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타임 드라마 ‘하우스 오브 라이즈’의 무자비한 경영 컨설턴트 역으로 유명한 돈 치들, 새 코미디 시리즈 ‘블랙 먼데이’에서 광적인 증권맨으로 돌아와
‘블랙 먼데이’에서 모리스 ‘모’ 먼로 역을 맡은 돈 치들(왼쪽)과 새내기 트레이더 블레어 파프 역의 앤드루 래널스. / 사진:ERIN SIMKIN/SHOWTIME

배우 돈 치들(54)은 1989년 R&B 스타 안젤라 윈부시의 히트송 ‘It’s the Real Thing’ 뮤직 비디오에 백댄서(세차보조원 역)로 출연했다. 그에겐 이 순간이 평생 잊혀지지 않을 듯하다. 당시 무명배우로 근근이 살아가던 치들은 친구의 오디션 현장에 구경 갔다가 안무가 데비 앨런의 눈에 띄어 그 비디오에 출연하게 됐다. 그래서 그런지 치들이 주연하는 쇼타임 방송의 새 코미디 시리즈 ‘블랙 먼데이(Black Monday)’ 속 1980년대 특유의 분위기가 그에겐 매우 친숙해 보인다. 부풀린 헤어스타일과 어깨에 패드를 댄 재킷, 화려한 장식의 모자, 신시사이저 비트 등등.

‘블랙 먼데이’는 미국에서 종종 ‘탐욕의 시대(Decade of Greed)’로 불리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금융 포식(financial predation)을 신랄하게 꼬집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월 스트리트’(1987)와 1980년대 과소비 풍조 속에서 부를 축적해 유명해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블랙 먼데이’에서 광기 어린 증권업자 모리스 ‘모’ 먼로를 연기하는 치들은 “1980년대의 옷과 신발, 신시사이저 음악에 묘한 향수를 느낀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하지만 좋은 건 그 정도에 그친다. 그는 “난 1986년 캘리포니아 예술대학(CalArts)을 졸업했다”며 “과시와 만용이 판치는 보여주기 위주의 시대였다. 마약과 섹스에 탐닉하고 자기성찰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치들은 돈 많은 사람들에 관한 영화나 드라마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사실 그런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혐오감이 들 때가 많다”면서 “그 무지막지한 탐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인권과 기후변화 문제 운동가로 유명한 치들은 ‘낫 온 아워 워치(Not on Our Watch: The Mission to End Genocide in Darfur and Beyond)’ 등 2편의 관련 저서를 공동 집필했다].

하지만 그는 쇼타임의 ‘하우스 오브 라이즈’(5시즌에 걸친 이 드라마에서 치들은 월스트리트의 무자비한 경영 컨설턴트 마티 역으로 골든 글로브상을 받았다)를 끝낸 지 2년 만에 또다시 ‘돈, 돈, 돈’의 세계로 돌아왔다. 치들은 “두 드라마 모두 데이비드 네빈스(쇼타임의 CEO) 때문에 하게 됐다”고 말했다.

‘블랙 먼데이’는 로봇 집사와 함께 코카인을 흡입하고 당수(가라테)로 문짝을 부수는 주인공 만큼이나 광적이고 불손한 풍자로 가득하다. 치들은 “이 작품은 내가 지금까지 본 TV 프로들과 달라서 많은 사람이 보면 좋겠다”며 “내가 맡은 캐릭터는 미친 듯 무모하고 균형감각이 없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캐스피와 조던 캐헌이 각본을 쓴 이 코미디는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에 일어난 미국 주식시장 붕괴의 원인을 가상해서 설명한다(세스 로건과 에번 골드버그가 연출한 파일럿 방송의 오프닝 크레딧에는 ‘아직은 이 주식시장 붕괴가 왜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설명이 나온다).

