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터너티브 시대 불법 음반의 성배’

X세대의 클래식으로 통하는 리즈 페어의 데뷔 음반 ‘Exile in Guyville’의 밑바탕이 된 자가녹음 테이프에 얽힌 사연


1993년 시카고 링컨 파크에서 공연하는 리즈 페어. / 사진:MARTY PEREZ, COURTESY MATADOR RECORDS

1991년 한국계 미국인 뮤지션 유태원 씨는 우편으로 카세트 테이프를 하나 받았다. 당시에는 불법 카세트가 우편으로 자유롭게 유통됐다. 바닐라 아이스의 앨범이 미국 판매 1위를 달리던 때였고 너바나의 얼터너티브 록이 주류에 진입하기 몇 개월 전이었다. 언더그라운드 음악계가 매우 활기를 띠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 키킹 자이언트라는 록 듀오의 기타리스트였던 유 씨는 인디 팬 잡지에 소개되는 뮤지션들이 집에서 녹음한 테이프를 우편으로 자주 받았다.

하지만 그 테이프는 특별했다. 그 노래들은 유 씨의 친구인 무명 작곡가 리즈 페어(23)가 집에서 녹음한 것이었다. “사운드와 가사 모두 놀라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고 유 씨는 말했다. “그런 테이프를 받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되면서도 그 친구에게 질투가 났다.” 이 테이프와 몇몇 다른 테이프의 힘으로 페어는 곧 스타로 떠올랐다.

‘걸리사운드(Girly-Sound)’라는 이름으로 녹음된 이 카세트 테이프들은 25년 이상 팬들 사이에 전파됐다. 처음엔 아날로그 형태로, 그 다음엔 디지털 파일로 전해지면서 ‘얼터너티브 시대 불법 음반의 성배’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유통되면서 입에서 입으로 명성을 쌓아온 이 테이프들이 처음 상업적으로 발매됐다. 페어의 초기 음원 모음집은 지난 5월 초 그녀의 데뷔 앨범 ‘Exile in Guyville’ 발매 25주년을 기념해 ‘Girly-Sound To Guyville’이라는 제목의 박스 세트로 나왔다.

이 기사는 집에서 녹음한 이 테이프들이 어떻게 페어를 가수로 만들고 음반 계약을 따낼 수 있게(유 씨의 도움도 컸다) 만들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또한 스포티파이의 플레이리스트가 등장하기 오래 전 재능 있는 뮤지션이 어떻게 원시적이고도 기적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알려졌는가에 관한 얘기다.

이야기는 1980년대 말 오하이오주 오벌린대학에서 시작된다. 페어는 그곳에서 시각예술을 공부했다. “당시엔 너도나도 밴드를 만들었다”고 그녀는 1994년 인터뷰에서 돌이켰다. “로큰롤 정신이 충만했던 시기였다.” 페어가 크리스 브로코(나중에 록 밴드 ‘컴’과 ‘코데인’의 멤버로 활동했다)라는 젊은 뮤지션을 처음 만난 것도 이곳에서였다. “페어는 내가 아는 누군가와 데이트를 했다”고 브로코는 회상했다. “그녀는 내 친구의 여자친구였다.”

페어는 3학년이던 1989년 뉴욕에서 미술가 겸 운동가 낸시 스페로의 인턴으로 일했다. 페어는 그곳에서 많은 노래를 썼고 유 씨와 친구가 됐다. “그녀를 만나자마자 내 누이나 절친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유 씨는 말했다. “평생 그녀를 알고 지낸 듯한 기분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이스트 빌리지에 살았고 좋아하는 음악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페어는 자신이 작곡한다는 사실은 비밀로 했다.


페어의 초기 음원을 모은 CD 세트 ‘Girly Sound to Guyville’. / 사진:COURTESY MATADOR RECORDS

졸업 후 페어는 샌프란시코로 갔는데 우연히도 룸메이트의 친구가 브로코였다. 1990년 말 브로코가 그들의 아파트에서 일주일을 보낸 적이 있다. 그때 브로코는 페어의 방에 있는 기타를 보고 그녀에게 기타를 치면서 자작곡한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 한 곡 한 곡이 정말 좋았다고 브로코는 돌이켰다. 그는 페어에게 녹음 테이프를 하나 만들어달라고 청했다. 페어는 한 달 뒤 부모님 있는 시카고 교외의 집으로 돌아가 노래를 녹음해 브로코에게 보냈다.

