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작가의 화려한 나들이

베스트셀러 스릴러 소설가 할런 코벤, 프로덕션 회사 세우고 줄리아 로버츠와 손잡으며 드라마와 영화로 무대 넓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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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런 코벤은 최초로 세계 3대 미스터리 문학상을 석권했으며 소설 28권으로 전 세계에서 60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작가다.

미국 뉴저지 주 출신인 할런 코벤(54)은 지금까지 스릴러 소설 28권을 썼다. 그는 최초로 세계 3대 미스터리 문학상(에드거상·셰이머스상·앤서니상)을 석권했으며 전 세계에서 60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작가다.

작가는 외로운 직업이다. 오랜 시간 혼자 아이디어와 씨름해야 한다. 코벤도 “학창 시절 집에 통지표를 가져가면 ‘다른 학생들과 잘 어울려 놀지 못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평가가 적혀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런 그가 소설 집필이라는 ‘고독한’ 과정을 공동작업이 많이 필요한 TV 각본 집필과 맞바꾸겠다고 결심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지난 4월 15일 그가 제작에 참여한 첫 TV 드라마 시리즈 ‘더 파이브(The Five)’가 영국 위성채널 스카이1에서 막을 올리기 직전 코벤은 뉴스위크에 “아주 흥분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 드라마는 어린 시절 친구였던 4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들은 주인공 마크(드라마 ‘다운튼 애비’의 톰 컬렌이 연기한다)의 동생인 다섯 번째 친구의 DNA가 범죄현장에서 발견되면서 과거의 유령들과 마주친다. 그는 20년 전 실종돼 사망한 것으로 결론 난 인물이었다.

코벤 소설의 전형적인 전제다. 이 이야기의 구상은 그의 머리 뒤쪽에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었다. 그는 “등장인물 4명을 똑같이 다루고 싶었는데 소설에선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이야기의 장면 하나하나를 시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다.”

‘더 파이브’는 영국의 인기 드라마 ‘해피 밸리’를 제작한 회사 레드 프로덕션스가 만들었다. 그 회사의 설립자 니콜라 신들러가 코벤에게 먼저 접근했다. 코벤은 “그녀가 내 소설과 흡사한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코벤이 느지막이 프로듀서와 시나리오 작가, 배우들의 현란한 세계로 뛰어든 것은 큰 모험이었지만 필요했던 변화이기도 했다. “늘 혼자 앉아서 소설 28권을 썼기 때문에 내게는 아주 반가운 변화였다.” 그러나 여전히 그에겐 ‘외로운 늑대’ 작가로서의 사고방식이 남아 있다. “난 바보 같은 일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다행히도 나는 신들러와 시나리오작가 대니 브로클허스트 등 드라마계 최고의 인재들과 함께 일하는 영광을 누렸다.”

‘더 파이브’의 무대는 영국 런던이다. 그의 모든 소설에서 배경이 된 뉴욕·뉴저지 주와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코벤은 거기에도 특유의 미국적 정서를 가미했다. 세부 사항까지 꼼꼼히 챙기는 그는 모든 제작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 “난 제작진에게 ‘바바리 코트나 어두침침함, 비에 젖은 도로는 질색’이라고 단단히 일렀다. 어쩔 수 없이 비 내리는 장면이 하나 들어갔다. 리버풀에선 맑은 날 촬영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야기가 음침할수록 난 밝은 색상과 햇빛, 눈부신 배경을 원했다.”

그의 소설은 지금까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 적이 없다. 코벤 같은 유명 스릴러 작가로선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이제 달라질 듯하다. 그와 신들러는 ‘더 파이브’에서 손발이 잘 맞자 공동으로 프로덕션을 차렸다. 우선 그가 2013년 발표한 소설 ‘6년(Six Years)’을 미국에서 TV 드라마로 제작할 계획이다. 또 할리우드 인기 여배우 줄리아 로버츠가 그의 최신 스릴러 ‘풀 미 원스(Fool Me Once)’의 영화 판권을 구입했다. 로버츠가 제작하고 주연도 맡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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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벤의 최근 소설 ‘풀 미 원스’는 줄리아 로버츠가 영화로 만들 예정이다

