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스포츠엔 여자 감독이 없다?

미국 대학 여자농구가 수익성 있는 스포츠로 인식돼 감독 몸값 치솟자 경쟁 치열한 남자농구계에서 눈 돌리는 남자 감독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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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노 어리마 감독(오른쪽)은 코네티컷대학 여자농구팀을 30년 간 이끌어 오면서 승률 0.877이라는 놀라운 전적을 쌓았다.

지난 4월 초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여자농구 4강전에서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려가며 작전을 지시하던 감독들은 모두 남자였다. 44년 전 여자농구 전미 선수권대회가 시작된 이후 4강전에 진출한 팀의 감독 4명이 모두 남자였던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1995년 4강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였으며 지금은 ESPN의 분석가인 레베카 로보는 이번 4강전이 시작되기 전 올린 트윗에 #YouveGotMale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여자농구 4강전 진출 팀의 감독의 모두 남자라는 사실을 꼬집었다).

4강전 진출 팀은 전미 선수권대회 11번째 우승을 노리는 지노 어리마 감독의 코네티컷대학과 스콧 루엑 감독의 오리건주립대학, 마이크 네이버스 감독의 워싱턴대학, 쿠엔틴 힐스먼 감독의 시러큐스대학이다. 테네시대학 농구팀 가드 출신의 ESPN 분석가 카라 로슨은 이렇게 말했다. “4강전에 오른 팀의 감독 4명이 모두 남자라는 사실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대학 남자농구팀에 여자 감독이 한 명도 없는 현실을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NCAA 디비전 1(각 대학을 스포츠 예산과 시설, 장학금 규모로 분류할 때 1순위 그룹)의 인기 스포츠 중에 감독 과반수가 여성인 종목이 왜 여자농구뿐인지 이해가 안 간다. 여론조사 분석 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에 따르면 지난해 디비전 1 여자농구팀의 감독 중 58.6%(5년 전엔 66%)가 여성이었다. 여자축구의 경우엔 여성 감독 비율이 26.5%, 남자농구는 0.0%였다. “농구뿐 아니라 모든 종목에서 여성 감독의 수가 꾸준히 줄고 있다”고 미국 여자농구 감독협회(WBCA)의 대니엘 던휴 이사가 말했다. “우리는 그런 경향을 뒤집으려고 노력 중이다.”

1972년 대학 스포츠에서 여학생에게 더 많은 참여 기회를 보장하는 연방법 ‘타이틀 나인’이 제정된 이후 지난 44년 동안 여성의 스포츠 참여가 꾸준히 증가했다. 따라서 자격 있는 여성 감독 후보도 그만큼 늘어났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최근 디비전 1에서 여성 감독의 일자리를 남성이 차지하는 경우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이유가 뭘까? 선수 시절 13년 동안 남녀 감독 모두를 맞아 봤던 로슨은 이렇게 말했다. “난 일반화보다는 정확한 사실을 좋아하는데 디비전 1의 스포츠 감독 대다수가 남성인 게 사실이다.”

몇 주 전 오리건주립대학이 지역 결승에서 베일러대학을 물리치면서 루엑 감독과 선수들은 처음으로 여자 4강전에 진출할 기회를 잡았다. 오리건주립대학 출신인 루엑은 학생 시절 모교 농구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진 않았다. 지역 결승전에서 루엑과 겨뤘던 베일러대학의 킴 멀키 감독은 루이지애나공대 재학 시절 선수로 뛰면서 전미 선수권대회에서 두 번 우승했다. 졸업 후엔 15년 동안 리언 바모어 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다. 2000년 시즌이 끝나고 바모어가 은퇴했을 때 루이지애나공대 측이 멀키에게 모욕적인 제안을 해 그녀는 베일러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멀키는 별 볼 일 없던 이 대학의 여자농구팀을 전미 선수권대회에서 두 번이나 우승하도록 만들었다. 2012년엔 시즌 성적 40승 무패의 기록도 세웠다.

“난 우리 팀을 맡았던 감독의 성별이나 선수 시절 실적에 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고 로슨은 말했다. “그들이 감독으로서 할 일을 잘 하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남자농구 코칭 스태프엔 왜 여성이 없는지 이해가 안 간다. 어떤 직장에서든 50%의 잠재적 노동력(여성을 뜻한다)을 배제하고 성공적인 팀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 분야에선 여성이 채용 고려의 대상이 되려면 자격이 넘쳐야 한다.”

