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된 나무 아래서 먹는 케밥

켈레부터 터키시 딜라이트까지, 다양한 문화가 교차했던 터키 이스탄불로 떠나는 미식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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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서는 양 머리 구이(왼쪽)와 차갑게 식혀 먹는 수육을 모두 맛볼 수 있다.

양 머리를 구워서 따뜻하게 먹는 것과 삶아서 차갑게 먹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더 좋을까? 터키 이스탄불 베욜루에 가면 이 두 가지 양 머리(켈레) 요리를 맛 볼 수 있다. 중동에서 예로부터 진미로 여겨지던 요리다. 노점상 무아메르 외즈카이마크는 손수레에서 차가운 양 머리 수육 조각을 잘라 그 위에 타임과 붉은 고추를 뿌리고 다진 양파를 곁들여 흰 빵 위에 얹어 낸다. 외즈카이마크는 1976년 가업을 이어받아 이 노점상을 운영하기 시작했다(손수레에는 나팔바지를 입고 즐겁게 웃는 10대 시절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붙어 있다).

이 가업의 전통은 189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증조부는 고향인 카파도키아에서 이웃에 사는 그리스인들로부터 양 머리 수육 요리법을 사들여 이 사업을 시작했다. 외즈카이마크의 부인은 주방에서 매일 60개의 양 머리를 후추와 월계수잎을 넣은 물에 넣고 삶는다.

길 건너편엔 오르한 세닌의 가게가 있다. 세닌은 그의 할아버지가 1957년 개업한 정육점과 양머리 구이 상점을 3대째 이어받아 운영한다. 세닌의 뜨겁게 먹는 양 머리 구이는 기름져서 외즈카이마크의 담백한 수육보다는 덜 팔린다.

지난 2000년 동안 이스탄불은 문화의 교차로라기보다 교통체증의 중심이었다. 중동과 발칸반도가 이곳에서 만나고, 코카서스 산맥과 중앙아시아도 여기서 교차한다. 이스탄불을 지배했거나 통과했던 모든 문화가 이 도시의 음식 문화에 흔적을 남겼다.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 개척자부터 중세 투르크인과 스페인계 유대인, 현대 소련과 시리아 난민까지.

이스탄불은 최근 극단주의자들의 공격 목표로 떠올랐고 난민 유입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하지만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이 도시의 전통을 경험하려면 지금이 적기다. 고급주택화가 더 진행되고 출세지향적인 젊은이들이 가업 물려받기를 거부해 사라져버리기 전에 말이다.

이스탄불 도심에서는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제국을 주제로 한 미식관광을 즐길 수 있다. 몇 세기에 걸친 음식 역사를 단 하루에 경험할 수 있다. 옛 이스탄불 상류계층이 즐기던 음식을 맛보려면 최근 다시 문을 연 ‘레잔스 1924’로 가라. 이 러시아식 레스토랑에서는 볼셰비키 혁명(1917년) 이후 이스탄불로 대거 유입된 러시아 백군파 망명자들을 중심으로 했던 보드카와 눈물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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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쿰이라고도 불리는 터키시 딜라이트는 각종 견과류와 대추 등을 넣은 젤리의 일종으로 터키의 특산품으로 자리 잡았다.

미하일 불가코프는 중편소설 ‘비행(Flight)’에서 이 세계를 묘사했다. 콧수염이 인상적인 코사크 기병대 장교들이 이스탄불의 초라한 다락방에서 제복을 말끔히 손질하고, 오데사(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의 젊은 기회주의자들은 바퀴벌레 경주에 관한 책을 만들고, 러시아 난민은 고국의 내전 소식과 일자리나 프랑스 마르세이유로 가는 값싼 배편 등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레잔스 레스토랑은 크리미아타타르족(중앙아시아에 사는 투르크계의 민족) 망명자들이 1924년 문을 열었다. 그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온 궁핍한 소녀들을 웨이트리스로 고용하고(남자 웨이터만 있었던 이스탄불에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페트로그라드대학 수학 교수를 지낸 망명자에게 장부 기장을 맡겼다. 이 레스토랑은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가 이스탄불에 머물던 시절 단골집이었으며 터키 지식인들이 보드카를 마시며 토론하는 회합 장소가 됐다.

