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 휴대전화부터 터치 스크린까지

실리콘밸리의 혁신 60년을 통해 시대에 따라 진화한 기술을 돌이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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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PC 알테어 8800(왼쪽), 신용카드 크기의 라즈베리 파이와 USB 메모리 스틱.

개인용 컴퓨터(PC)
해가 오고 가면서 PC의 디자인과 성능에 방해됐던 크고 무겁고 다루기 어려운 특징도 하나씩 사라졌다.

1975년. 미국 컴퓨터회사 MITS는 전자제품 잡지 파퓰러 일렉트로닉스 1월호 표지에서 사상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알테어 8800’를 발표했다. MITS 공동창업자 에드 로버츠가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 PC)’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다.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I’을 제작해 동호회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 선보였다. 컴퓨터 판매점 바이트숍에서 ‘애플I’ 50대를 주문 받자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공동 창업했다.

1977년. ‘애플II’가 전문가와 애호가 집단을 넘어 폭넓게 인기를 끌자 애플은 그 컴퓨터를 학교에 무상 보급했다. ‘애플II’는 가변 전력공급장치, 키보드, 메인 로직 보드, 캐이스, 게임 패들, 게임 ‘브레이크아웃’으로 구성된 번들로 판매됐다.

1981년. IBM이 첫 대중용 PC ‘오스본1’을 발표했다. 메모리 성능보다 이름값으로 더 많이 팔렸다. 최초의 대량생산된 휴대용 컴퓨터로 무게 약 10㎏, 가격은 1795달러였다.

1983년. 애플이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컴퓨터 시스템을 이용하기 위해 기존의 명령어를 입력하는 방식과 달리 아이콘을 마우스로 작동해서 사용하는 방식)를 사용한 최초의 PC ‘리자’를 선보였다. 제록스 파크(PARC, 팔로알토연구소)에서 개발된 개념을 바탕으로 했다. GUI는 PC 진화의 이정표가 됐다.

1984년. 슈퍼볼 광고를 통해 애플 ‘매킨토시’가 전 세계에 처음 알려졌다. 마우스로 작동하고 GUI를 사용하는 최초의 PC로 이름을 떨쳤다. 맥페인트와 맥라이트 등 마우스 응용 프로그램이 사용됐고 가격은 2500달러였다.

1998년. 애플에서 쫓겨났던 잡스가 복귀한 직후 애플은 ‘아이맥’을 선보였다. 데스크톱 컴퓨터 시리즈로 사용하기 편해 인기가 높았다. 애플이 1990년대 중반 도산 위기를 넘기는데 크게 기여했다.

2008년. 애플은 디자인 단순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한 끝에 ‘맥북 에어’를 출시했다. 기존 제품보다 얇고 가벼운 랩톱으로 배터리 수명이 길었다. 얇은 디자인을 위해 하드 디스크를 반도체 디스크 SSD(메모리 방식의 저장 장치)로 교체한 최초의 컴퓨터다.

2012년. 영국의 라즈베리 파이 재단이 신용카드 크기의 단일보드 컴퓨터를 제조해 25달러에 팔았다. ‘라즈베리 파이’는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를 별도로 갖추면 일반 PC와 똑같이 사용할 수 있다.

프린터
컴퓨터 인쇄 기술은 반 세기 동안 인보이스와 우편 주소 스티커 인쇄에서 3D 장기 복제까지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1977년. 제록스 파크가 1972년 최초의 레이저 프린터를 발명했지만 1977년에야 상용화됐다. 레이저로 실린더 잉크 드럼에 이미지를 새긴 뒤 종이에 압착해 인쇄하는 방식이었다.

2015년. 스포츠 용품 제조업체 아디다스가 3D 프린터로 만든 운동화를 주문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아디다스는 맞춤형 3D 프린팅 운동화가 대량 생산되는 제품보다 발을 더 잘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컴퓨터 저장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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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기에 명령을 입력하는 IBM 천공카드(왼쪽), 5인치 플로피 디스크.

