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사용 더 쉽도록 규정 고쳐라”

러시아 상원, 지역 분쟁이 대규모 전쟁으로 비화할 우려 커졌다며 정부에 핵독트린 확대 촉구
러시아가 올해 초 선보인 ‘사르마트’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장착 핵탄두 수와 사정거리에서 기존 ICBM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알려졌다. / 사진:AP-NEWSIS

러시아 상원의원들이 핵무기 사용 규정의 수정을 촉구했다. 그에 따라 러시아는 재래식 무기 공격에도 대량살상무기(WMD)로 대응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러시아 상원의원들은 지난 11월 21일 “적이 극초음속기를 비롯한 전략 비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핵무기로 반격할 수 있는 결정”을 포함하도록 핵독트린을 확대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고 국영 RIA 노보스티 통신이 전했다. 이 권고안은 러시아 국방부 관리들과 상의한 뒤에 상원에서 통과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탈퇴를 검토한다고 공식 발표한 상황에서 전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이 INF를 파기할 경우 독자적인 군사 조치로 대응하겠다고 위협했다.

2014년 1월부터 발효된 러시아의 기존 핵독트린은 ‘러시아나 러시아 동맹국을 상대로 한 핵무기나 대량살상무기 공격이 있을 경우, 또는 러시아 연방을 상대로 한 재래식 무기 공격이라도 국가의 존재 자체가 위협 받을 경우 러시아는 핵무기를 사용할 권리를 보유한다’고 규정한다. 아울러 ‘핵무기는 재래식 무기 사용(대규모 전쟁 또는 지역 전쟁)을 포함한 군사분쟁의 발발을 막는 중요한 요인으로 활용될 것’이라고도 천명한다. 그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정치 불안 와중에 크림반도를 합병하면서 미국 주도의 나토 동맹군이 유럽 동부의 러시아 국경 인근에 대규모로 배치됐다.

양측은 국경 지역을 군사화하고 서로 사상 최대 규모의 훈련을 잇따라 실시했다. 긴장이 높아지면서 미국은 러시아가 INF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INF 조약은 1987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이 서명한 것으로, 러시아의 SS-20 미사일 배치로 촉발된 유럽에서의 핵무기 경쟁을 종식하는 데 기여했다. 미국 정부는 2013년 러시아가 9M729 미사일 체계를 배치하자 사거리 500~5500㎞의 지상 발사 미사일을 금지한 INF 조약을 준수하라고 러시아에 반복 요구했다. 반면 러시아는 미국이 전쟁 발발시 공격에 사용할 수 있다고 알려진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동유럽에 배치함으로써 먼저 조약을 깼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월 INF 탈퇴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관리들이 엄중히 경고하고 나섰다. 급기야 지난 11월 21일 러시아 상원의원들과 국방부 관리들은 지역 분쟁이 재래식 무기나 핵무기 공격을 포함하는 대규모 전쟁으로 비화할 우려가 커져 핵독트린을 현실에 맞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 우려는 미국의 INF 탈퇴 가능성 외에도 트럼프 정부의 또 다른 논란 많은 결정에 의해서도 부분적으로 촉발됐을지 모른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 2월 핵태세 보고서에서 미국의 핵독트린을 수정했다.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에 초점을 맞춘 이 보고서는 새로운 ‘저강도 핵무기’의 개발과 배치를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그럴 경우 그 무기를 사용할 유혹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핵무기 선제 사용 포기’ 정책의 공식 채택을 거부했지만 일반적으로 핵무기를 방어용으로만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트럼프와 푸틴 대통령 모두 2010년 체결한 새 START(전략무기감축협정)에 따라 점진적으로 핵무기를 줄이면서도 독자적인 전략 핵무기의 현대화에 나섰다.

– 톰 오코너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