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이 우리를 이끌었다”

9·11 이후 뉴욕의 록 부활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된 밴드 인터폴, 위엄 있고 강렬한 이미지의 6집 앨범 발표해
인터폴의 세 멤버. (왼쪽부터) 샘 포가리노, 폴 뱅크스, 다니엘 케슬러. 이들은 최근 6집 정규 앨범 ‘Marauder’를 발표했다. / 사진:JAMIE JAMES MEDINA COPY

미국 록 밴드 인터폴의 데뷔 앨범 ‘Turn on the Bright Lights’(이하 Bright Lights)는 신기할 정도로 적시적소에 나타난 위대한 앨범 중 하나다. 2000년대 초 뉴욕시가 바로 그 때와 장소다. 난해한 뉴 메탈(얼터너티브 메탈의 하위 장르)이 사그라지고 록이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인터폴은 1997년부터 콘서트를 열고 EP 음반을 발표하면서 명성을 쌓아가는 중이었다. CBGB(뉴욕의 유명한 록 클럽)는 그때도 뉴욕에서 손꼽히는 클럽이었지만 타겟 같은 대형 할인점의 홍보에 이용당하진 않았다(최근 타겟은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새 매장을 열면서 1970~80년대의 CBGB를 떠올리는 홍보로 음악 팬들의 분노를 샀다). 또 당시 뉴욕은 도심의 지나친 고급주택화로 맨해튼이 금융업자와 부동산 투기꾼의 놀이터가 되기 이전이어서 인디 밴드들도 살아갈 만한 곳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테러로 무너져 내렸다. ‘Bright Lights’는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지 2개월 만에 녹음됐고 2002년 발표됐다. ‘Bright Lights’에선 새로운 확실성을 원하는 비평가들이 듣고 싶어 하는 ‘서글픈 절박함’이 묻어났다. “이 음반에 들어갈 곡들을 쓸 때 일종의 마법 같은 걸 느꼈다”고 인터폴의 리더 폴 뱅크스는 말했다. “그게 무엇이었든 우린 그걸 갖고 있었다.”

뱅크스의 구슬픈 바리톤 음색과 밴드 특유의 멋진 포스트 펑크 후렴구 사이 어딘가에 마법이 숨어 있었다. 그 마법이 인터폴을 9·11 이후 뉴욕의 록 부활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Bright Lights’는 비평의 기준이 됐고 인터폴은 킬러스, 더 엑스엑스 같은 밴드에 영향을 줬다.

요즘 인터폴의 멤버는 3명으로 줄었지만(2010년 베이시스트 칼로 D가 밴드를 떠났다) 여전히 스트로크스, 예예예스, 워크멘 등과 함께 인디 록을 주도한 중요한 밴드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지난 8월 24일 인터폴은 4년 만에 처음으로 새 앨범을 선보였다. 인터폴의 6집 정규 앨범인 ‘Marauder’는 이 밴드가 향수로 인한 혼수상태에 빠진 게 아닌가 우려하던 팬들을 안심시키는 매우 훌륭한 음반이다.

‘Bright Lights’ 발매 15주년을 기념한 인터폴의 지난해 순회공연은 회고적인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그 공연을 끝낸 직후 이 밴드는 곧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겠다고 약속했다. “그 공연 중에 이 앨범에 실릴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뱅크스는 말했다. “우린 한쪽 발은 데뷔 앨범(이 음반은 여전히 내 가슴을 설레게 한다)에, 다른 한쪽 발은 미래에 디딘 채 서로 다른 두 세계에 걸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순회공연의 청중은 멤버들의 용기를 북돋워줬다. 기타리스트 다니엘 케슬러는 “‘Bright Lights’가 나왔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갓 태어났을 법한 10대 청소년도 있었고 2002년 콘서트에 왔던 팬들도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한 팬은 ‘내 여자친구와 난 인터폴이 데뷔 앨범을 발표했을 무렵 데이트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결혼해 10대 자녀가 있다’고 말했다.”

2015년 5집 앨범 ‘El Pintor’ 홍보를 위한 인터폴의 순회공연 장면 / 사진:WIKIPEDIA.ORG

몇 년 전 인터폴은 눈폭풍 속에 갇혀 오도가도 못한 적이 있다. 2014년 11월 밴드의 투어 버스가 뉴욕 버펄로시 외곽의 I-90번 주간고속도로 어딘가에서 눈 폭풍에 꼼짝없이 갇혔다. 멤버 3명과 순회공연팀 동료들이 50시간 이상 과자 부스러기와 보드카로 연명했다.

“상황이 정말 심각했다”고 케슬러는 말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죽어갔다. 매일 밤 우린 희망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면 더 많은 눈이 내려 차가 더 깊이 파묻혔다.” 인터폴은 그 눈 속에서 빠져 나온 뒤에도 캐나다 공연 2건을 취소하고 나서야 5집 앨범 ‘El Pintor’ 홍보를 위한 투어를 시작했다. 이 일은 멤버들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안겨줬다. 그래서 이들이 새 음반 ‘Marauder’를 녹음하기 위해 한겨울에 뉴욕주 북부로 돌아가는 건 좀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뉴욕주 카사다가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이 앨범을 녹음한 프로듀서 데이브 프리드만은 이렇게 말했다. “녹음 당시 거의 매일 눈이 왔다. 멤버들은 ‘이 눈이 과연 그칠까? 우리 괜찮을까?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며 걱정했다.”

‘Marauder’에서 느껴지는 강렬함은 이런 상황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발표된 인터폴의 음악 중 가장 위엄 있고 강렬하다. 아니면 프리드만이 음악을 2인치 테이프에 직접 녹음할 것을 고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프로듀서에게 녹음 후 리터치 작업을 맡길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뮤지션으로서 갖는 마음 자세가 매우 다르다”고 프리드만은 말했다.

