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시안적 이기심에서 벗어나라”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신저에서 EU의 개혁 필요성 강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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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는 그리스(사진) 사태 같은 국가 부채의 상호부담을 제안했지만 프랑스와 독일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교수 토마 피케티는 요즘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다. 그는 첫 번째 책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해졌다. 3세기에 걸친 방대한 역사적 자료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한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선진국 경제에서는 자본 수익이 경제 자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피케티는 그 결과 자본가와 노동인구 사이의 소득 불균형이 갈수록 커져 사회 불안정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이 분석에는 문제점이 있다. ‘21세기 자본’에서 피케티는 소득 불균형의 심화가 모든 부유한 경제에서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미국의 경우 불평등을 키우는 요인이 자본 수익의 증가보다는 고임금 근로자들의 부풀려진 연봉이었다는 점을 수긍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점은 자본과 노동을 명확하게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국의 대다수 성인이 노동인구에 포함되지만 그들 중 대다수는 주택을 소유하고 연금기금에 가입돼 있다. 자본가에게 좋은 것이 노동인구에도 좋다는 뜻이다. 더구나 피케티의 분석이 타당하다고 해도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경제와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정치인들은 때때로 부정적인 경제 동향을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케티의 신저 ‘고난의 시대에 관하여(가제, Chronicles: On Our Troubled Times)’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세계 금융위기 때부터 2015년 말까지 좌파 성향의 프랑스 신문 리베라시옹에 실린 그의 칼럼을 모은 책이다. 핵심 주제는 유럽연합(EU)의 미래다. 피케티는 EU가 존속해야 한다고 굳게 믿지만 유로존 위기에 대한 그의 분석은 우려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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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일부 회원국(특히 독일)이 막대한 무역흑자를 올리는 반면 나머지(주로 유럽 남부 국가)는 적자가 심하다는 사실이다. 유럽 남부의 대다수 국가는 독일과의 무역에서 큰 적자를 본다. 역사적으로 그런 불균형은 통화 환율 조정으로 해소됐지만 유로화의 등장이 이 탈출구를 막았다. 그리스를 포함한 몇몇 국가에서는 지금도 계속 무역 적자가 축적되고 있다.

국가 부채를 늘리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무역격차는 사태를 한층 더 악화시킨다. 유로존 국가 간에 긴밀한 재정적·정치적 통합이 이뤄지지 않는 한 치료가 불가능하다. 피케티는 이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공공(국가) 부채가 17건에 이르는 단일 통화는 제기능을 할 수 없다.”

그리스의 지난번 부채조정 당시 상환조건은 그리스 국민에게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했다. 피케티는 그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피케티가 제안하는 해결책은 국가 부채의 상호부담(mutualisation)이다. 부유한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의 부채 중 일부를 떠안아 주기적으로 부채조정을 해야 할 필요성을 차단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부국에서 빈국으로 이동하는 자금의 액수가 상당할 것이다. 부채조정 협상으로 오가는 액수보다 훨씬 더 클 수도 있기 때문에 부국의 경제에까지 손상을 입힐 위험이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국제통화기금(IMF)이 이 제안을 거절한 이유다.

피케티는 프랑스와 독일 정부의 냉소적인 태도를 비난한다. 지금까지 유로존 국가의 구제금융에 두 나라가 부담한 비용은 지속적인 무역흑자를 바탕으로 한 경제적 이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독일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피케티는 이것을 ‘근시안적인 이기심(short-sighted selfishness)’으로 묘사했다. 그는 EU 기관들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각국 정상들의 모임인 유럽이사회가 중요한 경제적 결정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비난한다. 하지만 각국 의회의 재정위원회 위원들로 구성된 기구에 통제권을 주는 그의 해결책이 공동의 선을 위해 제기능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그런 개혁이 일어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편 피케티는 유럽이 아무런 효과도 없는 언쟁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다고 한탄한다. “유럽은 미래에 대한 투자는 뒷전이고 서로 싸우며 10년을 허송세월했다”고 그는 말했다.

피케티는 EU의 존속을 지지하고 그 미래를 낙관적으로 생각하지만 유로존 위기를 EU의 효능에 관한 사례연구로 본다면 결론은 부정적이다. “유럽의 사회 모델은 세계 최고”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유럽의 정치적 통합과 ‘유럽 합중국’을 향해 거보를 내디뎌야 한다.”

EU 문제는 그렇다 치고 경제적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하며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피케티의 신조는 어떻게 됐을까? 그의 주장에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일부 부자들의 엄청난 부 축적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는 건 분명하다.

피케티는 부유세(wealth taxes)를 지지한다. 프랑스아 이탈리아, 스페인이 이 세금을 제한적으로 도입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부유세는 부동산을 위주로 한다. 동산은 소재를 파악하고 세금을 매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저에서 피케티는 “부유세는 주요 국가 간의 협조가 있을 때만 제대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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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불평등의 해소를 역설한 저서 ‘21세기 자본’으로 잘 알려진 토마 피케티는 신저에서 EU의 미래에 초점을 맞췄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세계적 통합에는 유로화 정착에 따르는 문제만큼이나 큰 어려움이 도사린다. 하지만 피케티의 확신에 찬 이상주의는 갈채를 받을 만하다.

– 피터 카티 아이비타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