주인공 모의 목표는 월스트리트 거래 실적이 11위인 자신의 증권회사를 1위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모가 ‘하우스 오브 라이즈’의 마티처럼 영리하다면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공동 책임 프로듀서이기도 한 치들은 “모는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모가 이끄는 오합지졸 팀이 그 당시 기준으로 보면 매우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현실감이 떨어진다. 하지만 치들은 “그게 바로 우리가 노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 캐릭터들은 구성원 98%가 백인인 증권회사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을 벌인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나 조나 힐이 연기하는 캐릭터였다면 어떤 식으로 행동했을지 안 봐도 뻔하다. 하지만 이 캐릭터들이 어떻게 할지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 한다.”

레지나 홀이 예리하고 공격적인 트레이더 돈 다시 역을, 앤드루 래널스가 이 회사의 유일한 백인인 신입사원 블레어 파프 역을 맡았다. 또 호레이시오 샌즈가 라틴계인 웨인을, 야시르 레스터가 무슬림인 야시르를 연기한다. 홀은 최근 ‘서포트 더 걸스’(2018)로 흑인 최초로 뉴욕 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 그녀의 캐스팅을 누구보다 강력히 주장했던 사람이 치들이다.

예리하고 공격적인 여성 트레이더 돈 다시 역의 레지나 홀 / 사진:ERIN SIMKIN/SHOWTIME

치들은 2016 미국 흑인영화제(ABFF) 시상식에서 홀이 대담하게 다른 여배우로 행세하는 걸 지켜봤다. “레지나 킹이 상 받을 차례였다”고 홀은 돌이켰다. “사람들은 늘 레지나 킹과 나를 혼돈했다. 내 사진 대신 그녀의 사진이 들어가기 일쑤였고 그 반대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놀려주기로 했다. 무대 스태프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레지나 킹이 호명됐을 때 내가 무대에 나갔다. 난 사람들에게 키스하고 손을 흔들어 인사한 다음 시상대에 서서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치들은 그 장면을 인상 깊게 봤다. “홀이 무대에 올랐던 3분 동안 그녀의 유머 감각과 인간성이 고스란히 전해졌다”고 그는 말했다. “‘블랙 먼데이’의 다시 역에 그녀 만한 배우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인종의 많은 여배우 이름이 거론됐지만 난 ‘만약 홀이 승낙한다면 그녀에게 이 역을 맡기자’고 했다.”

“홀은 다시가 남성 캐릭터에 연결된 여성이 아니라는 점을 마음에 들어 했다. 다시 말해 누군가의 부인이 아니며 보조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의미다. 다시는 남성과 동등하게 활동한다.” 극중 다시는 기혼여성이지만 모와의 연애감정을 이용해 그의 회사 동업자가 된다. 홀은 1980년대에 실제로 흑인 여성 트레이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에 대해 조사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그녀의 존재를 기억하는 걸 보면 당시 영향력이 보통이 아니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치들은 1980년대의 주식 내부자 거래 스캔들에 관한 제임스 B. 스튜어트의 베스트셀러 ‘도둑들의 소굴’(1991)을 참고했다. 이반 보스키와 마이클 밀켄 같은 금융업자들의 정크본드 거래는 불법이었지만 1989년 보스키와 밀켄이 사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기 전엔 법이 집행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치들은 “스튜어트가 책을 통해 보여준 사실 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사람들은 금전적 이익이 크면 기꺼이 불법행위를 저지르려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치들은 모 역할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을 이렇게 털어놨다. “모는 코카인을 많이 하기 때문에 신경이 날카롭다. 14시간 동안 연기하다 보면 그것이 연기일 뿐이라는 걸 몸이 알지 못 한다. 그래서 촬영장을 떠날 때면 ‘내가 왜 이렇게 신경이 날카롭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감정 상태를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배우들이 자주 그러듯 치들도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에게 공감하려고 노력했을까? 이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모 같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움직이고 다른 모든 사람을 비난한다. 난 그에게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마땅한 벌을 받을 때는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블랙 먼데이’는 1980년대와 월스트리트에 비판적이지만 요즘의 부패를 언급하진 않는다. “이 시리즈는 인종에 관해 뭔가를 말하려 하지도 않는다”고 치들은 말했다. “이것은 (병든 사회를 위한) 어떤 형태의 약도 아니며 구성원 98%가 백인이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법한 일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일 뿐이다.”

– 애나 멘타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