1960년대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이 레스토랑을 경영한 진누르 타이간은 혁명 이전 억양의 러시아어에 아름다운 지중해식 프랑스어를 섞어 썼다. 초기 러시아 망명자 출신 웨이트리스 중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마담 소냐도 이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레잔스는 최근 새로운 경영진을 맞아 다시 문을 열었다. 중요한 건 이 레스토랑의 정신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점이다. 목재 패널을 이용한 실내장식과 주말마다 곧 눈물을 흘릴 듯 촉촉한 눈망울로 연주하는 러시아인 하피스트, 러시아식 레몬 보드카 등이 그렇다.

한 가지 반가운 변화는 한때 형편없었던 메뉴가 진짜 시베리아식 만두와 맛있는 훈제 생선 요리, 기막힌 오리고기 샐러드 등으로 몰라보게 개선됐다는 점이다. 레잔스의 전통에 따라 테이블에 병째로 올려진 레몬 보드카(술 값은 마신 만큼만 받는다)를 마시며 아코디언 연주에 취해 이야기를 나누던 손님들은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레스토랑에서 나올 때는 계단이 가파르니 조심해야 한다. 술에 취해 계단에서 넘어지는 것은 피하고 싶은 레잔스의 전통 중 하나다.

과거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이스탄불의 또 다른 식당 중 하나가 ‘아야즈파사 러시안 레스토랑’이다. 1943년 러시아 망명자 보리스 이바노비치 크리샤노프스키가 문을 열었다. 독일 영사관과 일본 영사관 사이에 자리 잡은 이 레스토랑은 소련 정보 당국이 도청을 일삼던 곳이었다. 레스토랑 주인은 외교관 손님들에게 자신이 철저한 반소련주의자라는 확신을 심어줬다.

하지만 그의 직원들은 손님들의 대화를 엿듣고 그 내용을 스탈린의 스파이들에게 넘겼다. 지금의 터키인 소유주는 1950년대 이곳의 웨이터로 시작했다. 모스크바에서 영화학을 공부한 그의 아들은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보르시치(러시아 사람들이 먹는 비트로 만든 수프)가 아주 맛있고 흑빵은 주인의 지인들이 매주 러시아로부터 들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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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너 케밥은 양 다리와 어깨 살을 쇠꼬챙이에 꽂아 숯불 앞에서 빙빙 돌려가며 구운 다음 얇게 저며서 먹는다.

진짜 오스만 제국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이스탄불의 옛 유럽 구역에 있는 보행자 전용 거리 이스티클랄 대로 근처의 ‘하치 압둘라 로칸타시’로 가라. 하치 압둘라 로칸타시는 1888년 처음 문을 연 뒤 몇 번 이사한 끝에 1958년 이곳에 정착했다. 현대식 리노베이션으로 예스러운 분위기를 털어냈지만 음식은 진짜 오스만식을 고수한다. 주방장과 보조 요리사들이 대대로 초창기의 기술과 요리법을 전수받은 덕분이다. 온갖 종류의 메제(터키식 전채요리)와 전통 피클이 있으며 다양한 스튜도 유명하다.

1911년 문을 연 ‘판델리’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부터 오드리 헵번까지 유명 인사들의 단골집이다. 17세기에 건설된 향신료 시장 입구 근처의 가파른 돌계단 위에 있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다. 400년 된 청록색 타일로 벽을 장식한 판델리는 1955년 이곳에 자리 잡았다. 창업자 판델리 코바노글루가 근처에 세웠던 원래 레스토랑은 반(反)그리스 집단학살 당시 파괴됐다. 판델리는 당시 이스탄불의 그리스인 수천 명이 그랬듯이 사업을 접고 그리스로 갈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손녀딸에 따르면 이스탄불 주지사가 판델리의 음식을 너무도 좋아해서 레스토랑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열도록 제안했다.