걸리사운드의 첫 번째 카세트는 1990년 말이나 1991년 초 그녀의 침실에서 녹음됐다. ‘Yo Yo Buddy Yup Yup Word to Ya Muthuh’ 같은 장난스러운 제목의 노래 14곡이 담겼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녹음된 두 번째 카세트 ‘Girls! Girls! Girls!’ 역시 14곡이 수록됐다. 두 테이프 모두 가사와 사운드가 친밀하게 느껴진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불안했으며 다듬어지지 않았다. 때때로 그녀는 옆방의 부모에게 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10대 소녀처럼 조용히 노래한다. 하지만 가사에는 수줍음이 없었다. 섹스와 거부, 욕망을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1993년 페어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젊은 여성으로서의 약점과 모욕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능력으로 팬들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1991년 초 페어에겐 ‘팬’이 없었다. 다만 친구들이 있었을 뿐. 그녀는 첫 번째 테이프의 복사본을 브로코와 유 씨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테이프(‘Sooty’)도 보냈다. “가사가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 느껴지는 긴박감과 단순 명쾌함을 담고 있었다”고 브로코는 말했다. “록 음악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성이다. 또 그런 내용을 여성의 목소리로 듣는 것 또한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들 테이프에는 페어의 감수성과 유머가 담겼다. 그녀는 ‘Elvis Song’에서는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를 냈고 ‘California’에서는 만화 같은 톤을 이용했다.

브로코는 그 테이프들을 복사해서 자신의 누이와 당시 매니저에게 줬다. 유 씨는 복사본을 많이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100개도 넘게 만든 것 같다”고 유 씨는 말했다. “유 씨는 페어가 천재라고 생각했다”고 브로코가 말했다. “그가 무엇에 사로잡혔는지 모르겠지만 그 테이프들을 매우 많은 사람에게 보냈다.”

수익을 목표로 한 일이 아니었다. 이 점이 그 시절에 유행했던 반기업적 카세트 공유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라고 유 씨는 말했다. “우리는 어떤 음반사나 기업이 누구누구의 노래가 ‘좋다’라고 인정할 때까지 기다리기를 거부했다. 자신이 들어본 좋은 음악을 서로 소개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갔다.” 당시 유 씨는 미국 곳곳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과 교류했다. 그들은 엽서와 테이프, 팬 잡지들을 주고받았다. 유 씨는 그들에게 페어의 음악을 소개했다. “내가 아는 사람들뿐 아니라 캘빈 존슨(인디 팝 밴드 비트 해프닝의 멤버)과 마크 로빈슨(틴비트 레코즈의 창업자)에게도 그녀의 테이프를 보냈다”고 유 씨는 말했다.


페어의 친구인 한 뮤지션은 “걸리사운드 카세트에 담긴 그 감동적인 노래들은 마치 터지지 않은 폭탄 같았다”고 말했다. / 사진:YOUTUBE.COM

유 씨는 자신의 펜팔이었던 앨리슨 월프(페미니스트 펑크 운동에 앞장섰던 브랫모바일의 리드 싱어)에게도 페어의 테이프를 보냈다. 월프는 그 테이프에 매료됐다. “페어의 가사는 매우 솔직하다. 그녀는 자유를 추구한다는 남자들에 관해 그들 역시 똑같은 성차별주의자 얼간이라고 노래한다.” 에버그린 주립대학(워싱턴주)에 다니던 월프는 이 테이프를 서부로 퍼뜨렸다. 그녀는 테이프 수록곡 중 ‘Open Season’이라는 노래를 믹스테이프(여러 뮤지션의 노래를 임의로 섞어서 녹음한 테이프)에 올렸다. 펑크를 좋아하던 그녀 친구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어느날 그녀가 카페에 갔을 때 그곳에서 일하던 한 학생이 다가와 “페어의 테이프를 갖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을 복사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 학생이 바로 미라 욤 토브 자이틀린(당시 18세)으로 나중에 ‘미라’라는 이름의 인디 팝 뮤지션으로 명성을 떨친다. “난 그 테이프에 있는 모든 노래와 사운드를 무척 좋아했다”고 미라가 이메일 인터뷰에서 돌이켰다. “그 테이프는 내 기타 연습의 자극제가 됐고 작곡에도 큰 영향을 줬다.”

페어의 카세트 테이프는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에 널리 퍼지면서 팬 잡지에서 인기를 얻었다. 언젠가 유 씨는 팬 잡지 ‘케미컬 임밸런스’에 걸리사운드를 극찬하는 논평을 실었다(이 논평에서 유 씨는 독자들에게 페어의 집주소를 알려주면서 ‘그녀에게 현금을 동봉한 편지를 보내 테이프를 요청하라’고 독려했다). “난 세상이 그녀의 뛰어난 재능을 알게 되기를 정말로 바랐다”고 그는 말했다.

페어의 말에 따르면 당시 그녀는 목표 없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무대공포증이 있어서 라이브 공연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무일푼이었으며 밤에만 나돌아다니던 시기였다”고 그녀는 나중에 음악 잡지 스핀에 말했다.

그러던 중 페어는 한 친구를 통해 브래드 우드(나중에 그녀의 앨범을 제작한다)를 만났다. 우드는 페어에게 “당신에겐 음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즉시 뉴욕의 마타도어 레코즈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타이밍이 기막혔다. 마타도어의 공동소유주 제라드 코슬로이는 1994년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난 평소에 [무작정 음반을 내달라는 식의] 황당한 전화를 많이 받는다. 그런데 페어에게 전화를 받기 바로 전날 난 케미컬 임밸런스에 실린 걸리사운드에 관한 논평을 읽었다.” 그건 물론 유 씨가 쓴 논평이었다. 마타도어 레코즈는 페어에게 관심을 보였다. 페어는 그 음반사와 계약했고 유명해졌다. 데뷔 앨범 ‘Exile in Guyville’(수록곡 대다수가 걸리사운드 테이프에서 차용됐다)은 널리 호평 받았다.

