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물결 타고 두려움 넘어서자” (2)

증오와 공포를 부추기는 트럼프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미국의 각계각층 인사들로부터 처방을 들어본다

총기난사, 미투 운동, 밀입국자 부모-자녀 격리, 기후변화, 탄핵…. 어두운 세계가 갈수록 더 음울해지는 듯하다. 미국인의 스마트폰 화면에 쉴새없이 뜨는 긴급뉴스 알림과 페이스북 게시물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그들은 화가 치밀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옴츠러든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작가 이르샤드 만지는 “미디어에 종사하는 우리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클릭 수를 늘리고, 수익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치유의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주로 갈등의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둘 다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뉴스위크는 저술가·예술가·사회운동가·정책 전문가 등으로부터 두려움을 넘어 지금 미국이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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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치들

두려움은 우리를 무시무시한 것으로부터 잡아먹히지 않게 잘 피할 수 있도록 해준다. 두려움은 우리의 유전자 속 깊이 각인돼 있어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에도 종류가 있다. 우리는 그 종류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의 두려움이 한 가지 예다. 그런 두려움은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우리가 아는 게 아니라 DNA 차원에서 우리 몸이 느끼는 것으로 ‘곧 잡아먹힐 것 같다’는 감정과 똑같이 느낀다. 그러면 곧바로 ‘투쟁-도피’ 반응이 나타난다. 그 순간 비판적인 사고를 해야만 ‘아니야, 지금은 잡아먹힐 상황이 아니라 내가 가진 관점이나 아이디어가 공격 받고 있는 거야. 누군가 내 일을 비판하고 있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내 자리를 지키고 절대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는 사고 방식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지금 미국 대통령이 바로 그렇다. “내가 압력에 밀려 생각을 바꾸게 되면 사람들이 나를 허약하게 본다!” 그는 두려움에 기대고, 두려움을 이용하고, 두려움을 부추기는 일에 일가견이 있다. 대다수 사람은 두려움을 어떻게 이용하며 계속 밀고 나갈 수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2018년 12월 1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기자들을 앞에 두고 국경장벽 건설 예산과 연방정부 셧다운(업무 일시 정지) 문제와 관련해 격렬하게 설전을 벌였을 때 바로 그런 태도가 잘 드러났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지도 잘 보여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슈머 대표에게 “펠로시 대표가 지금 발언하기가 매우 곤란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펠로시 대표는 “이 자리에 내가 없는 것처럼 말하지 말라. 난 여기 계속 앉아 있다. 내 강점을 터무니없이 폄하하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난 그 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펠로시 대표는 두려움이 부추기는 태도에 어떻게 맞설 수 있는지 보여줬다.

하지만 효과적으로 맞서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 대다수는 감정적인 충돌을 꺼린다. 갈등은 투쟁이냐 도피냐 둘 중 하나로 반응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냥 조용히 앉아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따라서 우리는 외교와 위기관리에 투자해야 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닥쳤을 때 도피할 생각만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가르쳐야 한다.

배우는 늘 그렇게 한다. 배우는 언제나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낄까? 저 입장에 처하면 내가 어떻게 반응할까?’라는 생각을 한다. 배우는 자기성찰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일상생활을 반복하면서 한 주가 지나면 급료를 받고 집에 돌아가 TV를 보며 다른 일을 잊는다. 반사 반응의 지배를 받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노력과 집중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그런 식으로 더 잘할 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모욕과 비판에 민감하다면 SNS에서 탈피하는 게 좋다. 누군가 트위터에서 나에게 ‘얼간이’라고 말했다고 해도 나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누군가의 얼굴을 때려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반격하지 않으면 곧 비난이 사라지고 문제의 시발점을 다시 논의하게 된다. 그러면 반사 반응을 보였던 사람이 이성적으로 변하게 된다.

※ [치들과 동료 배우 조지 클루니는 2007년 아프리카 수단 서부 지역 다르푸르의 집단학살을 방지한 공로로 노벨평화상 수상자들로부터 서밋 피스 어워드를 받았다. 이 글은 애너 멘타 뉴스위크 기자의 인터뷰에서 발췌했다.]

