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고의 사랑꾼은?

밸런타인데이 맞아 되새기는 세계의 러브 스토리 … 20년 동안 1주일에 3번씩 연인의 묘소에 꽃 바친 사람은 누구일까
조 디마지오와 매릴린 먼로의 결혼생활은 1년 만에 끝났지만 디마지오는 평생 그녀를 사랑했다고 알려졌다. / 사진:WIKIPEDIA.ORG

낭만적이면서도 강인한 사랑의 이야기는 늘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오면 특히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려고 밤새 끄적거린 카드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대단한 역사 속 사랑꾼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조 디마지오와 매릴린 먼로

‘졸틴 조’ ‘양키 클리퍼’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조지프 폴 디마지오는 뉴욕 양키스 구단에서 13년 동안 활약한 유명 야구선수였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었던 그는 1954년 매릴린 먼로와 결혼했지만 1년 만에 이혼했다. 두 사람이 이혼한 후(먼로는 이듬해 작가 아서 밀러와 재혼했다)에도 디마지오는 끝까지 먼로를 사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1962년 먼로가 사망한 후 그는 한 꽃가게에 의뢰해 20년 동안 1주일에 3번씩 그녀의 묘소에 장미꽃을 갖다 놓도록 했다. 게다가 그는 먼로와 헤어진 후 재혼하지 않았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와 블라디미르 다비도프
차이코프스키는 30살 연하의 조카 블라디미르 다비도프에게 깊은 애정을 보였다. / 사진:COMMONS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 낭만주의 작곡가다.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사계’ 같은 그의 작품들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클래식 음악으로 꼽힌다. 그의 성정체성은 역사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분분하지만 30세 연하인 조카 블라디미르 다비도프를 향한 깊은 애정은 기록으로 충분히 입증됐다. 두 사람은 서로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차이코프스키는 다비도프에게 보내는 한 편지에 이렇게 썼다. “네 생각이 자주 나고 꿈에서도 너를 본다. 꿈 속에서 넌 슬프고 우울해 보여. 그 모습이 너를 향한 내 사랑에 연민의 정을 더하고 너를 더 깊이 사랑하게 만드는구나. 지금 당장 너를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간절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1893년 차이코프스키가 원인 모를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차이코프스키는 다비도프에게 헌정한 자신의 여섯 번째 교향곡 ‘비창’을 직접 지휘해 초연한 후 9일 만에 숨졌다.

리처드와 밀드레드 러빙
리처드와 밀드레드 러빙은 인종 간 결혼을 금지하는 미국 버지니아주법에 맞서 싸워 승리했다. / 사진:WIKIMEDIA.ORG

1958년 미국의 백인 남성 리처드 러빙과 흑인 혼혈 여성 밀드레드 지터는 워싱턴 D.C.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5주 후 고향 버지니아주로 돌아간 러빙 부부는 한밤중에 집을 급습한 경찰에 체포됐다. 버지니아주는 당시 인종 간 결혼을 금지했던 24개 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러빙 부부는 감옥에서 며칠 밤을 보낸 뒤 자신들이 결혼함으로써 인종 간 결혼을 금지하는 버지니아법을 위반했다고 인정했다.

1년 징역형을 받은 그들은 유죄답변협상을 통해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한 다시는 버지니아주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감형 받았다. 두 사람은 워싱턴으로 이주해 3자녀를 낳았지만 가족·친지와 떨어져 지내야 했다. 1963년 밀드레드는 로버트 F. 케네디 당시 법무장관에게 자신들의 처지를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 케네디 장관은 이 사건을 미국자유인권협회에 회부했다. 러빙 부부가 유죄를 인정한 터라 문제가 복잡해져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1967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인종 간 결혼을 금지하는 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 당시 남편 리처드가 했던 말(“법정에 계시는 분들께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하며 내가 버지니아주에서 그녀와 함께 살 수 없다는 건 정말 부당한 일이라고 말해주십시오.”)은 그 후로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기억됐다. 러빙 부부의 이야기는 미국 민권운동의 초석이 됐으며 2016년 영화 ‘러빙’의 바탕이 됐다.

에드워드 8세와 월리스 심슨
에드워드 8세는 1936년 영국의 왕위를 내려놓고 미국인 이혼녀 월리스 심슨과 결혼해 평생을 외국에서 살았다. / 사진:WIKIPEDIA.ORG

에드워드 8세는 미국인 이혼녀 월리스 심슨과 사랑에 빠졌을 때 영국 왕위계승 서열 1위였다. 영국법이 두 사람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왕가는 그들의 관계를 반대했다. 에드워드 8세는 1936년 1월 아버지 조지 5세 국왕이 사망하자 왕위를 계승했지만 그해 12월 왕실에 등을 돌리고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나 윈저공이 됐다. 윈저공과 심슨은 6개월 뒤 결혼해 평생 외국에서 살았다.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
샤 자한은 사랑하는 부인 뭄타즈 마할이 숨지자 그녀를 기리기 위해 타지마할을 건설했다. / 사진:WIKIPEDIA.ORG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인도의 타지마할은 사랑과 슬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은 14세 때 동갑내기인 뭄타즈 마할과 사랑에 빠져 5년 후인 1612년 결혼했다. 1631년 뭄타즈 마할이 14번째 아기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자 샤 자한은 슬픔에 빠졌다. 그는 죽은 부인을 기리기 위해 타지마할의 건설을 명했다. 그 건축물이 오늘날의 타지마할로 완성되기까지 22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인부 2만2000명과 코끼리 1000마리가 동원된 대역사였다. 샤 자한은 1666년 사망한 뒤 타지마할의 부인 옆에 나란히 묻혔다.

– 루치라 샤마 아이비타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