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치한’ 바위 덩어리에서 자연의 경이로

미국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 지정 100주년 … 지질학적 가치 인정받으면서 미학적 기준에도 혁신 일어나

협곡 사이로 콜로라도 강이 흐르는 낸코위프 크릭. / 사진:WIKIPEDIA.ORG

1903년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그랜드 캐니언 사우스림에 올라서 “모든 미국인이 꼭 봐야 할 장관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랜드 캐니언만큼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고 미국인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곳은 몇 안 된다.

요즘 그랜드 캐니언을 찾는 방문객은 누구나 그곳이 지구 역사의 산 증거이며 미국적 체험의 상징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들은 그랜드 캐니언이 웅장한 자연의 경이로 인식되기 오래 전 거대한 바위 덩어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모를 듯하다.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 지정 100주년을 맞아 이 곳이 지금처럼 위대한 자연의 경이로 받아들여지게 된 과정과 그 의미를 되짚어 본다.

그랜드 캐니언은 유럽인들이 발견한 북미 대륙 최초의 자연의 경이 중 하나였다. 1541년 가르시아 로페스데 카르데나스가 이끄는 스페인 탐험대가 백인으로서는 최초로 그랜드 캐니언의 사우스림에 올랐다(최초 발견 시기가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138년, 옐로우스톤보다 167년, 요세미티보다 300년 앞선 셈이다). 탐험대 일부는 아래쪽 강을 향해 내려갔지만 도달하는 데 실패했다. 정상으로 돌아간 그들은 그 절벽이 세비야 성당의 종탑보다는 훨씬 높다고 말했다.

1776년에는 프란치스코회의 수사 프란치스코 토마스 가르세스가 콜로라도 강 유역의 원주민 부족들을 뒤쫓다가 사우스림에 도달해 하바수파이 부족을 발견했다. 뉴멕시코주 타우스의 모피 사냥꾼들은 ‘빅 캐니언’이라고 불리는 이 거대한 협곡을 알고 있었지만 피해 다녔다. 그들은 미 육군 공병단 수송로 탐색대를 안내했을 때 대원들을 협곡에서 먼 쪽으로 이끌었다. 그래서 그곳에 이르는 육로나 수로가 개발되지 않았다.

해질 무렵의 노스림. / 사진:WIKIPEDIA.ORG

1857년 미국인 조셉 C. 아이브스 중위는 빅 캐니언을 찾아 증기선을 타고 콜로라도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증기선이 암초와 충돌해 블랙 캐니언 근처에 가라앉은 뒤 아이브스 중위는 다이아몬드 크릭 쪽으로 내려와 협곡 안쪽으로 들어섰다. 사우스림에 오른 그가 1861년 쓴 글은 미국인 탐험가가 남긴 말 중 가장 유명한 말이 됐다.

‘이 지역은 대체로 무가치하다 … 협곡에 들어서면 그곳을 다시 떠나는 것 밖엔 아무 할 일이 없다. 이 무가치한 땅을 방문하는 백인은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로부터 8년 후 존 웨슬리 파월 소령이 협곡을 통해 콜로라도 강을 타고 내려오면서 빅 캐니언을 그랜드 캐니언으로 개명하고 강에서 바라본 풍경을 글로 적어 두고두고 읽히는 이 분야의 고전이 됐다. 1882년에는 지질학자인 클래런스 더튼이 ‘미국 지질학 조사’의 첫 논문에 사우스림에서 바라본 광경을 설명하는 글을 썼는데 이 역시 자주 읽히고 인용된다.

그 후 사람들이 그랜드 캐니언을 보는 시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지질학이 문화적 매력을 지닌 학문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게 주 요인이었다. 그랜드 캐니언은 수송로로서는 가치가 없을지 모르지만 지질학적 관점에서는 ‘경이’ 그 자체였다. 이런 시각 변화에 힘입어 미술가들이 그랜드 캐니언을 풍경화에 담기 시작했다. 파월과 더튼의 묘사에 감동한 토머스 모런과 윌리엄 헨리홈스는 그 장관을 화폭에 옮겨놓았다. 파월과 더튼 덕분에 그랜드 캐니언은 피해야 할 무가치한 땅에서 감탄스러운 자연의 경이로 거듭났다.

