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의 황무지를 걷다

제2의 ‘왕좌의 게임’으로 불리는 드라마 ‘아웃랜더’, 스코틀랜드 곳곳의 촬영지가 인기 관광지로 떠올라

‘아웃랜더’ 시즌 4에서 제이미와 클레어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 사진:KEY ART-HORIZONTAL(STARZ)

미국인 앤 엡스타인(75)과 그녀의 남편은 스코틀랜드인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2015년 이후 스코틀랜드를 세 번이나 방문했다. 수 네스타시아(58)는 두 번, 알린 보리(67)는 네 번 다녀왔다. 이들이 스코틀랜드를 찾은 이유는 드라마 ‘아웃랜더’ 때문이다.

‘아웃랜더’는 미국 케이블 방송 스타즈의 역사 판타지 드라마로 다이애나 개벌든의 베스트셀러 소설 시리즈를 바탕으로 했다. 지난 11월 4일 시즌 4가 시작돼 이른바 ‘드라우틀랜더(Droughtlander, 팬들이 시즌과 시즌 사이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일컫는 용어)’가 마침내 끝났다.

지난 10월 초 뉴욕 코믹콘(북미 최대의 만화 축제)에서 열린 시즌 4 시사회에 수천 명이 참석했다. 이 시사회를 보려고 남캘리포니아에서 뉴욕까지 날아간 엡스타인은 “난 1992년 ‘아웃랜더’ 여행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 친구가 내게 그 책을 빌려줬는데 난 책을 다 읽고 나서 친구에게 ‘다시 읽어야 하니 바로 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책은 1940년대 런던의 결혼한 영국인 간호사 클레어 랜들(케이트리오나 밸프)이 18세기 스코틀랜드로 가는 통로를 발견하는 데서 시작한다. 거기서 그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싸우는 하일랜드(스코틀랜드 산악지대) 전사 제이미 프레이저(샘 휴건)와 사랑에 빠진다.

지난 3시즌 동안 클레어는 자신이 현대에 살면서 얻은 지식을 이용해 제이미와 그의 동료들을 돕는다. 기름진 머리에 킬트(전통적으로 스코틀랜드 남자들이 입던 격자무늬 모직 치마)를 입은 이들이 맞서 싸우는 악랄한 영국 장교는 공교롭게도 클레어의 20세기 남편과 생김새가 닮은 조상이다. 클레어는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애타는 그리움과 에로틱한 재회를 선보인다. 각 시즌을 몇 번씩이나 시청한 메리(85)는 이 드라마의 사랑 장면이 “TV에서 가장 화끈한 섹스”라면서 “내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휴건이 연기하는 제이미는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로맨틱하고 정중하며 솔직한 데다 독립심이 강한 클레어를 대할 땐 놀랍도록 진보적이다. 개벌든은 또 그가 “침대에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제이미는 우리가 꿈꾸던 남자”라고 네스타시아는 말했다. 또 자신이 ‘휼리건’(휴건의 팬들이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이다)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는 앤 골(52)은 “제이미는 남자 중의 왕”이라고 말했다.

이 드라마는 탄탄한 팬층을 확보한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인기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즌 1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에 책임 프로듀서 매튜 로버츠도 몹시 놀랐다. 드라마 방영을 앞두고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첫 행사는 2500석 극장을 꽉 메운 팬들로 북적였다. “드라마는 한 회도 나가지 않았는데 행사의 열기는 록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고 로버츠는 돌이켰다.

‘아웃랜더’는 스타즈의 최대 히트작 중 하나이며 시즌 5와 6의 제작을 위한 재계약도 끝났다. 여기에 장대한 전쟁 신과 앞서 말한 화끈한 섹스, 그리고 역사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 등을 들어 이 드라마를 HBO의 ‘왕좌의 게임’에 견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질질 끌기로 악명 높은 ‘왕좌의 게임’의 작가 조지 R.R. 마틴과 달리 개벌든은 이 드라마가 원작 소설을 앞지르는 일은 없을 거라고 팬들을 안심시켰다. 개벌든은 “현재 책이 4편 앞섰다”면서 “드라마가 책을 따라잡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현재 소설을 8편까지 썼으며 10편도 곧 완성할 계획이다.

