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칩 두고 벌이는 ‘왕좌의 게임’

애플이 가차없는 혁신으로 인텔 밀어내고 세계 최고의 칩메이커로 부상해


애플은 칩 설계와 개발에서 인텔을 앞질렀다. / 사진:AP-NEWSIS

2013년 애플은 시스템온칩(Soc,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진 시스템을 하나의 칩으로 구현하는 기술집약적 반도체)에 A7 시스템을 도입했다. 당시 주력상품이던 아이폰5에 사용된 시스템이었다. A7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선 시장에 처음 나온 64비트 ARM 프로세스였다. 그로써 애플은 성능과 효율성에서 경쟁사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당시 경쟁사들은 자체적으로 64비트 칩 개발에 몰두하면서도 그런 칩의 필요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당시 나의 비상한 관심을 끈 점은 A7 시스템이 1.3GHz 주파수의 중앙처리장치(CPU) 성능을 구현한다는 사실이었다. 반도체 대기업 인텔의 ‘하스웰(Haswell)’ 프로세서와 매우 유사했다. 당시 인텔의 칩은 대부분 3GHz가 넘는 아주 높은 주파수로 작동했지만 A7 칩의 성능을 볼 때 애플이 향후 더 혁신적인 스마트폰 프로세서를 개발할 수 있는 매우 인상적인 틀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5년이 지난 지금 애플의 프로세서는 어떤 수준일까? 애플의 최고 아이폰과 아이패드 프로세서는 인텔의 최고 노트북 프로세서와 맞먹으면서도 더 날렵하고 전력 소모가 적은 디바이스에 사용될 수 있는 CPU의 성능을 발휘한다. 지금까지 인텔의 최강점이던 CPU 성능이 애플에 따라잡혔다고 봐도 무방하다.

앞으로 약 4개월 뒤 애플은 다음 아이폰 모델을 선보인다. 그때 그 CPU의 성능은 인텔의 최고 노트북 프로세서와 맞먹거나 더 나을 것이 분명하다(인텔의 프로세서는 전력 15W를 소모하지만 애플의 CPU는 그 일부만으로 가동될 수 있다).

내 생각에 앞으로 인텔은 고성능 저전력 프로세서 설계 부문에서 애플에 정상의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밀려날 듯하다. 인텔의 브랜드 가치는 세계 최고의 프로세서 메이커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인텔로선 타격이 클 것이다. 그뿐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수익성에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애플은 칩 설계만 하고 생산은 아웃소싱한다. / 사진:AP-NEWSIS

인텔과 애플은 어떻게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됐을까?

가장 중요한 점은 혁신이다. 프로세서의 품질은 대부분 설계에서 결정된다. 설계가 나을수록 더 빠르고 효율적이 될 수 있다. 애플의 첫 자체 설계 프로세서 코어인 ‘스위프트’는 영국 반도체업체 ARM 홀딩스의 당시 주력 상품인 코텍스 A15 프로세서 코어에 맞먹는 성능을 발휘했다. 그러나 스위프트 CPU를 사용하는 A6 시스템이 시장에 먼저 나왔고 전력 소모도 적었다.

애플은 A6 시스템에 스위프트 프로세서를 도입한 이래 매년 새로운 프로세서 코어를 선보였다. 각각 중요한 설계 개선을 이뤄낸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애플은 칩 설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도 칩을 독자적으로 생산하지 않고 제3의 제조업체에 아웃소싱한다. 애플의 A시리즈 칩 중 A7까지는 삼성이 독점 제조했고 A8·A10·A11 칩은 대만의 TSMC가 생산했다. A9의 경우 삼성과 TSMC가 물량을 나눠 공동 제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과 TSMC는 둘 다 새로운 제조 기술을 신속히 개발했다. 칩의 성능과 전력 소모, 경제적 지속가능성은 제조 기술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애플의 A7 칩은 삼성의 28㎚(나노미터) 기술로 제조됐다. 그 후 A8은 TSMC의 20㎚ 기술로, A9은 TSMC와 삼성의 각각 16㎚, 14㎚ 기술로, A10은 TSMC의 업그레이드된 16㎚ 기술로, A11은 TSMC의 10㎚ 기술을 사용해 제조됐다. 앞으로 나올 애플의 A12 프로세서는 TSMC의 최신 7㎚ 기술을 사용해 대량 제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각각의 제조 기술은 해당 프로세서의 성능과 전력 소모 측면에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 애플의 칩 설계자들은 갈수록 뛰어난 프로세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애플의 칩 설계 능력과 반도체 제조 파트너들의 혁신적인 생태계가 서로 융합되면서 모바일 컴퓨팅에서 큰 진전을 이뤘다.

