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나라는 돈 더 많이 찍어내면 안 되나

제품 생산량보다 화폐 발행량만 늘리면 한정된 물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 물가만 오른다
화폐 발행량을 늘려 부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뿐이다. 국제무역이 미국 달러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 사진:WISSAM NASSAR-XINHUA-NEWSIS

온 나라가 돈을 더 많이 찍어내 부자가 되려는 시도가 통한 적은 거의 없다. 모두가 돈을 더 많이 갖게 되면 물가가 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양의 상품을 구입하는 데 갈수록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된다.

최근 짐바브웨·베네수엘라·남아공에서 화폐를 더 많이 발행해 경제를 키우려 했을 때 그런 일이 있었다. 화폐를 더 많이 찍어낼수록 물가 상승률도 빨라지면서 이 나라들이 이른바 ‘초인플레이션’을 겪기 시작했다. 초인플레는 1년에 물가가 엄청나게 오를 때를 가리키는 용어다.

2008년 짐바브웨에 초인플레가 닥쳤을 때 물가가 한 해 사이 2억3100만%나 상승했다. 인플레 발생 전 1짐바브웨 달러를 받던 사탕 한 개가 1년 뒤 2억3100만 짐바브웨 달러로 오른 셈이다. 그만한 양의 종이뭉치가 필경 그 종이 위에 인쇄된 화폐보다 더 값 나갔을 것이다.

부자가 되려면 재화든 용역이든 물건을 더 많이 만들어 팔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 잉여 재화를 살 수 있도록 돈을 더 많이 찍어내도 안전하다. 한 나라가 물건을 더 많이 만들어내지 않고 화폐 발행량만 늘리면 물가가 상승한다. 일례로 1970년대에 나온 빈티지 스타워즈 완구는 가격이 상당히 높을 수 있다. 아무도 더 이상 그런 모델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따라서 모두가 쓸 돈이 더 많다 해도 그것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아지지는 않는다. 판매가만 올라갈 뿐이다.

현재 화폐 발행량을 늘려 부자가 될 수 있는 나라가 하나 있다. 이미 큰 부자 나라인 미국이다. 금과 석유를 포함해 세계 각국이 서로 사고파는 상품들이 대부분 미국 달러로 가격이 매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물건을 더 많이 사고자 한다면 실제로 달러를 더 많이 찍어내면 된다. 하지만 돈을 너무 많이 발행하면 그런 달러 표시 상품들의 가격도 오른다.

물론 가난한 나라들은 자국 통화만 찍어낼 수 있을 뿐 미국 달러 발행 권한은 없다. 그리고 돈을 훨씬 더 많이 찍어내면 물가가 너무 빨리 올라 사람들은 그 통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물물교환을 하거나 대신 미국 달러로 결제를 요구하게 된다. 짐바브웨와 베네수엘라 그리고 초인플레를 겪은 다른 많은 나라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베네수엘라는 식품과 의약품 같은 생필품 가격 인상을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켜 초인플레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려 했다. 그러나 상점과 약국에서 그 상품들이 모두 동나는 결과만 초래했다.

그러나 언제나 한 나라가 화폐 발행을 통해 부자가 될 수 없는 건 아니다. 애당초 화폐가 부족할 경우에는 가능하다. 통화가 부족할 경우 기업들은 충분히 많이 팔지 못하거나 직원들 급료를 제대로 지불하지 못할 수 있다. 은행에도 돈이 충분하지 않아 사람들이 대출도 받을 수 없다.

이런 경우 화폐 발행량을 늘리면 사람들의 지출이 늘어나 기업들이 제품 생산을 늘릴 수 있어서 구입할 제품이 많아질 뿐 아니라 거기에 지출할 돈도 많아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은행들이 돈을 많이 날려 고객에게 융통해줄 돈이 없었다. 다행히 거의 어느 나라에나 다른 은행들의 영업활동을 돕는 중앙은행이 있다. 그들은 화폐 발행량을 늘려 경제가 다시 돌아가도록 한다.

돈이 너무 부족해 물가가 하락하면 좋지 않다. 그러나 제품 생산이 늘어나지 않을 때 돈을 너무 많이 찍어내 물가가 상승하는 것도 그만큼 나쁜 일이다. 그러니 화폐·거래·상업을 연구하는 경제학이 종종 ‘우울한 학문’으로 불려도 이상할 게 없다.

– 앨런 쉬프먼

※ [필자는 영국 개방대학 경제학과 전임강사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