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성공 뒤엔 음식이 있었다”

무명 배우에서 살만 루시디의 아내로 유명해진 파드마 락시미, 요리 프로 진행자로서 명성을 얻기까지의 인생 담은 회고록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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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8일 뉴욕 AOL 스튜디오에서 열린 AOL ‘빌드 스피커 시리즈’에 참석한 락시미.

‘톱 셰프’(미국 브라보 TV의 요리 리얼리티 프로)의 진행자 파드마 락시미는 인도 첸나이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간호사의 딸이다. 모델 출신인 그녀는 ‘톱 셰프’에 출연하기 전 로스앤젤레스에서 배우로 활동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오디션에서 수없이 낙방하던 그 시절 락시미의 유일한 위안은 친구들을 불러 모아 파티를 여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처럼 일이 잘 안 풀리는 동료 배우들을 집으로 초대해 코코넛 치킨과 병아리콩 타파스를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잘 먹고 요리도 잘하는 모델’(락시미를 지칭한다)과 그녀가 여는 유명한 저녁 파티에 관한 소문이 미라 맥스 스튜디오의 대표 하비 웨인스타인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얼마 뒤 락시미는 배우의 꿈을 접고 TV 프로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락시미는 영양학자도 전문 요리사도 아니지만 지난 17년 동안 요리책 저자로서 또 ‘톱 셰프’의 무표정하지만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진행자로서 이 분야에서 신임을 쌓아 왔다. 그녀가 파에야(스페인식 냄비 요리)에 넣을 새우의 적당량을 말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믿는다. 음식에 대한 사랑과 지식은 그녀가 경쟁이 치열한 유명 요리사 산업에서 인정받는 데 도움이 됐다.

락시미의 성공 요인을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그녀는 아름답고 똑똑하며 다재다능하다. 하지만 그녀가 음식에 대한 사랑을 요리 분야에서 인정받는 경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진짜 비결이 뭔지를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락시미는 최근 펴낸 회고록 ‘사랑, 상실, 그리고 우리가 먹었던 음식(Love, Loss, and What We Ate)’에서 자신의 남다른 인생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인도 첸나이에서 보낸 어린 시절, 팔뚝에 기다란 상처를 남긴 14세 때의 자동차 사고, 자궁내막증으로 인한 병치레, 전 남편인 소설가 살만 루시디와의 힘들었던 결혼생활, 그리고 요리업계에서 경력을 쌓고 힘든 시절을 견디는 데 도움을 줬던 음식들에 관해 말한다.

락시미가 처음부터 이렇게 고해성사 같은 회고록을 쓰려 했던 건 아니다. 원래는 음식 접할 기회가 많은 일을 20년 가까이 하면서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에 관한 책을 쓸 생각이었다. 그녀는 지난 3월 어느날 오후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가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이 책은 내 경험과 음식에 관한 철학을 바탕으로 건강한 삶과 식습관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탁상공론보다는 실생활을 보여주고 싶었다.”

락시미는 살면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힘이 됐던 음식이 뭐였는지 돌아보기 시작했다. “책을 쓰다 보니 점점 더 개인적인 이야기로 파고들게 됐다. 결과적으로 내 삶을 충족시킨 뭔가를 깊이 있게 털어놓았다.”

때때로 그 뭔가는 실제로 그녀가 먹었던 음식을 뜻한다. 책의 각 장 말미에 앞에서 거론된 음식의 요리법이 실렸다. 그녀가 어린 시절 먹었던 칠리 치즈 토스트나 루시디와 이혼한 뒤 많이 만들어 먹었던 금귤 처트니(과일·설탕·향신료와 식초로 만드는 걸쭉한 소스), 출산 직전에 먹었던 ‘에그 인 어 홀’(egg-in-a-hole, 식빵 가운데 구멍을 내고 그 안에 달걀을 넣어 토스트한 것) 등 개인적인 사연이 있는 음식들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요리책은 아니며 이 회고록에서 요리는 주제를 일깨워주는 후렴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락시미가 자신의 성공 뒤에 음식이 있었음을 늘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락시미는 이전에도 글을 썼다. 2001년 보그지 편집장애나 윈투어의 요청으로 자신의 팔뚝에 있는 상처에 관한 글을 썼다. 그 후 한 기자에게 자신이 여권주의자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는 말을 한 것이 계기가 돼 하퍼스 바자와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썼다. 1999년엔 첫 번째 요리 책(‘Easy Exotic: A Model’s Low-Fat Recipes From Around the World’)을 출판했다. 락시미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이탈리아를 오가며 모델로 일할 때 애용하던 간단한 저지방 요리법 모음이다.

그 후 락시미는 또 한 권의 요리책을 냈고 ‘톱 셰프’의 진행자로 13시즌 동안 활동하면서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또 시트콤 ‘30록(30 Rock)’에 게스트로 출연했고 보그지 인도판의 표지에 실렸다. 여기서 불편한 질문 하나가 제기된다. 세간의 주목을 받고 타블로이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그녀가 회고록을 낼 필요가 있을까? 락시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솔직히 말하면 작가로 인정받고 싶었다. TV에서 어떻게 하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예쁜 여자로만 비치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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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셰프’의 심사위원들과 함께한 락시미(왼쪽에서 두 번째). 그녀는 이 프로그램을 13시즌 동안 진행하면서 에미상 후보에도 올랐다.