‘아웃랜더’의 촬영지인 스코틀랜드의 둔 캐슬(왼쪽)은 관광 규모가 60%, 블랙니스 캐슬(오른쪽)은 45% 증가했다. / 사진:YOUTUBE.COM

1991년 ‘아웃랜더’가 출판됐을 때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환경학 조교수였던 개벌든은 “1편은 연습 삼아 쓴 소설”이라고 말했다[드라마의 배경과 남자 주인공은 영국 SF 드라마 ‘닥터 후’에 나오는 18세기 스코틀랜드와 주인공 캐릭터(그의 이름 역시 제이미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소설 ‘아웃랜더’는 지금까지 약 2500만 부가 출판됐다.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책이 다시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내년에 나올 소설 제9편 ‘가서 꿀벌들에게 내가 갔다고 전해라(가제·Go Tell the Bees That I Am Gone)’는 약 600만 달러에 출판 계약을 맺었다.

개벌든은 자신의 팬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 팬 중엔 86세 할머니도 있고 10세 소년에게서도 팬 레터가 온다. 하지만 대다수는 30세가 넘은 교양 있고 친절하며 동정심 많고 예의 바른 사람들이다.” 글쎄, 휴건이 코믹콘의 무대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을지 모른다. 그가 등장하자 객석에서 귀청이 떨어져나갈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개벌든은 “드라마 팬들은 소설 팬들에 비해 배우들에게 조금 더 열광한다”고 말했다).

휴건의 떡 벌어진 어깨와 190㎝의 훤칠한 키, 깎아놓은 듯한 턱을 보면 그가 왜 차기 007로 거론되는지 알 수 있다. 그가 정말 007 역할을 따낸다면 숀 코너리 이후 첫 번째 스코틀랜드인 제임스 본드가 탄생하는 것이다. 겸손한 태도와 자선활동으로 사랑받는 휴건은 이 드라마가 이토록 엄청난 인기를 끌 줄은 상상도 못했다 “원작 소설의 인기가 그렇게 높은지 몰랐다”고 그는 말했다. “이 드라마에 합류한 것은 내겐 놀라운 여행이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된 스코틀랜드도 큰 역할을 했다. 거칠면서도 아름다운 하일랜드의 풍경을 와이드 스크린으로 촬영한 장면들이 압도적이다. 드라마 주요 장면이 촬영된 곳들을 방문하는 것은 팬들의 통과의례가 됐다. 비지트스코틀랜드(스코틀랜드 관광청)의 맬컴 러프헤드 청장에 따르면 지난해 스코틀랜드를 찾은 외국인 방문객 수가 320만 명이라는 기록적인 수치에 달한 데는 ‘아웃랜더 효과’가 큰 몫을 했다. 관광 붐 덕에 책임 프로듀서 로버츠의 일도 쉬워졌다. “시즌 1의 촬영 장소 물색에 나섰을 때 적당한 장소를 찾기가 어려웠다”고 로버츠는 말했다. “현지에서 그리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시즌 2와 3의 장소를 물색할 때는 근처에 사는 한 여성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우리집을 촬영 장소로 써도 좋다’고 말할 정도였다.”

로버츠에 따르면 스코틀랜드 중심부에 있는 둔 캐슬(‘아웃랜더’에서는 캐슬 레오크)은 관광 규모가 60%, 포스 만의 남쪽 기슭에 있는 블랙니스 캐슬(포트 윌리엄스)은 45% 증가했다. 팬들이 스코틀랜드의 황무지를 걸을 때 그들은 ‘아웃랜더’ 티셔츠를 입거나 ‘아웃랜더’ 토트백에 넣어 간 ‘아웃랜더’ 담요를 깔고 피크닉을 즐길지도 모른다. 아직 스코틀랜드에 가보진 않았지만 피츠버그에서 지역 행사를 주관하는 골은 시즌 1에서 제이미가 클레어에게 준 결혼반지의 복제품을 갖고 있다. “‘아웃랜더’를 사랑하는 마음은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멋진 우정을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고 골은 말했다.

– 애나 멘타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