1951년 엔지니어들은 365m 길이의 테이프에 데이터와 코드를 저장했다. 그래도 용량이 3메가바이트에 불과했다. 지금은 초소형 휴대장치에 그 10만 배를 저장할 수 있다.

1928년 컴퓨터가 발명되기 전 IBM은 계산기에 명령을 입력하는 가로 80단, 세로 12단의 천공카드를 개발했다. 정보를 디지털로 저장한 첫 사례였다.

1951년.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컴퓨터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컴퓨터 회사 유니백(UNIVAC)은 마그네틱 테이프를 새로운 데이터 저장 방식으로 도입했다.

1956년. IBM이 최초의 디스크 저장 드라이브를 개발해 기업체들이 계정의 상황을 디지털로 즉시 확인할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을 제공했다.

1971년. IBM이 8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출시했다. 최초의 휴대용 저장 장치였다.

1982년. 8인치·5인치 디스크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로 대체됐다. 1984년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내장된 ‘애플II’가 나왔다.

1984년. 플로피 디스크 대신 CD가 데이터 저장 수단으로 등장했다. 읽기 전용 메모리로 제작된 CD는 게임을 하고 음악을 저장하는 수단 외에 데이터 저장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2000년. M-시스템스와 IBM이 USB 플래시 드라이브를 출시하면서 플로피 디스크 시대가 막을 내렸다. 2000년대 초 외장 하드 디스크가 곧 뒤따랐다.

2006년.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부업으로 ‘아마존 웹 서비스’를 시작했다. 드롭박스 같은 업체를 위해 클라우드 저장 서버를 판매했다.

2011년. 애플이 아이클라우드를 발표했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 컴퓨터 등 애플 제품의 모든 데이터를 동기화해줄 뿐 아니라 가상 서버에 모든 것을 저장해주는 서비스다.

운영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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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윈도10 운영체제(왼쪽). IBM PC를 위해 MS가 개발한 MS-DOS 운영체제.

컴퓨터는 응용 프로그램과 하드웨어 사이에 중개 수단이 없으면 파일 하나를 열려고 해도 일일이 코드를 작성해야 한다. 그 수고를 덜어준 것이 운영체제다.

1969년. 최초의 운영체제 유닉스(UNIX)가 발표됐다. 켄 톰슨과 데니스 리치가 자신들이 개발한 비디오게임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었다.

1981년. 마이크로소프트(MS)는 IBM PC를 위해 MS-DOS 운영체제를 개발했다. 그로 인해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수년 동안 좌절을 겪었다. 검은 화면 바탕에 밝은색 글자를 보여주는 간단한 프로그램이었다.

1989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 처음 창업한 회사 넥스트가 ‘NeXTSTEP’이라는 컬러 운영체제를 발표했다. 그것이 애플 OS X의 바탕이 됐다.

1995년. 세계가 고대하던 MS의 ‘윈도 95’가 출시됐다. 사용하기 간편한 ‘시작’ 메뉴, 응용 프로그램 아이콘, 마우스 우측 클릭 메뉴가 새로운 특징이었다.

2001년. 스티버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후 첫 애플 운영체제 ‘맥 OS X’가 발표됐다. 약간 느린 게 흠이었다.

2015년. MS가 ‘시작’ 메뉴를 다시 도입한 ‘윈도 10’을 출시했다. 애플은 멀티태스커를 위한 화면 분할이 가능한 특징을 가진 엘 캐피탠(El Capitan) OS를 선보였다.

착용형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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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걸이 수 등 건강관리 항목을 측정해주는 핏비트(왼쪽), 애플워치 설명회.

컴퓨터가 개발된 이래 발명가들은 기술을 일상 복장의 일부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1972년. 최초의 착용형 기술은 고상한 목적으로 개발된 게 아니었다. 키스 태프트는 신발 안에 넣어 엄지발가락으로 작동시키는 컴퓨터 ‘조지’를 발명했다. 도박장 블랙잭 테이블에서 몰래 카드를 세기 위해 고안했다.

1975년. ‘애플 워치’의 초보적인 예고편 ‘펄사(Pulsar)’는 손목에 차고 사용할 수 있는 시계 겸 계산기로 가격이 자그마치 3950달러였다.

