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이 부귀영화의 필수 자격인 세상을 위하여

고금의 지혜 솜씨 있게 통폐합한 이훈범의 신저 ‘품격’, 몸을 움직여 행동하는 ‘범절’의 의미 되새긴다
베테랑 기자인 저자 이훈범은 품격의 핵심은 ‘범절’이라고 말한다. / 사진:KIM WHANG-YUNG

‘품격을 완성하는 연금술 교본’을 표방하는 이 에세이집을 한마디로 소개한다면, 고품격 자기계발서다. 재물이나 권력, 행복과 성공의 비법이나 원리를 제시하는 출판계 자기계발서 시장은 누가 언제 내 코를 베어 갈지 모르는 뜨거운 ‘레드오션(red ocean)’이다. 웬만해서는 명함도 내밀기 힘들다. 수십 년 전 언론계에 데뷔해 칼럼만 10여 년 넘게 쓰고 있는 저자가 쓴 ‘품격’의 차별성은 품격이라는 단어 하나로 고금의 지혜를 솜씨 있게 통폐합한 데 있다.

대다수 사람은 임종의 자리(deathbed)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를 두고 고민한다. 저자는 삶의 방식을 두 가지로 대별한다. ‘품격 있는 삶’과 ‘품격 없는 삶’이다. 이 기준을 잣대로 삼는다면, 세상을 뜰 때 ‘아! 나는 품격 있게 살았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인생 잘 살다 가는 것이다.

베테랑 기자인 저자 이훈범은 품격 확보의 길을 다음과 같이 3단계로 제시한다. 첫째, 조금 불편하라. 둘째, 신독(愼獨)하라. 셋째, 역지사지(易地思之)하라.

그렇다면 품격의 핵심은 무엇일까. 예컨대 자신감일까.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력이나 재물, 아니면 독서와 체험을 통해 얻은 지식이나 지혜일까. 저자에 따르면 품격의 알맹이는 ‘범절’이다. 우리 언어생활에서 예의(禮儀)와 범절(凡節)은 한데 묶어 예의범절(禮儀凡節)이 된다. 한데 저자는 예의범절이나 예의보다는 범절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는 심지어 ‘품격 있는 삶’과 ‘품격 없는 삶’을 달리 표현하면 ‘범절 있게 사는 것’과 ‘범절 없게 사는 것’으로 우리의 인생살이 방법을 양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의와 범절의 차이는 뭘까.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예의가 태도라면, 범절은 행동이다. 예의가 어떤 일을 대하는 마음과 몸가짐을 말한다면, 범절은 몸을 움직여 그 일을 하는 것이다. 보다 적극적인 개념이란 말이다.”

예의, 범절, 예의범절이 과연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봤다. 이렇게 나온다.

예의: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하여 예로써 나타내는 말투나 몸가짐”
예의범절: ”일상생활에서 갖추어야 할 모든 예의와 절차”
범절: ”법도에 맞는 모든 질서나 절차”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존경의 뜻을 표하는 것’은 일상 생활에서 상당 부분 ‘아부’다. 예의와 절차를 잘 지키면 적어도 욕은 안 먹는다. 예의와 예의범절은 세속인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요령인 것 같다. 그런데 법도의 ‘법(法)’이 좀 걸린다.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예의범절이라는 한 단어로 엮이는 범절은 사실 예의나 예의범절과 충돌하는지도 모른다.

‘품격’의 서술 방식은 ‘단순유식(單純有識)’하고 물러섬이 없다. 흔히들 단순무식(單純無識)해야 용감할 수 있고 용감해야 성공한다고 말한다. 용감한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을 자기 짝으로 쟁취한다. “공부를 너무 많이 한 목사는 목회자로서 성공할 수 없다”는 말까지 있다. 유식하면 생각이 복잡하게 돼 성공에 필요한 행동이 힘들기 때문이다.

‘품격’은 유식해도 단순할 수 있다는 것, 즉 명쾌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유식에서 출발하건 무식에서 출발하건 단순함은 실천의 원천이다.

품격 / 이훈범 지음 / 올림 펴냄 / 1만2000원

사람들이 출세하려는 이유에 대해 저자의 답은 아주 간단하다. “폼 나게 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폼’은 범절과 품격의 또 다른 동의어·유사어다. 폼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꿰뚫는다. “앞뒤가 바뀐 사람들이 많다. 폼나게 살려고 출세하려는 게 아니라, 출세하려고 주저없이 폼을 버린다는 이야기다.”

이 책은 동서 아포리즘의 향연이다. 예컨대 보들레르의 산문시 ‘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라도’의 첫 소절 “인생은 병원, 환자들은 저마다 침대를 바꾸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가 나온다. 또 미국 시인 엘라 휠러 윌 콕스의 ‘고독’도 인용했다. 이렇게.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으리라.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되리라. 슬픔으로 오래된 이 세상은 즐거움을 빌려야 할 뿐, 고통은 자신의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저자 또한 공감이 가는 아포리즘을 만들었다. 몇 가지 뽑아보면 이렇다.

“인생을 마무리할 때 행복한 순간을 떠올릴 수 있는 충분조건과 후회를 적게 할 필요조건은 오로지 품격이다. 품격은 행복과 비례하며 후회와 반비례한다는 말이다.”
“겸손이 앞서면 품격이 뒤따른다.”
“품격은 스스로 얻고 스스로 잃는다.”
“속물근성에는 우월감과 열등감이 뒤섞여 있다. 돈이 많다는 우월감과 그런데도 품격은 떨어진다는 열등감이다.”
“막말하고 싶을 때가 가장 침묵이 필요한 순간이다.”
“비극은 흔히 연줄을 인연으로 착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불교에서는 인(因)과 연(緣)을 구분한다. 인이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일차적으로 작용한 직접적 힘이고, 연은 그런 작용을 간접적으로 도운 이차적 힘이다.”

‘품격’은 저자의 고백록·자서전이기도 하다. 다음과 같은 고백으로 책이 끝난다. “아, 또 건방이 고개를 쳐든다. 품격 있는 삶이란 이토록 어렵다.”

이 책의 반은 개인의 품격, 나머지 반은 사회의 품격을 논하고 있다. 부귀영화를 얻으려면 품격을 버려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품격 인간이 되지 못하면 부귀영화를 꿈꿀 수 없는 사회… 아마도 저자는 그런 사회를 꿈꾸는 것 같다.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