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빛낸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배우

복잡하고 불안한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유머와 희망, 위로를 안겨준 보석 같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멜리사 매카시 (왼쪽 사진)와 마허샬라 알리는 각각 ‘캔 유 에버 포기브 미?’와 ‘그린 북’으로 2019 골든글로브상 후보에 올랐다. / 사진:MARY CYBULSKI. @2018 TWENTIETH CENTURY FOX FILM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AP-NEWSIS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여성과 소수인종을 위한 그럴 듯한 배역은 별로 없다는 게 보편적인 인식이다. 하지만 2018년은 예외였다. 영화와 드라마의 중심 캐릭터가 인종과 성별, 연령에서 지난해처럼 다양한 적이 있었던가 싶다.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지난해 이 아티스트들은 우리에게 카타르시스와 즐거움, 그리고 큰 위로를 안겨줬다. 연초 시상식 시즌을 앞두고 뉴스위크가 2018년을 빛낸 영화와 드라마, 아티스트들을 꼽아봤다.

줄리아 로버츠, 스테판 제임스 | ‘홈커밍(Homecoming)’-아마존 프라임

줄리아 로버츠와 스테판 제임스는 지난해 각각 영화에서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두 사람은 또 샘 에스마일 감독의 아마존 프라임 드라마 ‘홈커밍’에서 환상적인 케미를 보여줬다. 중년의 백인 사회복지사와 그녀가 도움을 주는 군인 출신의 흑인 청년 이야기는 탈 인종적인 느낌을 준다. 로버츠는 나이가 들수록 더 흥미진진한 여배우가 돼가는 듯하다. 그녀 특유의 눈부시게 환한 미소와 제임스의 건강한 에너지가 에스마일 감독의 차갑고 사악한 우주에서 유일하게 따스한 느낌을 전해준다. -MKS

레지나 킹 | ‘이프 빌 스트리트 쿠드 토크(If Beale Street Could Talk)’

‘세븐 세컨즈’와 ‘레프트오버’ ‘아메리칸 크라임’ 등 TV 드라마로 잘 알려진 레지나 킹이 베리 젠킨스 감독의 인종차별을 주제로 한 영화 ‘이프 빌 스트리트 쿠드 토크’에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제임스 볼드윈의 1974년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킹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억울한 누명을 쓴 약혼자의 결백을 밝혀내려는 티시의 어머니로 나온다. -MKS

올리비아 콜먼 |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국내 개봉: 2019년 2월)

요르고 란티모스 감독의 ‘더 페어버릿: 여왕의 여자’는 영국의 앤 여왕에 관한 재미있고도 불경스러운 영화다. 이 영화엔 3명의 특별한 여배우가 등장한다. 뚱하고 변덕스러운 앤 여왕 역의 올리비아 콜먼과 그녀의 총애를 받으려고 암투를 벌이는 두 여인 역의 레이철 와이즈와 엠마 스톤이 그들이다. 영국에서 가장 바쁜 여배우 중 한 명인 콜먼은 늘 멋진 연기를 보여주지만 이 영화에선 정말 최고다. -MKS

자밀라 자밀 | ‘더 굿 플레이스(The Good Place )’-NBC

캐스팅이 완벽한 마이클 슈어의 시트콤 ‘더 굿 플레이스’에서는 모든 캐릭터가 살아 숨쉰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자밀라 자밀(32)이 연기하는 영국 사교계 명사 타하니 알-자밀의 표정을 보는 건 이 드라마의 특별한 즐거움 중 하나다. 그녀가 보여주는 코믹 연기의 기막힌 타이밍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듯 보이지만 사실 그녀는 이 드라마에 캐스팅되기 전엔 연기를 해본 적이 없다.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경험이 전부였다. “캐스팅 감독 앨리슨 존스에게 연극 무대에 서본 적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자밀은 말했다. “드라마에 캐스팅된 뒤 연기 수업을 받는 대신 함께 출연하는 배우 테드 댄슨의 연기를 그대로 따라 했다. 시즌 1의 5번째 에피소드에서 싱크홀을 빠져나와 도망치는 댄슨의 표정을 보고 똑같이 흉내 냈다.” 그녀는 실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도 연기의 영감을 얻는다. “난 고급 패션파티에서 DJ 역할을 자주 해 타하니 같은 사교계 명사들을 많이 만나는데 드라마에서 그들을 흉내 내기도 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AM