1979년. 소니 워크맨이 음악 재생 시장에서 혁명을 일으켰다. 음악 애호가들은 헤드폰을 사용해 언제 어디서든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1989년. 리플렉션 테크놀로지가 ‘프라이빗 아이(Private Eye)’를 출시했다. 머리띠에 부착된 작은 컴퓨터 화면이다. 사용자는 텍스트를 읽고 손에 든 키보드로 텍스트를 입력할 수 있었지만 그외 다른 용도는 없었다.

2000년. 걷거나 운전하면서 통화할 수 있도록 해주는 블루투스 무선 기술이 휴대전화 혁명을 일으켰다.

2006년. 나이키+아이팟이 신발 속에 들어가는 소형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통해 달린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2009년. ‘핏비트 클립’이 시판됐다. 사용자의 걸음걸이 수만이 아니라 심박동수와 수면 패턴까지 측정해줬다. 2013년 ‘핏비트’는 손목밴드로 진화했다.

2013년. 구글이 컴퓨터화된 안경 ‘구글 글래스’를 선보였다. 그러나 일반인의 테스트 결과 평가가 좋지 않아 컴퓨터 안경 개발은 무기한 보류됐다.

2015년. 고대하던 애플 워치가 출시됐다. 건강 관리를 뛰어넘어 손목에 찬 아이폰 역할까지 한다. 초기 판매는 저조했지만 마니아들은 격찬했다.

마이크로프로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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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휴대전화 모토롤라 다이나택(왼쪽)과 T모바일 사이드킥.

집적회로(IC)의 유일한 단점은 특정 과제만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처럼 특화된 까닭에 상업적으로 생존할 수 없었다. 그 대안으로 개발된 것이 마이크로프로세서다. 하나의 부품에 연산 장치, 해독 장치, 제어 장치 등이 집적된 형태다.

1971년. 혁신이 대개 그렇듯이 마이크로프로세서도 동시에 여러 곳에서 개발됐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가 인텔과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인텔의 ‘4004 프로세서’가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인정 받았다.

2015년. 인텔의 5세대 마이크로프로세서에는 트랜지스터 13억 개가 들어 있다. 인텔은 이 프로세서의 배터리 수명도 아주 길어 장편 드라마 ‘다운턴 애비’의 시즌1 전체를 볼 수있다고 주장한다.

휴대전화 1876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토머스 왓슨에게 처음 전화를 걸어 “이쪽으로 좀 오게.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라고 말한 이래 전화기는 큰 변화를 겪었다. 지금 우리는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다.

1973년. 최초의 휴대전화는 모토롤라의 마틴 쿠퍼가 개발한 ‘다이나택’이었다. 무게 0.8㎏인 ‘벽돌’ 같은 이 모델은 1983년 시판됐고 가격이 4000달러였다.

1989년. 모토롤라가 최초의 폴더폰 ‘마이크로택’을 선보였다. 계산기가 내장됐고 처음으로 주소록을 갖췄다.

1999년. ‘노키아 3210’이 최초로 대량 판매된 휴대전화였다. 내장 안테나를 갖췄고 SMS 문자 메시지와 사진 전송이 가능했으며 게임 3가지가 들어 있었다.

2000년. 삼성의 ‘SPH-M100 업로어’가 휴대전화를 이용한 음악 저장·재생 서비스를 개척했다. 한편 최초의 카메라폰 ‘J-SH04’가 일본에서 나왔다.

2002년. 화면이 이전의 어떤 제품보다도 훨씬 큰 T-모바일의 ‘사이드킥’이 시판됐다. 키보드가 내장됐고 사용자는 메신저 같은 응용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었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터치스크린과 혁명적인 앱스토어 서비스를 도입했다.

– 뉴스위크 스페셜 에디션

[이 기사는 뉴스위크 특별호 ‘실리콘밸리의 창시자들: 60년 혁신을 돌아본다(The Founding Fathers of Silicon Valley, Exploring 60 Years of Innovation)’에서 발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