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권운동의 선구자”

다큐멘터리 감독 켄 번스, 미국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야구선수 재키 로빈슨 이야기 다룬 작품 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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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번스는 “인종 문제에 관한 한 인간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역사는 재키 로빈슨을 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신화로 기억한다. 그는 브루클린 다저스의 구단주 브랜치 리키가 야구의 인종장벽을 깨는 데 이용한 겸손한 야구선수였다. 인종차별에 직면했을 때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을 내미는 속세의 성인이었다. 미국의 백인은 로빈슨을 그런 이미지로 기억한다. 하지만 실제 로빈슨은 역사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분노가 많았다. 그는 야구를 그만둔 후에도 미국 흑인의 권리를 위해 치열한 싸움을 계속했다.

켄 번스 감독이 (딸 사라, 사위 데이비드 맥마흔과 함께) 최신 다큐멘터리 ‘재키 로빈슨’(4월 11~12일 PBS에서 방영)에서 그런 로빈슨의 모습을 그렸다. 신화 중에는 깨져야 할 것들도 있다. 로빈슨처럼 복잡한 인물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운동가로서 그의 업적은 50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중요하다. 다큐멘터리 ‘남북전쟁’과 ‘야구’로 유명한 번스 감독은 로빈슨의 부인 레이철부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내외까지 다양한 사람을 인터뷰하며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민권운동 선구자 중 한 명인 로빈슨의 숨겨진 삶을 재조명한다.

평소에 로빈슨이 운동가로서 과소평가받았다고 느꼈나?

그렇다. 그는 현대 민권운동의 선구자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연좌농성이 시작되기 이전의 연좌농성자였고, 프리덤 라이드(미국의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남부지방 여행)가 시작되기 이전의 프리덤 라이더였다.” 1947년 4월 15일 그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을 때 미국에서는 20세기 민권운동이 무르익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킹 목사는 대학 3학년 생이었고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이 군대에서 인종차별을 종식시키라는 지시를 내리기 전이었다. 연방대법원이 ‘인종 분리교육은 위헌’이라고 선언한 브라운 판결도 나오지 않았을 때였다. 간이식당에서 조직된 연좌농성이 시작되기 이전이었지만 로빈슨은 10대 시절 그런 운동을 했다.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의 한 버스 안에서 백인전용 좌석에 앉았던 흑인 여성 로사 파크스가 흑인용 좌석으로 옮기기를 거부한 사건이 일어난 것도 그로부터 약 10년 후의 일이었다. 하지만 로빈슨은 1944년 이미 그 일을 했다. 그가 민권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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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키 로빈슨.

로빈슨의 이야기에 오늘날 미국의 인종 문제와 연관시킬 만한 요소가 있었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내외가 그런 예다. 그들을 인터뷰하길 정말 잘 했다. 로빈슨과 부인 레이철, 오바마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 미셸, 이 두 커플은 미국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연 사람들이다. 로빈슨이 먼저 문 하나를 통과했지만 레이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바마는 누군가가 피부색과 관련된 일로 무례하게 굴었을 땐 자신을 사랑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집으로 가는 게 좋다고 말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난 이 세상에 새로운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지만 나아질 수는 있다. 내가 미국의 흑인 대통령을 인터뷰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로빈슨도 그런 일이 자신의 부인이 살아 있는 동안 일어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연방기 논란과 흑백 공용 수영장, 흑인 운전, 경찰의 검문검색권, 차별, 흑인 교회 방화 등의 문제를 다룬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것들은 변하지 않았다. 인종 문제에 관한 한 인간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 라이언 보트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