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기다리는 이란 잠룡들

미-이란 긴장이 무력충돌과 테헤란 정부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 분석가가 많다. MEK 같은 반정부 단체들이 과연 이란 지도부 공백을 메울 수 있을까

2018년 연례 ‘자유 이란’ 콘퍼런스에서 이란 반정부 지도자 마리암 라자비가 이란의 혁명 전 깃발을 들고 있다. / 사진:RAJAVI: ZAKARIA ABDELKAFI/AFP/YONHAP

지난 7월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 루디 줄리아니가 알바니아 농촌을 찾아가 MEK라는 이란 반정부 단체의 경계 삼엄한 캠프에서 연설했다. MEK 대원 약 3400명이 테헤란 종교지도자 정권의 전복에 대비해온 곳이다. 줄리아니는 MEK를 이란의 “망명정부”라고 부르면서 트럼프 정부가 그들을 현 정권의 대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단체로 간주한다며 MEK 대원들의 환심을 샀다. 뉴욕 시장을 지낸 그는 “저 끔찍한 정권을 타도하려 노력한다면 머지않아 인명을 구할 뿐 아니라 대단히 책임감 있는 단체에 이란의 전환기를 맡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고 환호하는 청중에게 말했다.

알바니아 MEK 본부 행사에서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 / 사진:FLORION GOGA-REUTERS/YONHAP

다른 전 미국 고위 당국자들과 마찬가지로 줄리아니는 지난 수년 동안 MEK 행사의 단골(그리고 고액) 초청 강연자였다. 트럼프 정부의 매파인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도 마찬가지다. 디펜스 포스트 신문의 편집자이자 MEK 전문가인 조앤 스토커에 따르면 그의 MEK 강연료 수입이 18만 달러에 달했다. 그는 지난해 국가안보보좌관에 취임한 뒤 그런 행사의 참석이 금지되면서 MEK 연설을 중단했다. 그러나 2017년 프랑스 파리에서 있은 MEK 집회 마지막 연설에서 볼턴은 이란 정권에 대한 가장 매력적인 대안임을 자처하는 그들의 주장을 열성적으로 지지했다. 볼턴은 “아야톨라(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의 통치를 반대하는 실질적인 움직임이 있으며 오늘 이 방이 그런 반대 움직임의 중심을 이룬다”고 말했다. 그의 공개 소득내역에 따르면 그 강연으로 4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MEK는 현 정권에 대한 유효한 대안

연설하는 MEK 지도자 마리암 라자비 (왼쪽이 트럼프 대통령 개인 변호사 루디 줄리아니). / 사진:FLORION GOGA-REUTERS/YONHAP

‘인민의 성전 전사들’을 의미하는 MEK는 정권교체를 기다리는 이란의 여러 반정부 그룹 중 가장 역사가 길고 조직적이고 널리 알려진 단체다. 그러나 다른 단체들도 있다. 그중 하나는 실각한 팔레비 국왕의 아들인 레자 팔레비 전 황태자가 이끄는 군주제주의자들이다. 팔레비 황태자는 여러 반정부 단체들을 조율해 민주선거가 실시될 수 있을 때까지 임시정부를 수립하고자 한다. 그 밖에 이란에서 억압받는 민족적·종교적 소수파를 대표하는 무장단체도 여럿 된다. 이들은 자기 지역의 자치권을 확대하는 연방 스타일 정부를 선호한다.

올해 초 트럼프 정부는 현 정권에 대한 유효한 대안으로서 MEK를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위 당국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권교체를 모색하는 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대신 미국 정부는 그들이 말하는 이른바 ‘행동변화’에 관한 협상에 이란 정권을 끌어내려는 트럼프 정부의 대이란 경제제재 캠페인에 초점을 맞춘다고 말한다. 이란 핵무기 프로그램의 검증 가능한 폐기, 탄도미사일 개발 중지, 중동지역 전반에서 이란의 영향력을 확대한 레바논·시리아·이라크·예멘 내 앞잡이 민병대에 대한 지원 중단 등이 거기에 포함된다. 이란은 정권교체 요구나 다름없다며 미국 정부의 요구를 거절했다.