그것은 놀라운 인식의 전환이었다. 남쪽으로 흐르던 콜로라도 강이 어떻게 갑자기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4개의 고원을 휘감고 돌게 됐는지는 그랜드 캐니언의 지질학적 미스터리다. 문화적으로도 그와 유사한 신비스런 일이 일어났다. 지식인들은 기존의 미학적 기준을 깨고 목가적인 풍경이나 수려한 고산과는 거리가 먼 이 협곡을 눈을 뗄 수 없는 장관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다른 자연경관과 달리 그랜드 캐니언은 림에 올라서기 전에는 제대로 볼 수 없다. 강이나 산봉우리처럼 멀리서 바라봐서는 그 매력을 알 수 없다. 그 안으로 들어가 림에 오르는 순간 갑자기 눈앞에 장관이 펼쳐진다.

스페인 탐험대가 백인으로서는 최초로 그랜드 캐니언의 사우림에 올랐다. / 사진:WIKIPEDIA.ORG

그랜드 캐니언이 서양 문화에 등장한 방식도 그와 흡사하다. 더튼의 말대로 그랜드 캐니언은 ‘지구상에서 가장 숭고한 존재’지만 그것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풍경에 대한 인간의 사고에 엄청난 혁신’이 필요했다. 유럽인의 감성으로 그렇게 낯선 풍경을 감상하는 데는 완전히 새로운 미학적 기준이 요구됐다. 그래서 그랜드 캐니언은 독보적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랜드 캐니언의 2가지 측면이 그 미학적 가치와 보존 필요성을 뒷받침해준다. 첫째, 그랜드 캐니언은 푸르른 숲과 목가적인 풍경에 초점이 맞춰졌던 기존의 미학적 기준에 민둥산과 협곡, 바위와 흙의 색깔 등을 포함시켰다. 그 덕분에 그랜드 캐니언이 속한 콜로라도 고원 지역은 현재 미국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공원이 밀집해 있다.

둘째, 그랜드 캐니언은 1960년대 댐 건설 계획을 둘러싼 논란을 통해 환경보호주의의 부상에 기여했다. 그랜드 캐니언은 환경보호론자들의 보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문화적 특징을 갖고 있었다. 반면 콜로라도 강 위쪽의 글렌 캐니언은 그런 문화적 특징이 부족해 훼손됐다.

하지만 최근 환경론자들이 볼 때 그랜드 캐니언은 약간 애매한 위치에 있다. 요즘 자연유산이 그 보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지질학적 기념물을 넘어서서 살아있는 자연으로서 생물학적 다양성과 희귀 동식물의 서식지로서의 역할이 강조된다. 물론 그랜드 캐니언은 지질학적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이로운 존재다. 따라서 그 거대한 품 안에 생물이 전혀 살지 않는다고 해도 문화적 영향력을 지닌다. 또한 그 규모가 매우 커서 인공적으로 안쪽 협곡에 물을 가득 채워 넣지 않는 한 그 형태를 영구히 변형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인간이 그랜드 캐니언을 훼손시킬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탁한 공기로 시야를 가리거나 사회적 소음으로 고요한 감상을 방해하는 것이 그 예다. 그랜드 캐니언의 위대한 영향력은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그것을 온전히 바라볼 때 느끼는 갑작스런 충격에서 비롯된다. 어느 순간 림이 멀찌감치 물러나면서 갑자기 협곡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그 무엇의 방해도 받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자 충격이다. 그랜드 캐니언이 그 문화적 마력을 유지하려면 이런 느낌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랜드 캐니언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광산과 댐, 산업관광 등 과거의 위협 요소들이 이제 인류세(인류로 인한 지구온난화 및 생태계 침범을 특징으로 하는 현재의 지질학적 시기)의 총체적 훼손으로 진화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말대로 그랜드 캐니언에 가장 필요한 건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는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자연의 경이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을 훼손시키는 것밖에 없다”면서 “우리의 자녀와 그 자녀를 위해, 그리고 우리 뒤에 올 모든 이들을 위해 그것을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와 침입종(외부에서 들어와 다른 생물의 서식지를 점유하는 종), 무책임한 글로벌 경제, 사람들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일을 할 수 있다. 그냥 내버려두는 건 할 수 있지 않은가?

– 스티븐 파인

※ [필자는 애리조나 주립대학 생명과학 대학원 교수다. 이 기사는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