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래퍼는?

최근 러시아에서 20세기 초반 소련 풍자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의 작품이 랩의 효시라는 주장 나와

소련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왼쪽에서 두 번째)의 1930년 모습. 그는 36세의 나이에 자살했다. / 사진:WIKIMEDIA COMMONS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러시아 문화장관은 소련의 유명 시인 중 한 명이 랩 음악을 창시했으며 이 장르가 장차 러시아 예술의 한 형식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시인은 20세기 초반 미래주의 양식과 부르주아에 대한 풍자로 유명했던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다. 그는 또 1917년 러시아를 휩쓴 볼셰비키 혁명을 열렬히 지지했다. 그는 요제프 스탈린 치하의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꼈고 1930년 36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오래도록 살아남아 러시아 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메딘스키 장관은 최근 발다이 클럽(러시아의 유명 싱크탱크) 연설에서 자신의 아들이 랩에 빠져 지내는 게 걱정스러워 직접 랩을 공부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결과 ‘마야코프스키가 최초의 래퍼’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메딘스키 장관은 “러시아 문화는 외국 문물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고 수용적이어서 미래 세대가 ‘랩은 러시아 예술의 한 형태’라고 말할 날이 조만간 올 것”이라고 말했다. “설사 랩이 시작된 곳이 미국이라고 해도 그것이 한층 더 발전한 곳은 러시아다.” 메딘스키 장관은 “아들에게 내가 발견한 랩의 기원 이론을 얘기해줬더니 그 애가 학교에 가서 급우들에게 그 이야기를 모두 전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함께 마야코프스키의 시를 읽고 나서 내 이론에 동의했다.”

마야코프스키는 시인·미술가이자 극작가 겸 배우였다. 그는 스탈린 치하의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꼈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소련 당국은 그의 작품을 받아들였다. 1993년 뉴스위크 기사에서는 마야코프스키의 작품을 ‘행위예술과 펑크, 랩의 효시’로 묘사했다.

랩과 힙합은 1970년대 초 뉴욕 브롱크스에서 시작됐으며 1979년 슈가힐 갱의 ‘Rapper’s Delight’가 그 상업적 인기의 시발점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또 1999년 힙합 관련 문제를 정리한 책(‘Ego Trip’s Book of Rap Lists’)에서는 DJ 쿨 허크를 최초의 힙합 DJ로 인정했다. DJ 쿨 허크는 1973년 브롱크스 모리스 하이츠 지역의 세지위크 애버뉴 1520번지의 아파트 건물에서 첫 파티를 열었다.

닐슨 뮤직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흑인 사회에서 언더그라운드 음악 운동으로 시작된 랩과 그 자매 장르인 힙합과 R&B는 공식적으로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악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랩이 뉴욕이 아닌 다른 곳에서 탄생했다는 주장을 한 건 메딘스키 장관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 뉴멕시코대학의 페렝크 사스 교수는 “랩의 진정한 효시는 중세 스코틀랜드의 ‘플라이팅’(시로 모욕적인 말을 주고받는 의식)”이라고 주장했다. 사스 교수는 2008년 텔리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흑인 사회에 이 의식을 처음 소개한 건 스코틀랜드 출신의 미국인 노예 주인들”이라고 말했다.

– 톰 오코너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