코벤은 작가 경력 초기에 영화 사업을 멀리한 것과 관련해 “난 한동안 욕심을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게 현명한 처사였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윌리엄 포크너, 헤밍웨이 등 유명 작가가 전부 할리우드로 인해 추락했다. 난 영화에 정신이 팔리면 소설을 못 쓴다며 그 어두운 쪽으로 가지 말라는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풀 미 원스’의 영화 판권 계약은 최근 마무리됐다. 지난 3월 22일 소설이 발행됐고 바로 이틀 뒤 로버츠와 영화 제작을 의논했다. 로버츠는 주말에 코벤의 소설을 읽은 뒤 마음에 들어 했다. 코벤은 “그녀가 등장인물에 관해 아주 뛰어난 통찰력을 보였다”고 돌이켰다. “그녀는 완벽한 구상을 갖고 있었다. 우린 파트너처럼 이 책을 어떻게 영화로 멋지게 만들 수 있을지 신나게 이야기했다.”

코벤은 드라마 ‘더 파이브’를 제작한 경험을 살려 이번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 한다. 길리언 플린이 자신의 베스트셀러 소설 ‘나를 찾아줘(Gone Girl)’의 영화 대본을 썼고, JK 롤링도 지난해 11월 ‘해리 포터’ 후속작 ‘신비한 동물사전(Fantastic Beasts and Where to Find Them)’을 펴내고 이어 영화 대본까지 쓴 것처럼 말이다. “보통은 영화 대본은 거절하지만 이 작품은 해보고 싶다.”

코벤은 세계 최고의 스릴러 작가(그의 마지막 소설 8권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로서 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언제나 뉴저지 주의 블루칼라 출신 그대로다. 그는 무엇보다 우버 택시를 타느라 돈을 쓰는 데 죄책감을 갖는다. “난 가난했다. 그래서인지 돈을 잘 쓰지 않는다. 돈이 있으면 좋은 점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다.”

코벤은 우버 택시를 최대한 활용한다고 말했다. “뒷좌석에 앉아 있으면 내가 우버 택시에 돈을 쓴다는 죄책감이 밀려 온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차 안에서 글을 쓴다. 그때는 아주 잘 써진다. 그래서 3주 동안 어디를 가든 우버 택시를 탔다. 그동안 우버 택시 안에서 글을 아주 많이 썼다. 돈을 쓴다는 사실이 그처럼 큰 죄책감이라 그 시간을 멍하게 있지 않고 최대한 현명하게 사용하려고 했다.”

코벤은 명성과 부를 쌓았지만 여전히 자신을 미국 중산층으로 생각한다. 그들처럼 그도 대선 경선이 막장 드라마처럼 진행되는 과정을 안타깝게 지켜본다. “사람들이 나를 두고 ‘꼴보수’니 ‘좌빨’이니 말하는 게 싫어서 정치 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한 후보에 관해선 아주 분명한 견해를 갖고 있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다. “과거 미국 대선에선 내가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승리할 경우 미국이란 나라가 난장판이 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극우가 있고 극좌가 있어서 미국은 중도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 민주주의가 물러서고 파시즘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그런 경험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렇다면 그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뜻일까? 코벤은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하며 “아무튼 지금 후보 중에선 그녀가 내 책을 가장 많이 읽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내 휴대폰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심장 수술 후 내 소설을 들고 찍은 사진이 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나와 악수하는 사진도 있다. 우익과 좌익 정치인이 모두 내 소설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제 그의 제국이 영화와 TV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코벤은 책상에 앉아 고독하게 일하는 습관을 고쳐야 하는 어려움도 겪는다. “가끔씩 혼자 있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TV나 영화 일도 좋지만 내 마음은 문득문득 ‘이건 못하겠어. 난 소설가로 돌아갈 거야’라고 부르짖는다.”

코벤은 영역 확장에 불안감을 갖지만 지금까지 실적으로 보면 그리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투파옐 아메드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