정권교체든 아니든 이들 반정부 단체는 심하게 분열됐다. 따라서 이들의 정권인수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이란 전문가들은 말한다. 지난 수년간 여러 반정부 단체들이 테헤란 정부에 대항하는 연합전선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반복했지만 번번이 역사·아젠다·성격이 충돌하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이란 이슬람혁명 40주년을 반대하는 파리 시위. / 사진:ALAIN JOCARD/AFP/YONHAP

이란의 종교지도자 정권에 대한 반대는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가두시위와 정부관료·시설을 겨냥한 무장공격의 형태로 계속됐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최근의 시위가 2009·2017·2018년에 발생한 시위와 다른 점은 이란 경제난의 심각성 그리고 또 다른 혁명이 촉발될까 하는 우려에서 시위 강경 진압을 주저하는 정부의 태도에 있다. 이란의 주요한 민족적 반정부 단체 중 하나인 ‘이란 쿠르드 코말라 당’의 압둘라 모흐타디 대표는 “요즘 정부의 태도가 신중하다”며 “그들은 시스템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안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이란 지도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행동변화 협상에 응하거나 경제붕괴를 지켜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말한다. 결국 이란 정권은 트럼프 대통령의 뜻에 따르게 될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지금까지 이란은 페르시아만의 해상운송을 위협하고 괴롭히는 캠페인을 벌이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저항을 계속한다. 그에 따라 미국과 영국의 해군·공군 병력이 이 지역에 증파됐다. 한편 최근의 스위스 정보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 지도부는 2020년 11월 미국 대선 때까지 버티며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하고 민주당 정부가 2015년 핵협정으로 복귀해 제재가 해제되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긴장이 금방 무력충돌과 테헤란 정권의 붕괴로 확대될 수 있다고 보는 분석가가 많다. 그런 전망은 다음에는 이란에 어떤 정부가 들어설지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그에 관한 논의는 필연적으로 이란의 반정부 단체들로 향한다.

MEK에서 강연료를 받고 연설한 존 볼턴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 사진:CAROLYN KASTER-AP/YONHAP

MEK는 수년 전부터 이란 이슬람 공화국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높여온 대표적인 반정부 단체였다. 지난 10년간 MEK 지도부와 지지자들은 이란 내에서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받는 세속적·민주적·비폭력 조직임을 자처해 왔다. 또 한편으로 가장 논란 많은 그룹이기도 하다. 상당수 미국의 전직 관료와 이란 전문가들은 MEK의 민주주의 전력뿐 아니라 이란 내 지지기반의 깊이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MEK가 내놓는 주장마다 거의 모두 부정과 반론이 따른다.

1965년 미국이 내세운 샤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의 군주체제에 반대하는 이란 대학생들이 창설한 MEK는 마르크스주의와 이슬람주의의 기이한 혼합 형태를 신봉했다. 팔레비 국왕과 그의 서방 지지자들에게 맞서 투쟁한 최초의 반정부 단체였다. 미국 첩보에 따르면 MEK는 1970년대 미국 육군 대령 3명을 암살하고, 그 밖에 미국 계약군인 3명을 살해하고, 수많은 미국기업의 시설들을 폭파해 워싱턴 정부의 해외 테러단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MEK는 또한 1979년 팔레비 국왕을 실각시킨 이슬람 혁명을 이끈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를 후원했다. 이들은 미국 대사관 점거를 지지했지만 호메이니의 미국인 인질 석방 결정에 반발해 그에게 등을 돌렸다. 1981년 MEK는 호메이니 정권에 맞서 봉기를 일으켰다가 실패한 뒤 지하로 잠적했고 최고 지도자들인 마수드와 마리암 라하비 부부는 체포를 피해 파리로 달아났다.

그러나 1980년에 시작된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정권에 맞서 싸울 기회가 MEK에 또다시 찾아왔다. 그들은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과 손잡고 MEK 대원 약 7000명을 이라크로 보내 군사훈련을 받도록 했다. MEK는 후세인의 군사지원 아래 전쟁 중 이란군에 맞서 수많은 전투에 참여했다. 1988년에는 장갑 부대를 이끌고 이란 정권 전복을 시도했다가 대패하고 3000명 이상의 병력을 잃었다. 그 공격에 분노한 이란 정부는 MEK 정치수 수천 명을 처형했다. 그해 후반 전쟁이 끝나자 후세인은 그들이 더는 국경 넘어 이란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우리 손에 더는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다”

