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도 인간처럼 생명의 ‘주체’”

피타고라스부터 피터 싱어까지 고대·현대 철학가들은 동물의 생명권과 육식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했나
감각·지각 능력을 갖고 있는 동물을 육류 생산을 위해 산업용 농장에서 고통 받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 사진:GETTY IMAGES BANK

사무실 공유 서비스 업체 위워크(WeWork)는 최근 육류가 포함된 식사를 제공하거나 그런 음식의 식대를 정산해주는 것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환경에 돌아가는 부담을 덜어내자’는 취지에서 회사 정책으로 ‘미트 프리(meat-free)’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물론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외부에서 고기를 먹거나 집에서 음식을 자유롭게 준비해 오는 건 허용된다. 위워크 공동창업자이자 최고문화책임자(CCO)인 미겔 매켈비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이런 정책이 탄소발자국을 줄이려는 회사의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고기가 포함된 음식을 구입하는 예산을 없애겠다. 공식 행사에서 육류 메뉴를 쓰지 않겠다. 채식은 환경보호에 크게 기여하는 길이다.”

그의 이런 도덕적 주장은 육류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나쁜 영향을 염두에 둔 발상이다. 연구에 따르면 육류와 낙농제품 생산이 온실가스 배출과 생물 다양성 손실 문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매켈비 CCO는 “연구에 따르면 환경에 주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개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육식을 피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위워크는 고기를 ‘퇴출’하는 새 정책을 시행에 따라 2023년이 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약 20만1000t, 물 사용량을 630억ℓ 줄이고, 동물 1550만 7103마리를 구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육식을 향한 부정적인 시각은 환경 문제가 심각해지기 오래 전부터 있었다. 유사 이래 수많은 철학가가 육식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쳤다. 고대 그리스 철학가들은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바탕으로 그런 주장을 했다. 그리스 수학자이자 철학가였던 피타고라스는 동물도 인간처럼 영혼을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동물에도 해를 가해선 안 된다.” 그래서 19세기 이전엔 채식을 두고 ‘피타고라스 식단’이라고 불렀다.

미국 뉴욕에 있는 위워크의 직원 식당. 위워크는 직원들에게 고기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사진:WEWORK

플라톤은 ‘국가론’ 제2권에서 육식을 지속 불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사치품으로 간주했다. 사회가 투쟁과 불평등으로 가득하게 되며 고기를 구하기 위해 더 많은 땅과 전쟁이 필요하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그로부터 2000년 뒤인 1789년, 공리주의 이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덤은 동물도 사람과 똑같이 고통을 느낄 수 있으므로 사람처럼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동물 복지를 주장하며 육류 소비에 반대했다. 벤덤은 이렇게 말했다. “문제는 ‘동물이 추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가? 또는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동물도 고통을 아는가?’가 돼야 한다. 고통을 인식하는 존재라면 모두를 보호하는 게 옳은데 왜 법은 동물엔 그런 보호를 거부하는가? 앞으로 인류가 모든 숨쉬는 존재에 보호를 제공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공리주의는 최고의 선을 가져다주며 세상의 고통을 줄이는 행동이 올바르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의 이익을 공평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리주의자들은 고통을 줄이고 쾌락과 행복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현대 공리주의 철학가 피터 싱어는 우리의 쾌락과 고통을 동물의 그런 감정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묻는다. 육류 생산을 위해 동물을 산업용 농장에서 고통 받게 하는 문제를 두고 그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하며 동물을 학대하는 우리가 ‘종차별주의자(speciesist)’일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종차별주의자도 인종차별주의자와 거의 똑같다며 자신이 속한 종의 이익만 우선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동물 역시 지각·감각 능력이 있으므로 생명권을 지닌다는 것이다.

다른 철학가들은 동물의 고통에만 신경 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그들은 고통이 수반되든 그렇지 않든 동물을 우리가 활용하는 ‘자원’으로 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을 장기 적출의 ‘자원’으로 대하는 것이 잘못인 것처럼 육류 생산을 위해 동물을 사육하는 것도 부도덕하다는 논리다.

예를 들어 미국 철학가이자 동물권 옹호론자인 톰 리건은 동물도 인간처럼 ‘생명의 주체’라고 주장했다. 동물도 사람처럼 권리가 있고, 선호하는 것이 있으며, 원하는 것이 있고, 기대하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그는 ‘동물 권리를 위한 변론’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가해서는 안 되는 폭력적이고 모멸적인 일은 모든 동물에게도 가해서 안 된다며 축산업과 동물실험, 사냥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의 상황 외에는 동물의 생명을 박탈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공장식 사육을 더욱 인도적으로 만들려는 것은 동물을 자원으로 활용하는 부도덕과 불의라는 핵심을 비켜나간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동물은 인간과 똑같은 도덕적 지위를 갖지 않는다고 믿은 철학가들도 있었다. 이런 ‘인간 예외주의(human exceptionalism)’는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우월한 능력을 가졌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예를 들어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가질 수 있다. 특히 가족 관계가 매우 강하다. 또 언어를 사용할 수 있으며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고통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명제로 유명한 16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르네 데카르트는 동물을 이성과 정신의 작용이 부재한 ‘생물학적 기계’와 같은 존재라고 봤다. 그는 동물이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감정도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의 견해는 수세기 동안 과학적 실험을 위한 동물 생체해부 관행을 정당화하는 데 동원됐다.

독일 철학가 이마누엘 칸트는 사람과 동물의 차이점은 결국 인격, 또는 인간성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이성에 기초해 자신의 도덕적 규칙을 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동물은 그럴 수 없고 본능만 따른다고 그는 판단했다. “동물은 도덕적 사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인격에 부여되는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나 좀 더 세밀한 관찰과 과학적 연구는 동물도 사람과 비슷한 고통을 경험하며 감정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코끼리는 복잡한 정서적 삶을 갖는다. 가족의 죽음에 비통을 느끼고 미묘한 사회·가족 관계를 갖는다. 그뿐이 아니다. 동물도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서로 소통하며, 일부의 경우 언어도 사용하고, 도덕적으로 행동한다. 따라서 동물을 도덕적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그런 특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다.

심지어 인간을 우월하게 만드는 것이 이성적 자율성이라는 칸트의 아이디어도 먹혀들지 않는다. 아기나 알츠하이머병 환자, 발육장애 환자 등도 이성적 자율성이 없다고 생각될 수 있다. 게다가 인격은 도덕적 고려의 대상으로 대접받을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주요 잣대가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내 생각에 칸트도 싱어가 지적한 바로 그 ‘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으로 동물권이나 동물의 고통이 도덕적 행위 측정의 잣대에 포함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육식에 반대하는 철학가도 있다. 그들은 단지 육식의 미덕과 부도덕에 초점을 맞춘다.

미덕 이론가 로절린드 허스트하우스는 육식이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유치하다’는 속성을 드러낸다고 주장했다. 다른 미덕 이론가들은 덕 있는 사람은 연민과 동물 복지를 위해 육식하지 않거나 고기를 많이 먹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필자 역시 도덕적 철학자로서 육류 생산, 특히 현대 공장식 사육장에서 동물이 받는 고통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믿는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 위워크의 사내 육식 금지 정책은 도덕적 근거가 있으며 철학적으로도 훌륭한 생각이다.

– 존 맥그리거

※ [필자는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 철학 교수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