락시미는 첫 페이지부터 루시디와의 결혼생활을 언급하면서 심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루시디 같은 유명한 중년의 지식인이 자신보다 훨씬 어린 모델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는 이들이 함께했던 8년 동안 타블로이드 언론에 수많은 기삿거리를 제공했다. 그런 기사 대다수가 락시미를 비난했다. 한 신문은 “파드마 락시미는 이해하기 어려운 여자”라고 썼다. 또 다른 신문은 그녀의 브라 사이즈를 밝혔는데 엉터리였다(락시미는 “내 에이전시의 웹사이트에서 정확한 사이즈를 찾아볼 수도 있었을 텐데”라고 썼다). 뉴욕타임스는 그녀를 ‘어중간하게 유명한 사기꾼’으로 묘사했다. 두 사람이 헤어진 뒤 뉴욕포스트는 양측의 엇갈린 주장을 상세히 보도했다.

책에서 그녀는 루시디에 관해 말할 때 예의를 갖추지만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당시의 이야기에서 조롱조의 묘사가 눈에 띈다. 그녀에게 홀딱 반한 루시디는 ‘외국에 사는 인도인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그녀의 이야기가 아주 흥미진진한데 좀 더 말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루시디가 먼 친척 아저씨가 아닐까 생각했다. “정말로 집안의 친지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살만 루시디가 내 인생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많은 걸 알 수 있었겠는가?”

이 책에는 두 사람에 관한 일화가 많이 실렸다. 락시미는 좋은 시절뿐 아니라 저명한 소설가와 결혼생활을 하면서 곤란했던 일들도 썼다. 그녀는 노벨상을 두 번째 놓친 루시디가 자신은 ‘노벨상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Nobelisable)’고 말했을 때의 난처했던 기분을 기억한다. 락시미가 2006년 뉴스위크 표지에 실렸을 때 루시디는 “잘 됐어. 나도 기뻐”라고 차갑게 말했다. “뉴스위크가 내 사진을 표지에 실었던 건 누군가가 내 머리에 총을 들이댔을 때뿐이지.” 1989년 루시디가 소설 ‘악마의 시’를 출간한 뒤 이란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던 일을 두고 한 말이다.

락시미는 독서와 여행을 많이 했지만 루시디가 만나는 사교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주눅 든 적이 많았다고 썼다. 하지만 루시디라는 스타의 후광효과와 사랑의 열병이 가라앉자 열성 팬처럼 그를 흠모하던 마음이 사그라졌다. “우리는 최선을 다 했다. 루시디는 결점이 많았지만 나를 사랑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우린 서로를 실망시켰다. 난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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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시미는 최근 펴낸 회고록에서 전 남편 살만 루시디와의 힘든 결혼생활을 포함해 자신의 남다른 인생에 관해 솔직히 털어놨다.

락시미는 자궁내막증으로 인한 고통에 루시디가 냉담하자 헤어질 결심을 굳혔다고 말했다. 그녀는 평생 극심한 만성 통증을 견디며 살아왔다. 부종과 허리 통증이 너무 심해 며칠씩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곤 했다. 모델 일은커녕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병원에 뻔질나게 드나들었지만 오진 탓에 통증을 완화시킬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에게 섹스는 끔찍하게 고통스런 시련이 됐다. 그렇지 않아도 삐걱거리던 결혼생활에 불만과 좌절감을 더해줬다. 그녀는 36세 때 마침내 자궁내막증 진단을 받았다. 자궁내막과 유사한 조직이 자궁 밖에서 자라면서 몸에 쌓여 자궁에 재흡수되는 병이다. 이런 조직은 다른 장기에 붙어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한다.

미 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미국 여성 중 최소 500만 명이 자궁내막증을 앓지만 제대로 진단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 결과 증상이 시작된 이후 최종 진단을 받기까지 평균 6~10년이 걸린다.

락시미의 경우 엉뚱한 약을 처방 받고 쓸데없이 생식기관 일부를 잘라내면서 23년을 허송세월한 후에야 정확한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동료 환자인 10대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문제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성 생식기 관련 문제인) 발기부전이나 전립선 이상의 경우 14종류의 약과 온갖 연구 결과가 다 나와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여성 건강 옹호 운동가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다.

락시미는 자신에게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치료해준 데이머 섹킨 박사의 도움을 받아 미국 자궁내막증 재단(EFA)을 설립했다. 그 후 락시미는 상원의원들과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병을 이야기하며 자궁내막증의 인식 제고에 힘썼다. “난 이 병을 팔자려니 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최근 그녀는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 설명회에 참석했다. 회의실을 가득 메운 상원의원들 앞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지금부터 제 질(vagina)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나가실 분은 나가셔도 좋습니다.”

락시미는 회고록 출간 후 다시 언론의 헤드라인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 책에 실린 ‘크랜베리 드라노’ 요리법이 정말로 락시미의 주장대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인지를 검증하려는 기사들도 나올 것이다. 또 타블로이드 언론은 루시디가 그녀를 ‘형편없는 투자’라고 깎아내린 일을 떠들어댈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기사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파드마 락시미에 관해 알고 싶은 사람들은 그녀의 회고록을 읽으면 된다. 비좁은 스튜디오 아파트에서 이민자 어머니와 함께 살던 소녀, 인도 출신이라는 걸 숨기려고 안젤리크라는 예명을 썼던 여고생, 피부색이 너무 짙고 전성기가 너무 빨리 지나 할리우드에서 에이전트를 구하지 못했던 여배우. 이 책에서 우리는 락시미의 여러 얼굴을 만날 수 있다.

– 이바 딕시트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