1981년 이란에서 석방돼 독일에 도착한 미국 인질. / 사진:AP-YONHA

그 길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MEK가 후세인과 손잡은 것이 대다수 이란인의 눈에 반역자로 비치게 됐다고 많은 독립적인 학자는 말한다. 1990년대 라하비 부부는 사교집단 같은 조치를 다수 취해 대원들의 이탈을 막았다. 2005년 여러 이탈자와의 인터뷰에 기초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보고서에 따르면 무엇보다도 대원들에게 배우자와 이혼하고 자녀를 해외로 입양 보내도록 했다. 가족에 대한 책임으로 이슬람 공화국과의 투쟁을 등한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2003년 후세인을 몰아내고 이라크를 점령한 미군은 MEK를 무장해제하고 남은 MEK 대원 3400명을 미국의 보호 아래 뒀다. 같은 해 마수드 라하비가 불가사의하게 실종되면서 마리암의 단독 지도체제가 시작됐다. 2009년 그녀는 자신의 파리 본부에서 MEK를 워싱턴의 테러단체 리스트에서 빼내기 위한 수백만 달러 규모의 캠페인에 착수했다. 해외 테러단체라는 공식적 신분에도 불구하고 MEK는 워싱턴의 내셔널 프레스 클럽 사무실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면서 이란 강경파들의 환대를 받았다. 그들은 미국 캐피털 힐(국회의사당이 있는 언덕)에서 성대한 리셉션을 주최하고 미국의 저명한 정계·군부 요인들에게 자신들이 세속적·민주적 이란을 표방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연설을 하도록 하면서 그 대가로 최대 5만 달러씩 지불하기 시작했다.

볼턴과 줄리아니 외에도 MEK로부터 강연료를 받은 연설자로는 앤드류 카드 전 백악관 비서실장, 제임스 존스 전 국가안보 보좌관, 프랜 타운센드 전 백악관 대 테러 보좌관, 마이클 머케이시 전 법무장관, 톰 리지 전 국토안보부 장관, 루이스 프리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 포터 고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존 사노 전 CIA 부국장, 리처드 마이어스 전 합참의장, 웨슬리 클라크 장군, 앤서니 지니 장군,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 에드 렌델 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로버트 토리첼리 전 상원의원, 에반 베이 전 상원의원, 존 루이스 하원의원, 패트릭 케네디 하원의원 등이 꼽힌다.

베를린에서 이란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MEK 지지자들. / 사진:MEK-IRAN.COM

워싱턴의 외교정책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에서 ‘이란의 미래’ 프로젝트를 이끄는 바버라 슬래빈은 “돈이 목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싫어해 연설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내 적의 적은 친구라는 격언을 받아들이며 MEK가 이란에 눈엣가시 같은 단체임을 안다. 게다가 강연료도 많이 준다.”

MEK가 어떻게 강연료를 그렇게 후하게 줄 수 있느냐는 의문은 전쟁 후 이라크가 보유했다는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수색에서 일정 부분 설명됐다. 미국의 침공 이전 4년간 3800만 배럴 이상의 석유를 해외 중개인들에게 판매한 바우처를 사담 후세인이 MEK에 건넸음을 입증하는 문서가 발견됐다고 뉴스위크가 처음 보도한 뒤다. 찰스 듀엘퍼 미국 무기사찰 팀장은 보고서에서 MEK가 그 바우처를 판매해 최대 1600만 달러의 소득을 올린 것으로 추산했다(후세인의 몰락 후엔 이란과 앙숙관계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그 단체에 대한 자금지원을 떠맡은 것으로 많은 전문가는 추측했다).

한편 MEK는 높은 가치를 지닌 정보 자산으로 알려졌다. 2002년 이란의 나탄츠에 있는 당시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을 MEK가 노출시킨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것이 유엔 사찰로 이어졌다. 2007년부터 5년 동안 MEK 암살자들이 (이스라엘 정보부 모사드의 자금·훈련·무기를 지원받아) 이란 핵과학자 6명을 살해했다고 미국 당국자들이 NBC 뉴스에 말했다.

2011년 이라크의 친이란 민병대가 MEK 대원 약 140명을 살해하면서 그들의 보호를 책임지던 미군에 큰 당혹감을 안겨줬다.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은 추가 학살을 막기 위해 2012년 그들을 테러단체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이 조치로 캠프 아슈라프에 있던 MEK 대원들이 알바니아로 피신하는 길이 열렸다.

