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게임으로 치닫는 미중 무역전쟁

시 주석도 협상 타결 바라지만 트럼프 대통령보다 약한 모습 보일 수 없어 팽팽한 기 싸움 지속해

내년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왼쪽)이 지지 기반을 중시하듯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국내 여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 사진:AP/YONHA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역사적인 거래가 이뤄졌다고 생각했다.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선을 노리는 그가 지지 기반에 자랑스럽게 내보일 수 있는 성과가 분명했다. 중국 정부와 몇 달에 걸친 무역 협상 끝에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거래가 95% 성사됐다”고 호언장담했다.

그처럼 잘 나간다 싶더니 갑자기 제동이 걸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한 10%의 관세를 25%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일주일 뒤에는 추가로 325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도 인상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중국도 그에 맞서 오는 6월 1일부터 600억 달러의 미국산 수입 제품에 인상된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미국 협상단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이미 합의한 부분에서 입장을 바꾸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특히 중국은 합의문에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내용을 명시적으로 넣는 것에 반대했다고 미국 관리들은 밝혔다. 지적재산, 국영 산업에 제공하는 보조금, 강압적인 기술이전 등과 관련한 중국 국내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내용이라고 알려졌다. 그 모든 사안은 미국이 중국과 사업하면서 늘 터뜨리던 불만의 핵심이다.

그러나 내년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 기반을 중시하듯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국내 여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중국 공산당 정부가 압제적이고 독재적이긴 하지만 지도부가 민심에 관심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중국 정부는 국영 미디어를 활용하거나 엄격한 소셜미디어 검열을 통해 체제 긍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런 사실은 중국 지도부가 여론의 반향에 신경을 곤두세운다는 점을 시사한다. 중국 정부는 무역 협상의 세부 내용을 두고 공식적으로 논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그러나 중국 학자나 전직 관리들은 중국 정부가 국내법 개정에 관한 합의를 명문화하는 데 반대했다는 미국 측 주장이 옳다면 협상이 결렬된 것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중국 상하이 푸단대학의 국제관계 전문가 선딩리 교수는 “중국 지도자가 서면으로 국내법 개정 약속을 할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금 중국인 사이에는 협상 결렬 직후 나온 미국 측의 주장이 사실과 다를지 모른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왜 그럴까? 고위직이든 하위직이든 중국 관리가 외국의 요구에 따라 국내법을 개정하겠다고 문서로 약속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중국인의 정서는 19세기 중반의 아편전쟁부터 20세기 일본의 일본 강점까지 중국의 근대사가 외국의 정복과 식민지화로 점철됐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중국 산둥성 칭다오 항만 부근의 컨테이너선. 관세를 무기로 하는 무역 전쟁으로 중국의 수출이 타격받을 수 있다. / 사진:AP/YONHAP

중국과 미국 양측의 역사 전문가들은 이번 무역 협상이 깨진 시점이 5·4 운동 100주년과 거의 일치한다는 역사적 아이러니에 주목했다. 1919년 5월 4일 중국 대학생 수천 명이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 모여 베르사유조약의 내용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전후 처리를 위해 연합군과 관련국, 독일 사이에 체결된 이 조약은 중국 내부의 독일 이권을 일본에 넘기는 내용을 담았다. 중국 대학생들은 특히 중국 동북부의 강점 권리를 일본에 주는 조항에 거세게 반대했다. 그들 중 일부가 중국 공산당 창건에도 깊이 관여했다. 1989년 5월 4일에도 중국 대학생들은 5·4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또다시 톈안먼 광장에 집결한 뒤 정부를 상대로 민주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 시위는 약 한 달 뒤 인민해방군의 시위대 학살로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중국에서는 지도부가 외국의 요구에 휘둘리는 기미만 보여도 정치적으로 독배를 마시는 것과 같다. 전직 중국 외교부 관리는 중국 정부가 서면으로 국내법 개정을 약속함으로써 미국 측이 세계만방에 자랑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 측 협상 대표 류허 부총리가 동의한다고 해도 시 주석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지난 5월 11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사설을 통해 “미국처럼 중국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핵심 관심사와 핵심 이익이 있다”며 “무역 협상 합의문은 반드시 균형이 맞아야 하고, 표현 방식도 인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며, 중국의 주권과 존엄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미 관계와 무역 문제에서 지금 중국의 주된 정치적 관심사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다른 문제도 있다. 시 주석은 미국 측의 관세 인상으로 어느 정도까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할 수 있을지 아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중국이 최근 실시한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상당한 폭으로 둔화하던 성장률이 안정을 되찾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시 주석은 중국의 국가 부채가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낮춰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그 비율이 크게 높아졌을 뿐 아니라 새로운 부양책으로 정부의 부채가 더 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의 수출이 10년 전 만큼 중국 경제에 필수적이진 않다고 해도 여전히 중요하며 미국이 이전에 인상한 관세로 섬유와 신발 같은 산업 부문에서 많은 제조업체가 베트남 같은 저임금 국가로 이전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로 중국산 상품 3250억 달러어치에도 관세를 25%로 올리겠다는 으름장을 실행에 옮긴다면 그런 추세가 더 빨라질 것이다. 다시 말해 시 주석에겐 여전히 거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합의의 최종 내용이 무엇이든 중국이 미국의 요구에 따라 국내법을 개정한다는 표현을 넣을 수는 없다. 중국의 국영 미디어가 앞으로 몇 주 동안 인민의 애국주의 고취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 5월 13일 중국 관영 CCTV의 저녁 뉴스에서 앵커는 결연한 어조로 “중화 민족은 5000여 년간 온갖 비바람을 겪었다”며 “민족 부흥의 위대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싸우자고 하면 끝까지 상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애국주의 논조가 약해지기 시작하면 시 주석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갈 준비가 됐다는 신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주권’에 관한 메시지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 부분은 지금 누구도 알 수 없다.

– 빌 파월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