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축구팀 레스터 시티의 ‘킹 파워’

2010년 구단주가 된 태국 면세점 사업가 비차이 회장, 올해 우승을 눈앞에 두고 그의 ‘현장형’ 리더십 주목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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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차이 회장은 레스터의 홈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헬리콥터를 타고 경기장을 찾아 킥오프 전에 승려들이 그라운드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의식을 치른다.

2007년 태국인 사업가 비차이 락스리악소른(58)은 재산 추정액 2억 달러로 경제지 포브스의 태국 최고 부호 리스트에서 21위였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영국 프리미어 리그 레스터시티(이하 레스터) 구단주인 그는 자산 가치 28억 달러로 4위에 올라 있다. 새로운 부와 함께 새 이름도 생겼다. 태국 국왕이 수여한 경칭인 비차이 스리바다나프라바다.

레스터는 2010년 4000억 달러가 안 되는 가격에 비차이 회장에게로 넘어간 뒤 구단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영국인은 태국 이름을 발음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가 간단히 비차이로 불리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폴로 스포츠 열성 팬인 비차이 회장은 레스터에서 유명인사다(그리고 사랑받는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그는 홈경기가 열리는 날 헬리콥터를 타고 경기장을 찾으며 킥오프 전에 승려들이 그라운드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의식을 치른다.

지난해 3월까지 9개월 동안 비차이 회장의 개인 비서로 일했던 레스터시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알렉스 힐튼은 이렇게 돌이켰다. “처음 비차이를 만났을 때 승려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승려들에게 잡념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여직원은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딴 세상처럼 기이한 광경이었지만 억만장자라는 점 말고는 (그런 점을 감안할 때) 그는 오히려 상당히 평범한, 그런 환경에 비춰 지극히 보통 사람이었다.”

비차이 회장은 상당수 태국인과 마찬가지로 영국 축구의 열성 팬이다. 힐튼은 그를 항상 축구에 정통한 현장형 구단주였다고 돌이켰다. “그는 진정한 축구 팬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가 열리면 일찍부터 TV를 지켜보며 모든 선수에 관한 정보를 꿰고 있었다. 그 뒤 레스터 경기를 관전하고 그 다음 경기까지 지켜본다. 정말 경기에 열광한다. 그는 축구 팬으로서 구단을 인수했다.”

레스터는 불과 5년 사이 영국 축구 2부 리그(챔피언십)에서 프리미어 리그 우승 문턱까지 올라섰다. 레스터의 혜성 같은 등장은 비차이 개인의 부상과 닮은꼴이다. 비차이 회장은 다른 많은 태국 재계 엘리트처럼 화교 출신이지만 수세대에 걸쳐 기반을 구축한 구세대 중국인 사업가 가문 출신은 아니라고 앤드류 맥그리거 마샬은 설명한다. 마샬은 ‘위기의 왕국, 21세기 태국 민주주의 투쟁(A Kingdom In Crisis: Thailand’s Struggle For Democracy In The Twenty-First Century)’의 저자다. “그의 배경은 상당히 불투명하며 방대한 부의 대부분을 최근에 쌓았다”고 마샬은 말했다.

비차이 회장은 1989년 면세점 업체 킹 파워를 창업하고 방콕 중심가 마하툰 플라자에 첫 매장을 열어 태국 수공예품을 판매했다. 훗날 당시 태국 국제공항이던 돈 무앙에 면세품 수령 센터를 설치했다. 훗날 킹파워의 높아진 위상을 감안하면 그것은 비교적 사소한 발전이었지만 면세물품을 판매하는 민간기업의 공항 내 입지가 처음 허용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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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차이 회장은 레스터의 성공을 통해 태국의 국제 브랜드 대사로 입지를 다짐으로써 태국 정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안전한 정치적 방어막을 구축하고 있다.”

비차이 회장은 킹 파워 창업 전에는 정·재계에서 대체로 무명인사였다. 방콕의 한 민간조사원은 “킹 파워를 창업할 때까지 비차이란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며 “필시 4만 바트(약 130만원)의 월급을 받는 중간 관리자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조사원은 태국의 엄격한 명예훼손법 때문에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비차이 회장에겐 태국 텔레콤 재벌이자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주 탁신 친나왓의 2001년 총리 당선과 그의 역점사업인 방콕 수완나품 공항의 2006년 개장이 전환점이었다. 비차이 회장은 탁신 측근들을 포함한 태국 지배계급과의 연줄 덕분에 신공항에서 면세품 판매 독점권을 획득했다. “사실상 (화폐) 발권 면허였다”고 마샬은 덧붙였다.

“2000년대 초에도 부자였지만 비차이가 슈퍼리치 대열에 합류한 건 수완나품 공항의 모든 소매공간에 대한 사업장 개설 허가를 획득한 이후였다”고 방콕의 민간 조사원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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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는 2010년 약 4000억 달러에 비차이 회장에게로 넘어간 뒤 구단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비차이 회장은 엘리트층뿐 아니라 왕가에서도 확실한 연줄을 잡았다고 민간조사원은 말했다. 비차이 회장의 기부는 1990년대 태국 왕족이 후원하는 자선단체를 시작으로 2000년대 이후까지 이어졌다. 2006년에는 부미볼 국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국왕 폐하 사랑해요’라는 문구가 새겨진 노란색 암밴드 수백만 개를 제작했다고 마샬은 돌이켰다.