벤 섀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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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미국에서 보는 분열상은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지금 우리가 정치에서 으레 기대하는 당파적 증오심은 정확히 말해 오바마 정부 시절부터 시작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선출은 그런 분열상이 표출된 하나의 증상일 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나친 막말과 기이한 성격이 기존의 분열을 악화시킨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분열의 골이 훨씬 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 사라질 수 있을지언정 사회적 분열의 골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벗어나 실제로 서로 대면함으로써 인간적인 차원에서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사회적인 연결은 공통의 도덕적 틀로 지탱될 때만이 효과가 있다. 하버드대학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 교수는 “공동의 가치가 없으면 구성원의 다양성 때문에 촘촘히 잘 짜여진 사회가 만들어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회와 군대를 예로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마저 분열된 상황이다. 발언의 자유라고? 좌익 중 다수는 부당한 계급사회의 부활이라고 믿는다. 작은 정부를 만들겠다는 공약이라고? 미국인의 최소한 절반은 훨씬 큰 정부를 원한다. 미국인이 자신의 인생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자유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믿음을 두고도 요즘 논란이 많은 상황이다.

2013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기 취임 연설에서 “건국 이념에 충실하다고 해서 우리 삶의 방식이 똑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또 우리 모두가 자유를 똑같은 방식으로 정의하거나 누구나 똑같은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주변부에선 그 말의 옳을지 모르지만 미국이 자유의 깃발 아래 뭉치려면 무엇이 자유를 구성하는지에 관해 먼저 우리가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 [섀피로는 정치 평론가, 작가, 변호사로 팟캐스트 ‘벤 섀피로 쇼’의 진행자다.]

질 르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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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9·11을 계기로 정치적 불균형의 시기에 진입했다. 물론 그런 현상이 그 시점의 폭력과 테러, 상실의 고통과 관련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시점은 우연히도 숱한 와해적 기술의 등장과 일치했다. 이 새로운 시대에서 정치인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이는 전쟁의 정치적인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두려움을 부추겼다. 동시에 사람들은 스스로 기술적인 와해를 우려했다. 그것이 우리 대다수를 경악케 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같은 기간에 우리가 확신을 얻을 수 있는 많은 출처가 사라졌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미국민에게 “우리가 두려워 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한 말은 전 세계가 들었다. 우리가 오늘날에 관해 비뚤어진 견해를 가졌을 가능성을 권위 있게 지적한 말로 아주 어두운 그 당시에 효과적인 메시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권위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끔찍한 사건 후 평정을 되찾으려고 사람들이 찾는 곳을 생각해보라. 그런 곳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향수가 중요한 사안의 잣대는 되지 않지만 나는 어렸을 때 냉전 시기에 일요일 교회에서 들었던 설교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뭔가 현명한 말을 하는 목사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은 TV에서 권위 있는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의 뉴스 해설을 시청하거나 그보다 더 현명하고 더 대담한 사람의 수필이나 시를 읽었을 때의 느낌과 다르지 않았다.

좋든 나쁘든 그런 권위의 출처, 다시 말해 우리를 안심시킬 수 있는 장소와 사람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권위자가 그들을 대체했다는 증거도 없다. 내게 어린 시절 위안을 가져다준 가톨릭 교회는 아동성추행으로 다른 아이들의 삶을 파괴한 바로 그 교회였다. 정치인은 끊임없이 선동하며 불에 기름을 계속 붓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TV 뉴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시청률이 저널리즘에 끼친 악영향을 지적했다. 그러나 지금의 알고리즘이 이끄는 저널리즘은 시청률 주도의 저널리즘보다 훨씬 더 나쁜 것으로 판명됐다.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것이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정치적·금융적 이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테러가 그보다 더 나쁘다고? 글쎄다. 피츠버그의 유대교 사원과 찰스턴의 교회 등 종교 시설을 표적으로 하는 공격 등의 집단 총기난사는 엄청난 충격을 줬지만 그런 테러의 지배는 아무리 끔찍해도 사실 새롭지는 않다. 우리는 이전에도 린치와 종교 시설 폭탄테러를 겪었다. 그런 형태의 테러에 맞서 싸운 사람들의 용기가 20세기의 위대한 이야기 중 하나다.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같은 일이 반복된다. 길고 긴 비탄과 불굴의 의지, 인내 등.