하지만 판델리의 명성만 듣고 찾아갔다가 바가지를 썼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이 레스토랑의 한쪽 벽은 이곳을 찾았던 유명인사 손님들의 사진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크림 소스를 얹은 가지 샐러드와 가지 보렉(고기·야채·치즈 등으로 속을 채운 파이)은 기막히게 맛있다. 판델리의 대표 요리로 꼽히는 농어 구이도 그렇다. 본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오스만 전통 디저트를 먹을 배는 남겨둬야 한다. 특히 카잔디비(쫀득쫀득하면서도 부드러운 푸딩)는 놓쳐선 안 된다. 닭 가슴살로 만든 후식이라고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터키 사람들은 단맛을 좋아해 이스탄불 곳곳에 제과점이 많다. 그중 일부는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한다. 가장 긴 역사를 가진 곳은 ‘하치 베키르’로 창업자 하치 베키르가 1777년 이스탄불 바체카피 구역에 1호점을 열었다. 지금은 매장이 여러 곳인데 시르케치의 향신료 시장 근처에 있는 것이 가장 오래됐으며 20세기 중반에 문을 열었다. 알록달록한 사탕과 과자 상자가 빽빽하게 늘어선 나무 선반들과 다양한 맛의 ‘터키시 딜라이트(Turkish delight, 견과류와 대추 등을 넣은 터키식 젤리)’가 가득 찬 유리 카운터가 인상적이다. 마치 ‘해리 포터’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 흥미진진하다.

이스탄불의 또 다른 인기 제과점은 1964년 바체카피 구역에 문을 연 하피즈 무스타파로 수십 종류의 바클라바(으깬 피스타치오와 꿀을 넣은 페이스트리)가 유명하다. 그보단 덜 유명하지만 더 전통적인 방식의 ‘우치 일디즈’는 어시장 안에 있으며 양 머리 수육을 파는 가게들과 아주 가깝다. 모든 상품을 상점 위의 작은 공방에서 만드는 전통 제과점이다(어떤 요일에는 끓인 사탕 원액을 위층 바닥에 놓인 커다란 스테인레스 통에서 식힌다).

되르틀러 가문이 1928년부터 운영해온 이 상점에서는 터키시 딜라이트와 오렌지, 딸기, 체리 등 각종 과일 잼도 자체 브랜드로 생산한다. 180년 된 구리통에 재료를 넣고 끓이며 오래된 손저울로 무게를 달아 판다(1㎏에 6유로로 값이 저렴하다). 상점 내부는 벽마다 사탕과 초콜릿이 가득 찬 커다란 유리병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쌓여 있다.

터키 음식으로 가장 잘 알려진 되너 케밥의 역사는 어떨까? 그 역사를 정확히 알려면 독일 베를린으로 가야 한다. 1972년 그곳에서 터키 이민자 카디르 누르만이 전통 터키식 자으 케밥을 응용해 현대판 되너를 만들었다. 양다리와 어깨 살을 쇠꼬챙이에 꽂아 숯불 앞에서 옆으로 빙빙 돌려가며 구운 다음 얇게 저며서 먹는다.
노동력이 많이 드는 음식이라 쉽게 찾아볼 순 없지만 대량생산된 제품보다 더 맛있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아름다운 회교사원 뤼스템 파샤 모스크 근처의 우준카르시 거리에 있는 ‘오스만리 케밥치시’에 가면 맛 좋은 되너 케밥을 먹을 수 있다. 400년 된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놓인 의자에 앉아서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숯불에 익어가는 고기 향을 맡아보라. 이 도시만큼이나 오래된 냄새다.

– 오웬 매튜스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