페어는 음반사와 계약하고 직업 가수가 된 후에도 걸리사운드 시절의 노래들을 버리지 않았다. 1994년 2집 앨범 ‘Whip-Smart’가 나왔을 때 페어는 음악 잡지 롤링 스톤의 표지에 등장했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난 수시로 걸리사운드 카세트 테이프에서 노래나 사운드를 꺼내온다. 그 테이프들은 내겐 도서관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사진:GETTY IMAGES BANK

걸리사운드의 노래 9곡이 ‘Exile in Guyville’에 실렸다. 모두 편곡 과정을 거쳤고 일부는 제목도 바뀌었다. ‘Whip-Smart’에는 5곡, 1998년 3집 앨범 ‘Whitechocolatespaceegg’에는 2곡이 더 실렸다. 페어는 2000년대 들어 화려한 팝 싱어로 거듭나려고 노력하면서부터 그 카세트 테이프들을 더는 들춰보지 않았다.

1994년 롤링 스톤 기사에서 페어는 “그 카세트 테이프들을 조만간 공개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당시 그녀는 거기에 담긴 지극히 개인적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노래들을 부끄럽게 여겼던 듯하다. 하지만 그 테이프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태도가 그것을 더 신비롭게 만드는 데 한몫했다. 미라는 “그 테이프들을 얻으려면 그것을 가진 누군가를 수소문해야 했다”고 말했다.

걸리사운드 테이프들은 클래식 록 전통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이 찾아서 듣고 싶어 하는 불법 음반이었다. X세대에게 걸리사운드 테이프는 베이비붐 세대에게 밥 딜런의 ‘Great White Wonder’(최초의 해적판 록 음반으로 알려졌다)나 비치 보이스의 미발표 음반 ‘SMiLE’과 같은 존재였다.

스티븐 하이든은 신저 ‘신들의 황혼: 클래식 록의 종말을 향한 여행(Twilight of the Gods: A Journey to the End of Classic Rock)’에 ‘정식 음반이 록 역사의 이정표라면 해적판은 록의 숨은 역사로 통하는 문’이라고 썼다. ‘감동적인 음악보다 더 위대한 유일한 음악은 소문으로만 듣다가 실제로 접했을 때 감동을 주는 음악이다.’

다행히 많은 사람이 걸리사운드의 음악을 들었다. 페어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그 테이프들은 유 씨의 언더그라운드 네트워크를 훌쩍 뛰어넘어 널리 퍼져나갔다. “1990년대 초 롤링 스톤의 표지에 등장했을 때의 리즈와 테이프 리코더 앞에서 조용한 목소리로 진심 어린 노래를 부르던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대조적인지 상상해보라”고 유 씨는 말했다. “카세트에 담긴 그 감동적인 노래들은 마치 터지지 않은 폭탄 같았다.”

그 테이프들이 나온 지 15년이 흐른 2006년 해적판 문화는 CD 거래에서 파일 공유로 변화했다. 자칭 리즈 페어 기록 보관 담당자로 페어의 팬 사이트 ‘Mesmerizing’을 설립한 켄 리는 비교적 원본에 가까운 첫 번째와 두 번째 걸리사운드 테이프를 확보했다. 리는 그 테이프들을 디지털화해 GirlySound.com에서 들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세 번째 테이프는 찾지 못했다. 팬 사이트에서는 팬들에게 그 테이프를 찾아줄 것을 애타게 호소했다.

그때쯤 이 테이프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데 대한 페어의 생각도 바뀐 듯했다. 2008년 그녀는 ‘Exile in Guyville’ 발표 15주년 기념으로 그 음반을 재발매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녀는 걸리사운드 테이프들을 ‘처음에 그랬듯이’ 무료로 배포할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페어는 2010년 앨범 ‘Funstyle’에 걸리사운드의 노래 10곡을 보너스 디스크로 포함시켰다. 최근 그 노래들은 그것이 녹음됐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을 새로운 세대의 작곡가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스네일 메일’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뮤지션 린지 조던(18세)은 최근 페어에게 “그 테이프들은 내가 음악을 작곡하는 이유”라면서 “그 노래들은 정말 솔직하다”고 말했다.

2017년 마타도어는 그 녹음 전곡을 공개할 준비를 하면서 유 씨에게 오리지널 테이프들을 찾아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지니고 있는 대형 휴대용 카세트 라디오로 1990년대 말 이후 처음으로 그 테이프들을 다시 들었다. “지금 들어도 놀랍다”고 유 씨는 말했다. “그 신선함이 여전히 감동적이다.”

– 잭 숀펠드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