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의 놀이터가 된 미국의 도심

빈곤층, 이민자, 노인 등은 교외로 밀려나고 창의적이고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이 대도시로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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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 파크가 내려다 보이는 뉴욕 중심부. 도시계획 전문가 조엘 코트킨은 뉴욕이 지위와 부의 격차가 큰 ‘봉건 도시’로 변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피츠버그가 새로운 오스틴이라는 얘기를 들어봤는지? 그들에 따르면 샌앤토니오가 새로운 퀸스, 스태튼 아일랜드가 새로운 브루클린이다. 오클랜드는 완전히 끝나고 이제 모데스토가 뜬다. 시애틀도 한물갔다. 시간 있을 때 월러월러에 집을 사라. 포틀랜드는 너무 구식이다. 거기보단 캐나다 에드먼턴이 낫다. 하지만 진짜 괜찮은 곳은 코네티컷 주 하트퍼드다. 아직 뜨진 않았지만 곧 뉴욕타임스 여행섹션에 등장하면 게임은 끝난다. 독자적인 TED 강연을 주최하고 구글의 위성 사무실을 유치할지 모른다. 그때 당신은 어디 있을 건가? 애덤스 모건에서 집값이 비싸다고 불평하고 있을 텐가? 실버레이크의 언저리에서 교통체증으로 차에 갇혀 있을 것인가? 그러지 말고 어서 하트퍼드를 알아보라.

물론 미국의 뜨는 도시, 지는 도시에 관한 가상의 얘기다. 토론토대학 교수 리처드 플로리다의 책 ‘창조계급의 부상(The Rise of the Creative Class)’이 나온 지 14년이 지나는 동안 뉴어버니즘(New Urbanism, 무분별한 시가지 팽창과 교외 지역 난개발에 맞서는 새로운 도시계획 운동) 신봉자들에겐 몇 가지 믿음이 종교적 신조로 굳어졌다. 예를 들어 그들은 도시의 무질서한 확장보다 인구밀도가 높은 게 차라리 낫다, 커피숍에서 노트북으로 일하는 젊은이가 복합 상업지구의 회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중년보다 낫다, 자전거는 아주 좋고 자동차는 완전히 나쁘다, 맨해튼 같은 복닥거리는 도심이 댈러스처럼 넓다랗게 퍼진 곳보다 범죄가 훨씬 적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결과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와 노스캐롤라이나 주랄리의 공단 잿더미에서 고층빌딩이 솟아나고, 테네시 주 채터누가에 히피족 동네,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 동성애자 동네,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와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 간척 부두가 떠오른다. 플로리다 교수는 뉴어버니즘 운동가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스스로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그들은 교외 지역이 뻗어나가면서 텅빈 미국 도심의 구세주이자 인디애나폴리스를 22세기의 파리로 만들려는 창의성과 능력을 꿈꾼다.

그러나 모든 지식운동엔 반드시 반발이 따른다. 뉴어버니즘에 대한 반격도 갈수록 거세진다. 효과가 뚜렷이 나타날 정도로 그 운동이 성숙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뉴어버니즘은 겉보기엔 아주 예쁘다. 뉴욕 브루클린의 코트스트리트,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의 발렌시아스 트리트를 보라. 얼마나 멋진가? 뉴욕타임스 여행섹션에는 ‘서피싱(Surfacing)’이라고 불리는 고정 칼럼이 있다. 쓸쓸하고 황폐한 동네에 갑자기 여피족이 몰려들어 요가 교습소를 겸한 박제 가게가 들어서는 현상을 소개하는 칼럼이다. 사실 이 기사도 그 칼럼에 최근 등장한 캘리포니아 주 웨스트버클리에서 쓴다. 과거 산업구역이었지만 지금은 활기차다. 커피숍에서 내가 마시는 커피는 내 노트북 컴퓨터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볶은 것이다. 이 정도면 ‘로컬’로 최고가 아닐까?

하지만 문제가 있다. 그런 곳이 주로 ‘백인화’한다는 점이다. 과거엔 부유한 백인이 빠져나가 도시 황폐화를 불렀지만 이젠 상황이 역전됐다. 뉴어버니즘은 도시를 돈은 있지만 자녀가 없는 백인의 놀이터로 바꿔놓는다. 반면 돈 없는 근로계층, 이민자, 노인 등 ‘지식 경제’에 연결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밀어낸다.

부동산 전문 웹사이트 트루리아의 수석 분석가를 지낸 제드 콜코는 2000∼2014년 미국 도시에 유입된 인구보다 이탈한 인구가 더 많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미국 통계국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렇게 결론지었다. “학력과 소득이 높은 젊은이는 복잡한 도심에 살 가능성이 크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도시 부흥의 혜택에서 제외됐다. 도시로 유입되는 사람은 갈수록 젊고 부유하고 자녀가 없는 백인이다.” 창의적이고 유행에 밝으며 선구적인 그들은 교외 지역을 탈출해 문화가 충돌하고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대도시로 간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역동적인 다문화 구역이 단조로운 백인 구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카운티 소재 채프먼대학의 도시계획 전문가 조엘 코트킨 연구원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다. 곧 발간될 저서 ‘휴먼 시티(The Human City: Urbanism for the Rest of Us)’를 쓴 그는 진화론을 믿는 생물학자가 창조론을 옹호하는 것만큼이나 급진적으로 교외 지역을 지지한다. 그에 따르면 중산층 가족이 살고 싶어 하는 곳이 교외 지역이다. 중산층에게 적대적인 도시는 물고기에게 적대적인 바다와 같다고 그는 생각한다.
코트킨 연구원은 현재 미국에서 급성장하는 주요 도시가 텍사스 주 오스틴, 콜로라도 주 덴버, 워싱턴 주 시애틀, 텍사스 주 포트워스,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럿과 랄리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고층화하지 않고 교외로 뻗어나가는 도시다. 자유분방한 삶을 원하는 밀레니엄 세대는 텍사스 주 휴스턴, 테네시 주 내슈빌, 콜로라도 주 덴버를 선호한다.

코트킨 연구원은 “사람들이 중산층의 생활방식을 추구하면서 도시가 교외 지역으로 팽창한다”고 설명했다. 뉴욕 브루클린 출신인 그는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서 오래 살았지만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는 “탈산업화 엘리트와 증가하는 하층계급 사이가 갈수록 벌어지는 일종의 ‘봉건 도시’가 됐다”고 말했다. 또 그는 뉴어버니즘 도시를 “식당과 가게, 축제가 많은 성인 디즈니랜드”라고 불렀다. 현실과 동떨어진 평온한 곳이라는 뜻이다. 그런 지역은 수세기 전 청운의 꿈을 안고 도시로 향했던 야심만만한 부류의 사람들을 반기지 않는다.

코트킨 연구원은 플로리다 교수가 말한 ‘창조계급’의 규모와 영향력이 과장됐다고 믿는다. 그들 자신이 과장한 측면도 있다. 그는 최근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카운티 어바인에서 경험한 노루즈 축제에 관해 이야기했다. 노루즈 축제는 페르시아의 새해를 기념하기 위해 3월 중순 열리는 페르시아 전통 행사다. 축제에 참석한 거의 모두가 이민자였다. 그들은 교외 지역에 살며 그곳을 좋아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들의 꿈이 뭔지 아는가? 그들의 꿈이 LA 중심가의 고층 아파트에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 알렉산더 나자리안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