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를 유혹하는 미지의 땅

전통 음식에 국제적인 맛 접목시킨 메뉴로 관광객 사로잡는 ‘조지아’…땅에 묻은 항아리에서 포도 발효시킨 와인도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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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로 된 둥근 천장이 있는 지하 식당 블랙 라이언. 트빌리시에는 이렇게 독특한 멋을 자랑하는 레스토랑이 많다.

1998년 처음 조지아에 갔을 때 트빌리시에 있는 베시스(Betsy’s) 호텔에 묵었다. 조지아 정부가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압카지아와 남오세티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기 전이어서 트빌리시가 난민으로 가득 차지 않았을 때다. 베시스라는 이름은 그곳에서 외교관과 구호요원들을 상대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던 미국인 베시 해스켈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내가 호텔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반가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 관광객이로군요! 지난해 한 명이 다녀간 후 당신이 처음이에요.”

소련 붕괴 후 경제가 어렵던 때라 전기가 자주 끊기고 난방이 제대로 안 됐으며 변변한 식당도 별로 없었다. 소련 기관원들이 이용하던 식당들은 문을 닫고 길거리에 돼지고기 바비큐를 파는 가판대가 생겨났다. 또 곧 무너질 듯한 오두막에서 할머니들이 킨칼리(고기에 허브를 섞어 만든 소와 걸쭉한 국물을 넣은 만두)를 빚어 팔았다. 손님이 올 때마다 새로 빚기 때문에 시간이 꽤 걸렸다.

난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트빌리시에서 살았는데 지금도 그곳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요즘도 친구들을 만나러 자주 간다. 난 그동안 조지아의 놀라운 변화를 목격했다. 조지아인은 24시간 들어오는 전기와 의회 민주주의를 기쁘게 받아들이면서도 본연의 독특한 감성은 그대로 간직했다.

조지아는 수세기 동안 오스만과 페르시아, 러시아 등 제국에 정복당했지만 축제와 와인 제조의 전통을 지키면서 문화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니 햄버거와 피자, 스시 등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음식에 열광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조지아에는 옛 음식의 전통을 지키면서 특유의 미적 감각을 살린 레스토랑이 많다.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느껴지면서 창고처럼 보이기도 하고, 1940년대 산업 현장과 할머니의 다락을 합쳐놓은 것 같기도 하고, 별나면서도 아늑하고 의외의 기발함이 빛나는 곳들이다.

도로에 자갈이 깔린 구시가지 중심에 있는 ‘카페 가브리아즈’는 그중 선구적인 곳이다. 유명한 인형극 공연가 레조 가브리아즈가 자신의 극장(아직도 이곳에서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스탈린그라드의 전투’를 볼 수 있다) 바로 옆에 문을 열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이 카페는 극장에서 쓰던 장식품들이 가득한 매혹적인 곳이다. 마늘을 많이 넣고 진흙으로 만든 접시에 담아 구운 시크메룰리가 아주 맛있다.

거기서 언덕을 조금 더 올라가면 ‘블랙 라이언’이 나온다. 벽돌로 된 둥근 천장이 있는 지하실 안에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식탁들이 놓여 있다. 그 식탁 위에 존졸리아(통발 꽃) 피클이나 프칼리(비트나 시금치에 호두와 향신료를 넣고 다진 것) 같은 애피타이저와 구운 토끼고기와 양고기, 자두 스튜 등의 맛있는 음식이 나온다. 축제 때면 며칠씩 부엌에 서서 음식을 만들던 마음 좋은 친척 아주머니 집에 온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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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빵에 다양한 피클과 스프레드를 곁들인 조지아 전통 애피타이저.

과거에 조지아인이 페르시아 쌀 요리와 그리스의 포도 잎사귀 쌈 요리를 응용했듯이 요즘 조지아의 레스토랑들은 전통 음식에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맛을 접목시킨다. 뉴욕 유명 레스토랑 몇 군데서 일한 경험이 있는 조지아 요리사 테쿠나 가체칠라즈는 ‘쿨리나리움’에서 현대적으로 해석한 조지아 음식을 선보인다.

그녀가 고산지대의 스바네티 마을에서 나는 소금을 넣어 만든 마르멜로(모과 비슷한 열매) 수프는 새콤달콤하고 감칠맛이 난다. 또 송어 카르파초는 아지카(아주 매운 양념)의 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초록 사과와 함께 내놓는다. 가체칠라즈가 새로 문을 연 ‘카페 리테라’는 정원이 있어 트빌리시 지식인들의 여름 은신처가 됐다.

베시스 호텔은 장소를 옮겨 요즘도 영업한다. 하지만 식도락을 즐기는 국제 관광객들이 머물 만한 새로운 호텔이 많이 생겼다. 멋진 부티크 호텔 ‘룸스’도 문을 열었다. 객실엔 타일로 된 바닥에 동양에서 들여온 카페트를 깔고 셔닐 원단으로 감싼 소파를 놓았다. 벽엔 조지아 미술가들이 그린 그림이 걸렸다. 예전에 조지아 시골 여행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모험 같았다. 갑자기 눈보라가 치거나 강도를 만나거나 길 잃은 소떼와 마주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룸스는 코카서스 산맥 고산지대에 있는 카즈베기에서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 자연산 와인 애호가들은 트빌리시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카케티의 포도원들을 찾는다. 이곳의 와인업자들은 요즘도 8000년 전 하던 방식 그대로 땅에 묻은 항아리에서 포도를 발효시킨다.

지난번 트빌리시에 갔을 때는 ‘비노 언더그라운드’에서 하루 저녁을 보냈다. 트빌리시 최고의 와인바 겸 상점으로 ‘페전츠 티어스’의 다양한 와인을 맛볼 수 있다. 미국의 한 화가와 카케티의 와인업자가 손잡고 조지아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와인이다. 와인을 마시면서 콜드 프레싱(냉압착) 방식으로 짠 해바라기씨 기름에 빵을 찍어 먹었다. 바에서 나와 우리는 솔로라키 언덕 주변을 걷다가 네덜란드 청년 토비아스 디레보그가 새로 개업한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디레보그는 추운 밤 거리를 걷던 우리를 식당 안으로 맞아들여 와인을 따라줬다. 그리고 조지아 각지에서 생산된 각종 꿀이 담긴 병들이 가득한 선반을 보여줬다. 과거에 내가 그랬듯이 그도 조지아에 한번 와보고는 미지의 땅에서 풍기는 풍요로움과 맛있는 음식에 매혹됐다. 그는 유명한 조지아 마초니(요거트)와 그래놀라를 함께 내놓는 아침 메뉴와 직접 개발한 조지아-덴마크 퓨전 스모가스보드(온갖 음식이 다양하게 나오는 뷔페식 식사), 그리고 냉동고에 보관해 놓은 자연산 숲 딸기에 관해 말했다.

우리는 ‘트리플 쿡트(triple-cooked, 채 썬 감자를 물에 담갔다가 건져서 얼린 다음 고온에 튀겨내고 식혔다가 다시 한번 튀기는 조리법)’ 방식으로 만든 감자칩을 허브 마요네즈와 트케말리(자두와 마늘, 코리안더를 넣은 조지아식 소스)에 찍어 먹었다. 난 트빌리시가 그동안 많이 달라졌으며 지금도 변화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도시는 언제나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손님에게 기꺼이 내주면서 그들을 반길 것이다.

– 웬델 스티븐슨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