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걸 다른 방식으로 보여줄 뿐”

1980~90년대 기괴한 의상으로 유명했던 프랑스 디자이너 티에리 뮈글러 회고전… 의상 200여 점과 사진·스케치·비디오 작품 선보여

뮈글러의 디자인을 주제로 한 최초의 단독 전시회가 캐나다의 몬트리올 미술관(MMFA)에서 9월 8일까지 열린다. / 사진:ⒸNICOLAS RUEL

패션 디자이너이자 사진가인 티에리 뮈글러의 세계에는 환상적인 생명체들이 가득하다. 청록색 깃털과 비늘이 있는 돌연변이 생물체, 아름다운 여인으로 탈바꿈한 스포츠카, 은빛 곤충처럼 생긴 요염한 여인, 섹시한 사이보그, 어깨가 강조된 밝은 네온색 옷을 입은 1980년대의 파워풀한 여성 등등.

최근 몇몇 유명인사가 오래 전 뮈글러가 제작한 의상을 공개석상에서 입어 다시 이목을 집중시켰다. 래퍼 카디 B.는 지난 2월 초 그래미상 시상식 레드카펫 행사와 축하공연에서 뮈글러가 1995/1996 가을·겨울 쿠튀르 컬렉션에서 선보인 의상을 입었다. 지난 2월 중순에는 킴 카다시안이 할리우드 뷰티 어워즈 시상식에서 뮈글러의 1998 봄·여름 컬렉션 중 붕대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현재 캐나다의 몬트리올 미술관(MMFA)에서는 뮈글러의 디자인을 주제로 한 최초의 단독 전시회(‘Thierry Mugler Couturissime’, 9월 8일까지)가 열린다. 하지만 이 전시회는 여느 회고전과는 성격이 다르다. 큐레이이터 티에리 막심 로리오는 “뮈글러는 장례식 같은 전시회를 원치 않았다”며 “향수 어린 눈으로 과거를 바라보기보다는 순수하게 자신의 작품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열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2013년 로리오가 큐레이팅한 장-폴 고티에의 회고전을 본 사람이라면 이 전시회장의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홀로그램을 많이 사용하고 전시실을 주제 별로 꾸민 것이 그때와 흡사하다. “고티에 회고전의 보강판이라고 보면 된다”고 로리오는 말했다.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미셸 르미유 등 많은 전문가가 참여했다. 르미유는 맥베스 전시실(1985년 뮈글러가 무대의상을 담당했던 셰익스피어의 연극 ‘맥베스’를 주제로 했다)의 홀로그램을 제작했다. ‘맥베스’ 연극 공연이 끝난 후 무대의상 모두가 한자리에 전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NICOLAS RUEL

이번 전시회에는 ‘맥베스’ 무대의상 이외에 뮈글러가 1973~2001년 디자인한 옷 약 200점과 사진·스케치·비디오 작품이 전시된다. 1992년 뮈글러가 감독한 조지 마이클의 ‘Too Funky’ 뮤직 비디오도 볼 수 있다. 또 그가 기 부르댕, 헬무트 뉴튼 등 유명 패션 사진가들과 함께 작업한 사진을 모아놓은 전시실도 있다.

뮈글러뿐 아니라 뉴튼과 부르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좀 당혹스러운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세 사람 모두 성차별적인 발언을 일삼았던 것으로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 부르댕과 뉴튼의 사진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묘사했고(여성의 신체 일부만 강조한 사진도 꽤 있다) 뮈글러는 노출이 심하면서도 여성의 신체를 억압하는 듯한 의상을 제작했다. 이런 비판에 대해 로리오는 “뮈글러의 세계에는 남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만화책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여성에게 권한을 부여한다는 개념에 흥미를 느꼈다. 그것은 여성을 억압하거나 차별하는 것과는 다르다.”

로리오는 또 1994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실린 뮈글러와 유명한 페미니스트 예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의 대담을 언급했다. 이 대담은 매우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사람 사이에서 공통점과 유대감이 느껴져 독자를 놀라게 했다. 다음은 대담 중 일부를 발췌한 것으로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노클린: 당신의 작품에 표현된 여성성은 너무 극단적이어서 그 여성들은 성적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보인다.

뮈글러: 거기서 보여준 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지 내가 만들어낸 게 아니다. 단지 다른 방식으로, 더 좋게 포장해서 보여줬을 뿐이다.

노클린: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보는 사무실의 어여쁜 여비서 같은 스타일이 아니다.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말하자면 여성의 원형이랄까?

뮈글러: 그러니까 쉽게 공감할 수 있지 않나?

1990년대 뮈글러의 패션쇼는 퇴폐적이고 연극조의 과장이 섞여 있었다. 나오미 캠벨과 크리스티 브링클리, 린다 에반젤리스타 등 당대의 슈퍼모델을 자주 캐스팅했고, 호화스러운 무대에서 1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요즘은 흔히 보는 모습이지만 25년 전만 해도 매우 참신한 시도였다. 각각의 모델은 착용한 옷에 따라 하나의 캐릭터를 떠올려 평범한 패션쇼라기보다는 행위예술 작품 같았다.

이 전시회에는 뮈글러(오른쪽)가 패션 사진가 헬무트 뉴튼과 공동 작업한 사진도 전시됐다. / 사진:THE HELMUT NEWTON ESTATE

이런 호화로움은 뮈글러의 향수 제작(패션 하우스들이 호화 쿠튀르 쇼를 열기 위한 자금 마련 수단으로 자주 이용한다) 기술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1992년 나온 ‘엔젤’은 바닐라·초콜릿·캐러멜 등 달콤하고 맛있는 향이 나는 새로운 향수 장르(‘구르망’)를 탄생시켰다. “매출 면에서 샤넬 넘버 5를 누를 만한 향수였다”고 로리오는 말했다. 뮈글러는 창조성뿐 아니라 사업에서도 천재라고 그는 덧붙였다.

하지만 2000년대 초 뮈글러는 잘 나가던 자신의 패션 왕국을 떠났다. 2009년 비욘세의 ‘아이 앰…’ 월드 투어에서 무대의상을 맡은 걸 빼고는 단편영화를 감독하는 등 패션과 무관한 일에 몰두했다. 이 시기에 가장 눈에 띄었던 건 뮈글러의 변신이었다. 그는 예명 티에리 대신 본명인 만프레드로 활동하며 극단적인 보디빌딩과 성형수술로 외모를 탈바꿈시켰다. 그는 새롭고 놀라운 방식으로 창조적 진화를 이어갔다.

뮈글러의 패션 브랜드는 2010년 레이디 가가의 스타일리스트 출신인 니콜라 포르미체티의 지휘 아래 반짝 부흥기를 맞았고, 현재 케이시 캐드월라더가 이끄는 소규모 컬렉션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의 역삼각형 실루엣이 유행하던 1980년대와 90년대의 명성은 회복하지 못 했다. 역삼각형 스타일을 뮈글러처럼 효과적으로 살린 디자이너도 없다. 마돈나부터 자크 랑 당시 프랑스 문화장관까지 많은 유명인사가 그의 정장을 입었다.

이번 전시회는 회고전이 꼭 과거의 향수만 좇는 행사는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뮈글러는 MMFA의 기록보관소에서 찾아낸 자신의 옛 디자인을 이용해 새롭고 흥미진진한 뭔가를 만들어냈다.

– 알렉산더 카발루조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