크리스천 베일 | ‘바이스(Vice)’

크리스천 베일은 이 영화에서 딕 체니 전 미 부통령을 연기하기 위해 체중을 18㎏ 늘리고 대머리 분장을 하는 데 동의한 걸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베일은 입을 앙다물고 목에서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는 등 체니의 버릇까지 그대로 흉내 내며 그의 가차없는 추진력과 권력욕을 훌륭하게 묘사했다. -ZS

폴 다노, 조 카잔 | ‘와일드라이프(Wildlife)’

지난해는 배우 출신 감독들의 활약이 돋보인 한 해였다. ‘스타 이즈 본’의 브래들리 쿠퍼와 ‘미드나인티즈’의 조나 힐, 그리고 ‘와일드라이프’의 폴 다노가 그들이다. 평단의 찬사를 받은 ‘와일드라이프’는 다노 감독이 그의 실제 파트너인 여배우 조 카잔과 함께 대본을 쓴 시대극이다. 리처드 포드의 1990년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일자리를 잃은 제리(제이크 질렌할)는 산불과 싸우는 위험한 일을 택한다. 그에게는 산불 말고도 어려운 문제가 많다. 원만하지 못한 결혼생활로 슬픔과 분노에 찬 그의 아내 지넷(캐리 멀리건)은 다른 남자를 만나 그를 떠난다. -ZS

마허샬라 알리 | ‘그린 북(The Green Book)’ (국내 개봉: 2019년 1월 9일)

마허샬라 알리는 2016년 베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은 뒤 자신에게 ‘이야기를 걸어오는’ 작품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린 북’을 선택했다. 자메이카계 미국인 재즈 피아니스트 돈 셜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셜리는 1962년 이탈리아계 미국인 운전기사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가 모는 자동차를 타고 미국 남부 지방을 돌며 순회공연을 했다. 이 영화는 백인들(피터 패럴리 감독과 공동 시나리오 작가인 발레롱가의 아들)이 만든 인종차별에 관한 기분 좋은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다. 알리는 “작가가 백인이든 흑인이든 상관없이 복잡한 흑인 캐릭터라면 언제나 연기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난 셜리를 대중 앞에 소개하게 돼 자랑스럽다. 늘 작품을 매우 진지하게 대하는 편이지만 이 캐릭터는 다른 어떤 역할보다 더 어려웠다.” -AM

래미 맬렉 |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 역을 맡은 래미 맬렉이 그룹 퀸의 공연을 처음 본 건 1985년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에서였다. “머큐리는 청중을 완전히 사로잡았다”고 맬렉은 말했다. “객석의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치 그가 자신만을 위해 노래하는 것처럼 느꼈다.” 영화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꽤 있지만 맬렉은 매우 수줍고 내성적이면서도 엄청난 카리스마로 팬들을 매료시켰던 이 록 슈퍼스타의 모순을 제대로 표현해냈다. -ZS

멜리사 매카시 | ‘캔 유 에버 포기브 미?(Can You Ever Forgive Me?)’

‘캔 유 에버 포기브 미?’에서 멜리사 매카시는 ‘스파이’ 같은 블록버스터 코미디로 알려진 여배우도 드라마 장르를 잘 소화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한다. “어떤 캐릭터를 준비하고 그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는 건 코미디나 드라마나 차이가 없다”고 매카시는 말했다. 이번에 그녀가 사랑에 빠진 캐릭터는 실존 인물인 작가리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1990년대에 더는 창작 작업으로 돈벌이를 할 수 없게 되자 유명 작가들의 편지를 위조해 발표하기 시작했다. 매카시의 연기가 아니라면 무례하고 반사회적인 이스라엘의 행동을 응원할 이유가 없다. “이스라엘은 선인장 같은 사람이었다”고 매카시는 말했다. “하지만 난 자신이 과소평가되고 외롭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인 여성 역할을 많이 했지만 이스라엘은 에너지를 분출하는 대신 안에 가둬놓는 독특한 스타일이다.” -AM

레티티아 라이트 | ‘블랙팬서’

