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연필 업계의 롤렉스 ‘카랑다슈’

스위스의 명품 업체로 컬러링북 인기로 생산 급증…디지털 시대의 소비자에게 아날로그 감성으로 다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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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랑다슈의 ‘뮤지엄 애쿼렐’은 색연필 형태의 수채화 물감이다. 카랑다슈 색연필은 가보로 대물림되기도 한다.

난 스위스를 정말 좋아한다. 스위스에서 생산되는 거의 모든 제품이 까다로운 기준에 따라 만들어진다. 최고급 시계로 유명한 이 내륙의 산악 국가는 시계 장인에게 요구되는 세심함이 일상생활에도 스며들어 있다.
스위스에서 만든 물건이 큰 신뢰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정확성의 추구다. 담배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피워본 다비도프(모회사가 스위스 바젤에 있다) 시가는 한 대 한 대가 완벽했다. 크레용과 색연필도 마찬가지다. 2년 전 제네바 외곽에 있는 카랑다슈(필기구 및 미술용품 업체) 공장을 방문했을 때 실감했다.

1915년 ‘파브리크 즈느부아즈 드 크레용’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1924년 카랑다슈로 개명했다. 카랑다슈라는 이름은 ‘소유주 아르놀트 슈바이처가 프랑스 만화가 에마뉘엘 푸아레의 예명을 따서 지었는데 ‘연필’을 뜻하는 러시아어에서 유래했다.

카랑다슈는 색연필 업계의 롤렉스로 통한다. 믿을 수 있고 잘 만들어졌으며 우아하고 매우 스위스적이다. 매년 가을 스위스의 초등학교에서는 새 학기를 맞은 학생들에게 카랑다슈 연필을 지급한다.

색연필은 주로 어린이들이 쓰지만 제조 과정은 꽤 까다롭다. 카랑다슈 실험실에 가보니 제약회사나 대학 연구소를 연상케 하는 장비들이 늘어서 있고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조사와 실험에 여념 없었다. 마치 치명적인 질병의 치료제 개발에 매달리는 과학자들처럼 열의가 대단했다. 이들은 내광성(lightfastness)이 뛰어난 색연필 ‘루미넌스(Luminance) 6901’ 같은 기적적인 제품을 개발한다. 이 제품은 2000년대 초 카랑다슈의 미국 유통업체가 일부 미술관 큐레이터들 사이에 색연필로 그린 작품의 구매나 전시를 삼가는 움직임(빛에 노출되면 색이 변하기 쉽다는 것이 이유였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개발됐다.

카랑다슈는 그런 움직임을 색연필의 명성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그 후 10여 년 동안 카랑다슈 연구소는 실험을 거듭했다. 한번은 색연필로 그린 그림을 6개월 동안 미국 애리조나 주의 햇빛 아래 놓고 실험한 적도 있다. 그리고 2008년 마침내 빛에 바래는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찾았다고 발표했다. 바로 ‘루미넌스’ 기술이었다.

수성 색연필은 카랑다슈의 상징이다. 1931년에 개발한 ‘프리스말로(Prismalo)’는 수용성 납을 이용한 세계 최초의 수성 색연필이었다. “품질이 아주 뛰어났다”고 캐롤 헙셔(1930년대에 그녀의 증조부가 이 회사를 운영했다) 카랑다슈 사장이 말했다. “햇빛 아래 놔둬도 색이 변하지 않았다. 내광성이 좋고 고급 물감과 잘 섞였다.”

2013년 여름 카랑다슈는 새로운 내광 제품 ‘뮤지엄 애쿼렐(Museum Aquarelle)’을 출시했다. 색연필 형태의 수채화 물감이다. 유감스럽게도 미로와 피카소(두 사람 다 카랑다슈 제품을 애용했다)는 뮤지엄 애쿼렐과 루미넌스를 써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제품들은 카랑다슈가 성인 컬러링북 인기 상승의 덕을 톡톡히 볼 수 있도록 해줬다. 닐슨 북스캔에 따르면 미국의 성인 컬러링북 종류는 2014년 100만 종에서 다음 해 1200만 종으로 껑충 뛰었다. “아직 3교대까지는 아니지만 2교대로 작업한다”고 헙셔 사장이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성인 컬러링북의 인기 상승 요인은 간단하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스크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연필은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아날로그 기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뭔가를 하고 싶어 한다”고 헙셔 사장은 말했다. “카랑다슈 매장을 찾는 성인 대다수가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윤곽이 그려진 종이(컬러링북)를 대하면 백지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고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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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광성 뛰어난 ‘루미넌스 6901’로 그린 그림은 햇빛에 장시간 노출돼도 색이 잘 변하지 않는다.

많은 성인이 색칠하기가 긴장을 풀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신기술은 소비와 연관 있지만 우리 제품은 창조와 연결된다”고 헙셔 사장이 말했다. 컴퓨터로 데이터와 정보를 처리하는 대신 손으로 뭔가를 창조한다. “우리의 머리와 영혼과 손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카랑다슈는 머리와 영혼과 손뿐 아니라 우리를 어린 시절과 연결해준다. 명품 중에서 연필만큼 개인적으로 가깝게 접촉할 수 있는 제품이 또 있을까? 커다란 양철 케이스를 열면 향나무 향이 은은히 퍼지면서 가지런히 놓인 갖가지 색의 색연필이 보석상자처럼 눈을 즐겁게 한다. 또 6각형의 연필을 손에 쥘 때의 느낌도 색다르다.

게다가 이 색연필은 가보로 대물림되기도 한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어린 시절 쓰던 색연필 상자를 손주에게 물려주기 전에 카랑다슈 매장에 가서 빠진 색깔을 채워 넣는 경우를 흔히 본다. 그들은 색연필과 함께 그것이 지니고 있는 경이로운 느낌까지 물려준다.

– 니컬러스 포크스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