그렇다면 누가 모두를 단결시키는가? 미국 전역의 공립학교는 걸핏하면 화장실의 나치 문양 낙서, 폭탄 위협 등에 관한 교장의 이메일을 발송한다. 그러면 지역사회에서 회의를 연다. 아름다운 일이다. 사람들은 “우린 이런 일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예정된 대로 바자회를 개최하자. 어쨋든 내일 태양은 다시 뜬다.”

유대교 사원의 랍비, 학교 교장, 바자회의 어머니들. 그들은 선출된 공직자가 아니다. 투표나 클릭 수, ‘좋아요!’에 관심 없고,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것이 그들에게 이익이 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희망을 찾고 싶다면 교사가 매일 하는 고단한 일을 생각해보라. 이처럼 잔혹한 세계를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그 힘든 일 말이다. 아홉 살만 돼도 기후변화를 안다. 텍사스주의 친척이 허리케인의 피해를 입었고, 어머니의 친구는 캘리포니아주의 산불에 집을 잃었기 때문이다. 또 총기를 휘두르는 낯선 사람들이 있어 학생들은 매달 비상대피 훈련을 받는다. 그 아이에게 무엇을 말해줘야 할까? 사랑과 지식, 용기와 역사에 관해 말해줘야 한다.

※ [르포르는 하버드대학 미국사 교수다. 최근 그의 저서 ‘진실: 미국의 역사(These Truths: A History of the United States)’가 발간됐다.]

닉 케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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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1년 로스앤젤레스 경찰관들이 비무장 상태의 로드니 킹을 잔혹하게 구타하는 장면을 본 뒤 첫 ‘사운드수트’(소리 나는 옷)를 만들었다. 그때 나는 두려웠다. 나는 나의 신변은 집에서만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집을 떠나는 순간 나는 다른 사람이 돼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나뭇가지와 벼룩시장에서 수집한 털, 단추, 구슬 등으로 ‘사운드수트’를 만들었다. 성별과 인종, 계급을 없애주고 춤출 때마다 바스락거리며 소리를 내는 일종의 방탄복이다.

그 이래 나는 500벌 이상의 사운드수트를 만들어 실제 공연에서 사용했다. 그 옷을 입는 사람은 무당처럼 된다. 전통적으로 무당은 사람들이 성장하고 치유되도록 해주는 정보를 찾아내 알려준다. ‘사운드수트’를 직접 입거나 댄서가 그 수트를 입고 춤추는 것을 보면 기쁨과 공통의 인간애를 느낄 수 있다. 두려움의 정반대다. 그들과 함께 춤추면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 [케이브는 미국의 천조각가이자 댄서, 퍼포먼스 아티스트다. 그의 ‘사운드수트’는 전 세계의 미술관이 수집한다.]

브라이언 스티븐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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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가 몸에 밴 사람은 자신의 믿음에 문제가 생기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면 다수가 그 손을 잡을 것이다. 증오는 사람의 진을 빼는 일이기 때문이다. 증오는 사람을 비참하고 의기소침하며 우울하게 만든다. 그들 중 일부는 내민 손을 잡을 생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이전에 알지 못했던 무엇을 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부모는 자녀에게 정말 화가 날 때 감정적으로 반응하거나 그들을 혼내선 안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체득한다. 두려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두려움은 모든 비 이성적인 행동을 초래한다. 우리가 이성적인 행동을 하고 싶다면, 사려 깊고 전략적이며 온정적이 되기를 원한다면, 두려움과 분노의 정치를 몰아내야 한다. 공직에 출마한 후보자가 “두려워하고 분노하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이렇게 자문하라. 왜 그것이 내가 받아야 할 처방인가?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면 우리 과거에서 가장 치욕스럽고 파괴적인 만행을 이끈 것이 두려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 집단학살과 노예제도, 린치, 인종차별이 대표적인 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일본계 미국인을 수용소에 강제 이주시킨 것도 비이성적인 두려움과 분노에 따른 조치였다. 그건 부당하고, 비(非)미국적이며, 위헌적인 행동이었다. 또 인종차별적인 행위였다. 연합국에 맞선 추축국 출신인 독일계나 이탈리아계 미국인은 그렇게 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올바로 이해하면 이민이나 교육 같은 문제에서 우리의 격한 생각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서 “그들은 동물에 불과하다. 그들은 겁탈자다”라는 말을 들으면 ‘아니지, 그렇게 말해선 안 되지. 책임 있는 정부가 갈 길은 그게 아니야’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정치인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손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 우리는 두려움을 부추기는 정치가 권력을 얻는 길로 통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 길은 실제로는 압제와 불의, 불평등으로 통한다. 우리는 그런 길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 [스티븐슨은 비영리단체 사법평등운동(EJI)의 설립자다. 2018년 4월 EJI는 수많은 흑인 남녀노소가 린치를 당한 미국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평화와 정의 기념관’을 개장했다. 이 글은 메리 케이 실링 뉴스위크 기자의 인터뷰에서 발췌했다.]