지난 25년 동안 대학 여자농구에서 나타난 모든 경향은 어리마 감독과 서밋(미국 여자농구 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감독으로 꼽히는 팻 서밋)의 대결 구도에 뿌리를 둔다. 1995년 1월 16일 어리마 감독이 이끄는 코네티컷대학의 허스키스와 서밋 감독이 이끄는 테네시대학의 레이디 볼스가 처음 맞붙었다. 이전 여덟 번의 전미 선수권대회에서 3번 우승한 레이디 볼스가 선두였고 허스키스는 2위였다. 당시 꽃미남 배우처럼 생겼던 젊은 남자 감독 어리마가 이끄는 허스키스는 신예 팀이었다.

그 경기는 미국 스포츠계가 매우 황폐했던 시기에 열렸다. 마이클 조던이 은퇴를 선언하고 NBA(미국 프로 농구) 활동을 중단한 지 2년째 되던 해였고, 메이저 리그 야구는 장기 스트라이크에 들어갔으며, 북미하키리그(NHL)가 3개월 간의 직장폐쇄를 막 끝냈을 때였다. 어리마 감독과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팀은 스포츠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코네티컷대학이 테네시대학을 77대 66으로 물리친 이 경기가 대학 여자농구 사상 TV로 중계된 최초의 경기는 아니었지만 많은 팬들의 기억 속엔 그렇게 남아 있다.

코네티컷대학과 테네시대학 사이엔 곧바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두 팀은 1995년 첫 대결 이후 21번의 전미 선수권대회에서 15번 우승을 차지했다. 어리마 감독과 서밋 감독의 껄끄러운 관계가 경쟁을 한층 더 뜨겁게 달궜다. 그 두 사람은 믿어지지 않는 실적(어리마 감독은 승률 0.877에 전미 선수권대회 우승 10번, 서밋은 승률 0.841에 전미 선수권대회 우승 8번)을 빼곤 공통점이 거의 없다. 어리마 감독은 언젠가 숙적인 테네시대학의 레이디 볼스를 ‘악의 제국’으로 묘사했다.

이들의 적대감은 ESPN의 TV 시청률을 높였고 코네디컷대학에 뜻밖의 소득을 안겼다. 이 대학의 여자농구팀 경기가 있을 때마다 관람권이 매진됐다. TV로 코네티컷대학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허스키스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과 팀의 기막힌 플레이를 보고 ‘지노 어리마 같은 감독이 또 어디 없을까?’라고 생각하는 대학 스포츠 책임자들이 얼마나 많을까?

코네티컷대학과 테네시대학의 여자농구팀이 승승장구하면서 감독들의 연봉이 인상되자 여자팀에 이력서를 제출하는 남자 감독이 늘어났다. “연봉이 높아질수록 감독 직의 가치도 올라갔다”고 로슨이 말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유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여자농구가 수익성 있는 스포츠로 인식되면서 이 부문의 감독 이직률이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

사실 그동안 감독의 길을 걸으려는 사람 중엔 여자보다 남자가 많았다. 남자농구 감독 직은 경쟁이 치열하다. 대학 선수 경력이 없거나 제한적인 경우엔 특히 그렇다. 올해 4강전에 진출하기까지 73연승을 기록한 어리마 감독은 남자농구팀에서 감독 자리를 얻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여자농구팀으로 눈을 돌렸다. 키 185㎝에 이탈리아계 이민자인 그는 대학 선수 시절 경기에 투입되지 못하고 벤치만 지키는 신세였다.

WBCA는 몇 년 전 여자농구 감독과 조감독들을 위한 연례 세미나를 시작했다. “경기 운영보다는 농구 코칭의 사업적인 측면에 대한 정보와 거기서 성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고 던휴 이사는 말했다. 이 세미나는 여자농구계에 몸담고 있는 감독이라면 성별에 상관없이 참석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디비전 1 진출을 원하는 여자 조감독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듯하다. “이 세미나는 우리 프로그램 중에 인기가 가장 높다”고 던휴 이사가 말했다. “재미있는 건 이 세미나를 위한 초기 자금이 NCAA 지원금과 어리마 감독의 기부로 마련됐다는 점이다.”

– 존 월터스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