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에 지친 사람들의 은신처

스와질란드의 오지마을에 있는 ‘술탄의 영적 휴양지’, 촛불 켜고 개울물 마시며 느린 일상 즐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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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꼭대기에서는 멀리서 들리는 소방울 소리가 유일한 생명의 신호다. 에펠탑의 축소모형 등 현대미술 작품들이 바위와 식물 사이사이에 놓여 있다.


스와질란드 북서쪽의 남아공 접경지역을 따라 이어지는 말로로차 산악지대. 크리스티안 에라스무스(51)가 새벽 동이 트기 무섭게 캐시미어 판초를 입고 산속 휴양지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구름 속으로 걸어간다. 그는 바위 위에 서서 안개가 걷히는 걸 바라본다. “‘술탄의 영적 휴양지(Sultan’s Spiritual Retreat)’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에라스무스가 아프리카 억양이 섞인 영어로 명랑하게 외쳤다. “커피를 마시러 갑시다.” 그를 따라 산비탈을 내려가니 작은 오두막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다. 수도 음바바네에서 북쪽으로 약 32㎞ 떨어진 오지 마을 은카바다.

해발 1600m의 고지라 여름철인 1월에도 약간 한기가 느껴진다. 저지대의 비옥한 초원에서는 망고와 리치가 자라고 모기도 많다. 하지만 이 산꼭대기에서는 멀리서 들리는 소방울 소리가 유일한 생명의 신호다. 타오르는 태양이 구름을 뚫고 나타나면 숲과 농지, 그리고 ‘스와질란드의 황금’으로 불리는 대마초(이 나라 최고의 비공식적 수출품으로 해외에 잘 알려졌다) 밭이 펼쳐진다.

에라스무스는 고향인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맞춤 남성복 디자이너로 성공했으며 최근 그곳에 양복점을 다시 열었다. 그는 아프리카 대륙의 마지막 절대군주국인 스와질란드 왕국을 오래 전부터 좋아했다. 에라스무스는 산비탈을 내려가다가 잠시 멈춰 서서 스와질란드산 알로에 베라의 뛰어난 보습성을 보여줬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남아공 크리켓 대표팀의 옷을 만들다가 스와질란드의 산꼭대기에 와서 살게 됐는지 또 어떻게 휴양지를 건설하게 됐는지 들려줬다.

그는 1986년 스와질란드를 처음 방문한 뒤 해마다 이 산악지대를 찾았다. 2008년 현지 주민들은 그가 이 지역사회에 베푼 자선에 감사하는 뜻으로 30만㎡의 땅을 선물했다. 그가 이 지역에 투자해 지역 경제를 살려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이 선물은 스와질란드를 거의 30년째 지배해온 음스와티 3세 국왕(이 마을의 모든 상점에 그의 사진이 걸려 있다)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남아공과 모잠비크 사이에 있는 내륙국가 스와질란드의 내부 사정은 바깥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인구는 100만 명이 조금 넘으며 약 50년 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음스와티 국왕과 그의 부인 15명을 둘러싸고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는 소문이 돈다.

에라스무스는 지난해 자신처럼 스와질란드를 좋아하는 독일 발도르프 출신의 귀족 요나스 파르파르트(26)를 만난 후 이곳으로 이주했다. 파르파르트는 마을 주민의 도움을 받아 론다벨(아프리카 지역의 초가지붕을 얹은 원형 오두막) 15채를 포함해 이 휴양지 대부분을 직접 건설했다. 에라스무스는 자기 땅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통나무집(그는 이곳을 펜트하우스라고 부른다)에서 산다. 그 옆에는 실물 크기의 흰 염소상을 얹은 터키식 목욕탕이 있다.

손님들은 텐트와 론다벨, 통나무집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곳을 선택할 수 있으며 1일 숙박료는 135~230달러다. 시즌과 동행 인원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군주제의 열렬한 지지자인 에라스무스는 오스만 제국을 지배했던 술탄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휴양지 이름을 ‘술탄의 영적 휴양지’로 지었다. 오스만 제국은 한때 그가 살았고 그가 디자인한 제품이 여전히 생산되는 지금의 이스탄불에 500년도 더 전에 존재했던 나라다.

스와질란드를 찾는 사람들은 시골 같은 느긋한 분위기에 매혹된다. 에라스무스는 쉴새 없이 돌아가는 디지털 시대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세계 곳곳의 손님들을 받고 있다. 그의 첫 번째 손님은 지난해 가을 이곳을 찾은 터키 사업가 일행이었다. 스트레스에 지친 손님들은 전깃불 대신 촛불을 켜고 산속 개울에서 길어온 물을 마시며 론다벨 사이를 어슬렁거리는 소들을 지켜본다.

아직까지는 마을 주민들이 에라스무스의 별난 행동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처음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몇 시간씩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다. 특히 아이들이 그랬다”고 에라스무스가 말했다. 그 이유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이 산속 오지 마을에 낯선 백인 2명이 들어왔으니 이목을 끌 만도 했다. 게다가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산비탈 여기저기에 현대미술 작품들을 흩어놓았으니 말이다. 에펠탑의 축소모형, 색 구슬로 만든 두개골, 석조 흉상 등이 바위와 식물 사이사이에 놓여 있다. 살아 있는 듯한 자세로 배열된 해골들은 에라스무스의 친구 티에리 폰테인(지난해 프랑스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전시회를 열었다)의 작품이다.

에라스무스는 휴양지 건축의 대부분을 파르파르트에게 맡겼다. 하지만 그는 이 산꼭대기에서 하고 싶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는 이곳에 무용가와 미술가, 작가들의 공동체를 건설할 생각이다. 현지 주민들도 참여하고 싶어 할 듯하다. 한 할머니가 마른 풀로 짠 복잡한 무늬의 바구니를 사라고 내밀었다. 가격이 1달러도 채 안 됐다. 에라스무스는 나중에 내게 이 할머니가 왕족의 일가인 들라미니 종족이라고 알려줬다.

‘술탄의 영적 휴양지’는 일반적인 휴양지와는 다르지만 에라스무스의 손님 중에는 다음 방문을 예약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그는 국제 춤명상 단체 ‘5리듬스’ 베를린 지부와 함께 오는 10월 이 산속에서 워크숍 개최를 논의 중이다. “머릿속에 꿈꾸던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고 에라스무스는 말했다. “사람들은 이런 평화를 원한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갈수록 현대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은신처를 찾는 요즘 에라스무스는 그 필요에 꼭 맞는 일을 하고 있다.

– 알레브 스콧 뉴스위크 기자

[기자는 ‘술탄의 영적 휴양지’ 소유주의 양해를 얻어 그곳에 머물렀다. 손님들은 요하네스버그 O R 탐보 국제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음바바네까지 간 뒤 휴양지 측에서 제공하는 차량을 이용해 그곳으로 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