼은 아니다.


드와이트 오슬리는 카알라일 호텔에서 36년간 콘시어지로 근무했다. / 사진:COURTESY OF GOOD DEED ENTERTAINMENT/JUSTIN BARE

‘곤조 저널리즘’(기자의 주관적이며 참여적인 보도를 강조한다)의 창시자 헌터 S. 톰슨도 이 호텔에 묵었었다. 그는 아침 메뉴로 시리얼 한 그릇과 스카치 위스키 한 병, 다량의 코카인을 즐겼다고 한다. 또 배우 폴 뉴먼이 샐러드 드레싱 레시피를 처음 개발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이카알라일 호텔의 주방이다(그가 설립한 식품 회사 ‘뉴먼스 오운’은 샐러드 드레싱으로 유명하다). 존 F. 케네디 2세는 일주일에 두 번 이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1999년 그가 비행기 사고로 숨지던 날 마사스 비녀드 섬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를 한 곳도 이곳이었다.

카알라일 호텔은 1920년대 말 부동산 개발업자 모지스 긴스버그가 건립했다. 아르데코 스타일의 이 건물은 호화 호텔로 지어졌지만 미국 증시가 폭락한 직후인 1930년 개업한 후 오랫동안 영업이 부진했다. 하지만 1948년 또 다른 부동산 개발업자가 호텔의 고루한 분위기를 쇄신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 대통령으로는 해리 트루먼이 처음 이 호텔에 묵었고 그 이후 모든 대통령이 이곳을 거쳐갔다. 존 F. 케네디(JFK) 대통령 시절에는 카알라일 호텔이 ‘뉴욕의 백악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1962년 마릴린 먼로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JFK의 45세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 후 카알라일 호텔의 비밀 통로를 통해 그곳에 머무르던 JFK를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카알라일 호텔을 지금의 위치로 올려놓은 사람은 샤프였다. 1967년 샤프가 이 호텔을 사들인 뒤 어틀랜틱 레코즈의 공동 창업자 아메트 어티건은 캬바레 가수 바비 쇼트를 카페 카알라일에 고용할 것을 제안했다. 쇼트는 당초 2주일 동안만 공연하기로 했지만 무려 35년 동안이나 그 일을 계속했다. 덕분에 이 카페는 세련된 음악 애호가들의 아지트가 됐다.

미엘 감독은 카알라일 호텔에 대한 사랑이 세대를 뛰어넘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차를 마시기 위해 이 호텔에 왔었거나 일주일이나 한 달 동안 머물렀던 사람들은 어른이 돼서도 계속 그곳을 찾는다”고 그는 말했다. 이런 이끌림에는 호텔의 실내장식도 한몫한다. 1952년 영화 ‘물랑루즈’의 세트를 디자인해 아카데미 미술상을 받은 마르셀 베르테스가 호텔 카페에 멋진 벽화를 그렸다. 그 벽화 하나만으로도 이 호텔을 방문할 가치는 충분하다. 그림책 ‘마들린느’ 시리즈의 저자 루드비히 베멜만스가 그린 베멜만스 바의 벽화도 마찬가지로 매력적이다.


이 호텔에서는 모든 손님이 자신의 이름 첫 자로 디자인된 모노그램 자수 베갯잇을 사용한다. / 사진:GOOD DEED ENTERTAINMENT/ANDREW MOORE

카알라일 호텔 못지 않게 우아한 장소로 꼽히는 보석상 티파니와 버그도프 굿먼 백화점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제작한 미엘 감독은 “(카알라일 호텔은) 완벽함을 최우선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세히 보면 건물의 골격이 약간 삐딱하고 소파를 씌운 천은 낡아서 군데군데 올이 드러나 있다. 손님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일종의 성소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안젤리카 허스턴은 잭 니콜슨과 연인이었던 1970년대부터 이 호텔의 단골이다. 그녀는 다큐멘터리에서 “카알라일은 최신 유행을 따르지 않아서 멋지다”고 말했다. 그곳 직원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단골 고객들은 이곳을 자주 찾는 가장 큰 이유로 다른 호텔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직원들을 꼽는다. 최신 호텔에서 흔히 보는 젊고 날렵한 회사원 스타일의 직원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다른 어떤 호텔에서 말 더듬는 사람을 컨시어지(안내원)로 쓰겠느냐?”고 미엘은 말한다. “이 호텔의 경영진은 번듯한 외양보다 손님을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는 인성과 잊지 못할 인상을 남길 만한 개성을 지닌 직원을 선호한다.”

이 호텔의 안내 데스크를 36년 동안 지켜온 그 말더듬이 직원 드와이트 오슬리는 ‘올웨이즈 앳 더 카알라일’을 촬영하는 도중 퇴직했다. 카알라일의 특별한 매력이 사라지는 듯해서 가슴 아픈 순간이었다. 오슬리는 자신이 퇴직 결정을 내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세상이 각박해졌다. 이 안내 데스크를 지키면서 그 세상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 예전엔 사람들이 목적의식과 품위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모두가 한낱 메신저처럼 보인다.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뭔가를 잃었다.”

– 메리 케이 실링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