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의 코미디언’ 로빈 윌리엄스

HBO 다큐멘터리에서 사람들에게 웃음 주려는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한 남자의 개그와 뛰어난 재능 일깨워줘
로빈 윌리엄스는 선정적인 내용의 스탠드업 코미디와 가족친화적인 영화 양쪽 모두에서 성공했다. / 사진:CCHRINT.ORG

미국 배우 빌리 크리스털은 2004년 6월 11일 TV에서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의 장례식을 보고 있었다. 그때 전화 벨이 울렸다.

“빌.” 전화 저편의 목소리가 말했다. “잘 있었나? 론 레이건일세.” 친근하고 서민적인 그 목소리는 정말 레이건 대통령의 음성을 꼭 닮았다. “지금 난 천국에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 전화했네. 여기서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네.”

크리스털은 그 말에 맞장구를 쳤다. “아, 그러세요? 천국은 어떤가요?”

“글쎄,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덥군.” 목소리가 대답했다.

크리스털은 HBO의 다큐멘터리 ‘로빈 윌리엄스: 컴 인사이드 마이 마인드(Robin Williams: Come Inside My Mind)’에서 이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그의 오랜 절친이자 코미디 파트너였던 로빈 윌리엄스로부터 수없이 받았던 장난스런 전화 중 하나였다. 윌리엄스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려는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한 남자의 시끌벅적한 개그다. 윌리엄스는 2014년 8월 11일 자살했으며 마리나 제노비치 감독이 만든 이번 다큐멘터리는 그의 뛰어난 재능을 다시 일깨워준다.

윌리엄스와 절친 빌리 크리스털(왼쪽)은 1997년 TV 시트콤 ‘프렌즈’에 카메오로 출연했다(왼쪽). 윌리엄스는 1986년 뉴스위크 표지에 등장했다. / 사진:YOUTUBE.COM, NEWSWEEK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윌리엄스의 초기 코미디 루틴(공연의 일부로 정해진 일련의 동작·농담 등)에서 따왔다. 윌리엄스는 농담을 생각해 내려고 애쓰는 코미디언의 두뇌를 흉내 냈다. 그는 마치 난파선의 선장처럼 ‘메이데이! 메이데이!’(선박·항공기의 국제 조난 신호)를 외치며 고통에 겨워한다. 윌리엄스에게 농담을 생각해내는 일은 생존을 의미한다. “(관객의) 웃음은 마약과 같다”고 크리스털은 다큐멘터리에서 말한다. “거기서 느끼는 스릴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윌리엄스는 자신이 알코올·마약 중독(1970년대 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던 시절 시작됐다)을 이겨내려고 몸무림치던 이야기를 농담 삼아 하곤 했다. 그는 1982년 친구이자 동료 코미디언 존 벨루시가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다큐멘터리에서 말한다. 두 사람은 벨루시가 사망하기 불과 몇 시간 전 파티를 벌였다. 제노비치 감독이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찾아낸 1992년 인터뷰(플레이보이에 실린 로렌스 그로벨과의 인터뷰)에서 윌리엄스는 1980년대에 마약에 탐닉했던 것을 일종의 광기로 묘사했다. “당시엔 내 머리가 마치 진공 용기처럼 느껴졌다”고 그는 말했다.

윌리엄스는 알코올 중독을 극복했다 술에 다시 빠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는 그런 식으로라도 누군가와 연결되는 순간이 필요했다”고 제노비치 감독은 말했다(제노비치는 2013년 고통에 시달리고 극단적이었던 또 다른 코미디언 리처드 프라이어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제작했다). “진 빠지는 일이었지만 로빈에겐 그 과정이 필요했다”고 제노비치 감독은 말을 이었다.

윌리엄스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지만 그를 잘 알았던 많은 이에게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의 인생의 목표나 결과가 무엇이었는지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고 제노비치 감독은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파헤치려 했던 것도 아니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보다는 얼굴 표정이 수시로 바뀌며 속사포처럼 농담을 쏟아내는 그의 어른아이 같은 코미디의 폭이 얼마나 넓었는지, 그리고 그 중심엔 얼마나 여리고 연민에 찬 마음이 있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저드 애퍼토우 감독은 언젠가 “윌리엄스는 비슷하게나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배우”라고 말했다. 윌리엄스의 재능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뛰어나다’고 묘사한 이 다큐멘터리는 그의 이런 독창성을 잘 드러내준다. 특히 그의 즉흥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8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스탠드업 코미디 특별공연 중 한 대목은 윌리엄스의 라이브 코미디 중 백미로 꼽힌다. 여자 대통령의 장점에 관한 아주 우스꽝스러운 개그였는데 2018년 현재 미국 상황과도 놀라울 정도로 맞아떨어진다. 그의 매니저에 따르면 이 공연은 리허설도 거의 없이 이뤄졌다.

윌리엄스의 연기는 ‘미세스 다웃파이어’(왼쪽) 같은 코미디뿐 아니라 ‘죽은 시인의 사회’ 같은 의미심장한 영화에서도 빛을 발했다. / 사진:YOUTUBE.COM

제노비치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에 윌리엄스의 가족과 연예계 친구들(크리스털과 스티브 마틴, 우피 골드버그, 데이비드 레터먼 등)의 말을 많이 인용했다. 또 윌리엄스의 생전 인터뷰와 토크쇼 출연 영상 등을 편집해 마치 그가 자기 이야기의 내레이션을 맡은 듯한 으스스한 느낌마저 준다.

초기 스탠드업 코미디 중 드물게 남아 있는 자료도 그의 대표적인 영화 장면들과 함께 볼 수 있다. 30년이 넘는 그의 영화 경력은 ‘미세스 다웃파이어’ 등 코미디로 시작해 자연스럽게 드라마로 이어졌다. 그는 선정적인 내용의 스탠드업 코미디와 가족친화적인 영화 양쪽 모두에서 성공한 가장 재미있는 코미디언이다. 아카데미상 후보로 4번 지명됐고 1997년 ‘굿 윌 헌팅’으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윌리엄스는 1986년 뉴스위크 표지에 등장했다. 사진기자 아서 그레이스는 이때 취재에 참여했다가 그의 평생 친구이자 개인 사진가가 됐다. “윌리엄스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내가 만나본 어느 누구보다 빨리 생각해냈다”고 그레이스는 다큐멘터리에서 말했다.

윌리엄스가 첫 부인 발레리 벨라디와 이혼한 이야기는 이 다큐멘터리의 슬픈 대목 중 하나다. 언론은 이들의 이혼을 선정적으로 다뤘다. 잡지 피플은 커버 기사에서 윌리엄스가 아들의 보모(이혼 후 얼마 안 돼 그의 둘째 부인이 된 마샤 가시스)와 사랑에 빠져 벨라디를 떠났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벨라디와 윌리엄스는 그가 가시스를 사랑하기 훨씬 전부터 별거했다.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에 응한 벨라디와 아들 잭에게서도 유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가시스와 셋째 부인 수전 슈나이더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막바지에서 크리스털은 윌리엄스와의 가슴 아픈 마지막 만남을 회상했다. 윌리엄스는 그에게 자신이 파킨슨씨병 진단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윌리엄스가 그렇게 두려워 하는 건 처음 봤다”고 크리스털은 말했다. 윌리엄스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유난히 큰 슬픔과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제노비치 감독은 지난 1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시사회에서 그런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사람들이 윌리엄스를 사랑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는 만인의 코미디언이었다. 모두가 그는 자신들과 같은 부류라고 느꼈다.”

– 잭 숀펠드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