슈퍼히어로 영화 중 ‘블랙팬서’만큼 문화적 영향력이 큰 작품은 없었던 듯하다. 이 영화는 또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도 거론되며 채드윅 보스먼과 마이클 B. 조던, 루피타 뇽오 등 수상 경력이 있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걸로도 유명하다. 모든 배우의 연기가 훌륭하지만 관객의 마음을 빼앗은 장본인은 가이아나 태생의 영국 여배우 레티티아 라이트였다. 트찰라 왕의 여동생 슈리 역을 맡은 그녀는 등장하는 장면마다 눈길을 사로잡았다. -AM

레이철 브로스넌 | ‘더 마블러스 미세스 마이젤(The Marvelous Mrs. Maisel)’-아마존 프라임

레이철 브로스넌은 아마존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더 마블러스 미세스 마이젤’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미지 역으로 올해 에미상 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시즌 2에서는 그녀의 말이 더 빨라졌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답게 모자와 장갑 등 브로스넌의 복고풍 패션도 보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그녀의 강렬한 감정 연기다. -MKS

애덤 드라이버와 존 데이비드 워싱턴 | ‘블랙클랜스맨(BlacKkKlansman)’

1970년대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 경찰국에서 일했던 최초의 흑인 형사 론 스톨워스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블랙클랜스맨’은 스파이크 리 감독이 최근 몇 년 동안 발표한 영화 중 최고작이다. 댄젤 워싱턴의 아들 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연기하는 론은 불 같은 성격으로 유대인 경찰 플립(애덤 드라이버)과 팀을 이뤄 KKK(백인 우월주의 비밀결사단)에 잠입해 수사를 벌인다. -MKS

빌 헤이더 | ‘배리(Barry)’-HBO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출신의 코미디언 겸 배우 빌 헤이더는 HBO 드라마 ‘배리’에서 배리 버크먼 역으로 올해 에미상 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알렉 버그와 함께 이 드라마의 공동 크리에이터이기도 한 헤이더는 멍청하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매우 어두운 주인공의 양면성을 기막히게 표현했다. -MKS

아콰피나 |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2018년 여름 북미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킨 블록버스터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할리우드의 인종차별주의를 바로잡은 영화로 주목 받았다. 케빈 콴의 2013년 베스트셀러 로맨틱 코미디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조연 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특히 허스키한 목소리의 래퍼 아콰피나는 여주인공의 절친 역을 감칠맛 나게 소화했다. -AM

바이올라 데이비스 | ‘위도우즈(Widows)’

바이올라 데이비스의 연기는 늘 훌륭했지만 스티브 매퀸 감독의 ‘위도우즈’에서 그녀는 숨막히게 멋진 연기를 선보인다. 데이비스는 깊은 슬픔과 단호한 결심 사이를 오가며 저마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네 여인을 이끌고 위험한 강도 행각을 벌인다. -AM

테사 톰슨, 라케이스 스탠필드 | ‘쏘리 투 바더 유(Sorry to Bother You)’

테사 톰슨은 지난해 공상과학(SF) 영화 ‘어나이얼레이션’에서 공동주연을 맡고 TV 드라마 시리즈 ‘웨스트월드’ 시즌 2에 다시 출연했으며 영화 ‘크리드 2’에서는 마이클 B. 조던의 파트너로 나오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한편 라케이스 스탠필드는 드라마 시리즈 ‘애틀랜타’ 시즌 2에서 대리어스 엡스로 돌아왔다. 톰슨과 스탠필드는 인종차별과 경제적 불평등을 초현실적으로 풍자한 부츠 라일리 감독의 ‘쏘리 투 바더 유’에서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준다. 톰슨의 인간적인 면모가 스탠필드의 비현실적이고 만화 같은 캐틱터를 완벽하게 뒷받침한다. -MKS

얄리차 아파리시오 | ‘로마(Roma)’

뉴욕비평가협회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회고전적인 영화 ‘로마’에 최우수 영화상과 감독상을 수여했다. 1970년대 멕시코 시티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중상층 가정의 원주민 하녀 클레오(쿠아론의 어린 시절 유모를 모델로 했다)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클레오 역을 맡은 얄리차 아파리시오(24)는 직업 배우가 아니라 유치원 교사다. 그녀가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고 영혼이 담긴 연기를 보여준 비결인 듯하다. -AM

– 뉴스위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