이처럼 애플은 승승장구한 반면 인텔의 진척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인텔은 수년 동안 칩 제조 기술에서 삼성이나 TSMC 같은 반도체 제조업체들보다 훨씬 우위를 점했다. 인텔의 기술은 경쟁사들보다 밀도가 더 높았고 더욱 중요하게는 경쟁사들보다 더 발전된 트랜지스터 기술을 사용했다. 그로써 인텔은 성능과 효율성이 훨씬 우수한 칩을 시장에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삼성과 TSMC의 제조 기술 발전은 수년 동안 계획대로 이뤄진 반면 인텔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어떤 점에서 보면 인텔의 14㎚ 기술 개발은 약 6개월, 10㎚ 기술 개발은 3년 이상 계획보다 늦어졌다(인텔은 10㎚ 기술을 사용한 칩이 내년 중에 대량 생산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인텔은 10㎚ 기술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동안 현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14㎚ 기술의 업그레이드된 버전(14㎚+와 14㎚++)을 선보였다. 그 전략이 지금까지는 먹히지만 인텔이 그런 개발 지연에 사전 대비하지 못했다는 점이 앞으로 발목을 잡을 듯하다. 제품의 관점에서 보면 인텔은 개량된 14㎚ 기술을 사용했지만 근본적으로 새로운 설계를 내놓지는 못했다.


애플의 신형 맥북 프로 랩톱은 인텔의 차세대 인터페이스 선더볼트를 사용한다. 초당 10GB의 초고속 전송 속도가 장점이다 . / 사진:YOUTUBE

애플은 2015년부터 SoC 3종(A9·A10·A11)을 선보였다. 그 각각은 개선된 프로세서, 그래픽 프로세서, 메모리 서브시스템 등 칩을 더 강력하고 전력 효율적으로 만들어주는 다른 기능을 탑재했다. 올해 하반기 애플은 A12 칩을 선보인다. 전반적으로 크게 업그레이드된 프로세서로 예상된다.

반면 인텔은 랩톱 컴퓨터용으로 ‘위스키 레이크(Whiskey Lake)’로 알려진 새로운 프로세서들을 출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역시 14㎚(14㎚++일 가능성이 크다) 기술을 사용한 칩으로 실질적인 설계 개선이 전혀 없을 수 있다. 인텔이 2015년 이래 팔고 있는 기본적인 프로세서와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애플은 지난 수년 동안 칩 설계에서 중단 없이 혁신을 추진하면서, 계속 발전하는 칩 제조 기술을 가진 삼성·TSMC 같은 업체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따라서 애플의 프로세서가 지난 3년 동안 성능과 전력 효율성, 기능 개선에서 인텔이 시장에 내놓은 제품을 계속 능가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인텔의 비교적 굼뜬 프레세서 혁신(새로운 프로세서를 개발할 능력보다는 제조 실책과 어설픈 기획의 결과다)과 제조 기술의 신뢰성 저하를 고려하면 애플이 앞으로 맥 PC 제조에서 인텔과의 제휴를 끊을 계획이라는 소문이 갈수록 커지고 더 믿을 만하게 들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앞으로 애플의 프로세서 설계가 모든 기준에서 인텔보다 앞선다면 맥 PC 제품에 자체 설계 칩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손해가 될 것이다. 더구나 인텔을 넉넉히 따돌릴 수 있다면 애플은 자체 설계 프로세서의 이점을 마케팅 전술로 활용해 인텔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윈도 기반 컴퓨터에 맞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애플은 인텔로부터 연간 약 30억 달러어치의 칩을 구입한다. 따라서 고객으로 애플을 잃으면 인텔은 수익에 분명히 타격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인텔엔 장기적으로 더 큰 문제가 있다. 애플이 인텔과의 제휴를 끊은 뒤 자체 설계 칩을 장착한 맥 PC가 인텔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경쟁사 컴퓨터보다 처리 속도가 더 빠르고 우수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 대중을 설득할 수 있다면 애플은 PC 시장에서도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칩 개발사로 자리 잡았다. 세계 수준의 엔지니어 인재, 뛰어난 관리, 믿을 만한 파트너 제조업체와의 제휴가 빚어낸 시너지 효과의 결과다. 애플은 이제 인텔을 앞질렀을 뿐 아니라 앞으로 격차를 더 크게 벌릴 수 있을 듯하다. 단기적으로는 애플의 뛰어난 칩 개발 능력이 인텔의 브랜드 이미지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인텔이 애플에 더욱 뒤질 경우 애플이 제휴를 끊으면 인텔의 연간 매출이 수십억 달러나 줄어든다는 점이 더 큰 걱정일 것이다.

– 아슈라프 에아사

※ [필자는 미국 투자정보 사이트 모틀리풀(Motley Fool)의 분석가다. 이 글은 모틀리풀의 웹사이트에 먼저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