그런 연줄 덕분에 킹 파워와 경영자가 2006~2008년의 혼란을 견뎌낼 수 있었다. 혼란은 갈수록 궁지에 몰리던 탁신 총리가 군사 쿠데타로 축출되면서 시작됐다. 2007년 총선에서 친탁신 당이 승리했고 그 뒤 2008년엔 반탁신 노란 셔츠 운동이 일어났다. 몇 주, 몇 달 동안 수천~수만 명의 태국인이 거리로 몰려나왔고 한 번은 시위대가 수완나품 공항을 점령하기도 했다. 비차이 회장은 친탁신과 반탁신 지배계급을 모두 자기 편으로 만들어 살아남았다. 2010년에는 억만장자이자 태국 기업계의 손꼽히는 거물로 올라섰다.

비차이 회장은 2010년 레스터를 우승팀으로 만들겠다는 야심만만한 포부를 갖고 구단을 인수했다. 그런 약속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는 환영과 조롱이 교차했다. 전 비서 힐튼은 “처음부터 레스터를 리그 우승팀으로 만들겠다고 말해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고 IB타임스에 말했다. 그러나 레스터는 2015~2016년 기적처럼 승승가도를 달리기 전부터 유망한 팀이었다. 3만2000석의 스타디움과 열성 팬 기반을 갖춘 데다 지역 라이벌이 거의 없다. 잉글랜드 중부지방의 팬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지역 강호로 부상할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비차이 회장은 레스터가 프리미어 리그에서 승승장구하기 전까지 많은 좌절을 겪었다. 그가 투자한 만큼 그라운드에서 배당이 나오지 않았다. 레스터가 나이젤 피어슨 전 감독 아래서 패배를 거듭할 때 비차이 회장은 “내가 가서 감독을 만나봐야겠다”며 스타디움의 길게 뻗친 통로로 내려가곤 했다고 힐튼은 돌이켰다. 그러나 기분 좋은 날에는 손님 접대용으로 약 70만원짜리 와인을 다량 주문해 절반을 남기며 재력을 과시하곤 했다. 태국으로부터 장성·정치인·고위인사들을 수시로 초대해 그라운드에서 접대했다.

“손님들은 그에 대한 인사로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 아주 특이한 광경이지만 태국에선 그가 인간의 지위를 넘어선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며 힐튼은 비차이 회장의 태도가 때로는 직원들의 반발을 산다고 밝혔다. “일부 직원은 비차이 회장의 말투에 불만을 품고 있지만 그는 자신이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그런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그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며 단지 문화적 배경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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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는 불과 5년 사이에 프리미어 리그 우승 문턱까지 올라섰다. 레스터의 혜성과 같은 등장은 비차이 개인의 부상과 닮은꼴이다.

레스터의 성공은 비차이 회장의 위상을 크게 높여놓았다. 2006~2008년 정치적 위기를 견뎌내면서 사업성공을 가로막는 커다란 걸림돌이 제거됐으며 태국 내에서 수익성 높은 면세점 사업을 독점한다는 점에서 더 큰 부자가 되는 길 외에는 다른 가능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레스터가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 TV 중계권 수입만 1억2800만 달러에 달하며 챔피언스 리그에서 평범한 성적만 올려도 1000만(약 170억원)~3000만 파운드(약 500억원)의 순수익을 거두게 된다.

“비차이 회장은 영국 축구팀 운영비를 감당할 만한 재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영국 축구가 큰 인기를 모으는 태국에서 그것은 그의 위상을 크게 높인다. 비차이 회장은 레스터 팀의 성공을 통해 태국의 국제 브랜드 대사로 입지를 다짐으로써 태국 정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안전한 정치적 방어막을 구축하고 있다.”

방콕에서 비차이 회장과 킹 파워의 부상을 다년간 지켜봐 온 민간조사원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 태국 정치에서 그가 오래도록 건재한 비결은 정치적 야망이 없어서라고 믿는다. 정치적 재기를 계속 노려 사실상 망명자 신세가 된 탁신 친나왓과 달리 비차이 회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사업가다.

맨체스터에서 3년 전 레스터로 이주한 힐튼은 비차이 회장과 그의 출신국에 대한 레스터 서포터들의 관심에 주목했다. 영국 팬들은 탁신 친나왓이 맨체스터 시티 구단주였을 때 태국에서 그의 의심스런 인권 기록과 관련된 스캔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레스터 하늘이 그와 같은 먹구름으로 뒤덮이기를 원치 않는다.

“아무도 폭군이 구단주로 오기를 원치 않는다”고 힐튼은 말했다. “시즌 입장권을 구입하고 레스터 문신을 새겨 넣은 평범한 팬이 태국의 최신 뉴스를 확인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태국의 현재 상황은 레스터의 앞날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들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구단주로 남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구단주가 올바른 인물인지 알고 싶어 한다.”

– 올랜도 크로크래프트 아이비타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