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첫날 잠을 설치는 이유

원시 시대의 경계 본능이 남아 낯선 환경에선 뇌의 한쪽 반구가 완전히 잠들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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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새로운 곳에 가면 뇌의 반쪽이 다른 쪽보다 적어도 약간은 더 깨어 있어 숙면이 어려울 수 있다.

처음 간 여행지에서 보내는 첫날 밤. 호텔 시설은 흠잡을 데 없다. 정형외과 원리가 적용된 침대와 이집트산 리넨 시트, 두꺼운 커튼, 이상적인 19.5℃를 유지하는 실내 온도 조절기 등. 8시간 이상 눈을 붙였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일어났을 때 전혀 가뿐하지 않다. 더 피곤하고 기분도 영 좋지 않다. 밤새 한잠도 못 잔 듯하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진화 탓이다. 생물학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지난 4월 21일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생소한 곳에서 잘 때는 뇌의 한쪽 반구가 다른 쪽에 비해 더 깨어 있다. 잠재적인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인류의 조상이 매일 밤 침입자로부터 자기 영역을 지켜야 했던 시절 진화로 생겨난 특성이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얘기다.

수면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단일반구 서파수면(unihemispheric slow wave sleep)’이라고 부른다. 주로 해양동물과 일부 조류가 그런 수면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연구를 통해 인간의 뇌도 비록 규모는 작지만 그와 비슷하게 기능하도록 프로그램됐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주변 환경이 새로운 곳에 가면 뇌의 반쪽이 다른 쪽보다 적어도 약간은 더 깨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침입자가 들이닥칠 때 재빨리 깨어나기엔 좋지만 다음날 아침은 피로와 혼미함에 시달려야 한다.

일반적으로 수면 전문의는 수면 실험실에 들어간 환자의 첫날 밤 데이터는 무시한다. 환경이 갑자기 바뀌어 수면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첫날 밤 효과’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그 효과를 일으키는 원인을 찾으려 했다.

브라운대학 인지·뇌과학 대학원과 심리학 대학원의 연구자들은 자원자들을 모집해 뇌촬영과 함께 수면다원검사를 실시했다. 수면 실험실에서 뇌파, 혈중산소 함량, 심박수, 호흡, 눈과 다리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표준 검사법이다.

연구팀은 자원자들 뇌의 오른쪽 반구만 서파수면(숙면) 상태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뇌의 왼쪽 반구(논리적 사고와 추리를 담당한다)는 ‘고양된 각성 상태’였다. 그로 인해 뇌 전체가 소리에 더 민감해졌다.

연구팀은 자원자들의 양쪽 귀에 각각 소리를 들려주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첫날 밤 소리를 오른쪽 귀(뇌의 왼쪽 부분과 연결된다)에 들려줬을 때 숙면에서 깨어난 비율이 80%였다. 다음날 밤 그 비율은 약 50%로 떨어졌다.

그 다음 연구팀은 새로운 자원자들에게 밤에 자다가 소리를 들으면 손가락으로 벽을 가볍게 두드리라고 주문했다. 첫날 밤 오른쪽 귀에 들리는 소리에 깨어난 자원자가 다음날 밤에 그런 사람보다 많았다. 또 첫날 밤엔 소리에 반응하는 시간도 더 빨랐다. 연구팀은 두 반구 사이의 뇌 활동 차이가 클수록(예를 들면 왼쪽 반구가 특히 활동적일 경우) 잠들기가 더 어렵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논문의 교신저자인 유카 사사키 교수는 왼쪽 반구가 밤새 경계 상태를 유지하는지 또는 다른 시간엔 오른쪽 반구가 경계 부담을 나눠 지는지는 아직 확실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뇌의 반구가 번갈아 가며 경계 임무를 수행할 수도 있다.” 연구팀은 새로운 환경을 자주 접하면 ‘첫날 밤 효과’를 억제하는 능력이 생길 수 있다고 추정했다. 사사키 교수는 “사람의 뇌는 아주 유연하다”며 “새로운 장소에 자주 가는 사람은 별로 잠을 설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곳에서 잘 때는 늘 사용하는 베개를 가져가면 이런 현상을 줄일 수 있을지 모른다.”

연구팀은 현재 경두개 자기자극술(TMS)을 사용해 추가 연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TMS는 치료 목적에 따라 뇌의 특정 부위에 초점을 맞춰 전기 코일이 만드는 자기장으로 자극하는 요법으로 신경성 동통, 편두통, 우울증 치료에 가끔 사용된다. 만약 수면에도 TMS가 효과 있다면 지친 여행객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의 호텔 투숙객은 주문형 영화 대신 TMS를 요청할지 모른다.

– 제시카 퍼거 뉴스위크 기자, 매트 애서턴 아이비타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