‘Marauder’에 실린 몇몇 곡은 아주 훌륭하다. 귀를 때리는 첫 번째 싱글 ‘The Rover’와 사내연애를 다룬 어두운 분위기의 ‘Number 10’, 금지된 연인과의 꿈 같은 만남을 기록한 듯한 ‘Stay in Touch’ 등이다. 뱅크스에 따르면 이번 앨범의 가사는 과거에 비해 더 직접적이다. 또 욕망과 회한, 그리고 개인적 실패와 영적 성장 사이의 ‘긴장감’ 등을 주제로 했다. 한편 인터폴 특유의 추상적이고 어두운 이미지가 여전히 중심을 이룬다.

인터폴은 1997년 뉴욕대에서 결성됐다. 케슬러와 칼로스 D는 이 대학의 제1차 세계대전 역사 강의에서 처음 만났다. 또 케슬러는 파리에서 여름학기 강의를 들을 때 뱅크스를 알게 됐다. 케슬러보다 몇 살 아래인 뱅크스는 영국과 미국, 스페인을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마리화나를 피우는 힙합 팬이었다. “당시 뱅크스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다”고 케슬러는 말했다. “그 나이 때 몇 살 위인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주눅 들기 마련인데 뱅크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좀 특별했다. 자신을 드러내 표현하고 싶은 게 많은 것 같았다.”

다니엘 케슬러는 신들린 듯한 기타 연주로 팬들을 매료시킨다. 사진은 2015년 공연 모습. / 사진:WIKIPEDIA.ORG

세 사람은 그레그 드러디라는 드러머와 함께 밴드를 시작했다. 드러디는 2000년 밴드를 떠났고 샘 포가리노가 그 자리에 들어왔다. 케슬러는 술집에서 포가리노를 만났는데 그보다 몇 살 위였고 펑크 밴드에서 10년 연주한 경력이 있었다. “케슬러가 인터폴의 EP 음반을 줬는데 그 음악을 듣고 이 밴드에 합류하고 싶었다”고 포가리노는 말했다. “오랫동안 내가 연주하고 싶던 음악이었다.” 포가리노는 인터폴의 음악에 매료됐다. “뱅크스는 21세에 예술학사 학위를 2개나 갖고 있었고 꽤 건방졌다”고 포가리노는 말했다. “또 칼로스는 허세가 심했으며 케슬러는 가장 성실하고 진지한 성격으로 팀의 중재자 역할을 했다.”

저널리스트 리지 굿먼은 저서 ‘미트 미 인 더 배스룸(Meet Me in the Bathroom: Rebirth and Rock and Roll in New York City 2001-2011)’에서 ‘그 시절 뉴욕 대중음악계는 매우 복잡하고 어지러웠다’고 썼다. ‘광범위하면서도 깊이가 있었다.’

인터폴은 그 새로운 물결에 합류해 9·11 이후 뉴욕의 활기를 되찾는 일에 앞장섰다. 스트로크스보다는 거라지 록의 경향이 덜하고 예예예스보다는 약간 더 어두운 분위기인 이 밴드의 멤버들은 돌체 & 가바나의 정장을 즐겨 입었다(그런지 록에 대한 패션의 반란이었다). 이들은 우울한 아트 록을 연주했지만 ‘아트’가 록을 해치는 일은 결코 없었다.

‘Bright Lights’는 2002년 늦여름에 발표됐다. 여기에 수록된 ‘NYC’는 2000년대에 나온 뉴욕시에 바치는 록 음악 가운데 가장 위대한 2곡 중 하나로 꼽힌다(다른 한 곡은 LCD 사운드시스템의 ‘New York, I Love You but You’re Bringing Me Down’이다). 인터폴은 이언 커티스를 연상시키는 뱅크스의 목소리와 케슬러의 신들린 듯한 기타 연주로 1970년대 말 유명했던 영국 포스트 펑크 밴드 조이 디비전에 자주 비견됐다.

이런 평가는 ‘Bright Lights’ 발표 후 얼마 안 돼 녹음한 멋지고 유혹적인 LP 음반 ‘Antics’(2004)까지 이어졌다. 이 앨범 수록곡 중 3곡(살인에 관한 노래 ‘Evil’ 등)이 차트에 올랐다. 또 이 음반 덕분에 인터폴은 영국의 유명 록 밴드 큐어의 콘서트 오프닝 무대에 서게 됐다. ‘Antics’ 이후에는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기까지의 기간이 길어졌고 인터폴과 동시대에 시작한 밴드 대다수가 해체됐다.

뉴욕시의 록 부활을 기리는 굿먼의 저서가 지난해 인터폴의 데뷔 앨범 ‘Bright Nights’ 15주년 기념 순회공연에 때맞춰 나온 건 재미있는 우연이다. 포가리노는 그 책 덕분에 2000년대 초 밴드의 순회공연이 잦았던 시절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 도시 저 도시를 돌아다니느라 공항에서 살다시피 했다. 모든 일이 지나고 나면 더 부풀려지기 마련이지만 내가 그 시대의 일부였다는 게 자랑스럽다. 비록 마약에 취해 살긴 했지만 말이다.”

포가리노는 “사람들이 그 시절에 너무 집착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1970년대 중반 뉴욕 대중음악계에 대한 집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1970년대에 음악을 좋아하는 어린 소년이었던 그는 지금도 자신이 뮤지션이 됐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 “음악을 무척 좋아하긴 했지만 내가 이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포가리노는 말했다. “난 뮤지션이 된 뒤 어머니에게 전화해 이렇게 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세요? 나 밴드에 들어갔어요. 우린 돈도 벌어요.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좋아해요.’”

– 잭 숀펠드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