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이 올 때까지…

6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 죽음의 이야기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 던져

제5화 ‘낭패한 처자’에서 앨리스(조 카잔)는 오빠가 죽은 뒤 빚을 떠안고 홀로 남게 된다. / 사진:NETFLIX

조엘과 이선 코언 감독의 최신작 ‘카우보이의 노래(The Ballad of Buster Scruggs)’는 영화에서 가장 오래되고 미국적인 장르로 꼽히는 서부극의 형식을 띠었다. 6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로 제1화 ‘카우보이의 노래’에서는 팀 블레이크 넬슨이 노래하는 카우보이를 연기한다. 진 오트리(컨트리웨스턴 가수)처럼 노래를 잘하는 그는 총 솜씨 또한 뛰어나며 아주 잔인하다. 제2화에서는 제임스 프랭코가 이상한 상황에 휘말린 은행 강도로 나온다. 톰 웨이츠가 금광을 찾아나서는 노인을 연기하는 에피소드도 있다. 에피소드마다 시대와 스토리가 판이하며 서부극 장르의 변화무쌍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의 핵심은 제5화 ‘낭패한 처자(The Gal Who Got Rattled)’다. 앨리스 롱거바우(조 카잔)와 빌리 냅(빌 헥)의 특이한 사랑이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준다. 이 영화의 에피소드 대다수는 고정적인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한 짤막한 소품이지만 ‘낭패한 처자’는 완벽한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진다.

이 에피소드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하숙집의 비좁은 식당에서 시작한다. 앨리스와 그녀의 오빠 길버트(제퍼슨 메이스)는 오리건주로 이주할 계획을 설명한다. 길버트는 앨리스를 장차 동업자가 될 사람과 결혼시킬 생각이다. 하지만 이들이 서부로 향하는 마차행렬에 합류한 지 얼마 안 돼 길버트가 죽으면서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서부로 향하는 마차행렬을 안내하는 미스터 아서 (그레인저 하인스)는 황야에서 살아남는 법을 체득한 진정한 카우보이다. / 사진:NETFLIX

“앨리스가 처한 상황이 너무도 안타까웠다”고 카잔이 뉴스위크에 말했다. “생사의 기로에 선 그녀에겐 자신 앞에 놓인 문제를 헤쳐나갈 어떤 수단도 없다.” 그녀는 이제 오빠가 자신을 위해 계획했던 삶을 향해 나아갈 수가 없다. 게다가 오리건주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몇 달이나 더 마차행렬을 따라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의 삶을 계획하기도 힘들다. 그녀는 마차 행렬의 길 안내를 맡은 빌리에게 의지한다.

빌리 역시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는 수년 간 미스터 아서(그레인저 하인스)의 지도 아래 마차행렬을 안내해 왔지만 미래가 밝진 않다. 미스터 아서는 황야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노련한 카우보이지만 나이가 들어 체력이 떨어지니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빌리는 마차행렬 가이드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하면서 틈틈이 앨리스를 도와준다. 그러면서 그는 그녀와 결혼하면 오리건주에 정착해 함께 살 수 있으니 서로 좋은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들의 생각은 여러 영화에 나타난 요즘 사람들의 생각과는 사뭇 다르다”고 카잔은 말했다. “‘낭패한 처자’에서는 초반부터 결혼을 매우 실질적인 것으로 묘사한다. 앨리스의 오빠는 사업을 위해 그녀를 정략결혼시키려 한다.”


마차행렬의 또 다른 안내자인 빌리(빌 헥)는 곤경에 처한 앨리스를 돕고 그녀에게 청혼한다. / 사진:NETFLIX

하지만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정말 놀랍다. 2010년 오프 브로드웨이 연극 ‘미국의 천사들(Angels in America)’에서 공연한 헥과 카잔은 빌리와 앨리스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비슷했다. “빌리는 은근히 로맨틱한 구석이 있지만 격정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고 헥은 말했다. “빌리와 앨리스를 연결해주는 고리는 생존을 위한 필요성이다. 거기서 약간의 아름다움을 찾자면 서로가 호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카잔은 “그들이 서로 좋아한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지 실질적인 것만은 아니다. 둘 사이에 뭔가가 일어난다.”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한다’는 말은 열렬한 연애를 연상시키지는 않지만 이 삭막한 서부극에서 인간적인 측면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빌리가 앨리스에게 프로포즈하는 장면은 코언 형제의 영화를 통틀어 몇 안 되는 달콤한 장면 중 하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아름다운 모닥불가의 대화로 절정에 이른다. 여기서 빌리와 앨리스는 마침내 상황과 생존의 문제를 뛰어넘어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 이 장면을 촬영할 당시 비가 와서 야외촬영장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격납고 안에서 찍었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바람이 몰아치는 야외가 아니라 실내에서 촬영한 게 따뜻한 분위기를 내는 데 도움이 됐다”고 카잔은 말했다. “마차들을 안으로 들여놓고 조명을 희미하게 켰다. 관객이 볼 때 야외가 아니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모닥불 건너편에서 빌리가 앨리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불확실성이라는 말은 이 세상의 사물들에 적합한 말이죠. 난 우리가 보고 만지는 것의 확실성이 정당화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고 믿어요. 먼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확실성이 살아남은 게 뭐가 있나요? 하지만 우린 끝없이 새로운 확실성을 만들어내려고 해요.”


‘카우보이의 노래’에는 완벽하게 복원된 코네스토가 마차 16대와 수백 마리의 말, 노새, 황소가 동원됐다. / 사진:NETFLIX

두 사람은 각각 강력한 확실성의 주변에서 살았다. 앨리스는 독단적인 오빠의 통제 아래서, 빌리는 미스터 아서의 남자다운 호언장담 속에서 살아왔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어 돌볼 때, 또 다른 사람이 당신을 돌보도록 허용할 때 온화한 용기가 피어나는 걸 볼 수 있다”고 헥은 말했다. ‘낭패한 처자’는 ‘카우보이의 노래’ 나머지 에피소드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은 한다. 또한 코언 형제의 작품들이 ‘공허한’ 허무주의를 표방한다는 비난에 대한 감동적인 반증이다.

이 영화의 에피소드 중 제임스 프랭코가 주연한 ‘알고도네스 인근(Near Algodones)’과 리암 니슨 주연의 ‘밥줄(Meal Ticket)’은 확실히 허무주의 작품으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낭패한 처자’는 다르다. 비록 결말은 죽음이라도 그게 핵심은 아니다.

“난 이 에피소드가 영화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고 카잔은 말했다. 헥은 “이 영화가 전반적으로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고 느껴지긴 한다”면서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말을 하려는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그 순간이 올 때까지 뭘 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계별로 다양한 종류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 영화는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는 그 여정에 관한 것이다.”

– 앤드류 웨일런 뉴스위크 기자

※ [‘카우보이의 노래’는 지난 1월 1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