존 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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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황은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행동해야 변할 수 있다. 시민권은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인 개념이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나는 그 후 그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해 2년 동안 투쟁했다. 그 과정에서 ‘반전 베트남 참전용사회’의 대변인을 맡아 다른 수백 명의 참전군인과 함께 시민 불복종 운동을 벌이다가 체포됐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군대를 지지하라”고 소리쳤다. 우리는 “우리가 군대”라고 반박했다. 1972년 대선에서 리처드 닉슨이 49개 주에서 대승을 거두며 재선됐다. 당시 나도 매사추세츠주에서 하원의원에 출마했다. 닉슨은 나의 낙선 사실을 뉴스에서 확인할 때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고 기다렸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 들었다.

나는 뼈저린 경험을 통해 낙관주의자가 됐다. 나는 얻어맞고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섰다. 그로부터 2년도 못 가 닉슨은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하야했다. 개혁가들로 구성된 새로운 의회가 베트남전을 종식시키고 부패를 청산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저절로’ 일어난 건 결코 아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직접 투쟁에 나서야 이룰 수 있다.

분연히 투쟁에 나선 사람들의 예가 많다. 프로농구(NBA)의 전설 마이클 조던의 철칙을 기억하는가? 1990년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흑인 민주당원이자 흑인 인권운동가 하비 그랜트가 지지를 요청하자 조던은 “공화당 사람들도 농구화를 사서 신기 때문에” 절대 정치엔 관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민중의 목소리’로 알려졌던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미국과 선거에 관해 독자적인 견해를 밝혔다. 또 다른 가수 캐럴 킹은 미국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구현하기 위해 애쓴다. 그녀는 로키산맥 자연보호구역 지정을 위해 매년 의회에서 투쟁에 나선다.

2002년 나는 뉴햄프셔주의 한 운동가를 알게 됐다. 휠체어를 타는 아들을 둔 그녀는 장애우 특수교육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 2004년 내가 민주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을 때 그녀는 만사를 제쳐두고 나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우리가 선거에서 패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상원의원으로서 이전에 아들을 위해서 그랬듯이 수많은 어린이를 위해 투쟁한다. 그처럼 끊임없이 투쟁하고 밀어붙여야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우리는 선동가의 포로가 되지 말아야 한다. 늘 들려오는 것이 비난과 비방, 과장된 헤드라인이라면 사람들이 아예 들으려 하지 않거나 거세게 반발하는 게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귀를 열고 잘 들어야 한다. 32년 전 비행기를 탔을 때 우연히도 전쟁에 관해 나와 반대 견해를 가진 남자 곁에 앉게 됐다. 그 역시 베트남전 참전군인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했고 상대방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긴 여행 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는 베트남, 그리고 이곳 미국의 우리들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함께 일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그가 바로 고(故)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었다. 나는 우리 두 사람이 하노이의 포로수용소(일명 ‘하노이 힐턴’)에 서 있었을 때를 결코 잊을 수 없다. 매케인은 바로 그곳에서 5년 반 동안 고문당했지만 의연하게 버텨냈다.

매케인과 내가 군인으로서, 또 상원의원으로서 배운 것 한 가지는 미국이 언젠가는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워싱턴 D.C.가 나 같은 반전운동가와 매케인 같은 전쟁포로 사이의 간극을 이어줄 수 있는 도시라면 다른 어떤 것과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키지 않더라도 먼저 대화를 시작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야 가능한 일이다.

※ [케리는 상원의원(민주당·매사추세츠) 출신으로 2013~2017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아래서 미국 국무장관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