1986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오른쪽)을 방문한 이란 MEK 지도자 마수드 라자비. / 사진:WIKIMEDIA COMMONS

당시 미국 국무부의 대니얼 벤저민 대 테러조정관은 그들을 명단에서 빼준 것은 “MEK 내의 사고체계에 어떤 변화가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는 그들을 받아줄 나라가 없어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국무장관의 재량으로 이뤄진 일”이라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저 우리 손에 더는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다트머스 칼리지 ‘디키 국제이해센터’ 소장인 벤저민은 “MEK는 아주 훌륭하게 민주당원으로 위장했다”고 말했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변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리고 이란 내에서 그들이 지지를 받느냐에 관해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란 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지지자 단체가 없다.” MEK와 그 정치조직인 이란저항국가협회(NCRI) 관계자들은 미국인 암살 관련설 등 그 단체의 전력과 관련된 이 같은 주장을 극력 부인한다.

MEK의 알 사파비 워싱턴 지부장은 “이란 정권은 40년 동안 이런 허위정보 캠페인을 벌여 왔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들은 거기에 거금을 투자해 미국과 유럽에 고도의 평론가와 로비 네트워크를 구축해 이란 반정부 단체가 이란 내에서 전혀 지지받지 못하고 비민주적이라고 모략한다.”

오늘날 NCRI는 “민주적·세속적·비핵 공화국의 설립을 표방하는 각종 단체와 저명한 반정부 인사 약 500명을 규합한다”고 그는 말했다. 자금 출처는 오로지 이란 해외거주자 커뮤니티의 재력가들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다른 반정부 단체들은 MEK가 자신들의 공조 제안을 거부했다고 말한다. 한 반정부 단체의 지도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며 익명을 조건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 이외의 다른 제안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명목상 왕실 지도자의 부상

2013년 이라크 난민촌 공격으로 피살된 사람들에게 조의를 표하는 MEK 지도자 마리암 라자비. / 사진:KENZO TRIBOUILLARD/AFP/YONHAP

트럼프 정부가 이란 이슬람 공화국에 경제적으로 고삐를 조이는 상황에서 레자 팔레비 전 황태자가 테헤란 정권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면서 반정부 단체들에 자신의 리더십과 비전 아래 뭉쳐 민주주의 이란을 수립하자고 촉구해 왔다. 이란 혁명으로 그의 일가가 망명길에 나설 때 그의 나이 불과 17세였다. 그러나 지난 40년 동안 이란의 변화를 예의 주시해온 그는 정부 부패와 경제 실정에 대한 불만이 정권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2월 “(이란)의 공기가 발화점에 다다른듯하다”고 미국 정부의 페르시아어 방송국 라디오 파르다에 말했다.

그러나 팔레비가 워싱턴 외곽에서 거주한다 해도 외교정책가에선 생소한 인물이다. 카리스마와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1980년 국왕을 자처하는 선언을 발표했다가 나중에 철회했다. 1980년대 미국 정보국이 미국 해군과 공군의 지원 아래 페르시아만의 이란 키시섬에 군주제 세력을 상륙시키자는 제안을 들고 팔레비에 접근한 것으로 전해진다. 팔레비는 출구 전략에 초점을 맞춘 질문을 가장 먼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해 말 이후 팔레비는 싱크탱크들을 만나 여러 반정부 단체가 정권 붕괴에 대비하는 동안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설명하면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 작업에 착수했다. 팔레비는 정권교체를 위한 공동 계획을 수립하도록 그런 단체들을 인도할 수 있는 명목상 지도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피닉스 프로젝트로 이미 그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망명한 이란 과학자·학자·전문가들을 규합해 이란의 차기 민주 정부가 직면할 문제들에 대처하려는 노력이다. 그는 이란을 통치하려는 개인적인 야심은 없다고 말해왔다. 팔레비의 지지기반은 미국과 유럽의 이란인 망명자들뿐 아니라 이란 내 알려지지 않은 인원으로 이뤄진다. 그중 일부는 2017년 반정부 시위 중 군주제의 복귀를 촉구했다.

