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에 맞서는 금붕어의 전략

소규모 게임 배급사 처클피시, 소비자의 취향 추세보다 개발자 먼저 생각해 시장에서 인정 받아

‘스타듀 밸리’는 작물을 재배하고, 젖소의 우유를 짜고,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 다양하고 중독성 강한 게임 플레이와 픽셀 아트의 미적 감각으로 게이머를 매료시켰다. / 사진:COURTESY OF CHUCKLEFISH/ CONCERNEDAPE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출시된 비디오게임 타이틀이 9000개가 넘는다. 디지털 게임을 구매하고 내려 받을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온라인 시장 스팀에 매일 등록되는 새로운 타이틀은 약 20개다. 이처럼 선택의 폭이 넓다는 사실은 게임을 즐기는 소비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어느 게임을 유통해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게임 배급사에게는 큰 골칫거리다. 액티비전 블리자드와 EA 같은 대형 배급사는 수천 명을 동원하고 수백만 달러를 투입하는 철저한 시장조사를 바탕으로 유통시킬 게임을 선정한다.

그러나 직원이 20명인 소규모 영국 게임 배급사 처클피시는 그와 다른 전략을 사용한다. 게임 개발자처럼 사고하는 것이다.

게임 개발자와 배급사 사이의 관계는 영화 감독과 스튜디오(제작사) 사이의 관계와 비슷하다. 개발자는 예술적인 비전을 추구한다. 그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으로 만드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에 비해 배급사는 자금과 사업 기술, 배급망을 제공함으로써 완성된 게임을 유통시켜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처클피시는 소규모 팀으로 ‘스타바운드’라는 우주탐사 모험 게임을 개발하는 회사로 시작했지만 다른 개발자들에게 유통과 관련된 자문을 제공하면서 배급사로 변신했다고 처클피시의 제품 담당 책임자 톰 캣커스가 말했다. “우리는 게임 개발자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생각에서 배급 쪽의 일을 시작했다. ‘인디’로 알려진 소규모 개발사가 내놓은 게임의 유통에선 부당한 거래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인디 업체 대다수는 사업 감각이 전혀 없고 겨우 한두 사람이 제작팀을 맡는다. 캣커스는 많은 배급사가 일방적으로 자사에 유리한 계약을 개발자에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개발자로선 독자적으로 게임을 유통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배급사로부터 수익의 40%만 받아도 상당히 괜찮다고 느낀다.”

처클피시의 제품 담당 책임자 톰 캣커스는 “‘스타듀 밸리’ 덕분에 배급사로서 우리의 존재가 크게 부각되면서 많은 개발자가 우리와 손잡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 사진:COURTESY OF CHUCKLEFISH/ CONCERNEDAPE

캣커스의 친구들과 동료 소규모 개발업체는 ‘스타바운드’의 성공 사례를 보고 처클피시에 계속 자문을 구했다. 처클피시가 처음 타사 게임의 배급에 나선 작품이 CEO 핀 브라이스가 직접 고른 ‘스타듀 밸리’였다. 이 게임은 개발자 에릭 버론이 혼자 일주일에 70시간씩 투자해 만든 전원생활 시뮬레이션이었다. 브라이스 CEO는 버론에게 처클피시가 참여하는 여러 포럼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게임을 홍보하고 기초적인 사업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들의 파트너십은 큰 성공을 거뒀다.

‘스타듀 밸리’는 2016년 PC용 게임으로 처음 출시됐지만 다음해 플레이스테이션·엑스박스·닌텐도 스위치 컨솔용으로 확장됐다. 전 세계에 800만 개 이상이 팔렸으며 2017년 게이머들이 닌텐도 스위치 용으로 가장 많이 내려 받은 타이틀이었다(10월 출시된 후발 주자였지만 단 3개월 만에 1위에 올랐다). 게이머들은 농장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젖소의 우유를 짜고,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 다양하고 중독성 강한 게임 플레이와 픽셀 아트의 미적 감각에 매료됐다. 캣커스는 처클피시가 ‘스타듀 밸리’를 비롯해 인디 타이틀 12개의 배급에 성공한 비결이 개발에 전혀 개입하지 않은 데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가장 잘 한 일은 직접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임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등 제작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아주 특이한 경우다. 대다수 유통업체는 게임 제작에 사사건건 개입한다. 개발 과정을 간섭하지 않으려면 상당한 신뢰가 필요하다.”

처클피시는 규모가 작은 회사다. 따라서 게임 개발자와 좀 더 친밀한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다. 처클피시가 올해 유통한 게임 ‘패스웨이’를 제작한 개발자 사이먼 바크만은 배급사로서 처클피시의 강점이 외부에서 인적·물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 게임 개발자와 격의 없는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처클피시가 배급을 맡은 게임의 개발자들은 제작관 관련해 재량을 가질 수 있으며, 대형 배급사가 퇴짜를 놓을 만한 게임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바크만은 “대형 배급사는 수백만 달러를 투자하기 때문에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잘 팔리는 것으로 검증된 콘셉트를 따를 수밖에 없지만 처클피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올해 처클피시가 배급한 또 다른 게임 ‘타임스피너’를 제작한 개발자 보디 리도 “우리는 틈새 시장을 위한 게임을 만들 수 있다”며 “잘 팔리는 게임이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면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매년 쏟아지는 수많은 게임 타이틀 중에서 어떤 것을 선정해 배급할지 결정할 때 처클피시가 기본적으로 따르는 것은 직원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소비자도 좋아할 것이라는 직감이다. 그들이 선정하는 모든 게임은 슈퍼 닌텐도와 세가 제너시스 같은 클래식 컨솔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레트로 아트 스타일을 사용한다. 캣커스에 따르면 그건 의도적이라기보다 우연이다. “우리가 특별히 선호하는 미적 조건이란 없다. 하지만 우리는 픽셀 아트에 상당히 이끌리는 편이다.”

처클피시가 인디 게임의 배급사로서 인정받는 것은 비용이나 매출, 또는 소비자의 변덕이 아니라 무엇보다 개발자를 먼저 생각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캣커스는 ‘스타듀 밸리’부터 ‘워그루브’, ‘패스웨이’, ‘타임스피너’까지 처클피시가 배급에 성공한 비결은 결국 한마디로 요약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직접 게임을 아주 많이 한다. 정말 엄청나다.”

– 모 모주크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