지난 2월 이란 종교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테헤란에서 이란 공군 장교들을 대상으로 연설한다. / 사진:IRANIAN LEADER OFFICE-EPA/YONHAP

지난 수년간 혁명에 대한 향수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노력으로 유럽 기반의 여러 TV 방송국이 친군주제 프로그램을 이란으로 방송해 왔다. 그러나 팔레비는 군주체제의 페르시안 쇼비니즘(우월주의)을 잊지 않은 이란 소수민족들 사이에서 여전히 인기가 없다. 그리고 일부 이란계 미국인은 그의 리더십 역할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선친의 권위주의적인 통치와 거리를 두라고 그에게 촉구했다. 워싱턴 연구소의 패트릭 클로슨 리서치 팀장은 팔레비가 영국 입헌군주제를 따라 국정운영 책임이 없는 형식적 군주 역할을 선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클로슨 팀장은 애틀랜틱 카운슬의 슬래빈 연구원에게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처럼 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란의 모든 반정부 단체 중에서 정권에 맞서 가장 실질적인 투쟁을 하는 그룹은 이란의 민족적·종교적 소수파를 대표하는 조직들이다. 북서부의 쿠르드족과 아제르바이잔인, 남서부의 아랍인, 남동부의 발루치족이다. 모두 자기 지역의 자치권을 요구한다.

비영리 연구단체 국제위기그룹의 이란 전문가 나이산 라파트에 따르면 이들 단체는 혁명 이후 정부 표적을 겨냥해 수시로 소규모 공격을 감행해 왔다. 정부는 이들을 지역 라이벌들의 후원을 받는 테러단체로 묘사한다. 지난 수년간 ‘이란 쿠르드 코말라당’은 이란의 종교지도자 정권을 탈중앙화된 연방 정부로 대체해 이란 내 소수민족들의 권리를 헌법으로 보장하겠다는 이념 아래 이들 각종 단체를 규합하려는 노력에서 앞장서 왔다.

레자 팔레비 전 이란 황태자 사진을 들고 있는 지지자. / 사진:ANDRES KUDACKI-AP/YONHAP

코말라당의 모흐타디 대표는 “분명한 것은 현 정권이 조만간 붕괴하리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붕괴 이후 이란이 여러 개의 민족 지역으로 분할될 가능성을 피하고자 한다.” 모흐타디 대표는 트럼프 정부에 반정부 단체들과 연락망을 구축해 앞으로의 변화에 대비하라고 촉구한다. 그런 준비가 없으면 정권이 붕괴한 뒤 이란 혁명수비대가 권력을 장악하거나 나라가 분열되면서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그는 경고했다. 모흐타디 대표는 “트럼프 정부는 이란 정권에 경제적·정치적으로 압력을 가했지만 이란 반정부 진영과의 연계 면에서 어떤 진지한 조치도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는 이란의 어떤 반정부 인사도 만난 적이 없다. 지금으로선 의도적으로 그런 반정부 단체들과 거리를 둔다. 미국 정부의 브라이언 후크 이란 특사는 한 인터뷰에서 “이란의 미래는 이란국민이 결정할 것”이라며 “우리는 그 문제에서 승자와 패자를 정하지 않는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물론 그런 입장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다. 볼턴 보좌관이 여전히 이란에서 노골적인 정권교체 정책을 택하도록 대통령을 설득하려 애쓴다고 백악관 측근들은 전한다. 그렇게 되면 반정부 단체들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조직력·자금 그리고 워싱턴에서의 두드러진 존재감을 감안할 때 특히 MEK가 두각을 나타내리라고 분석가들은 말한다.

2017년 군사훈련 중인 이란 쿠르드족 단체의 대원들. / 사진:SAFIN HAMED/AFP/YONHAP

일부 지지자는 MEK가 테헤란 정권에 대한 유효한 대안으로서 그들을 배제하지 않기로 한 미국 정부의 결정으로 이미 선두로 올라섰다고 본다. 그러나 현재로선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정책에서 경제제재가 여전히 가장 중요한 요소다. 후크 특사는 “이란의 앞잡이들이 약해지고 중동의 불안정을 초래하는 데 필요한 이란 정권의 자원이 바닥나는 시점에 도달하려면 경제적 압력이 필요하다”며 “그 목표에 이르는 다른 길은 없다”고 말했다.

이란 반정부 단체 입장에서 이처럼 평화(그리고 전쟁)가 없는 상태는 이란에 지도력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리고 테헤란과 워싱턴 간의 긴장이 계속 고조됨에 따라 이들 단체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불똥이 튀어 마침내 이란의 정치적 미래가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그리고 워싱턴)이 준비돼 있을까?

– 조너선 브로더 뉴스위크 기자